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마크 유감

해외 스타 건축가들이 지은 랜드마크급 건물들엔 한 가지 확실한 공통점이 있다.
좋은 작품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건축에 국경은 있는가? 종종 받는 질문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 “우리나라에 짓는 중요한 건물을 한국 건축가가 아니라 외국 건축가에게 맡기는 건 좀 문제 아닌가요?” 이라크 출신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최근 문을 열면서 부쩍 자주 받는 질문이다. 정답부터 말하자면, 건축에 국경은 없다. 프랑스의 자랑인 퐁피두센터는 영국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와 이탈리아 건축가 렌초 피아노가 설계했고,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은 에스토니아 출신 미국 건축가 루이스 칸이 설계했다. 독일 국회의사당 역시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설계했다. 외국의 스타 건축가를 기용한 사례는 어디서나 흔하다.

과거에도 그랬다. 러시아 왕조 시대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겨울궁전(현 에르미타주 미술관)’은 이탈리아 건축가 프란체스코 바르톨 로메오 라스트렐리가 설계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복궁 설계를 외국 건축가에게 맡긴 셈이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신라는 불교가 지켜주는 신성 왕국이란 것을 거대한 초고층 목탑으로 널리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80m 높이의 나무탑을 만들 수 있는 전문가가 없었다. 그래서 적국인 백제에서 아비지를 초청해 국가적 랜드마크인 황룡사 9층 목탑을 지었다. 건축가가 국경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이런 흐름은 세계가 한 무대가 된 현대에 들어 더욱 강해지는 추세다. 가장 적합한 건축가를 선택해 최적의 건물을 뽑아낸다는 이유도 있지만, 일단 유명 건축가의 작품이란 라벨이 붙으면 건물의 가치가 더욱 높아지기 때문이다. 건축주의 위신을 세워준다는 믿음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외국 건축가를 기용하기 시작한 건 60년대부터였다. 처음엔 주로 재벌 기업의 사옥이 주를 이뤘다. 서울의 플라자호텔, 신라호텔, 조선호텔, 하얏트호텔 등 주요 호텔과 삼성본관빌딩, 여의도 LG트윈타워, 코엑스 트레이드센터 등이다. 최근에는 각종 중요 문화 시설도 줄을 잇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건축가의 국적이 아니다. 외국의 유명 건축가나 설계 회사가 작업한 건축물의 수는 늘었지만, 안타깝게도 해당 건축가의 대표작으로 꼽힐 만한 작품을 국내에서는 아직 찾아보기 어렵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가장 큰 이유는 건축주가 건축의 문화적 속성을 잘 모른다는 데 있다. 막대한 돈을 들여 건물을 지으면서도 제대로 된 ‘작품’을 뽑아내지 못하는 이유다. 명품 브랜드 제품을 구입하듯 건축가의 이름에만 집착해 저자세로 접근했고, 콧대 높은 외국 스타 건축가들에게 기존 작품과 비슷한 판박이 건물만 주문하는 문제가 되풀이되어왔다. 가장 많은 욕을 먹은 것은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빌딩(1980년)일 것이다. 건축가는 시저 펠리.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 타워를 비롯해 수많은 초고층 빌딩을 설계한 스타 중의 스타 건축가다. 그의 명성에 걸맞게 교보생명빌딩은 건축적으로는 우수했다. 덩치가 크고 디자인이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건물이 지어진 지 한 세대가 지난 지금 봐도 정갈하고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당시 이 건물이 거센 비판을 받았던 건 디자인이나 시공 완성도 탓이 아니다. ‘짝퉁’이었기 때문이다. 일본 도쿄에 있는 주일 미국대사관 건물이 마음에 들었던 건축주는 건축가에게 똑같은 모양으로 지어달라고 주문했다. 주일 미국대사관은 건축가가 일본 전통 건축의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디자인한 건물이었다. 그런데 이 건물을 고스란히 가져와 네모난 고층 빌딩으로 올린 것이다. 건축주는 자신의 건물이 대한민국의 상징적 공간인 종로1가 1번지에 들어선다는 점을 제대로 감안하지 못했다. 이후, 전국 각 도시의 교보생명 사옥까지 모두 이 디자인을 붕어빵 찍어내듯 그대로 적용했다. 사옥의 지하층 전체를 서점으로 꾸밀 만큼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의지가 강한 기업임에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건 30년 전 한국 사회의 한계였다. 건축과 도시에 대한 문화적 인식이 그만큼 부족했다. 이후, 교보생명은 마리오 보타라는 스타 건축가를 기용해 강남 교보타워(2003년)를 새롭게 지었다. 시행착오를 통해 문화적으로 진일보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서울 한남동의 삼성미술관 리움(2004년) 역시 마리오 보타가 참여했다. ‘스펙’만 보면 리움은 완벽하다. 마리오 보타뿐 아니라 렘 콜하스, 장누벨 등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세 명의 스타 건축가들을 동시에 기용한 작품이다. 이 정도 스타 건축가들을 한꺼번에 불러 모아 설계를 맡긴 것 자체가 삼성이라는 그룹의 위상과 능력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비난을 피할 수는 없었다. 건물 하나를 제대로 짓기도 쉽지 않은 좁은 부지에 브랜드 건축가의 작품 셋을 억지로 집어넣어 세 건물이 조화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치 샤넬, 구찌, 에르메스 핸드백 세 개를 모두 가졌다고 자랑하듯 전혀 다른 성격의 건축물 세 동을 그저 모아놓기만 했다. 국내 최대 재벌의 미술관이자 최고의 컬렉션을 자랑하는 미술관, 세계 최고 건축가 3인의 합동 작품임에도 건축계 사람들 대다수가 리움을 건축적으로 높이 평가하지 않는 이유다. 건축주가 자기만의 건축 철학이나 지향점을 지니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까닭이다.

