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카디건을 좋아하세요?

‘꽃 피는 봄이면 돌아온다’ 했던가?
어깨에 살짝 얹든, 허리에 질끈 동여매든, 입었으나 입은 것이 아닌 카디건 시즌.
올봄, 카디건 스타일이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돌아왔다!



캠퍼스에는 봄을 알리는 모든 것들이 총망라돼 있다. 필사적으로 꽃가루를 날려대는 식물들(미세먼지 덕분에 얌전해진 편), 잔디 위로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살(오래 쪼이면 심지어 덥기까지), 아직 뭐가 뭔지 모르는 순진한 눈망울을 굴려대는 풋풋한(어설프기도 한) 신입생 무리 등등.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건 세기가 바뀌어도 이맘때 쯤 어김없이 등장하는 봄의 상징적인 캠퍼스 패션이 있다는 사실! 프레피 룩이 유행하던 80년대, 포댓자루 같은 힙합 룩이 유행하던 2000년대, 그리고 모든 게 온갖 것들로 뒤섞인 현재까지 굳건하다. 얼마 전 대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어시스턴트는 2014년에도 이 패션이 여전히 캠퍼스를 떠돌고 있다는 사실을 증언해줬다. “네, 봄이 되면 다들 어깨나 허리에 하나씩 두르고 다녀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덧붙였다. “촌스럽거나 이상해 보이지 않던데요?” 뭐가? “카디건!”

니트웨어를 슈퍼맨 망토처럼 등 뒤에 걸친 후 양쪽 소매를 가슴 앞으로 늘어뜨리거나 묶는 것을 ‘넥 스웨터’, 스커트처럼 허리에 두른 것을 흔히 ‘웨이스트 스웨터’라 부른다. 패션 사전에 오른 정식 명칭은 아니지만, 여기서 스웨터란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풀오버 스웨터뿐 아니라 스웨터 카디건까지 포함한다. 30대를 훌쩍 넘어선 이들에게는 이 패션이 ‘한물간’ 것처럼 느껴지기 마련인데, 80년대 해외 하이틴 영화나 <우리들의 천국>, <마지막 승부> 같은 90년대 청춘 드라마에서 지겹게 봤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모두 지겨워했을지언정, 정작 대학 신입생이 되자 캠퍼스에서 앞다퉈 어깨와 히프에 둘러매던 카디건을 어찌 잊을 수 있겠나!

