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서울을 찾은 비오네의 고가 아쉬케나지

2016.03.17

by VOGUE

    서울을 찾은 비오네의 고가 아쉬케나지

    겉이 화려하고 요란하면 속은 비었다는 뜻? 적어도 그녀에겐 해당 안 된다.
    사교계 여왕이자 성공한 사업가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걷어내면,
    비오네 부활을 위해 뭐든 도전할 준비가 된 ‘진짜’ 고가 아쉬케나지가 보인다.

    올해 서른네살인 아쉬케나지가 지난 컬렉션 의상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특별한 경우가아니면 메이크업조차 하지 않는 그녀지만 ‘바이어스컷’ 헤어 스타일만큼은 늘 완벽하게 유지한다.

    “모든 일이 서울에서 벌어지는 것 같아요. 거리에서 마주치는 여자들은 또 어찌나 패셔너블한지! 게다가 벚꽃도 정말 예뻐요. 어제까지 도쿄에 머물렀는데, 요즘 도쿄는 벚꽃 구경 온 여행객들로 너무 붐비더군요. 가까운 서울에 이토록 예쁜 벚꽃이 더 많이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말이죠. 서울의 분더숍에서 비오네가 잘 팔린다는 소식을 듣고 꼭 와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첫 방문이네요.”

    인사를 나누자마자 고가 아쉬케나지(Goga Ashkenazi)가 서울 예찬을 쉴 새 없이 쏟아냈다(비오네 패션쇼 피날레에 나와 인사하던 모습이나 수많은 파파라치 사진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친근한 인상). 2012년 5월, 비오네 하우스의 역사적 리론칭부터 3년을 함께한 로돌포 팔리아룽가의 뒤를 이어 크로체 자매가 한 시즌 만에 떠나자 아쉬케나지라는 여인이 등장했다. 그런 뒤 지난 네 시즌 동안, 영국 앤드류 왕자와 막역한 것으로 소문난 이 사교계 명사는 102년 전 마들렌 비오네가 창립한 패션 하우스의 대표 겸 디자이너로 지냈다.

    대각선으로 자른 헤어 스타일은 물론(마담 비오네가 남긴 최고의 작품인 바이어스컷을 상징), 목뒤에 타투를 새긴(비오네 지퍼를 채워 올린 도안) 그녀는 비오네가 누리던 20년대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살고 있는 듯 열정적이고 자신감에 차 있다. “누드 상태일 때도 비오네 드레스를 입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의미의 타투예요!” 이토록 당당하고 열정적인 그녀가 1박 2일이란 짧은 일정 동안 <보그 코리아>를 만났다.

    VOGUE KOREA(이하 VK) 4년 전, 잘나가는 원유 사업가이던 당신은 갑자기 패션계에 뛰어들었다. 계기는 무엇인가?
    GOGA ASHKENAZI(이하 GA) 남들에겐 갑작스러워 보이겠지만, 사실 나는 평생 패션을 꿈꾸고 살았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 입학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심해 옥스퍼드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적어도 법학을 공부하지 않은 데 감사할 뿐이다. 하하! 10년 전에 시작한 원유 사업이 성공적이어서 스물다섯 살 때 이미 <포브스> 콘퍼런스에서 발표를 할 정도였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인생이 아니었기에 행복하지 않았다. 안경을 쓰고 지적인 척하며 어려운 경제 이야기를 늘어놓았을 뿐. 늘 좀더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었기에 늦어도 서른 살에는 꼭 패션계에 발을 들여놓겠다고 결심했다. 드디어 서른 살 생일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VK 왜 비오네를 선택했나?
    GA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패션 하우스를 원했다. 처음 염두에 둔 것은 지안프랑코 페레와 웅가로였다. 그러던 중 비오네가 파트너를 찾는다는 소문을 들었다. 보물선을 찾은 기분이었다. 즉시 약속을 잡고 그 자리에서 65% 지분을 사겠다고 계약서에 서명했다. 몇 달 후 100%를 갖게 됐다. 당신처럼 왜 비오네였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내가 비오네를 선택한 게 아니라 비오네가 나를 선택했다. 당시 모든 일이 운명처럼 순조롭게 흐른 상황을 돌이켜보면, 마들렌 비오네로부터 운명적으로 허락을 받은 기분이다.