단지 유명하다는 이유로 특정 스타 건축가를 선택하는 사례는 요즘에도 비일비재하다. 특히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 대한 호감은 유별날 정도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철학적인 노출 콘크리트 작품으로 유명한 안도 다다오는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에 여러 건물들을 설계했다. 하지만 혁신적인 작품으로 평가된 건 극히 드물다. 2013년 원주에 들어선 한솔뮤지엄의 경우, 조경과 건축이 조화를 잘 이루는 완성도 높은 건물이었다. 돌이라는 재료로 변화된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내부 구조나 공간 처리 방식은 그의 기존 작품과 비슷하다는 평가다. 무엇보다도 안도의 대표작인 일본 나오시마의 지추미술관과 너무나 흡사해 차별성을 느끼기 어렵다는 비판이 일었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인 제주도 섭지코지의 글라스하우스(2008년)도 많은 건축 전문가들 사이에서 ‘최악의 건물’로 꼽힌다. 조각 작품처럼 근사한 유리 건물이지만, 섭지코지의 아름다운 경관과 고유한 분위기를 파괴해버렸다는 것이다. 바로 옆에 지어진 안도의 다른 작품 지니어스 로사이(2008년)가 작은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제주의 땅과 잘 조화를 이룬 사례로 호평을 받는 것과 비교된다. 글라스 하우스는 건축물이 들어서서는 안 되는 곳에 보여주기용 식당 건물을 지어 땅의 맥락과 특유의 분위기를 뭉개버렸다는 지적이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건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요즘 부쩍 높아지면서 건축주들의 의식이 서서히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건축 고유의 공공성과 한국의 문화적 차별성을 잘 보여주는 의미 있는 건물들도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덩치 큰 랜드마크보다 오히려 소규모 건물에서 그런 경우를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파주출판 도시의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2009년)이다. 현대 건축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건축가 중 한 명인 알바루 시자가 설계한 이 건물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시자 특유의 조형성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덕분에 건물 자체를 구경하려는 방문객들이 끊임없이 줄을 잇는 명소가 되었다. 스타 건축가들은 회사 유지를 위한 돈벌이용 프로젝트와 자기 스스로 흥미를 느껴 작품을 시도하는 프로젝트를 분리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는 도전적인 프로젝트, 건축가의 강점과 철학을 정확히 파악해 제대로 작품을 해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프로젝트라면 설계비를 크게 따지지 않고 흔쾌히 일을 맡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대가들일수록 더욱 그렇다. 알바루 시자가 아주 작은 건물인 안양파빌리온(옛 알바루 시자홀, 2005년)과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을 설계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좋은 건축물이 탄생하기 위해선 좋은 건축주가 필요하다. 건축가의 가능성을 면밀히 파악해 앞으로 뻗어나갈 가능성이 높은 건축가들을 과감히 선택해 스타를 키워내는 건축주 말이다. 세계적인 가구 기업 비트라가 대표적이다. 비트라는 공장 건물을 모두 유명 건축가들에게 맡겼다. 전 세계 건축 학도들과 건축 마니아들 사이에선 비트라 공장 전체가 건축의 성소로 통한다. 모두 작지만 존재감이 뚜렷한 개성적인 건물들이다. 구겐하임 빌바오를 설계한 프랭크 게리, DDP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 그리고 안도 다다오 등이 비트라 공장에 자신의 작품을 남겼다. 중요한 건 이들이 비트라에 지은 건물이 모두 데뷔작이거나 출세작이었다는 사실이다. 건축주가 탁월한 안목을 지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중요한 건 건축가의 이름이 아니라 스타를 미리 알아보는 안목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수준 높은 건축주들이 늘어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