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보다 비싼 커피

웬만한 밥 한 끼보다 비싼 커피가 등장했다. 고작 커피 한 잔이 7,000원이 넘는다.
전 세계 커피 중 상위 10%만 해당하는 이 스페셜티 커피는 요즘 커피 시장의 새로운 키워드다.



이제까지의 커피는 ‘그냥 커피’였다. 커머셜C 등급 커피였다. 요즘 커피 시장의 화두는 스페셜티다. 커머셜C가 4,000원대라면 스페셜티 커피의 소비자가격은 7,000원이 넘는다. “커피가 밥보다 비싸다”는 얘기는 더 이상 엄살이 아니다. 커머셜C가 데일리 와인이라면, 스페셜티 커피는 5대 샤토의 빈티지나 미국에서 고가의 시장을 창조한 컬트 와인에 견줄 만하다. 파나마의 ‘에스메랄다 농장’에서 생산한 게이샤 커피는 실제로 ‘커피의 로마네콩티’라고까지 불린다. 커피계의 크리스티 옥션으로 통하는 커피 올림픽 COE(Cup of Excellence)가 발굴한 스타다.

3월 18일, 스타벅스가 스타벅스 리저브를 론칭했다. ‘선 드라이드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핀카 누에보 멕시코’를 한국 스타벅스의 첫 스페셜티 커피로 시장에 내놨다. 스타벅스에서만 사용하는 진공 압착 방식의 고가 머신 ‘클로버’를 사용한다. 탐앤탐스도 싱글 오리진 스페셜티 커피를 특화한 더 칼립소를 선보였고, 투썸플레이스는 클레버, 프렌치프레스, 케맥스 등 다양한 기구를 활용하는 스페셜티 커피 핸드 드립 바를 론칭했다. 싱글 오리진과 스페셜티 커피가 커피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물론 이전에도 몇몇 커피 전문점에서 훌륭한 스페셜티 커피를 다루고 있었다. 서울의 루소랩, 커피 리브레, 엘 카페, 헬 카페, 그리고 강릉의 테라로사, 부산의 모모스 등 작은 로스터리들이다. 커피 애호가들은 그곳에서 특별한 취향을 즐겼다. 하지만 체인 수백 개를 갖추고 있는 한국 스타벅스, 탐앤탐스, 투썸플레이스 같은 커피 체인점에서 스페셜티 커피를 다루기 시작했다는 건 또 다른 얘기다. 한국의 커피 시장 전체가 그만큼 성숙해졌다는 뜻이다.

그 중심에 선 스페셜티는 전 세계 생산량의 8~10%에 해당하는 상위 10% 커피다. 바리스타와 로스터 이후 커피 트렌드의 키를 쥐고 있는 커퍼(와인의 소믈리에)들이 맛에 등급을 매기는데, 일정 요건을 갖춰야만 스페셜티라고 불릴 자격을 얻는다. 보통 고지대에서 발견되는 작고 딱딱한 커피가 여기에 속한다. 과테말라나 코스타리카에서는 아예 산지의 고도로 커피 등급을 정하기도 한다. 고지대는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이 집중적이다. 고지대 커피나무는 광합성을 호흡보다 활발히 한다. 키우기 쉽지 않은 대신 맛 좋은 커피가 나온다.

스페셜티 커피 맛의 요건은 클린컵과 단맛, 그리고 신맛이다. 클린컵은 가공 과정에서 커피 이외의 맛이 끼어들지 않게 하는 것. 깔끔하게 맛을 내고 잔향을 남겨야 한다. 덜 익은 것, 너무 익은 것, 벌레 먹은 것, 썩은 것이 섞이면 클린컵이 완성되지 않는다. 단맛은 설탕의 단맛이 아닌, 커피 고유의 부드러운 단맛이다. 신맛은 식초의 찌릿한 신맛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과일의 그것처럼 부드럽게 감싸는 신맛을 말한다. 신맛은 맛의 중추 같은 것이라, 커피의 다양한 맛과 향을 지탱하는 뼈대 같은 역할을 한다. 일본에서는 풍미 특성이 매우 우수하고 산미 특성은 상큼하고 가벼우며 뒷맛이 달콤하게 마무리되는 것. 거기에 희소성이 뚜렷하고 고품질이 검증된 것을 스페셜티라 정의한다.

개성 강한 향미는 특히 인상적이다. 게이샤의 경우 커피보다는 모카 향이 감도는 레몬티에 가까운 느낌이다. 좋은 예가체프는 마치 새카만 플로럴 계열의 향수를 들이켜는 것 같기도 하다. 재미있는 건 산지가 같더라도 농장에 따라 완전히 다른 개성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똑같은 예가 체프라도 어떤 것은 꽃향기가, 어떤 것은 견과류 향이 난다. 아무튼 맛있다는 얘기다. 희귀하고 특별하다 보니 당연히 값은 비쌀 수밖에 없다. 문제는 높은 가격이 아니라 스페셜티가 진짜 스페셜티냐 하는 데 있다. 이렇게 많은 스페셜티가 일제히 시장에 나온다는 게 물리적으로 가능할까? 커피의 맛은 흙과 물과 바람과 햇볕으로부터 시작된다. 와인이 테루아를 따지는 것과 똑같다. 씨앗을 심을 때부터 수확, 가공, 숙성, 운반, 로스팅, 추출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이 커피 맛에 영향을 미친다. 모든 것이 맞아떨어져야 되는 것이 스페셜티 커피다. 게다가 스페셜티 커피는 그 예민한 특성 때문에 특히나 망치기 쉬운 커피다. 결점두는 모조리 ‘핸드픽’해서 잡아내야 하고, 로스팅할 때는 향이 달아나지 않도록 온도와 로스팅 시간을 더 정교하게 계획해야 한다. 검증된 스페셜티 생두를 사왔어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면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개 발에 편자다. 한 로스터리에서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설사 스페셜티를 사왔더라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어요. 실제로 로스팅에 실패해서 맛을 망친 것을 내놓는 곳도 있더군요. 그만한 가격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 스페셜티 커피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죠.”

스페셜티를 ‘그냥 특별한 커피’를 수식하는 광고 문구쯤으로 사용하는 곳도 분명 있을 것이다. 마시는 사람 또한 중요하다. 커피 맛에 대한 객관적 기준이 없는 상태라면, 스페셜티 커피는 괜한 낭비일 뿐이다. 굳이 밥보다 비싼 커피를 찾아 마시며 비싸다고 볼멘소리를 할 필요가 없다. 스페셜티 커피의 맛을 느끼기 위해선 연습이 필요하다. 와인 애호가가 되기까지 수많은 와인 테이스팅에 참여해 ‘공부’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실로 까다롭고 성가신 취미다. 그러나 그 후에 열리는 스페셜티 커피의 다채롭고 독특한 세계는 그만한 대가를 치를 만하다. 밥보다 비싼 만큼 밥보다 맛있다. 바야흐로 커피의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