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시상식 중계

전 세계 스타 셰프들이 모인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시상식은 마치 요리계의 오스카 시상식 같다.
지난 4월 말, 런던에서 열린 이 시상식에서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50곳이 호명됐다.
그 화려한 축제를 생생히 중계한다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시상식은 런던을 일순에 달궈놓았다. 시상식을 위해 전 세계에서 모인 셰프들을 위한 화려한 파티와 훌륭한 음식도 당연히 한 상 가득 차려졌다. 유니폼을 벗고 수트 차림으로 모인 셰프들은 명절을 맞이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요리계 별들의 잔치인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World’s 50 Best Restaurants)’(이하 월드50)은 요리사에겐 오스카 시상식보다 더 설레고 한 번쯤 꼭 경험해보고 싶은 꿈의 제전이다. 매년 행사가 열리는 날이면 지구 반대편 미식가들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인터넷 생중계를 기다린다. 올해는 중계 사이트가 다운될 정도였다. 2002년부터 런던에서 매회 개최되고 있는 월드50에선 이른바 ‘요즘 가장 뜬다’하는 레스토랑들의 인기 순위가 발표되기 때문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식당에 별점을 매기는 <미슐랭 가이드>가 레스토랑의 음식, 서비스의 퀄리티를 평가하는 데 의의를 두는 것과 달리, 월드50은 트렌드를 선도하는 핫한 레스토랑에 랭킹을 매긴다. 선정 방식은 다음과 같다. 지역별로 고르게 분포된 900여 명의 ‘다이너스클럽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아카데미’ 회원들이 세 개의 소속 지역 바깥 레스토랑을 포함한 일곱 개 레스토랑의 이름을 적어내면, 그 결과를 집계해 득표순으로 순위를 매긴다. 이 오피니언 리더들로 말할 것 같으면 전 세계를 다니며 온갖 것을 다 맛본 궁극의 미식 구루들이다. 전통보다는 혁신에, 익숙한 것보다는 새로운 것에 더 열광하는 탐식가들이기도 하다.

행사 전날 런던에 도착해 호텔에 체크인 하자마자, 평소 친하게 지내는 저널리스트들로부터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모두들 이미 장외 정보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그 탐색전에서 가장 많이 주고받는 질문은 “누가 1위가 될 것인가?”다. 스페인 저널리스트들은 이미 결과가 정해지기라도 한 것처럼 자국의 엘 세예르 데 칸 로카(El Celler de Can Roca)를 1위로 꼽았다. 3년 연속 1위를 차지한 덴마크의 노마(Noma)로부터 작년 1위를 빼앗으니 그럴 만도 했다. 스페인 현지에서도 시선이 잔뜩 집중된 모양인지, 스페인 저널리스트 한 명은 시상식 아침에 월드50 관련 라디오 생방송에 출연한다면서 내게 현지 정보를 전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요리 업계 최대의 행사인 만큼 전 세계 주요 언론들이 모여들지만, 취재 신청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초청장을 내주지도 않는 콧대 높은 행사인 탓이다.

최고 요리사들의 축제답게 리셉션 파티장은 먹을 게 넘쳐났다. 각각의 코너마다 와인, 샴페인, 맥주, 위스키, 칵테일, 초콜릿이 눈앞에 펼쳐졌다. 샴페인은 물보다 흔했고, 웨이터가 들고 다니는 다양한 버전의 카카오 바리는 기어코 모든 종류를 먹어보고야 말았다. 그 와중에도 기자들은 정보 전쟁 중이었다. “혹시 리스트 들었어? 먼저 들은 정보 없어?”라는 대화들이 여기저기서 오갔다. 작년 행사에서는 시상식 10분 전에 리스트가 일부 저널리스트들에게 알려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심지어 한국에 있던 나조차 1위 발표 30분 전에 이미 결과를 전해 들었으니까. 작년의 사고 덕분인지 이번엔 주최 측에서 더 각별하게 비밀 유지를 했다는 말만 돌아왔다.

올해 시상식의 컨셉 컬러는 보라색이었다. 보라색 카펫과 바람을 따라서 휘날리는 깃발들 사이로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보던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세계적인 스타 셰프들이 조리복 대신 수트 차림으로 ‘쇼장’ 앞 거리를 채우는 진풍경은 오스카 레드 카펫이라고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았다. 셰프들에게도 이런 패셔너블한 면이 있었다니!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카메라 앞에서 플래시 세례를 받고 있는 셰프들은 주방에서 보는 그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이 수많은 별들 중에서도 역시 가장 큰 관심은 강력한 1위 후보인 엘 세예르 데 칸 로카의 로카 삼 형제와 노마의 르네 레제피(René Redzepi) 셰프였다. 밀집한 스페인 취재진들은 노골적으로 ‘우린 로카 형제만 찍으면 임무 끝이야’ 하는 포스를 내뿜고 있었다.