    VK 하지만 당신이 직접 디자인까지 맡게 될 거라곤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GA 나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언젠가 직접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은 있었다. 처음에는 디자이너를 고용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2013 봄 컬렉션을 앞두고 갑자기 아틀리에에 디자이너가 나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직접 디자인팀을 이끌게 됐지만,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잘된 것 같다. 정식으로 패션을 배운 적은 없지만, 피렌체에서 에바 카발리에게 1년 간 개인 교습을 받았다. 그녀 주위의 모든 패션계 친구들을 괴롭히며 이태리 패션 역사부터 장인 정신까지 철저히 배운 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VK 비오네 아틀리에를 파리가 아닌 밀라노에 둔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인가?
    GA 비오네의 모든 옷은 이태리에서 제작된다. 장인 정신이 살아 있는 곳이자, 상대적으로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 하지만 프랑스 패션 하우스인 만큼 조만간 파리에 두 번째 아지트를 오픈할 예정이다.

    VK 1912년 탄생한 비오네 하우스는 역사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다.
    GA 많은 사람들이 비오네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다. 마들렌 비오네야말로 지금 패션계에서 쓰고 있는 대부분의 기법을 처음으로 도입한, 그야말로 혁신적이고 선구적인 디자이너다. 바이어스컷, 플리츠, 드레이핑, 저지와 스트레치 소재 사용까지. 알라이야, 갈리아노, 야마모토 등 비오네를 롤모델로 여기는 천재 디자이너가 한두 명이 아니다. 몽테뉴가에 위치한 전성기 비오네 하우스의 직원은 1,200여 명이었다. 출산휴가, 보육 시설, 상주 의사 등 디자인뿐 아니라 직원 복지 제도 역시 파격적이었다. 마담 비오네의 혁신적 사고방식이 패션계에 좀더 알려지길 원한다. 현재 나의 에너지, 시간, 감정적  재정적 자원을 몽땅 비오네 하우스의 부활에 쏟아붓는 이유다.

    VK 매 시즌, 당신의 컬렉션은 마담 비오네의 아카이브를 철저히 연구한 결과물로 보인다.
    GA 올가을 컬렉션의 모든 룩은 아카이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극찬부터 혹평까지 다양한 리뷰를 읽었지만, 하우스의 유산을 무시했다는 평가만은 인정할 수 없다. 쇼 후반부를 채운 드레이핑 드레스와 플리츠 드레스뿐 아니라, 한 벌 한 벌엔 모두 마담 비오네의 DNA가 담겨 있다. 튤립은 34년 어네스토 타이야트가 마담 비오네를 위해 그린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 가을 컬렉션이지만 비오네 하우스에 봄이 오고 있다는 의미다. 좀 무거운 펠트 소재를 썼지만 커팅을 통해 가벼운 플리츠 효과를 내고, 조각조각 원단을 이어 구조적인 효과를 노렸다. 이 역시 ‘패션 건축가’라 불리던 마담 비오네의 유산이다.

    VK 그렇다면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룩은 뭔가?
    GA 마리아칼라가 입은 오프닝 룩! 걸을 때마다 찰랑이는 펠트 조각이 아주 맘에 든다.

    VK 런웨이에서 모델이 든 가방도 인상적이었다.
    GA ‘모자이크 백’이다. 비오네 하우스의 상징이 될 것이다. 사실 그건 내 학창 시절 가방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아주 모던하다. 가방 덮개가 탈착 가능하기에 얼마든 다채로운 색상 조합으로 컬러 블록 가방을 만들 수 있다. 덮개를 떼면 클러치가 된다. 매 시즌 새로운 색상을 제안함으로써 고객들이 덮개만 따로 구입해 새 느낌으로 즐길 수 있게 할 예정이다.

