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미래지향적인 하이테크 소재

2016.03.17

by VOGUE

    미래지향적인 하이테크 소재

    신기술과 뜻밖의 오브제가 결합돼 미래지향적인 하이테크 소재가 탄생됐다.
    시각과 촉각은 물론 까다로운 패피들의 미각(美覺)마저 만족시키는 꾸뛰르 패브릭!

    ‘소재 개발’ 하면 떠오르는 것은 하이 테크닉으로 똘똘 뭉친 아웃도어 브랜드다. 패션 기자들의 이메일 수신함은 온갖 아웃도어 브랜드들로부터 배달된 보도 자료들(계절에 맞게 온도와 습도를 자동으로 조절하는 하이 테크닉에 종이처럼 가벼운 무게, 360도 통풍과 온도에 따라 색상이 변하는 등 상상 이상의 소재를 개발했다는 내용)로 포화 상태다. 하지만 소재 개발은 매 시즌마다 쇼를 선보이는 전통 하우스에도 해당된다. 진귀한 보석을 찾아다니는 주얼러들처럼, 그들 또한 새로운 패브릭과 디테일 개발에 시간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봄 컬렉션이 끝난 후 파리 발렌시아가 쇼룸에 들어서자 홍보 담당자는 쉴 틈 없이 신소재에 관해 설명했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소재라기보다 세상에 존재한 두 가지 다른 소재를 결합해 새로운 패브릭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들이 강조하는 건 소재와 소재의 콜라보레이션! 멀리서 보면 평범한 플라워 프린트처럼 보이는 팬츠는 캔버스 소재에 안료를 덧칠해 아스팔트 같은 잔잔한 크랙을 만든 것이었다(손으로 만져보니 가죽을 패치워크한 느낌). 2007년 자신의 레이블 론칭 때부터 니트를 선보인 알렉산더 왕은 매 시즌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번 시즌 발렌시아가를 위해 그가 새로 선보인 것은 얇은 가죽을 스트라이프 패턴처럼 니트 위에 테이핑하거나 부드러운 가죽을 털실 같은 두툼한 실로 엮어 입체적 효과를 준 소재들. 무엇보다 심혈을 기울인 것은 가죽 위빙이다. 옷의 구조에 따라 I형, U형, V형 등으로 꼬임을 만들고 바구니를 짜듯한 통으로 트라페즈 라인의 스커트를 완성했다. 무려 240m 가죽끈과 장인들의 시간과 노력이 투자된 이 재킷과 스커트에 천문학적 판매가가 책정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재킷 한 벌 가격이 무려 5,000만원대, 스커트는 1,000만원!).

    보테가 베네타는 미세한 주름을 만들기 위해 두 가지 소재를 결합해 원하는 소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는 식물성 섬유인 리넨과 코튼을 혼합해 라미 코튼을 탄생시켰는데, 인공적 주름이 아니라 입을 때마다 손으로 주름을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실 라미 코튼이 완성되기 전, 디자이너 토마스 마이어는 금속섬유와 코튼을 결합한 코퍼사를 사용했는데, 입었을 때 피부에 닿는 촉감이 좋지 않아 쇼 직전, 코퍼사 의상을 몽땅 라미 코튼으로 교체했다는 후문. 그 결과 부드러운 형태의 실크와 오간자로 된 이브닝 가운 대신, 자연스러운 주름이 더없이 편안한 라미 코튼 이브닝 가운이 탄생할 수 있었다. 세상의 온갖 진귀한 모피 실험실이나 마찬가지인 펜디 하우스는 여성들이 한여름에도 모피를 즐길 수 있도록 오간자와 모피를 결합한 여름용 모피 아이템들을 잔뜩 선보였다. 투명하고 가벼운 실크 오간자에 기하학 패턴의 모피 조각을 하나하나 스티치한 의상이 대표적인 예다. 그래서 칼 라거펠트는 이 섬세한 기법을 조각품이란 뜻의 이태리어 ‘스콜피투라(Scolpitura)’라 이름 붙였다. “무게도 500g 정도로, 캐시미어 스웨터 한 장과 비슷합니다. 밍크를 벨벳처럼 짧게 깎는 펜디 하우스의 셰이빙 테크닉을 단적으로 보여주죠. 벨벳처럼 부드러운 촉감은 입는 사람만 알 수 있습니다.” 구찌는 시폰과 자카드 소재를 결합했다. 1920년대 일러스트레이터 에르떼의 작품을 글리터링 효과를 지닌 루렉스사를 사용해 자카드 소재로 만든 후, 시스루 가운에 패치워크해 만든 화려한 이브닝 드레스가 그 주인공. 샤넬 역시 전매특허인 트위드 소재를 하이테크 소재로 변신시켰다. ‘판타지 트위드’라 이름 붙은 소재에 금사와 은사, 그리고 핑크와 화이트 진주 실을 꼬아 반짝거리는 트위드 소재를 완성한 것이다(조명 아래 은은하게 반짝이는 판타지 트위드 재킷과 드레스를 얻기 위해 337시간이나 소요됐단다!).

    이들 디자이너들이 개발한 값비싼 소재가 대중적으로 널리 사용되기란 힘들다. 그렇다면 대체 왜 그들은 아틀리에 장인들을 총동원해서 신소재 개발에 열과 성을 보이는 걸까? 아마도 그건 단순히 카피를 우려하거나 하우스의 재력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닌, 그 옷을 입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환상적인 촉감(벨벳 같은 모피와 포근한 라미 코튼), 오묘한 광채(금사와 은사, 진주 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자들의 몸을 예술품처럼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에디터
      패션 에디터 / 김미진
      포토그래퍼
      JO HUN JE
      기타
      Kim Weston Arnold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