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 좀 나면 어때?

온몸의 털을 없애야만 직성이 풀리는 여자들.
특히 나이가 젊을수록 털 없애기에 사활을 건다. 여자들의 ‘오버 왁싱’, 이대로 괜찮을까?

‘이게 뭐, 뭐야?’ ‘뭐 이상해?’ ‘좀 혼란스러워서’ ‘알래스카 여자들은 태어나서 한 번도 안 깎아’ ‘여긴 알래스카가 아닌데…’ ‘됐어, 나 안 해!’ 로맨틱 코미디 영화 <러브픽션>에서 희진(공효진)의 풍성한 ‘겨털’에 기겁하는 주월(하정우)의 반응은 여자들의 털에 대한 남자들의 심리를 대변한다.

‘Long hair, Don’t care!’ 최근 마돈나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겨털’ 사진에도 남자들의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다. 란제리 차림으로 오른쪽 손을 번쩍 들고 포즈를 취한 그녀의 사진을 본 남성 네티즌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역겹다’는 의견이 대부분. 실제로 마돈나는 2008년 <베니티 페어>와의 인터뷰에서 “겨드랑이 털을 밀지 않고 민낯으로 다녔을 뿐인데 주위로부터 ‘특이한 아이’로 취급받으며 괴롭힘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누리꾼들 사이에 화제가 된 건 마돈나의 ‘겨털’뿐만이 아니다. 뉴욕 휴스턴 스트리트에 위치한 아메리칸 어패럴의 쇼윈도엔 속옷 사이로 털이 수북한 마네킹들이 진열돼 있다. 조금 과장된 모습이지만 인간과 엇비슷한 마네킹을 보여주기 위한 이들의 선택은 음모! 아마 한국이었으면 놀라서 펄쩍 뛸 일이다.

여름이 가까워질수록 여자들의 ‘털’ 스트레스를 증명이라도 하듯 왁싱, 레이저 제모, 면도기, 셰이빙 폼 등 각종 제모 관련 시술과 제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문제는 털에 대한 강박이 심해질수록 그동안 제모 범주에 속하지 않던 부위마저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

눈이 더 커 보인다는 이유로 아래 속눈썹을 뽑아버리고, 찜질방에선 얼굴에 난 솜털을 모조리 없애주는 ‘실 면도’가 유행하는 등 미관상 아름답지 않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밀어버린다. 또 ‘썸녀’에게 가장 실망한 적이 언제냐는 질문에 “손가락 마디에 난 털을 봤을 때”라고 답하는 게 요즘 남자들이다. 알고 보면 우리는 털의 일차원적 기능을 잊고 산 게 아닐까?

 

 

올여름에도 어김없이 불어닥칠 제모 열풍. 퓨린 피부과 김연진 원장, ANG 클리닉 주현정 원장, 차앤박 피부과 임희진 원장, 그리고 피부과 전문의 유화정 교수와 오버 왁싱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VOGUE KOREA(이하 VK) 한국 여자들은 유달리 털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아요. 피부과 의사의 관점에서 봤을 때 대체 왜 그런 것 같나요?
KIM YEON JIN(이하 KYJ) 다른 나라에 비해 타인의 시선에 민감해서 아닐까요? 대부분의 여성들은 모든 남자들이 매끄럽고 백옥 같은 피부를 선호한다고 믿고 있어요.
JOO HYUN JUNG(이하 JHJ) 맞아요. 여성들이 털에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는 일차적인 원인은 결국 털을 싫어하는 남자들이 많기 때문이에요.
LIM HEE JIN(이하 LHJ) 노출이 자연스러워지면서 일부 털에 민감해지기 마련이죠. 방송에서 털을 희화화시킨 것 또한 이런 인식에 기여했고요.
YOO HWA JUNG(이하 YHJ) 문화적 차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털이 없는 게 한국의 미의 기준이고, 털이 없어야 깔끔하다는 인식이 상식으로 자리 잡아 제모하는 남자들도 늘고 있는 추세죠.

