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패션 이모티콘 열풍

2016.03.17

by VOGUE

    패션 이모티콘 열풍

    디지털 세상에서 수다 떨려면 이게 없인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늘 고상한 척하는 하이패션까지 단숨에 사로잡았다.
    디지털 화면에서 튀어나와 3차원 캐릭터로 성장 중인 패션 이모티콘 열풍!

    당신의 24시간 가운데, 모르긴 몰라도 집중력이 고도로 발휘되는 시간. 샛노란 사각 공간에서 누군가와 쉴 새 없이 대화 나눌 때다. 이름 하여 카톡 카톡! 사실 요즘 같아선 말풍선 사이사이에 제3자가 끼어들지 않고는 소통이 어렵다. (미소) (절규) (잘난척) (헤롱)(부끄) (크크) (우웩) (썩소) (버럭) (최고) (오케이) 등등 말이다. 또 <백설공주>의 일곱 난쟁이 같은 조연도 아닌, 복숭아, 단발 고양이, 오리, 토끼 등 당신의 최측근만큼 익숙한 카카오프렌즈의 일곱 멤버들도 있다. 지난 4월, 서울 현대백화점 여러 지점에서는 카카오프렌즈 팝업 스토어가 마련됐다. ‘플레이 위드 카카오프렌즈’에는 일곱 개의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를 활용한 60여 종류의 250가지 아이템이 팔려나갔다.

    무지, 콘, 어피치, 제이지, 프로도, 네오, 튜브! 아직 그들의 이름까지 달달 외운 건 아니지만, 스마트폰은 물론 PC나 노트북 모니터의 노란 세상에서 일곱 이모티콘의 인기는 웬만한 아이돌 그룹 뺨친다. 얘네가 ‘갑툭튀’ 되지 않거나 얘네의 도움 없이는 사실상 대화가 불가능하다. 요 일곱 이모티콘들은 작년 성탄 땐 1분짜리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유튜브에 올라갔고, 소치 올림픽 때도 소치 응원 영상의 주인공으로도 출연했다. 심지어 연말엔 사랑의 열매 홍보대사로도 위촉돼 명동에서 떠들썩한 거리 행진까지. 그러니 디즈니랜드의 미키마우스와 도널드덕, 롯데월드의 로티와 로리처럼, 서울 근교에 대형 테마파크 ‘카카오랜드’가 조만간 개장할지 모를 일이다(언론은 일곱 개의 캐릭터를 두고 국민 캐릭터의 반열에 올랐다고 평할 정도니까).

    스마트폰의 문자메시지 사이사이에 파고들던 이모티콘의 위상은 패션계에선 더더욱 상상 초월이다. 당대 유행을 인류에 권위 있게 제안하는 미국 패션지들이 이런 경향을 신속히 기획 중. ‘보그닷컴’은 인기 절정의 이모티콘에 딱 들어맞는 패션 아이템을 제안했다. “그림 하나가 천 가지 단어보다 나을 수 있다. 그러나 이모티콘은 백만 가지보다 낫다”는 의도다. 이를테면 플라멩코 댄서에겐 빨간 드레스와 거기 어울리는 슈즈를 보여주는 식. 밤 외출을 나가는 여인에게 필요한 건 500여 달러짜리 새빨간 러플 드레스, 알렉산더 왕의 600여 달러짜리 레이스업 샌들, 나스의 정글 레드 립스틱. 후다닥 뛰어가는 청년 이모티콘은? 빨간 클래식 티셔츠는 아크네 스튜디오, 청바지 역시 아크네 스튜디오, 검은색 BB화는 컴온 프로젝트다. 다분히 합리적인 미국식 쇼핑 정보 제공을 위해 이모티콘을 재치 있게 동원한 셈(연예인들의 공항 패션 사진과 비슷한 것을 추천하는 것에 비하면 얼마나 신선하고 동시대적 발상인지!).

    지난 2월과 3월의 패션 위크를 온라인에서 품평할 때 열 개도 안 되는 이모티콘만으로 간단명료하게 끝낸 경우도 있다. 제레미 스콧의 모스키노 데뷔쇼가 끝난 뒤 미국 <엘르> SNS에 올라온 건? 네 컷의 캣워크 사진과 함께 왕관을 쓴 여자 얼굴, 햄버거, 감자튀김, 다이아몬드, 스폰지밥, 아이스크림 이모티콘뿐! 미국 <하퍼스 바자>는 유명 인사들의 얼굴이나 클래식한 이미지들을 심플하게 도안화한 이모티콘 애플을 개발했다. 칼 라거펠트와 편집장 글렌다 베일리의 얼굴, 카린 로이펠트의 전신, 그 유명한 린다 에반젤리스타의 표지 사진과 리처드 아베돈이 찍은 60년대 표지 등등. 미국 <GQ> 역시 아이폰에서 자주 쓰는 이모티콘의 신사 버전을 마련했다. 가령, 두 명의 여자 무용수가 한쪽 다리를 쫙쫙 벌리고 서 있는 이모티콘을 모자와 선글라스를 쓴 두 명의 신사 버전으로 풍자하거나, 칸예 웨스트, 닉 우스터, 랄프 로렌 로고, 더블브레스트 블레이저, 라이더 재킷 등을 추가했다. 이제 갓 창간 1주년을 넘긴 태국판 <보그>는 지난 2월 ‘라인’과 함께 ‘Miss V’라는 스티커 타입의 이모티콘을 개발해 대히트를 쳤다. 고고한 하이패션 쪽 사람들이 디지털 세상에서는 마음과 태도, 수단과 방법을 180도 뒤집어야 한다는 걸 비로소 깨달은 셈이다.

