무한 변신한 코튼 셔츠의 매력

올봄, 더 이상 변할 것도 논할 것도 없어 보이는 평범한 코튼 셔츠에 시선이 쏠렸다.
자극적인 향과 맛에 휘둘리지 않는 슈퍼 푸드처럼, 유행의 블랙홀을 지나 무한 변신한 코튼 셔츠.



향신료나 다른 첨가물 없이 오로지 밀가루와 소금만으로도 맛을 낼 수 있는 바삭한 크래커처럼, 기본에 충실한 베이식 코튼 셔츠가 런웨이 위에서 유난히 눈에 띈 이유? 더는 새로운 디자인이 나올 것도 없어 보이고,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을 평범한 셔츠 한 장에 또다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 건 요즘 ‘대세’ 알렉산더 왕 때문이다. 바로 빳빳한 옥스퍼드 셔츠를 변형해 스포티하고 도발적인 느낌으로 재해석한 그의 셔츠! 그는 밋밋한 셔츠를 배꼽을 드러내는 길이로 싹둑 자르거나, 맨 위 단추만 잠근 채 A라인으로 옷자락을 펼치거나, 박시한 핑크빛 셔츠에 복서 쇼츠를 매치하거나 헐렁한 복서 팬츠를 곁들였다. 덕분에 오랫동안 매니시와 클래식 범주에서 얌전히 겨울잠 자던 코튼 셔츠는 도도하고 세련된 스포츠 룩으로 환골탈태했다(그가 진두지휘하는 발렌시아가에도 화이트 셔츠가 등장했다).

패션에서 기본 중 기본으로 꼽히는 코튼 셔츠가 알렉스 특유의 스포티즘과 만나 도발적이고 섹시하게 변신했다면, 프라발 구룽의 손끝을 거치면서는 좀더 우아한 비즈니스 우먼용 의상이 됐다. 그는 군더더기 없이 말끔한 화이트 셔츠에 미니멀한 펜슬 스커트를 매치했고, 소매를 부풀린 화이트 셔츠엔 장미 프린트의 우아한 스커트를 더해 모던한 레이디라이크를 완성했다. 기본 셔츠 패턴을 이용하되 단정하고 정숙한 모습으로 디자인된 그의 화이트 셔츠는 발렌티노가 선보인 블루 셔츠와 은근히 닮은 구석이 있었다. 데콜테가 은근히 드러나는 시스루 소재를 덧댄 셔츠에 주술적인 골드 액세서리를 더하거나, 헐렁한 자수 팬츠를 매치해 페전트풍으로 연출한 그들 말이다(발렌티노의 듀오 디자이너들은 하우스 유산인 레드 드레스와 함께 하늘색 기본 셔츠를 새로운 시그니처로 밀어붙이고 있다).

이처럼 아이템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디자이너들은 아카이브를 뒤지거나 오지로 여행을 가기도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아이템에서 힌트를 얻는다. 몇 년 전, “누구에게나 익숙하고 예상 가능한 아이템이 바로 셔츠다”라고 주장하며 남성용 화이트 셔츠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줬던 빅터앤롤프를 기억하는가? 또 우아한 롱스커트와 짝지은 코튼 셔츠의 카멜레온 같은 모습을 재발견한 질 샌더도 떠올려보라! 기본형 셔츠 한 벌은 말하자면, 누구의 손을 거치느냐에 따라 아방가르드와 미니멀리즘을 넘나들며 천의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 아이템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언더커버의 준 다카하시는 빅터앤롤프 과에 속한다. 익숙한 아이템을 삐딱한 시각으로 해석한 그는 화이트 셔츠를 사선으로 절개하고 페플럼 헴라인을 추가해 독특한 셔츠를 제작했다. 페미닌한 블라우스와 매니시한 셔츠가 조화를 이룬 아수라 백작같은 모습인 셈. 반면 보테가 베네타는 기본에 충실한 질 샌더 과다. 테일러드 칼라에 단추를 과감하게 생략한 후, 랩 스커트나 팬츠 허리에 쓱 밀어 넣기만 하면 끝! 늘 그렇듯 에스닉한 여행에 심취한 도나 카란도 간결한 화이트 셔츠를 컬렉션에 포함시켰다. 토마스 마이어처럼 단추를 생략한 뒤 큼직한 칼라에 역삼각형 실루엣이 특징으로, 랩 스타일 화이트 셔츠에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벨트로 셔츠 여밈을 대신했다. 또 남성적 DNA를 그대로 반영한 랄프 로렌은 타이를 더하거나 규칙적인 윈도페인 체크 패턴을 추가하는 식으로 60년대 레트로풍 셔츠를 완성했다. 생로랑의 에디 슬리먼 역시 같은 방식. 아주 가느다랗고 얇은 타이를 매치, 글렌체크 수트와 함께 스타일링함으로써 런던 클럽을 즐겨 찾는 소녀들을 묘사했다.

화이트 셔츠를 입고 <보그> 촬영장에 나타난 모델 박세라 역시 셔츠를 즐겨 입는다. “빳빳하게 다림질한 코튼 셔츠의 촉감이 좋아요. 단추를 어디까지 잠그느냐에 따라 그날 기분과 이미지를 드러낼 수 있죠.” 그녀는 중요한 약속이나 미팅이 있으면 목까지 단추를 다 채워 당당한 커리어우먼 이미지를 연출하고, 친구들과의 편한 모임이나 파티에는 단추를 가슴골까지 풀어 느슨하고 섹시한 매력을 연출한다. “디자인이 평범해 다 똑같아 보이지만, 오래전에 구입한 질 샌더 블루 셔츠와 얼마 전에 구입한 SPA 브랜드의 코튼 셔츠는 입었을 때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요. 셔츠는 무엇보다 최대한 기본을 충실히 따른 플레인 셔츠가 좋아요. 그런 셔츠는 꼭 맞춤 수트 같죠.”

그렇다면 올봄 수많은 매장에 진열된 코튼 셔츠 중에서 <보그>가 추천하는 아이템은? 베이식한 형태에다 폴카 도트, 트롱프뢰유, 스포츠, 그래픽 패턴 등이 추가된 코튼 셔츠 하나면 세련되고 강렬한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다! 단, 시계와 팔찌는 소매 위에 차고, 선명한 립스틱과 존재감 넘치는 액세서리를 추가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