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찾은 클레어 비비에와 스티븐 알란

로고와 금속 장식 없이도 세련된 가방을 완성하는 클레어 비비에.
아주 작은 변화로 특별한 옷을 만드는 스티븐 알란.
여성들에게 현실적 패션이란 매력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두 디자이너가 서울을 찾았다.



당대 모든 패션이 파리의 휘황찬란한 무대에서 탄생하진 않는다. 때로는 자신의 노트북 케이스를 만들기 시작한 핸드백 디자이너 손에 의해, 자신만의 간결한 셔츠를 만들던 디자이너 손에 의해서도 패션은 태어난다. 색색의 스트라이프 장식을 더한 클러치로 서울에서 인기를 누리는 클레어 비비에(Clare Vivier)와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셔츠로 유명한 스티븐 알란(Steven Alan)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무대가 아닌 현실에서, 근사한 패션을 선보이는 두 명의 디자이너가 서울에 들렀다.

“한국은 미국을 제외하고 두 번째로 큰 마켓이 됐어요. 제 매장이 없는데도 말이죠.” 화사한 봄날,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만난 클레어 비비에가 서울을 찾은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지난 며칠간 서울을 둘러보니 제 백과 멋지게 어울리는 멋쟁이 여성들을 자주 볼 수 있었어요.” 친구인 스티븐 알란 역시 그녀의 서울 여행에 동행했다. “갤러리아백화점에 스티븐 알란 매장이 있을 때는 자주 방문했죠. 최근엔 오지 못했기에, 서울의 변화를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습니다.”

Steven’s Favorite List도시 뉴욕 영화 , ,  아이콘 알리 맥그로우 책 ,  아티스트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 수트 스티븐 알란의 올리버(Oliver) 수트 음식 순두부찌개, 설렁탕, 삼계탕 등 한국 음식들. 가구 제이슨 피킨스(Jason Pickens)와 함께한 스티븐 알란 가구 건축 뉴욕의 UN 빌딩 시계 올여름에 선보일 스티븐 알란의 스테인리스 스틸 Tetsu 시리즈

뉴욕에 사는 스티븐 알란과 LA에 사는 클레어 비비에는 여러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두 사람 모두 패션을 전공한 디자이너가 아니라는 점. 2008년 브랜드를 론칭한 클레어 비비에는 프랑스 TV에서 일하던 저널리스트였다. “예전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어요. 한때 패션 블로그도 운영할 정도였죠. 그러던 중 제가 수작업으로 만든 가방이 친구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본격적으로 패션계에 뛰어들었습니다.” 우연히 시작한 ‘클레어 V.(최근 브랜드 이름을 교체했다)’의 심플한 백들은 이제 뉴욕과 LA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비롯, 전세계에서 만날 수 있다. 잇 백 시대가 저문 지금, 세련된 디자인과 실용적인 가격(10만원대의 클러치부터 대부분이 50만원 내외) 덕분에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한편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스티븐 알란 역시 처음부터 디자이너는 아니었다. 지난 94년 시계 유통 사업을 하던 중 자신만의 감각을 담은 매장을 열었고, 5년 뒤 매장 한쪽에서 셔츠와 팬츠를 만들어 판매한 것이 디자인 커리어의 시작이었다. “매장 2층 사무실에서 판매하기 위해 남성복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셔츠 몇 벌과 바지 몇 벌이 전부였죠.” 하지만 지금은 뉴욕 패션 위크에서 남성복과 여성복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이는가 하면, 인테리어 소품을 판매하는 ‘홈 숍(Home Shop)’까지 열었다. 셔츠 깃이나 바느질, 단추만으로 작은 변화를 준 그의 특별한 디자인 세계가 이젠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Clare’s Favorite List도시 파리와 LA 영화 , ,  아이콘 엠마누엘 알트 책 ,  아티스트 루이스 부르주아, 폴 세잔 드레스 스티븐 알란 셔츠 드레스, 마르니 브런치 멕시코 음식 꽃 작약 향수 히노키(모노클, 꼼데가르쏭) 주얼리 그레이스 리(Grace Lee)

두 사람에겐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그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여성상이 비슷한 것. 스팽글 장식의 미니 드레스나 킬힐을 포기할 수 없는 여성이라면, 그들의 디자인이 단조롭거나 따분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스마트한 데다 자신감을 갖췄지만 결코 과시욕이 넘치는 여성이 아닙니다.” 스티븐 알란은 자신들이 이상적으로 여기는 여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고객들은 대부분 창의적인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디자인, 광고, 요리사 등등. 특정 인물을 추종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문화를 이끄는 여성들이 고객층이 됐어요.” 클레어 비비에 역시 마찬가지다. “흥미로운 스타일 감각을 지닌 여성들이 제 가방을 찾습니다. 그들은 좋은 취향과 유머 감각을 지녔죠.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감이 넘칩니다. 대형 브랜드나 커다란 로고 장식 가방에 연연하지 않죠.”

클래식하면서도 유머 넘치는 변주가 특징인 두 디자이너의 세계는 현실적 패션이 유행인 요즘 더 주목받고 있다. 스티븐 알란과 클레어 V.가 함께 선보인 선글라스 컬렉션이 대표적인 예다(가을부터 분더숍에서 만날 수 있다). 복고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선글라스는 클레어 비비에가 사는 LA 실버 레이크에서나 스티븐 알란 매장이 있는 놀리타, 그리고 서울의 가로수길을 걷는 여성들 모두에게 잘 어울린다. 올가을 서울에서 만날 새 핸드백에 대해 자랑하던 클레어 비비에가 이렇게 덧붙였다. “스티븐의 셔츠 드레스를 입고 제 루이스 백을 든 다음, 이 선글라스를 낀다면 완벽할 것 같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