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한나는 언제부터 그리 예뻤나?

패션계 전체가 눈독 들이고 1,200만 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따르는 리한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를 몰고 다니는 그녀를 보면 철 지난 로맨스 드라마 속 명대사가 떠오른다.
리한나는 언제부터 그렇게 예뻤나?



이번 시즌 파리 패션 위크를 그 어떤 모델, 그 어떤 프레스보다 ‘제대로’ 즐긴 사람은 리한나(Rihanna)가 아닐까? 지난 몇 시즌 동안 주요 패션 쇼 프런트 로마다 앉아 있던 칸예 웨스트의 자리를 그녀가 모두 빼앗아간 듯했으니까. 랑방, 디올, 발맹, 샤넬, 지방시, 맥카트니, 꼼데가르쏭, 미우미우까지! 올봄 꾸뛰르 룩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려입고 나타난 샤넬 쇼를 제외하면 해당 디자이너의 옷을 입고 프런트 로에 앉아 있는 ‘암묵적인 매너’ 따위는 아예 무시한 모습이었다. 지방시 쇼장에는 야구 모자를 거꾸로 돌려 쓴 채 등장했고, 발맹 애프터 파티에는 그물망 톱 차림, 고티에 쇼장에는 레이스 톱 차림으로 가슴을 훤히 드러내고 나타났으며, 100m 밖에서도 알아볼 수 있을 법한 새빨간 코트를 입고 데콜테를 보여주며 디올과 미우미우 쇼장을 찾았다. 맥카트니에 입고 온 목욕 가운 같은 외투나 어깨에 ‘fear’라 적힌 모피 스톨을 걸치고 온 꼼데가르쏭 쇼는 어떤가(런던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서혜인의 옷)! 대부분 쇼에 늦게 나타나 관객들을 지치게 만들었지만, 그녀의 팔색조 같은 모습은 매번 눈길을 사로잡았다. 도대체 언제부터 리한나가 이토록 스타일리시한 패션 아이콘이 된 것일까?

2005년 바베이도스 출신의 17세 소녀가 데뷔 앨범 <Music of the Sun>을 들고 나왔다. 물론 당시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음 해 발표한 두 번째 정규 앨범 <A Girl Like Me>까지만 해도 그녀는 서인도제도에서 온, 예쁘게 생겼지만 까무잡잡하고 통통한 소녀였으니까. 공식 석상에서 볼 수 있는 리한나의 모습은 늘 빛바랜 진과 탱크톱, 자수 미니 드레스, 혹은 레이스 블라우스 차림.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평범한 10대 소녀 모습이었다. 분명 매력적인 소녀였지만 패셔니스타는 아니었다.

패션계가 그녀를 눈여겨보게 된 건 2007년 머리를 짧게 자르고 검정 머리로 염색한 순간부터! 80년대 말 머리를 짧게 자르고 하룻밤 사이에 슈퍼모델이 된 린다 에반젤리 스타처럼, 그녀는 한순간에 다른 사람이 됐다. <Good Girl Gone Bad>라는 당시 발표한 앨범 제목이 암시하듯, 리한나는 온몸으로 ‘더 이상 소녀가 아니에요!’라고 외치며 여전사 스타일로 옷을 바꿔 입기 시작했다. 헤어 플레이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검정에서 금발로, 다시 빨강에서 검정으로 수없이 바뀌었다(그녀의 머리 색상에 ‘리한나 레드’라는 이름이 붙었을 정도). 그녀의 새로운 헤어 스타일에 대한 궁금증이 새로운 디자인의 아이폰 디자인을 미리 훔쳐 보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진 것도 그 무렵. 현재 리한나의 진짜 헤어 스타일이 어떤 모습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번 시즌 파리 패션 위크만 해도 의상에 따라 온갖 길이의 단발머리를 죄다 선보였으니까. “이건 제 머리카락이 아니에요. 하지만 이걸 기증한 여성은 정말 최고예요!”라고 리한나는 지난 3월 커버를 장식한 미국 <보그> 인터뷰에서 밝혔다. “제겐 두 명의 헤어 담당자들이 있어요. 그들은 늘 저와 함께합니다. 저는 시도 때도 없이 ‘아, 지겨워! 머리 좀 바꾸고 싶어’라고 말하곤 하죠. 그것이 가짜 머리의 장점이에요. 어떤 스타일이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5년 전, 그저 음악을 좋아하는 소녀 로빈 리한나 펜티(Robin Rihanna Fenty)가 팝스타 리한나의 시기를 거쳐,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음악은 몰라도 그녀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사람들과 어떤 파티에 갔는지는 아는 ‘배드걸 리리(badgalriri, 리한나의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계정명)’가 되도록 만든 사건이 일어났다! 2009년 2월 제51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리한나 공연이 돌연 취소됐고, 이는 당시 남자 친구였던 크리스 브라운의 심각한 폭행 때문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응급실 신세까지 진 그녀의 만신창이 얼굴이 공개됐고, 브라운에게는 5년간 90cm 접근 금지 명령과 6개월의 사회봉사 명령이 떨어졌다. 같은 해 발표한 앨범 <Rated R>부터 리한나는 더 어둡고, 더 날카롭고, 더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대부분 브라운과의 관계에 관련된 가사의 곡들). “제가 행복하지 않은데 행복한 노래를 부를 순 없었어요. 당시 스타일, 입었던 옷조차 그랬죠. 그전에 나온 앨범들은 약간 보호받는 듯한 느낌, 여전히 순진한 느낌이 있었어요. 그 사건을 계기로 인생은 장미로 가득한 침실이 아니며, 제 인생도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리한나는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그 경험이 오히려 많은 자유를 주었어요. 제 생활이 갑자기 오픈됐고 모든 눈이 저를 지켜보고 있었어요. ‘내 일에 상관 마’라고 말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최악의 상황에서도 절대 기죽지 않는 법을 배우기 위해 그런 시련이 필요했나 봐요.” 실제로 그 후 리한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기죽지 않는 당당한 모습이다.

