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을 싹둑 자를 때

여자들은 한결같이 얘기한다. 한번 잘라보고 싶은데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바로 지금이다! 불볕더위를 코앞에 둔 지금이야말로 당신의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을 싹둑 자를 때다.

머리를 잘랐다. 그것도 아주 짧게. 쇼트커트에 관한 기사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스스로 짧게 잘라보잔 마음은 전혀 없었다. 평소처럼 단발로 머리를 다듬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헤어 샘플북 보시겠어요?” 하며 싹싹한 스태프가 아이패드를 건넸다. 기사에 도움이 될까 해 쇼트 헤어 섹션을 클릭했다. 짧은 머리를 한 유명인들의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겼다. ‘오드리 헵번, 짧은 머리의 전설적인 뮤즈.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업스타일도 멋졌지만, <로마의 휴일>의 짧은 머리가 훨씬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 정말 사랑스럽고 예쁘잖아. <위대한 개츠비>의 미아 패로우도 전설이지. 〈악마의 씨>에서 “비달 사순에 다녀왔어요”란 대사로 쇼트커트를 유행시킨 주인공이니까(영화에선 “그 머리를 돈 주고 했다고?”란 핀잔을 듣긴 했지만). 물론 2013년 리메이크한 <위대한 개츠비>의 캐리 멀리건도 지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웠어. <사랑과 영혼〉의 데미 무어는 어떻고. 보이시하지만 여성적인 매력을 물씬 풍기는 데 이 짧은 머리가 한몫 단단히 했지. 앤 해서웨이, 머리를 자른 건 백번 잘한 일이지. 워낙 이목구비가 큼직큼직하고 여성스러워 촌스러운 느낌도 없지 않았는데, 머리를 짧게 자르니 훨씬 현대적이고 세련된 느낌이었어. 덕분에 미국 <보그> 커버도 장식할 수 있었잖아? 엠마 왓슨, 리한나도 머리를 짧게 자른 후 성공했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순간, 이희 원장이 다가왔고, 나도 모르게 “쇼트커트로 잘라보면 어떨까요?”라고 물었다. 그건 아주 잘 꾸며진 집 구경을 하다 보면 내 집도 꾸미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드는 것과 비슷했다. 물론 고민도 됐다. 내 머릿속 짧은 머리 여자는 두 종류다. 얼굴이 정말 예쁘고 두상이 예뻐서 뭘 해도 어울리는 경우, 혹은 에스트로겐보다 테스토스테론을 더 힘차게 뿜어내는 드센 이미지. 바지 정장만 입고 다니는 여자 정치인, 혹은 보험왕 아줌마 같은 느낌이랄까? 전자는 내 경우가 아니고 후자는 되고 싶지 않다며, 아이패드 사진을 들춰가며 걱정을 늘어놓고 있는데, 이희 원장은 사진엔 힐끗 눈길만 주곤 나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짧게 잘라도 괜찮을 것 같아요. 짧은 머리의 장점이 뭔지 아세요? 자신이 지닌 거의 모든 단점들을 커버할 수 있다는 거예요. 움푹 들어간 관자놀이, 튀어나온 광대, 못난 이마, 납작한 뒤통수와 정수리, 큰 얼굴 등 모두요. 커트 기술의 하이라이트는 쇼트커트니까요. 눈매와 얼굴형은 동그란데 쌍꺼풀 라인과 코, 입술은 직선 느낌이라 샤프한 사선과 부드러운 곡선이 함께 들어가는 커트가 좋겠군요. 어떤 사람은 죄다 동그래서 사선 느낌이 80~90% 들어가야 세련돼 보이기도 하죠. 앞머리가 너무 짧은 것보다는 살짝 긴 사선으로, 귀는 너무 드러나지 않게 하죠. 뒤통수와 정수리 볼륨은 살리고, 옆통수는 이미 튀어나와 있으니 들뜨지 않게 합시다.” 펌도 아니고 커트만으로 이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쇼트커트로 머리카락을 자른 모델 이혜정도 머리숱이 적어 촬영 때마다 가발을 애용했는데, 짧게 자른 다음부턴 오히려 볼륨이 살아나 자기 모발로 촬영하는 일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어떤 스타일이든 가능하도록 긴 머리를 고수하던 슈퍼모델들조차 과감하게 커트 스타일을 시도한 지는 꽤 오래됐다. <보그 코리아> 창간호 모델인 린다 에반젤리스타가 대표적인 예. 피터 린드버그의 요청으로 긴 갈색 머리를 싹둑 잘랐는데(당시 그녀는 자기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단다) 이것이 그녀 인생에 홈런을 날려줬다. 머리를 자르고 두 달 만에 그녀는 미국, 파리, 이탈리아, 영국 <보그> 커버를 장식하는 그랜드슬램을 이룩했다. 그녀의 뒤를 이어 아기네스 딘, 케이트 모스, 코코 로샤, 카르멘 카스, 그리고 최근 칼리 클로스까지 슈퍼모델들의 짧은 머리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그건 배우들도 마찬가지. 오드리 헵번, 진 세버그, 앤 해서웨이 등 할리우드 스타를 언급할 필요 없이, 한국의 배우들도 그렇다. 과거엔 특별한 배역이 아니면 머리를 짧게 자르지 않았는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짧은 머리로 변신해 인기를 끈 유인영은 짧은 분량이지만 확실한 존재감을 남기기 위해 머리를 잘랐고 선택은 적중했다. 만약 그녀가 전지현처럼 긴 머리를 한 채 그녀와 대적하는 선배 연예인으로 나왔다면? 분명 주인공의 아우라에 가렸을 것이다. “커트는 잘만 하면 비밀 병기가 될 수 있어요. 흔히 쇼트커트를 하면 남자 같아 보이지 않을까 걱정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영화 <선물>의 이영애는 사랑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 잘랐는걸요. 앞머리를 내고 컬링을 약간 넣어 뻗치게 했죠. 거기서 약간 더 길어지면 <봄날은 간다> 스타일이고요. <프렌치 키스>의 멕 라이언을 떠올려보세요. 짧은 머리지만 진짜 사랑스럽잖아요. 무엇보다 어려 보이죠!” 모델 강소영의 머리를 잘랐던 권영은도 같은 말을 했다. “헤어 라인을 숨기면 무조건 어려 보여요. 쇼트 헤어인데도 나이 들고 드세 보이는 이유는? 첫째, 원래 인상이 세고 남성적인 경우. 이런 사람은 짧은 머리를 피하는 게 좋죠. 또 다른 이유는 지나친 세팅. 살짝 뻗치고 흐트러져도 괜찮은데 그걸 못 보죠. 드라이로 정리하고 펌도 하고 힘을 너무 주기 때문에 나이 들어 보이는 거예요. 여기에 메이크업까지 진하면 한술 더 뜨죠. 노 메이크업에 짧은 머리의 날씬한 서양 중년 여성을 떠올려보세요. 젊고 자연스럽고 세련돼 보이죠. 물론 모발이 검은색이라 불리한 것도 사실이에요.”