    VK 아주 실용적인 동시에 클래식한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나왔나?
    GA 근원은 늘 아카이브다. 하지만 역사, 건축, 미술 등 다양한 영역을 직접 체험하는게 중요하기에 매 시즌 디자인팀을 모두 이끌고 도쿄부터 베를린까지 세계 곳곳으로 ‘영감 여행(inspiration trip)’을 다닌다.

    VK 비오네가 꿈꾸는 여성상은 당신 자신인가? 당신이 비오네 뮤즈인 것처럼 보인다.
    GA 내가 뮤즈가 아니라, 내가 되고 싶은 여성상이 뮤즈다. 패셔너블한 사람들이 모이는 파티에 가면 아름다운 여성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비오네 드레스 차림의 여성은 수많은 여성들과 다른 뭔가를 지녔으면 좋겠다. 표면적인 아름다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뭔가 다른 매력이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마담 비오네는 “여자가 웃을 땐 그녀의 옷도 함께 웃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내 방식으로 다시 설명하자면, 자신감과 호기심이 넘치는 여자라면 그녀의 옷도 빛난다!

    VK 지난봄 컬렉션 이후, 후세인 샬라얀을 데미 꾸뛰르 컬렉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했다. 당신 스스로 꽤 성공적인 쇼를 끝낸 직후였기에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가 궁금했다.
    GA 1년에 여섯 개 컬렉션을 완성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컬렉션의 모든 룩을 특별히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그저 옷을 찍어내는 정신 나간 공장이 되고 싶진 않았다. 게다가 꾸뛰르 라인은 기성복과 비교도 안 될 만큼 특별해야 한다. 그게 바로 패션계의 아웃사이더지만 진정한 장인이자 예술가인 샬라얀을 끌어들인 이유다. 물론 나를 대신하라고 부른 건 아니다. 그가 아틀리에에 찾아오면 우린 많은 대화를 나누고 협업을 시도한다. 패션계에는 자신감에 비해 재능이 따르지 않는 디자이너가 많은데, 샬라얀은 재능에 비해 무척 겸손하다. 그에게 꾸뛰르를 맡기고 나서 나는 기성복에 좀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

    VK 당신은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나 모스크바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런던에서 학교를 다녔으며, LA에서 신혼을 즐겼다. 하지만 지금은 밀라노에서 프랑스 패션 하우스를 위해 일하고 있다. 이런 코스모폴리탄적 삶이 많은 영향을 끼칠 것 같다.
    GA 당연히 그렇다. 내가 경험한 특별한 삶에 대해 나는 무척 감사한다. 내 인생은 아홉 개의 목숨을 가진 고양이의 삶처럼 흘러가는 것 같다. 모스크바에서는 호사스러운 러시아 문화를 배웠고, 런던에서는 세부 요소에 관심을 갖는 방법, LA에서는 삶을 즐기는 방법을 배웠다. 다양한 문화와 사람에 대해 호기심을 배운 게 가장 큰 소득이다.

    VK 마담 비오네를 사랑하는 게 충분히 느껴지지만, 혹시 좋아하는 다른 디자이너가 있나?
    GA 물론 마들렌 비오네가 최고의 롤모델이다. 하지만 요지 야마모토를 비롯한 다른 디자이너들의 의상도 종종 입는다.

    VK 경영인이자 디자이너,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 모든 일정을 어떻게 관리하나?
    GA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에너자이저다. 늘 열정과 에너지가 가득하기에 아무리 빡빡한 일정이라도 힘들게 느끼지 않는다. 게다가 비오네 업무는 내가 원하고 좋아해서 하는 일이라 전혀 피곤하지 않다. 하지만 엄마 역할은 잘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 일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다. 아이들과 좀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을 뿐이다. 서울에 와서도 아이들 선물을 사지 못해 걱정이었는데, 이렇게 <보그> 인터뷰를 위해 마이분에 들러 장난감을 사게 돼 얼마나 다행인지!

    VK 이토록 열정적인 당신만의 비오네는 어떤 미래를 꿈꿀까?
    GA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것! 비오네의 유산은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전력투구하고 있으니 머지않아 꿈이 이뤄질 거라 믿는다.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임승은
    포토그래퍼
    CHA HYE KYUNG
    기타
    WWD / Montr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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