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어떻게 들 것인가!

명품 백, 빅 백, 잇 백, 셀럽 백의 유행을 거쳐 지금은 가방을 어떻게 드느냐가 중요해졌다.
성격과 분위기를 정의하는 건 언제나 WHAT 보다 HOW.
당신의 백 페티시를 충족시킬 들고, 끼고, 메는 ‘가방의 역사적 순간’들.



발렌시아가 가을 컬렉션을 선보이는 런웨이에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모델이 다소 경직된-혹은 뻣뻣한- 걸음걸이로 등장했을 때, 데자뷰 현상이 일어났다. 양손에 쇼핑백 모양의 ‘케이블’ 백을 겹쳐 들고 하이힐 부츠 위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애쓰며 걷는 모습이 소호 매장에서 막 쇼핑을 마치고 나온 젊은 여자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실제로 알렉산더 왕은 그 시리즈에 ‘쇼핑에 성공한 여자들’이라는 소제목을 붙였다. 그리고 이 풍요로운 룩(가방을 세 개씩이나 든)들은 그동안의 ‘백 이슈’에 한 방의 펀치를 날렸다. 만약 이 발렌시아가 쇼퍼홀릭 3인조의 얼굴 옆에 말풍선을 달아준다면 이런 말이 들어갈 것이다. “너희들이 어떤 백에 열광하든 관심 없어. 이것 봐, 난 백이라면 얼마든지 가질 수 있거든(자랑하듯 백을 흔들어대며)!”

가방에 대한 초점이 ‘어떤 가방을 드느냐’에서 ‘어떻게 드느냐’로 이동했음을 천명하는 패션의 순간은 이렇게 도래했다. 이런 현상에 대한 암시는 이미 봄 시즌 샤넬 컬렉션에 깔려 있었는데, 샤넬의 욕심쟁이들은 체인 백 여러 개를 겹쳐 메거나, 어깨와 손에 동시에 가방을 들고 있었다. 물론 ‘나는 샤넬 백을 여러 개 가지고 있다고’라며 으스대는 듯 보이기도 했지만, 여자들이 가방을 여러 개 필요로 하는 순간들이 더 자주, 많이 찾아오는 시대적 반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따끈따끈한 신상 옷자락을 멋지게 휘날리며 손에 달랑 초대장 한 장 들고 쇼장에 들어서는 이들은 어떻게 설명할까? 차에 남겨진 그들의 가방 역시 노트와 핸드폰과 프레스 키트와 화장품으로 뒤죽박죽일 것이다. 쇼장을 누비는 수지 멘키스의 지극히 실용적인 가방 두 개(그중 하나는 언제나 노트북이 들어 있는 롱샴 르 플리아쥬 백)도 모자라는 게 여자들의 현실이니까.

그러나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방은 하나만 드는 게 정석이었다. 그 대신 어린아이나 애완동물을 ‘영차’ 하고 옮기듯 팔로 가방을 껴안아 옆구리에 붙여 드는 방식이 등장했다. 프라다 2011 가을 컬렉션에서 처음 등장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백에 대한 여자들의 애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미우치아 프라다 여사의 의도라는 해석까지 가능하겠다(인서트 클러치가 유행하기 한참 전인 2007년, 가을 컬렉션에서 손을 끼우는 밴드가 달린 클러치를 최초로 선보인 것 역시 그녀다). 어쨌거나 이 방식의 장점은 걸을 때 훨씬 안정감이 있고, 원칙대로 손잡이를 잡고 몸통 부분을 아래로 늘어뜨려 들 때보다 무게감이 덜 하다는 것. 게다가 이 자세는 큰 가방도 그리 커 보이지 않게 하는 효과가 있어, 한동안 이슈가 된 ‘빅 백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논란도 불식시킬 수 있었다. 가방을 껴안은 팔이 금세 뻐근해진다는 결정적 단점 때문에 널리 퍼지지는 못했지만.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 가방의 인기가 절정에 달하던 시기엔 빅 백과 셀럽 백과 잇 백이 혼재했다. 잇 백과 셀럽 백의 관계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아서, 한창 주가를 올리던 브랜드들은 패션 감각이 뛰어나기로 소문난 할리우드의 어린 여배우들에게 신상 백들을 공급했고, 그녀들의 후광이 더해져 대중들은 더더욱 백에 집착했다. 당시 니콜 리치, 미샤 바튼, 제시카 심슨, 린제이 로한의 스타일리스트였던 레이첼 조는 이렇게 말했을 정도다. “난 마치 마약 공급자 같았어요. 새 가방이 나오자마자 내게 전화가 걸려오고, 그다음엔 이미 물품 창고에서 박스를 열고 있죠. 하나는 내 것, 다른 하나는 그녀들(셀럽) 것.” 가방이 잘 보여야 했기 때문에 크기는 점점 커지고, 한눈에 브랜드를 알아볼 수 있는 아이코닉한 장식들-대표적으로 자물쇠 장식-이 더해져 바야흐로 빅 백(여자들의 과도한 수납성 또한 한몫했다) 시대가 도래했다.

이런 복합적인 상호작용은 ‘어떤 가방을 드느냐’가 최대 관심사였던 당시에도 아주 독특한 방식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할리우드 셀러브리티들(올슨 자매로 대표되는)처럼 한 손엔 스타벅스 종이컵, 다른 한 손엔 빅 백(또는 잇 백)을 드는 것. 커피가 없더라도 가방은 언제나 팔꿈치 안쪽에 거는 자세(빅토리아 베컴처럼)를 유지했는데, 부주의하고 게을러 보이도록 가방 지퍼를 열린 채로 놔두는 것(물건 꺼내기가 편한 건 사실)이 스타일의 완성이었다.

그렇다면 엄마들이 기겁하는 이 방식의 원조는 누구였을까? 바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제인 버킨이다. 그녀가 60년대에 가방 대신 고리버들 바구니를 들고 다녔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물건을 마구 넣기 좋은 가죽 위켄드 백을 찾지 못했던 그녀는 에르메스의 장 루이 뒤마 회장이 가방을 만들어주자, 바구니에 그랬던 것처럼 이것저것 전부 쓸어 담았다. 84년도부터 지금까지 제인 버킨의 버킨 백은 언제나 잡동사니로 차고 넘쳐 늘 입구가 열린 채였고, 그리하여 버킨 백을 들 때는 입구를 아무렇게나 열어두는 것이 법칙처럼 통용됐다.

가방에 대한 관점이 드는 방식으로 이동한 데에는 트렌디한 백의 시대가 기울고 클래식 백이 다시 떠오르는 최근의 흐름도 작용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거나 똑같은 가방을 들었을 때는 차별화를 위해서라도 백에 대한 방법론적 접근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레이스 켈리가 임신한 배를 가리기 위해 에르메스 ‘삭 아 데페슈’ 백을 들던 과거에는 가방이 수단이었지만, 가방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됐고, 이제 그 효과를 최대로 끌어 올리기 위한 연출 방식에 모두가 몰두하고 있다. 다음 시즌엔 어떤 기상천외한 포즈가 등장할 것인가? 참고로 이 새로운 흐름의 선구자 미우치아 프라다 여사는 가을 컬렉션에서 또 하나 새로운 방식을 제안했다. 마치 백팩을 메듯 한쪽 어깨에 쿨하게 걸쳐 메는 것. 여성들이여,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