이희 원장은 영화 <러브픽션>에서 공효진의 머리를 짧게 자르고 옐로 카키 브라운으로 밝게 염색했다. “겨드랑이 털도 제모를 안 하는 캐릭터인데 아침마다 머리를 세팅하고 나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툭툭 털고 나온 듯 자연스럽고 세련돼 보이기 위해 머리를 잘랐죠. 한쪽은 짧은 단발, 다른 쪽은 픽시 컷으로 짧게요. 그리고 유럽인들처럼 가늘고 밝은 모발로 보이게 염색을 했죠. 모발 길이가 짧으면 평소보다 좀더 환하게 보이고 대범한 색상도 잘 어울려요. 요즘은 핑크빛이나 붉은빛이 도는 브라운을 추천하고 싶군요. 또 픽시 컷은 김혜수가 잘 어울려서 자주 잘랐죠. 귀가 보이는 ‘픽시’란 요정에서 이름을 따왔다는데, 머리 속을 짧게 자르고 위쪽 모발로 그 위를 덮는 형태예요. 굉장히 자연스럽고 보이시한 느낌을 연출하기 때문에 얼굴이 동그랗고 여성스러운 인상을 지닌 여자들이 하면 아주 세련돼 보이죠. 그렇지만 워낙 가벼운 느낌이기 때문에 너무 말랐거나 얼굴형이 빼쪽한 사람들에겐 역효과일 수 있어요.”

그녀의 가위질에 따라 두상과 윤곽선이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머리를 다 자르고 저녁 약속을 위해 미용실 앞에서 기다리던 남편에게 다가갔다. “못 알아봤어.” 그리곤 한마디 덧붙였다. “괜찮은데? 어려 보인다.” 주변의 반응도 호의적이었다. <보그> 스튜디오의 한 남자 사진가는 5년간 알고 지낸 중 제일 예쁘단다. 동료들도 ‘상큼하다’ ‘도회적이다’ ‘어려보인다’ 등 긍정적인 멘트를 던졌다. 당연히 여자들의 반응이 더 좋다. 다만 애정 전선에 뭔가 따뜻한 기류가 흐르고 있는 당신이라면 싹둑 머리를 자르기 전 그 남자의 성향을 파악하는 게 먼저다. 모델 이혜정도 관심을 갖던 남자들이 머리를 자른 후 친한 이성 친구들로 변했다며 씩 웃었다. 모델 강소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머리, 여자들은 100% 좋아해요. 근데 남자들은 그냥 ‘멋지다’고 하죠. 어쩌면 서로 가지지 못한 모습을 동경하는 것 아닐까요? 저도 긴 머리 남자 별로거든요.”

그럼에도 그녀들은 짧은 머리에 무척 만족한다고 말한다. 나도 동의한다. 우선 정말 편하다. 스타일링에도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다. 툴툴 털어 말리면 자연스럽고, 옆머리를 쫙 붙이면 강하고 중성적이며, 한쪽으로 살짝 뻗치게 만들면 귀엽고, 컬을 살리면 사랑스럽다. 두상의 단점도 완벽하게 보완한다(내 경우 납작한 뒤통수 볼륨이 놀랄 정도로 살아났다. 어떤 펌으로도 이룩하지 못했던 기적이다). 여자들은 얘기한다. 한번 꼭 잘라보고는 싶은데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겠다고. 지금이다! 더위를 코앞에 둔 지금이야말로 머리카락을 싹둑 자를 절호의 찬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