VK 이쯤 되면 털의 일차원적인 기능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겠네요. 우리 몸의 털은 대체 왜 나는 것이며 그 기능은 뭔가요?
YHJ 털은 포유동물만이 가지고 있는 구조물입니다. 생명과 관련한 생리 기능은 없지만, 머리카락은 자외선으로부터 두피를 보호하고, 눈썹이나 속눈썹은 햇빛이나 땀방울로부터 눈을 가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JHJ 여자들이 기겁하는 코털 역시 미세한 이물질이 폐로 직접 들어가지 않게 걸러주고, 코 안이 너무 건조하지 않게 습도를 유지해주는 기능을 하고요. 전신에 있는 작은 솜털들은 미미하나마 체온을 유지하는 기능도 하고, 외부 자극을 더욱 미세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감각기관으로서의 역할도 하죠. 또 음모나 겨드랑이 털은 과다한 마찰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고, 땀이나 분비물을 흡수하여 위생 유지에 도움을 줍니다. 겨드랑이 제모의 부작용으로 다한증이 언급되는 건, 알고 보면 예정된 운명인 거죠.

VK 아직까지 거슬리는 털을 족집게로 그때그때 뽑는 걸로 제모를 대신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족집게를 이용한 셀프 제모는 피부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KYJ 면도보다 족집게를 이용한 제모가 피부에 더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피부과 전문의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억지로 털을 뽑다 보면 털을 지지하던 모낭 내부가 심한 자극을 받게 되니까요.
JHJ 통증도 심합니다. 고무줄로 살을 튕기는 듯한 기분이 들죠. 털이 뽑힌 자리가 닭살처럼 오돌토돌 튀어나오거나 색소침착으로도 발전할 수 있습니다.

VK 최근 비키니 왁싱이 유행하면서 아예 다 밀어버리거나 하트, 별 등 모양내서 왁싱 받는 여성 또한 늘고 있는 추세예요. 비키니 왁싱에 대한 의견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JHJ 비키니 왁싱 부위는 굉장히 예민하고 연약한 피부입니다. 모양내서 제모를 하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므로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만, 반드시 위생적으로 시행해야 합니다. 연약한 피부일수록 왁싱을 할 때 화상의 위험이나 모낭염의 위험도 높아진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해요. 민감한 피부라면 전문 클리닉에서 하는 레이저 시술이 적합하고요.
YHJ 워낙 예민한 부위이니 브라질리언 왁싱보다는 본래 목적대로 비키니를 입었을 때 빠져나온 부분만 정리하는 비키니 왁싱 정도가 최선이지 싶어요.

VK 집에서 할 수 있는, 털을 뽑지 않고 제거하는 방법은 없나요?
YHJ 제모 크림은 털을 뽑지 않고 녹일 수 있는 방법이지요. 하지만 모발 구성 단백질인 케라틴을 녹이는 방식이라 피부에 자극적일 수 있습니다.
KYJ 염색 제품도 있지요. 짧고 가는 인중 털은 시각적으로도 효과가 괜찮다고 봐요.

VK 마지막으로 ‘이곳만큼은 내버려둬라’ 하는 부위가 있다면요?
KYJ 솜털 제모는 제발 자제해주세요. 솜털은 태어날 때부터 피부를 보호해주기 위해 존재합니다. 솜털을 제모함으로써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욱 많을 겁니다. 좋은 피부를 타고난 사람도 솜털을 제거한 후 민감성 피부가 된 사례도 적지 않게 보았죠.
JHJ 저도 솜털 제모는 반대합니다. 무엇보다 찜질방이나 목욕탕에서 행해지는 시술 자체가 얼마나 위생적으로 이뤄질 것이냐에 대한 의문이 드네요. 간혹 눈꺼풀 위의 잔털까지 레이저 제모를 원하는 분이 있는데, 잘못하면 색소침착의 위험이 높은 곳이고, 자칫 눈이 손상될 수 있어 매우 위험한 부위인 만큼 뜯어 말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