싱가포르 앙드레(André)와 함께 아시아에서 가장 주목받는 태국 레스토랑 가간(Gaggan)의 가간 셰프도 행사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자신 있게 인디언 음식의 색을 표현하고 있는 매우 인상적인 셰프다. 가간은 지난 3월에 열린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이하 아시아50)에서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축하해요! 하지만 식당 예약하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인사를 건네자 그가 답했다. “재작년 아시아50에서 10위권에 들고 나선 예약 시스템을 인터넷으로 바꿔야 했죠. 이번에 3위로 선정되고 나서는 예약이 두 달 넘게 꽉 차서 친구들조차 초대하지 못하고 있어요.” 아마 월드50 순위가 발표되면 그의 레스토랑은 반년 뒤까지 예약이 꽉 차버려 가족마저 초대하지 못할 지경에 이를지 모른다. 가간은 올해 월드50에서 ‘하이스트 뉴 엔트리(Highest New Entry)’를 수상하며 17위에 랭크돼 더 크게 주목받고 있으니 지나친 과장은 아니다. 월드50 상위권에 오른 레스토랑은 랭킹에 든 것만으로 레스토랑의 대단한 인기를 증명하며, 동시에 몇 개월 치의 예약이 ‘추가로’ 밀려들게 된다.

물론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인해 파인다이닝 식당들이 경영난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달에 한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을 방문했을 때, 식사하는 내내 다른 손님은 단 한 테이블에 불과했다. 전통적인 음식을 내는 이 3스타 레스토랑의 유지비가 걱정될 정도였지만, 월드50 셰프들의 사정은 반대다. 맛있는 식당을 넘어 다른 차원의 다이닝을 경험할 수 있는 이들 레스토랑이 전통적인 레시피를 고수하는 곳보다 인기라는 건 분명한 흐름이다.

시상식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자 열기는 극에 달했다. 50위부터 순서대로 레스토랑이 소개될 때마다 함성이 터져 나왔다. 특히 올해는 11위에서 50위에 이르는 레스토랑의 순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올해 리스트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레스토랑의 활약이다. 작년에 ‘아시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선정된 일본의 나리사와(Narisawa)가 20위에 그쳤으나, 올해 ‘아시아 최고의 레스토랑’에 선정된 태국의 남(Nahm)은 13위에 올랐다. 또 다른 태국 레스토랑 가간 역시 20위권에 진입했다. 방콕의 세련된 변신이 남과 가간으로 결실을 맺어 월드50에도 반영된 것이다. 또한 라틴아메리카의 레스토랑들도 대활약을 했다. 셰프들이 선정한 ‘올해 최고의 셰프’는 브라질 D.O.M의 알렉스 아탈라(Alex Atala), ‘세계 최고의 여성 셰프’는 브라질 마니(Mani)의 헬레나 리조(Helena Rizzo), 기존 50위 레스토랑 중 가장 큰 폭으로 순위가 상승한 레스토랑에게 주어지는 상인 ‘하이스트 클라이머(The Highest Climber)’는 페루의 센트럴(Central) 레스토랑이 차지할 만큼 라틴아메리카의 삼바 바람은 거셌다.

올해 신설된 분야인 ‘세계 최고의 페이스트리 셰프’ 부분도 많은 화제가 됐다. 이 영광은 엘 세예르 데 칸 로카의 페이스트리 셰프인 조르디 로카(Jordi Roca) 셰프가 차지했다. 맛뿐만 아니라 향수를 디저트에 접목하고, 사람의 기억과 경험을 자극하기 위해 각종 오디오와 장비들을 메뉴에 적용해 디저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경험치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조르디 로카의 활약이 빛을 본 것이다.

스페인이 현재 세계 미식 트렌드의 중심지임은 순위에 여실히 드러났다. 일곱 개 스페인 레스토랑이 50위권에 이름을 올려, 단일국가로는 가장 많은 레스토랑(미국 일곱 개, 프랑스 다섯 개, 이탈리아 세 개, 일본 세 개, 그리고 10위권에 스페인 레스토랑 세 군데가 들었다)이 순위권에 드는 저력을 과시했다. 전설의 엘 불리(El Bulli)가 문을 닫고 나서 끝난 것만 같았던 스페인의 무적 시대를 엘 세예르 데 칸 로카, 아르작(Arzak), 무가리츠(Mugaritz), 키케 다코스타(Quique Dacosta) 등의 레스토랑이 든든하게 이어나가고 있다. 셰프들의 단단한 결속력을 토대로 스페인은 매해 순위권에 더 많은 레스토랑의 이름을 올리고 있는 여전한 ‘대세’다. 현재 이 스페인의 흐름을 선두에서 이끄는 레스토랑이 바로 엘 세예르 데 칸 로카! 카탈루냐 전통 요리와 재료를 바탕으로 진공 조리, 진공증류 기법 등의 모던 쿠킹 테크닉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활용하는 게 특징이다. 사람의 오감과 감성(경험과 추억)을 담는 요리를 선보이며 세계적인 트렌드의 조류를 만들어내고, 분자요리에서 자연주의로, 또 자연주의를 넘어 감성을 담아내는 요리로 미식 업계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