이때부터 확립된 ‘리리 룩’이라 불리는 몇 가지 스타일이 있다. 가장 전형적인 공식은 트레이닝 팬츠와 실크 티셔츠에 봄버 재킷을 더하는 것. 리한나는 트레이닝 팬츠를 입은 모든 사진에서 특히 편안하고 쿨해 보인다(랑방 프런트 로에서조차!). 여기에 스니커즈 대신 힐을 매치하는 것이 그녀의 노하우다. “모든 건 리허설을 하면서 시작됐어요. 투어를 할 때는 트레이닝 팬츠와 스니커즈 차림으로 리허설을 하러 갑니다. 그런 다음 힐을 신고 노래 연습을 하죠. 거울을 보고 깨달았어요. 와, 이거 멋져 보이는걸!” 또 다른 ‘리리 룩’은 보디수트와 오버사이즈 재킷을 매치하는 것. 그녀만큼 자유자재로 보디수트를 입고 다니는 여자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 “‘Umbrella’ 뮤직비디오를 찍을 때 보디수트를 처음 시도해봤어요. 몸에 꼭 맞는 느낌이 좋아서 무대에도 입고 나갔고, 평소에도 입기 시작했죠. 리버 아일랜드 컬렉션에도 보디수트를 잔뜩 만들었어요(그녀는 영국 브랜드 리버 아일랜드를 위해 2013년 봄부터 네 번의 컬렉션을 디자인했다).“ 몸에 꼭 맞는 보디수트 위에 커다란 오버사이즈 아우터를 걸치는 스타일이야말로 그녀의 전매특허다. “오버사이즈 재킷을 정말 좋아해요. 크면 클수록 더 좋아요. 그 안에 어떤 실루엣도 입을 수 있으니까요. 아주 쿨해 보이죠. 남성복 재킷도 즐겨 입어요.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절대 스타일리시해질 수 없어요!”

이 모든 룩에 반드시 필요한 건? 두툼한 체인 목걸이, 지하철 손잡이만 한 링 귀고리, 열 손가락 모두에 겹겹이 장식된 반지들(작년에 4,300만 달러를 벌어들인 그녀지만 진짜 금이 아닌, 싸구려 액세서리를 즐겨 착용한다), 그리고 타투! 변화한 리한나의 모습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다. 그녀의 첫 타투는 2006년 발등에 새긴 높은음자리표. 걷잡을 수 없이 타투가 늘어나기 시작한 건 뉴욕의 젊디젊은 타투이스트 뱅뱅을 만난 이후부터다. “그녀가 친구에게 뉴욕에서 제일 잘나가는 타투이스트가 누군지 물었고, 제 친구이기도 한 그녀는 ‘뱅뱅이 최고’라고 거짓말을 했대요. 그렇게 리한나와의 우정이 시작됐어요.” 허리선의 산스크리트어 명언부터 목부터 척추를 따라 흐르는 유성, 2009년 불미스러운 사건 이후 새긴 권총, 오른손을 완전히 뒤덮은 뉴질랜드 원주민의 이국적인 패턴, 7월에 세상을 떠난 할머니를 기리기 위해서 가슴 밑에 새긴 이시스 여신까지, 그가 완성해준 타투는 10개 이상(리한나의 절친 카라 델레바인의 손가락에 새긴 사자, 발바닥의 ‘메이드 인 잉글랜드’ 타투도 그의 작품).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타투가 리한나의 몸 위에 채워질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의 타투 사랑 덕분에 타투 자체가 좀더 하이패션에 가까워진 것만은 분명하다.