    이렇듯 종이 잡지 독자를 초월해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우리 시대 ‘오디언스’들과 실시간 소통하고, 또 그들의 일상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침투시키기 위해 패션 매체들은 이모티콘을 도입하고 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만 하면 세상의 모든 피조물에 자기 이름을 붙여 풍자할 준비가 된 칼 라거펠트는 또 어떤가? 자신을 자유자재로 복제해 패션계에 우상화하고 신격화시키는 그가 최첨단 소통 수단인 이모티콘을 모른 척할 리 없다. 그리하여 개발된 것이 바로 ‘emotiKarl’. 자기 이름을 내건 대대적 향수 론칭과 함께 서비스된 이모티칼은 위대한 패션 영도자를 상징하는 모든 것들(선글라스 낀 얼굴, 에펠탑, 높은 화이트 셔츠 칼라, 하드코어 장갑을 낀 손가락 제스처, 끔찍하게 아끼는 고양이 슈페트 등등)로 구색을 갖췄다. 그리하여 문자메시지나 페이스북, 트위터, 왓츠앱 등은 물론, 이메일에 악센트를 줄 수 있다(아이튠즈에서 무료 다운로드!).

    당신이 더 잘 알겠지만 이런 이모티콘은 일단 귀여워야 호감도가 높고 사용 빈도도 높다. 그래서 늘 깜찍한 캐릭터를 원하는 패션계로서는 침을 꼴깍 삼킬 만한 재료다. 이미 제레미 스콧은 뉴욕에서 열린 자신의 패션쇼에서 백만 가지 표정을 지닌 스마일 동그라미 이모티콘을 옷에 프린트해 특유의 까불대는 성향을 발휘했다. 또 영국 <보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Antipodium’의 협업에도 이모티콘은 정교한 패턴으로 응용됐다. 그런가 하면 세련되고 폐쇄적인 고급 쇼핑 사이트로 소문난 ‘모다 오페란디’는 슬립온과 클러치에 이모티콘을 박아 넣어 한정판을 제작했다. 색색의 벨벳 슬립온 앞코에 천사와 악마 이모티콘을 따로따로 장식하거나 새파란 슬립온 좌우에는 각각 하트와 깨진 하트를 자수 놓거나 아플리케로 덧댄 것(이 신발을 종류별로 쫙 나열해놓고 보면, 이게 키보드인지 신발장인지 헷갈릴지도 모르겠다). 델 토로(Del Toro)와 에디 파커(Edie Parker)와의 협업을 통한 이 한정판엔 요즘 대세인 재치 만점의 해시태그까지 의미심장한 키워드나 캐치프레이즈처럼 새겨 넣었다. 아주 보편적인 것을 아주 색다른 아이디어로 발전시킨 것.

    “SNS식의 짧은 글이 유행하다 보니 점점 글은 축소되고 있다”라고 디지털 전문가들은 이모티콘 열풍을 여러 각도에서 해석 중이다. “이모티콘은 생각과 느낌을 이미지로 대체하고 함축해 전달하는 고도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다.” 그리고 지금은 디지털 세상의 그림문자가 패션 감각까지 갖춰 상업성 만점의 캐릭터로 변신하는 중이다. “이모티콘은 문자메시지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소통하는 당대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패션계가 이 재미난 유행을 시도하는 건 시간문제다.” 미국 <허핑턴 포스트>는 패션계의 이모티콘 신드롬에 대해 간략히 전했다. 또 미국 <GQ> 역시 “패션 월드가 선호하는 커뮤니케이션 방법은 이모티콘이다”라고 요약했다. 물론 완벽한 언어는 아니지만 ‘엄청나게 멋진 옷’을 말로 표현하기 애매할 때 적절하게 쓸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패션 비평이나 표현을 지나치게 축소하거나 왜곡할 수 있다는 걱정도 있다. 다양한 어휘로 패션을 설명할 수 있는데도 하나로 고정화시키는 셈이니까.

    패션이나 이미지는 글, 말, 언어를 초월하는 어떤 힘이 있다. 이모티콘 역시 마찬가지다. 게다가 모든 문화는 특유의 줄임말을 갖고 있다. 그러니 한때 깡통 로봇을 응용해 참 장식을 만들던 프라다, 키치한 것에 일가견이 있는 마크 제이콥스, 일러스트 하나는 수준급인 랑방의 알버 엘바즈, 늘 밝고 명랑하고 유쾌한 스텔라 맥카트니, 통통 튀는 발상으로 차고 넘치는 겐조 등이 그들만의 디지털 언어를 만든다고 상상해보라. 그게 유료라고 해도 당장 다운로드받아 쓰고 싶지 않겠나? 게다가 그 패션 이모티콘들이 카카오프렌즈처럼 무럭무럭 자라 디지털 세상을 뚫고 나와 스마트폰 케이스를 장식하거나 쿠션으로 제작될지 또 누가 알겠나?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신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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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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