이 잘나가는 엘 세예르 데 칸 로카가 올해도 1위를 지킬지, 2010년부터 3년간 지켜온 1위 자리를 작년에 빼앗긴 노마가 다시 1위를 찬탈할지, 1위 쟁탈전은 역대 최고로 흥미진진했다. 노마에서 얼마 전 발표한 ‘도쿄 이주 계획’의 영향도 있었다. 월드50은 줄곧 1위를 지키던 엘 불리가 폐업하자마자 랭킹에서 빼버린 전력도 있기에 올해는 어떻게 나올지 귀추가 주목되었다. “레스토랑 밖에 중계차 세 대가 기다리고 있고, 레스토랑의 모든 팀원이 로카 형제의 부모님과 함께 인터넷 생중계를 지켜보는 중이야”라는 문자가 왔다. 순위 발표가 점점 정점으로 다다를 무렵, 엘 세예르 데 칸 로카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에게서 온 문자였다. 열기는 남부 유럽에까지 미치고 있었다.

일단 3위는 이탈리아의 오스테리아 프란체스카나(Osteria Francescana)가 차지했다. 모두들 어느 정도 예상하던 바였다. 이제 문제의 1위와 2위만 남았다. “2위, 스페인 엘 세예르 데 칸 로카”라는 발표가 들려온 순간, 행사장엔 환호 대신 잠시 정적이 흘렀다. 혼란 속에서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비로소 일어나 큰 박수를 쳤다. 실망과 기쁨, 적막이 오묘하게 공존하는 사이에 르네 레제피 셰프를 포함한 노마 팀이 한껏 흥분되어 무대 위로 올라왔다. 노마 팀원 중 한 명은 무대 위에서 울음을 터뜨리기까지 했다. 르네 셰프는 빼앗겼던 1위를 재탈환한 기쁨을 담아 수상 소감을 풀어놨다. 동시에 스페인 저널리스트들은 그야말로 ‘멘붕’ 상태에 빠졌다. 결과가 발표된 시각은 밤 10시 30분, 이미 엘 세예르 데 칸 로카의 1위 기사를 미리 써놓았던 기자들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아마 레스토랑 앞 세 대의 중계차도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노마를 향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노마는 미식의 불모지로 취급되던 북유럽의 노르딕 퀴진을 재조명케 한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는 레스토랑이다. 북유럽 토양에서 나는 자연 재료를 이용해 창의적 요리를 선보인 이들이 2015년 도쿄로 두 달간 ‘이사’를 간다는 것은 그래서 더 놀라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가장 많은 질문은 역시 도쿄 프로젝트에 대한 부분이었다. 셰프 르네 레제피는 이 계획을 2년 전부터 준비했다고 밝혔다. “제2의 도약을 위해서입니다. 유럽 밖의 나라에서 새로운 테크닉을 노르딕 퀴진과 융합해 발전시켜 나가는 게 노마가 하고 싶은 일이죠. 일본에 가서 이제껏 궁금했던 일본의 모든 재료와 조리 방법에 대해 배우고, 우리 요리에 적용하는 방법을 찾을 겁니다. 모든 팀원들은 물론, 그들의 가족까지 이사 갈 준비를 이미 시작했고요.” 레스토랑 문을 닫는다는 건 엄청나게 용기가 필요한 결정이다. 그런데 그 목적지가 하필 아시아의 도쿄라는 건 의미심장하다. 아시아 퀴진의 새로운 발전 양상을 전하는 계시일 수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요리사들의 제전은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났다. 전 세계 요리 업계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그들의 열정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그들만의 그라운드 안에 잠시 섞여본 것은 다시 갖기 힘든 기회였다. 세계 최고의 셰프들은 모두 월드50에서 받은 영감을 들고 각자의 주방으로 돌아갔다. 보랏빛 전당을 떠나 뜨거운 주방에 조리복 차림으로 서 있을 그들이 한 해 동안 만들어 낼 새로운 바람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