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패션과 영화의 특별한 관계

2016.03.17

by VOGUE

    패션과 영화의 특별한 관계

    최근 패션과 영화의 특별한 관계가 두 배는 더 돈독해졌다.
    오래된 영화에서 영감을 얻는 패션 디자이너는 명함도 못 내민다.
    아예 동시대 영화감독과의 동맹이 유행이다.

    등산길에 오르는 에디 슬리먼? 연상하기 쉽지 않지만, 디자이너가 살고 있는 할리우드 뒤편의 ‘러니언 캐니언’에 가면 땀 흘리는 산사람 에디를 만날지 모른다. 베를린 클럽의 뒷문에서 줄담배를 피울 듯한 그를 자연광 가득한 산길로 이끈 건 영화감독 구스 반 산트. “우리 집에서 출발해 함께 하이킹을 즐기곤 합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반 산트 감독이 이 특별한 동행에 대해 증언했다. 이미 전시(2011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Fragments Americana>)와 사진 작업 등으로 비슷한 취향을 공유해온 감독과 디자이너가 등산을 즐기며 돈독한 친분을 쌓게 된 것. 아마도 그들은 원색 등산복 차림으로 나무 기둥에 등을 부딪히며 패션과 영화에 관해 수다를 떨지도 모른다.

    디자이너들이 영화에서 영감을 얻는 건 익숙한 방식이다. 예를 들어 올봄 컬렉션을 위해 발렌티노의 듀오 디자이너들은 70년작 이태리 영화 <메데아>에서 영감을 얻었고, 토리 버치는 <라피신>의 로미 슈나이더를 오마주했다. 지독한 영화광이나 알 만한 고전 영화들만 디자인 영감의 원천이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당대 디자이너들은 동시대 감독과 손잡고 작업을 하고 있다. 아티스트에 이어 이제 영화감독이 패션 협업의 대세로 떠오른 것. 3월 2일, 겐조 쇼를 보기 위해 센 강변의 건물에 들어선 이들은 오묘한 세트에 놀라고 말았다. 미로처럼 이어진 런웨이는 물론, 커튼과 거울이 바깥세상을 완벽히 차단했고, 무대 입구 외계인을 닮은 거대한 조각(‘미스테리오소’라는 이름) 뒤로는 미래적 영상이 반짝였다. 영화 속 비밀 클럽을 연상시키는 세트는 <이레이저 헤드>부터 <블루 벨벳>, <로스트 하이웨이> 등 컬트영화의 대부로 불리는 데이비드 린치의 솜씨다. 파리 최고의 비밀 클럽 ‘실렌시오’를 완성했던 린치는 쇼를 위해 몽롱한 BGM까지 맡았다. 어린 시절 린치의 유명한 TV 시리즈 <트윈 픽스>의 광팬이었던 캐롤 림과 움베르토 레온이 의뢰해 완성된 결과물이다. 지난 프리폴과 남성복 컬렉션부터 린치에 관해 힌트를 제시한 듀오는 여성복 컬렉션을 위해선 온전히 그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애초에 이 시리즈의 마지막은 감독과 함께 작업하기로 계획했습니다.” 레온은 자신의 우상과 협업하게 돼 감동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자신들의 취향을 쇼에 적극 활용하는 이들 듀오가 영화감독과 동맹을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9년 스파이크 존즈(소피아 코폴라의 전남편으로 유명한)의 영화 <괴물들이 사는 나라> 개봉 당시엔 영화 속 괴물들을 닮은 의상을 매장에서 판매했다. 레온과 함께 쿵후를 배울만큼 ‘절친’인 존즈를 위한 선물인 셈. 또 존즈의 신작 <허>를 위해선 극 중 배우 호아킨 피닉스가 입은 복고풍 남성복에서 영감을 얻은 캡슐 컬렉션도 선보였다. 영화 속 인공지능 프로그램(스칼렛 요한슨의 요염한 목소리를 지닌)과 사랑에 빠지는 외로운 남자, 피닉스의 한껏 치켜올려 입은 ‘배바지’와 ‘공장장 잠바’가 탐난다면, 지금 오프닝 세레모니 홈페이지를 클릭하면 된다. 이미 <트론: 새로운 시작> <스프링 브레이커스> 등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영화들을 위해 캡슐 컬렉션도 선보인 듀오는 이로써 패션계 최고의 ‘영화광’으로 인정받았다.

    패션계가 유난히 아끼는 감독은 또 있다. 최근 한국에서 조용히 흥행에 성공한 웨스 앤더슨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둘러싸고 이태리의 막강한 두 브랜드 간에 신경전이 벌어졌다. 극 중 틸다 스윈튼과 랄프 파인즈의 트렁크 21개를 제작하고, 윌렘 데포의가죽 트렌치를 디자인한 프라다가 개봉에 앞서 베를린 매장을 영화 테마로 꾸민 것. 전세계 프레스들에게 뿌릴 보도 자료도 잊지 않았다. 스윈튼이 맡은 마담 D의 망토와 에드워드 노픈의 아스트라한 코트를 디자인한 펜디 역시 이 소식을 알렸지만 한발 늦고 말았다. 사실 펜디는 미우치아 프라다(올가을 컬렉션을 위해 독일 명장 파스빈더의 영화를 모두 챙겨 본)만큼이나 영화와 관련이 깊다. 펜디 가문엔 아쉬운 사건이 또 있다. <아이 엠 러브>를 공동 제작한 실비아 펜디보다 영화 의상을 맡았던 라프 시몬스가 더 유명해진 것. 게다가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는 펜디 가문의 일원이자 주얼리 디자이너 델피나 델레트레즈의 연인 아닌가. 구아다니노의 차기작 역시 시몬스가 의상을 맡는다니, 영화 제작에 열을 올리는 펜디 가문으로선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톰 포드처럼 직접 메가폰을 잡고 영화를 완성하거나, 칼 라거펠트처럼 꾸준히 단편영화를 제작하는 영화광은 패션계에선 드물지 않다. 하지만 지난 2월 로다테 멀리비 자매만큼 영화광임을 증명한 디자이너가 또 있을까. ‘긱 시크(Geek Chic)’를 주제로 한 그들의 가을 컬렉션 피날레는 <스타워즈> 캐릭터를 실사 프린트한 드레스! 루크 스카이워커부터 인공지능 로봇 R2-D2, C-3PO, 그리고 제다이 마스터인 요다가 프린트된 드레스 차림 모델들이 피날레를 장식했다. 감독 조지 루카스와 로다테의 친분 덕분이다(2년 전쯤, 조지 루카스 감독이 로다테 쇼장을 방문한 적도 있다). <스타워즈>의 명대사를 빌리자면 그야말로 “May the movie be with fash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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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손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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