어느새 하이패션계는 리한나 패션에 온통 관심을 쏟고 있다. 봄 컬렉션에서 푸치의 피터 던다스가 선보인 보석 장식 재킷과 가죽 복서 쇼츠, 검정 비즈 벨트로 장식한 이브닝 드레스, 톰 포드의 보석 장식 미니 드레스들과 글래디에이터 샌들까지! 2014 S/S 광고 캠페인 모델로 리한나를 선택한 올리비에 루스테잉의 발맹 런웨이는 시스루 톱과 하이웨이스트 팬츠, 봄버 재킷, 80년대에서 영감을 얻은 데님 미니드레스 등 리한나 옷장을 그대로 옮겨온 듯했다. “발맹 광고에 출연해달라고 부탁하는 이메일을 보낼 때 ‘발맹리리(Balmainriri)’라고 적었어요.” 루스테잉은 자랑스럽게 전했다. “저는 제 브랜드를 사랑하고 제 옷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제 옷들을 모든 곳에서 보고 싶어요. 리한나는 세상 모든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녀는 새로운 원더우먼이죠!” 톰 포드는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아이템들을 조합해서 입는데, 그게 아주 근사해 보입니다. 그녀는 무작위 아이템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믹스하도록 제게 영감을 줬습니다”라고 말했고, 던다스는 “그녀는 아주 재능 있는 드레서예요. 케이트 모스가 그런 것처럼요. 그녀는 많은 여성들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어요. 게다가 늘 한 발짝 앞서가죠”라고 극찬했다. 또 알렉산더 왕은 “그 누구도 그녀만큼 저를 흥분시키지 못합니다. 그녀는 날것 그대로이며, 영리하며, 팝 문화가 나아가야 할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죠”라고 말했다. 그녀와 친한 디자이너 중 한 명인 스텔라 맥카트니는? “우리는 리한나가 성취할 수 있는 것의 시작을 보고 있을 뿐입니다!”

물론 리한나를 사랑하는 건 디자이너들만이 아니다. 버락 오바마가 2,000만 명의 팔로워가 있을 당시 이미 2,600만 명의 트위터 팔로워를 거느린 리한나는 이제 1,200만 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워까지 자랑한다. “인스타그램은 제가 세계와 소통하는 방식이에요. 투어 중일 때 저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팬들을 참여시킵니다. 저는 그걸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차 안에 앉아 있으면 지루할 때도 있어요. 그냥 지루해서 셀카를 찍는 겁니다.” 리한나의 인스타그램은 실시간으로 그녀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채널이다. ‘배드 걸 리리’라는 이름으로 그녀는 낯선 도시와 호텔 방에서 찍은 사진, 어린 시절 사진과 해변에서 친구들과 누드로 찍은 사진까지 공개한다. 이런 모습은 종종 그녀를 구설수에 오르게 하지만, 그녀의 팬층이 늘어나는 데엔 확실히 도움을 주고 있다.

내년이면 데뷔 10년째가 되는 리한나는 빌보드에 13곡의 싱글을 1위에 올림으로써 마이클 잭슨과 동일한 기록을 세웠고(마이클 잭슨은 23년이 걸렸지만 리한나는 7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머라이어 캐리를 제치고 가장 어린 나이에 10개 싱글을 1위에 올려놓은 뮤지션이 됐으며, 가장 어린 나이에 20개 이상 싱글을 빌보드 10위권에 진입시킨 마돈나의 기록을 깼다. 이때까지 그녀는 5,000만 장의 앨범과 1억8,000만 장의 싱글을 팔아 치웠고, 그래미상을 여섯 번 받았다. 하지만 쉴 틈 없이 음반 작업을 하고 공연 스케줄을 소화해내던 그녀는 2012년 <Unapologetic>을 끝으로 2년째 앨범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대신 미국 <보그>와 영국 <보그> 표지를 장식하고, 리버 아일랜드와 콜라보레이션 컬렉션을 선보이며, 온갖 패션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녀는 곧 자신만의 패션 브랜드를 론칭하고 싶어 한다. 그녀가 칸예 웨스트를 대신해 프런트 로에 앉기 시작했기 때문일까? 2012년 봄 파리 패션 위크를 통해 데뷔했지만, 혹평을 견뎌내지 못하고 두 시즌 만에 자취를 감춘 칸예 웨스트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블랙 마돈나’가 되고 싶다는 리한나는 적어도 자신의 패션과 음악에 관해선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지난달, 미국 <보그> 인터뷰에서도 그녀는 제법 진지하게 말했다. “목소리가 전부는 아니에요. 노래만 놓고 보면 저보다 재능 있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당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 합니다. 패션은 당신의 태도, 당신의 기분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자 스타일의 분명한 지표입니다. 저는 늘 흥미로운 실루엣이나 약간 튀는 것을 추구하지만, 먼저 그걸 이해하고 제게 어울리게 만들어야 해요. 그것이 패션의 짜릿함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