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패피들을 사로잡은 인형의 매력

2016.03.17

by VOGUE

    패피들을 사로잡은 인형의 매력

    의젓한 반려견이나 매력적인 반려묘를 스타일의 완성이라고 주장하는 건 이제 옛말.
    최근 이들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패션계 마스코트는 바로 인형이다. 인형의 매력에 반한 패피들.

    지난 2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이하 SI)>지는 50번째 수영복 이슈를 기념해 바비 인형이 표지 모델로 등장한 특별판 1,000부를 인쇄했다. 줄무늬 홀터넥 수영복을 입고 당당히 미소 짓는 커버 모델 바비는 한때 인형이 ‘패션모델’을 대신했던 시절을 떠오르게한다. 19세기 오뜨 꾸뛰르의 아버지라 불렸던 샤를 프레데릭이 숄 두르는 방법을 시연하기 위해 고용한 여인 마리 베르네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인간과 똑같은 실물 크기나 축소된 크기의 인형이 모델 역할을 대신해왔다. 인형보다 멋진 프로포션에 살과 피로 이뤄진 ‘사람’ 모델이 등장하면서 패션의 변방으로 밀려나 장난감 신세로 전락했지만 말이다. 이렇듯 패션계에서 소외됐던 인형이 다시금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때 패션쇼 룩과 똑같은 소재로 강아지 옷을 만들거나 고양이의 트위터 계정을 오픈하는 등, 반려동물에 꽂혔던 패피들의 사랑의 화살이 최근 인형에게 꽂힌 것!

    그렇다면 요즘 패션계는 인형에 대한 애정을 어떤 식으로 드러내고 있을까?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하이패션 모델 역할을 하던 과거의 영광을 소환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셀프리지 백화점에서는 런던 패션 위크 동안 판매할 한정판 바비 인형을 위해 신인 디자이너 새디 윌리엄스의 졸업 컬렉션 축소판을 마련하는 식. 윌리엄스는 ‘공주 취향 말괄량이 바비 패거리’들을 위해 여러 겹의 옷감을 열로 압축해 붙인 신소재의 느낌, 수작업으로 콜라주한 프린트가 생생하게 표현된 조그만 사다리꼴 드레스들을 완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실제 컬렉션과 흡사한 성공적인 결과물!).

    미셸 오바마의 단골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린 제이슨 우가 패션 디자이너로 데뷔하기 전 8년여간 인형 디자이너였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 그가 디자인한 인형들은 외모뿐 아니라 헤어 스타일, 메이크업(립스틱과 블러셔 컬러까지)까지 각각 다르고 의상도 아주 정교하게 제작돼 수집용 인형의 수준을 재정립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패션 디자이너가 된 뒤에도 꼴레트, 버그도프 굿맨, 제프리를 위해 인형을 제작한 적 있는 그는 이번엔 파리의 멀티숍 ‘몽테뉴 마켓’을 위해 자신의 2014 가을 런웨이 모델과 똑같은 모습의 인형을 제작했다. 아주 작은 금속 버클 하나부터 런웨이용 구두, 제이슨 우의 시그니처 백다프네 클러치까지 모든 것은 완벽하게 축소됐지만 실제 못지않게 우아한 모습. 참고로 그는 자신의 과거에 당당한 편이다. “드레스의 패턴과 구조를 익히는 등, 인형 디자인을 하면서 패션 디자이너로서 알아야 할 것들을 미리 연습할 수 있었으니까요.” 이러한 플라스틱 모델의 정교함은 가벼운 장난감의 이미지를 떨쳐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스티븐 클레인의 알렉산더 맥퀸 광고에서 결정적 오브제 역할을 한 것은 몸 여기저기에 바늘이 꽂혀 있는 음산한 케이트 모스 인형. 높이 솟은 광대뼈와 노랑 머리칼, 컬렉션 의상까지 주인을 쏙 빼닮은 인형 케이트 모스는 진짜 케이트가 잠시 방심한 사이, 잽싸게 급소를 공격할 심술궂은 폴터가이스트처럼 스산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인형의 가장 큰 매력이자 미덕은 앙증맞음과 귀여움. 최근 칼 라거펠트의 슈페트에 이어 급부상 중인 패션계 귀염둥이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톰 페슈의 원숭이 인형 ‘파스칼’이다. 페슈는 아이 주먹만 한 크기의 파스칼을 어디든 데리고 다니는데, 특히 패션 위크 때 백스테이지에서 파스칼의 활약과 인기는 대단하다. 각 패션쇼의 메이크업을 직접 시연하는 것은 물론 유명 모델과 디자이너, 아티스트들과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는 건 필수. 톰 페슈 팀의 파스칼 전담 메이크업 아티스트 아놀리는 이렇게 말했다. “파스칼은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뭐든 될 수 있는 아이거든요.” 작고 하얀 플라스틱에 지나친 의미 부여라고 생각된다면, 맥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케이틀린 캘러한의 코멘트에 귀를 기울이시라. “(인형이라는 게)좀 유치하긴 하지만, 우리에겐 어느 정도의 경박함이 필요해요. 그게 바로 패션 피플이니까요!”

    파스칼의 인기에 고무된 라거펠트는 고고한 하얀 고양이 슈페트를 뒤로하고, 펜디의 가을 패션쇼에서 모피로 만든 자신의 분신 ‘칼리토’를 소개했다(짜잔!). 칼리토는 펜디에서 지난해 가을 처음 선보인 가방 장식인 백 버그(가방 벌레) 시리즈의 새로운 멤버인 백 보이. 새하얀 포니테일에 모피로 된 검정 선글라스까지 척 걸쳐 쓴 꼬마 칼리토가 카라 델레바인의 손가락에서 달랑거리며 런웨이에 등장한 순간, 누구도 이 앙증맞은 털북숭이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순식간에 SNS와 온라인 스타가 된 칼리토). 올가을 펜디의 베스트셀러가 될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무아 무아 돌(패션 피플을 모사해서 유명해진 손뜨개 인형)’의 설립자 루도비카 비르가는 패션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인형을 만드는 건 그저 동화같은 경험이에요. 제게 패션은 맞춤 제작된 동화고요.” 한때 인형은 패션계의 모델로 활약했지만 지금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장난감이기도 하다. 패션계에서 인형을 즐기는 방식은 패션에 대해 품었던 꿈과 어린 시절을 동시에 추억하는 일종의 놀이다.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송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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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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