그렇다면 카디건은 어떤 경로로 캠퍼스 패션의 영원한 상징이 됐을까? 답은 패션의 특수성-보편성의 반대말로서-과 연관이 있다. 카디건을 어깨에 두르는 것은 골프, 테니스, 상류사회, 학생 사교 클럽 같은 단어들과 한 세트로 묶이는, 50년대 아이비리그에서 탄생한 프레피 룩의 대표적 스타일로 자리 잡아왔다. 즉, 조부모와 부모의 뒤를 따라 명문 학교에 입학해서 교내 고급 스포츠 클럽에 가입한 명문가 자제들에게 이 카디건은 그 모든 것들과 함께 대대손손 물려받은 전통 같은 것(파텍 필립 시계 광고처럼). 이렇듯 상류층 젊은이들이 공유하는 패션 암호로서 어깨에 두른 카디건은 있는 집안의 곱게 자란 ‘이상적인 대학생’의 유니폼으로 위상을 굳히게 됐다. 그리고 이러한 상징성으로 인해 그 범주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패셔너블하면서도 캐주얼해 보이고 싶어 하는’ 의식적인 패션으로 치부돼온 점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반면, 허리에 두르는 방식은 전공 서적을 옆구리에 낀 단정한 대학생보다 헝클어진 차림새의 그런지 로커와 반항아들을 연상케 한다. 90년대 패션에 대해 지독한 향수를 갖고 있는 디자이너 리처드 채 역시 허리에 무언가를 두르지 않으면 어색하다. “어린애들이 담요에 집착하는 것처럼 저도 늘 허리에 뭔가를 두르죠.” 그는 종종 자신의 컬렉션에 이 스타일링을 등장시키곤 한다. “남자들은 여자들의 스커트를 흉내 내기 위해 셔츠나 스웨터를 허리에 둘러 옆으로 돌리기도 했어요.” 커트 코베인에 대한 강렬한 기억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남자가 먼저 허리에 둘렀을 거라 여기기 쉽지만 그는 단언했다. “원래 남자들이 여자들을 따라다니잖아요!” 그의 봄 시즌 러브 컬렉션에 웨이스트 카디건이 등장하진 않았지만, 팬츠 위에 스커트를 레이어링한 것을 보면 그 아이디어가 어디서 비롯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쯤 되면 명문가 출신들의 어깨 위에 훈장처럼 얹히거나 삐딱한 로커의 허리에 질끈 동여매진 카디건이 있으나마나 한 물건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실용적 가치를 깨닫는 순간은 시시때때로 찾아온다. 아침저녁으로 기온 차가 큰 봄부터 실내 레스토랑과 영화관에서 에어컨 바람이 감기를 부르는 여름까지, 그야말로 애매한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 카디건의 현실적인 매력이다.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은 의외로 실용적인 카디건 룩을 충분히 즐겨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카디건을 낡은 선입관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라도 좀더 패셔너블해 보이도록 하는 데 집중했다. 칼 라거펠트는 샤넬 미술 학도들의 목과 허리에 동시에 봄 컬러 카디건을 둘러줬다. 그의 포인트는 소매 부분을 뒤로 돌려 니트 스카프, 혹은 스커트를 두른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 피비 파일로의 셀린 컬렉션을 위한 스타일리스트 카밀라 니커슨의 비법은? 역동적 프린트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 미니멀한 흰색 톱 위에 컬러풀한 니트를 비스듬히 묶는 것. 죽죽 늘어난 노랑과 검정 니트는 마치 흰색 캔버스 위에 칠한 페인트처럼 눈에 확 띄었다. 프리폴 컬렉션까지 확장시키면, 귀여운 유머를 구사하는 제랄도 다 콘세이사오는 소니아 리키엘 환절기 컬렉션을 위해 가짜 카디건을 등장시켰다. “하프 스웨터예요!” 네크라인과 소매, 혹은 T자 형태의 뒤판만 완성된 이 반쪽짜리 스웨터와 카디건은 머플러처럼 흘러내리지 않을뿐더러 다양하게 두를 수 있는 게 매력! 또 동네 백수 같은 모습으로 어슬렁거리며 슈퍼마켓을 향하던 아쉬시 모델은 오버사이즈 집업 카디건을 미디 스커트처럼 둘렀고, 몽클레르 감므 루즈의 허리에 묶은 집업 재킷은 물결치는 스커트 자락처럼 모델의 워킹을 따라 펄럭였다. 올봄 시도해야 할 스타일링에 대해 힌트를 주는 이 룩들은 그런지의 ‘반패션(anti fashion)’ 성향을 ‘친패션(pro fashion)’으로 바꿨다는 점에서 일단 호감도 상승. 조금 더 나아가 마이클 반 더 햄은 아프리카 농장 일꾼의 옷에서 영감을 얻어 스커트 위에 카디건처럼 두른 꽃무늬 옷감을 입체적으로 재단한 스커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물론 현실에선 여전히 논쟁거리다. “스웨터를 어깨나 허리에 둘러도 괜찮을까요?”라는 질문은 온라인 패션 포럼에 올라오는 단골 주제 중 하나. 답변은 ‘질문하는 것 자체가 이미 그렇게 입으면 안 된다는 뜻’이라는 냉정한 대답부터 ‘괜찮아 보이지만 나는 절대 하지 않는다’는 개인주의형, ‘여자는 되고 남자는 안 된다’는 남녀 차별형, ‘성인은 어깨에, 10대들은 허리에 둘러야 한다’는 연령 차별형, ‘소매를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완벽주의형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 도대체 모두가 공감할 수도, 모두가 반감을 가질 수도 없는 것이 패션인 셈이다. 혹시 질문을 올린 사람과 같은 마음으로 망설이고 있나? 이번 시즌이야말로 당신의 카디건 공포증을 치료할 절호의 찬스니 일단 시도해보길 권한다. 단, 앞서 언급한 구시대의 단정한 방식 말고, 런웨이에서 학습한 색다른 방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