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이름이 뭐예요?

2016.03.17

by VOGUE

    이름이 뭐예요?

    포미닛은 자꾸 캐물었고, 양희은은 엄하게 다그쳤으며, 박인환 시인은 잊었다 고백한 것.
    바로 이름. 디자이너들 역시 이름이 자꾸 호명되길 원한다. 물론 자신의 요구대로 정확하게.

    얼마 전, 루이 비통 코리아 홍보 담당자들이 <보그> 사무실에 들렀다. 편집장으로부터 올가을 컬렉션 품평을 들은 뒤, 패션 기자들과 니콜라스 게스키에르의 데뷔쇼 후일담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그런데 느닷없이 홍보팀장이 기자들의 발음을 아나운서 학원의 강사처럼 교정하는 게 아닌가. “이제 니콜라스 게스키에르가 아니에요. ‘니콜라 제스키에르’라고 부르고, 지면 표기 역시 그렇게 부탁드립니다.” 순간, ‘보그닷컴’의 프렌즈이자 패션 칼럼니스트로 활약하는 어느 여인이 40년간 불리던 주민등록증 이름을 바꾼 뒤 드디어 남자가 생겨 시집가게 됐다는 얘기가 퍼뜩 떠올랐다. 설마 게스키에르 역시 개명한 뒤 루이 비통에 들어간 건 아니겠지? 아무튼 기자들은 잠시 살짝 미간을 찌푸리더니 “니콜라 제스키에르?”라고 저마다 한두 번씩 불러대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의 발렌시아가 시절과 함께 2000년대를 패션에 대해 흥분하며 보냈다. 성서 인물이라도 되는 듯, 그를 호명할 때마다 감흥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이제 딴사람을 마주한 것처럼 낯선 것도 사실이다. 아직 입에 쫙쫙 달라붙지 않아 어색하지만 뭐든 시간이 약간 필요한 법. 뭐 그런대로 견딜 만할 것이다. 하긴 절대적 인기를 누리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낡은 패션 하우스에 들어가 맨 먼저 저지르는 일이 브랜드 이름을 싹 교체하거나 로고 디자인을 갈아치우는 작업. 그런 그들이 자기 이름이 바벨 탑 시대 이후 달라진 각국의 언어대로 ‘재해석’되어 불리는 것을 영 못마땅하게 여길 만하다. 셀린에 들어가 로고부터 바꾼 피비 파일로는 또 어땠나. 그녀 역시 클로에 시절, ‘피비 필로’라고 불리는 게 싫었는지, 셀린에 들어가자마자 전 세계 홍보 네트워크를 통해 ‘피비 파일로’라고 정정했다.

    이름이 혼란스럽기로 치면 프로엔자 스쿨러만 한 브랜드가 또 있을까. 두 청년이 뜨기 시작할 즈음, 패션계에서는 이 이름을 누구보다 익숙하게 부르는 게 세련된 척 여겨졌다. 프로엔자 쇼율러, 프로엔자 슐러 등등. 디자이너 잭과 라자로는 각자 엄마 이름을 따서 조합한 브랜드명이 이토록 혼란을 야기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들은 팬들과 패피들이 여태 헷갈리는 걸 비로소 바로잡겠다는 듯, 얼마 전 영상 한 편을 제작하며 이름 에피소드를 초반에 편집해 넣었다. 파리 봉마르셰 백화점과의 협업용 영상의 한 대목을 보자. 감독이 거리에 나가 브랜드 이름을 읽어보라고 행인들에게 요구하자 아니나 다를까 별의별 발음이 다 나온다. 그러자 잭과 라자로는 ‘/Pro-En-Za Skool-Er/’라고 화면에 대문짝만하게 노란색 헬베티카 서체로 발음기호를 표기한다. 잠시 후, 이름의 제공자들이 직접 등장해 손을 흔든다. 미세스 프로엔자와 미세스 스쿨러!

    그런가 하면 벨기에 디자이너들이 판을 칠 무렵, 앤트워프 6로 인한 일화도 많았다. 드리스 반 노튼은 얌전한 축에 속한다. 월터 반 베이렌동크, 덕 비켐버그는 아직도 어렵다. 특히 앤 드멀미스터의 성은 현재 한국의 여러 매체들이 각자 문법대로 표기 중. 드뮐미스터, 드멀레미스터, 드뮬미스터, 드밀미스터 등등(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어딘가에서 또 다른 식으로 호명될지 모른다). 2007년 11월호 <보그>에 정답이 있다. 당시 한국 론칭을 앞둔 채 진행된 인터뷰에서 우리는 “당신 이름을 정확히 어떻게 발음해야 옳은가요?”라고 그녀에게 질문했다. 그러자 그녀는? “하하하. 그럴 만해요. 좀 어렵죠? 모든 나라에서 제 이름을 다르게 발음하고 있어요. 제 모국어인 플래미시어에 따르면, 앤 드뮐레미스터르~~(‘르’에서 혀를 또르르 감아서 굴러야 한다)예요.” 앤 드뮐레미스터르쉬? “아니, ‘쉬’ 발음은 없어요.” 드뮐레미스터르… “멈춰요, 거기까지. 좋아요.” 한국에서는 ‘앤 드뮐레미스터’라고 부르는 게 가장 가까운 것 같네요. 괜찮아요? “물론이죠, 물론이에요. 아름다워요. 제겐 아주 이국적으로 들려요. 하하하하!”

    제스키에르, 파일로, 스쿨러 외에 명찰을 달 이름은 또 있다. 토즈가 새 디자이너와 함께 기성복 시대를 열자마자, 토즈 코리아 홍보팀은 알레산드라 빠치네티가 아닌, ‘알레산드라 파키네티’라고 똑 부러지게 수정해줬다. 디자이너 이름에 관련된 마지막 에피소드(이건 실화!). 언젠가 청담동 아르마니 사무실에 들렀을 때. 마침 분식집에 전화를 걸어 식사 배달을 주문하던 참이었다. “어디시라고요? “아르마니요.” “알마니요?” “네, 아르마니.” 잠시 후 배달된 음식과 함께 영수증을 건네받던 아르마니 직원은 포복절도할 수밖에! 주문자 이름이 영수증에 이렇게 표기됐던 것. ‘3층 알많이 님’! 이제 아르마니 홍보 담당은 부드러운 어깨의 제왕이 한국에서 어떻게 불리는 게 옳을지 고민해야 할 듯. 하긴 뒤쪽에서 낭창낭창하게 늘어뜨리는 이태리어 억양 ‘아르마~니’나, ‘알 많이’라는 한국어 단문의 강세는 어딘지 비슷하지 않나? 조르지오 알 많이!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신광호
    스탭
    ILLUSTRATION / PARK CHANG 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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