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즌의 히어로, 아제딘 알라이야

“파파!” 스테파니, 나오미, 신디 등 슈퍼모델들은 그를 이렇게 부른다.
이번 시즌, 올리비에 루스테잉이나 도나텔라 베르사체는 아제딘 알라이야를 이렇게 부를지 모르겠다.
“히어로!”



A. 만약 알파벳 첫 글자를 누구에게 바쳐야 한다면, 당신은 어떤 인물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하늘을 향해 손바닥을 높이 들겠나? 그게 패션 안에서라면? 영국 <보그>는 2014년 봄 컬렉션이 모두 끝난 직후인 작년 10월 3일, 올봄 트렌드를 알파벳으로 정리하며 아제딘 알라이야에게 헌정했다.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파리 의상 박물관 재개관 기념으로 기획된 알라이야 특별전의 영향력 때문이다. 그래서 작년 가을에 파리로 출장 떠난 패션 피플들부터 올해 초 꾸뛰르 위크까지 참관한 사람들이 눈을 크게 뜨고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일정이 있었으니, 바로 알라이야 전시였다.

최근 패션에서는 이런저런 대형 전시가 패션 울타리를 가뿐히 뛰어넘어 대중에게 호소하는 중이다. 덕분에 런웨이, 스트리트 사진, 셀러브리티들의 옷차림과 함께 패션 전시가 당대 유행이 추출되는 또 하나의 경로가 됐다. 알라이야 전시는 예상대로 압도적이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공간을 활용한 거창한 연출이 동원됐을 것 같지만, 필요한 건 딱 하나. 옷을 입힐 투명 아크릴 보디스뿐. 한 벌 한 벌이 지닌 카리스마가 실로 어마어마하니 가타부타 부연 설명 따윈 필요 없었던 것. 그러니 살아 있는 전설의 회고전과 업적으로부터 후배 디자이너들이 ‘삘’을 받지 않으려야 받지 않을 수가 없겠다.

요즘 젊은 디자이너 세대를 대표하며 하이테크에 유난히 민감한 올리비에 루스테잉은 지난 10월 파리 패션 위크에서 5번째 발맹 런웨이 쇼를 끝낸 뒤 알라이야 오마주에 대한 복선을 SNS에 깔았다. 무려 23만 명이나 되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들에게 알라이야 전시를 보고 왔다며 소문낸 것(그의 표현에 따르면 ‘어메이징’한 전시였고, 패션, 파리, 아제딘 알라이야, 인스타 알라이야, 러브 등의 단어와 함께 ‘타임리스’를 해시태그로 달았다). 아니나 다를까, 1월 20일 공개된 이번 프리폴 컬렉션은 온통 알라이야 천지였다. 특히 80년대에 알라이야를 입고 무대에서 몸을 육감적으로 흔들던 티나 터너가 떠오르는 룩들이 대부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허리를 커다란 벨트로 조인 뒤 띄엄띄엄 맞주름을 잡아 부채꼴로 펼친 미니 드레스는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띈 알라이야의 불후의 명작 중 하나다. 사실 루스테잉은 이미 올봄 컬렉션부터 슬슬 알라이야에 빠진 눈치였다. 그의 살아 있는 유산 중 하나인 흑백 그래픽 이미지가 올봄 발맹 컬렉션에 차용됐으니까.



전시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꾸뛰르 패션 위크 중에도 알라이야를 향한 경배와 찬양이 파리 전체에 한 번 더 울려 퍼졌다. 아틀리에 베르사체 쇼의 맨 앞줄과 무대 위에는 역시 80년대 알라이야의 뮤즈였던 그레이스 존스 복제양들이 득실거렸다. 동화에서 마법사나 마녀가 머리에 뒤집어쓴 채 어깨 위로 흘러내리도록 입었던 모자 달린 드레스 차림의 모델들! 그 가운데 올봄 베르사체 광고 모델인 레이디 가가가 바로 그 으슥하고 음침한 주술사 같은 차림으로 떡하니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모든 광경을 아제딘 알라이야가 직접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그 역시 ‘절친’인 카를라 소짜니와 함께 이 쇼에 초대되어 맨 앞줄에 좌석을 배정받았다).

인기 절정의 젊은 디자이너, 그리고 세상이 다 알아주는 꾸뛰르 명문가와 셀러브리티가 아제딘 알라이야에게 매료된 시기에 또 한 명이 알라이야 카리스마의 ‘끝장’을 보여줬다. 얼마 전, 미셸 오바마가 알라이야의 진초록 드레스를 입고 공식 석상에 나타난 것. 현 미국 영부인이 패션 애호가라는 사실은 아메리카 대륙을 넘어 유라시아와 환태평양에서 모르는 사람 빼고 다 아는 사실이다. 타쿤이나 나르시소부터 미국의 지방 디자이너가 만든 옷까지 다양한 수위를 넘나드는 영부인이지만, 패션 쪽 사람들은 꽤 오래전부터 그녀가 알라이야를 입어왔다는 걸 잘 안다. 미국 대중문화계의 영부인쯤 되는 오프라 윈프리 역시 올해 초 <W> 미국판의 할리우드 특집 때 알라이야를 입었다. 또 킴 카다시안을 비롯한 자타가 공인하는 패션 피플 역시 자신의 안목과 수준이 높다는 사실을 쉽게 알릴 수단이 필요할 땐 고민 없이, 주저 없이 알라이야를 입는다.

알라이야 대형 회고전이 끝났다고 그의 인기가 뚝 떨어지거나, 관심 대상에서 제외되는 일은 없다. 튀니지에서 패션 수도로 온 그는 늘 그렇듯 한자리에 있을 뿐. 물론 게스키에르의 루이 비통 첫 쇼에 초대되는 등 패션쇼에 왕림하시어 자리를 빛내주십사 하는 후배들의 간곡한 요청을 모두 수락하는 존재로서 패션 위크 때 바쁘긴 하다. 하지만 여전히 후배들은 그가 완성한 패션 조각의 요모조모를 훑어보며 학습 중이고, 슈퍼모델들과 스타들은 아담한 그의 몸에 매달려 어리광을 부리며, 패션의 A 리스트로서 늘 맨 먼저 호명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