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이미지의 새로운 상징, ‘콜라주’

창조 가능한 모든 것들이 이미 존재한다면, 이제 좀더 의미 있는 요소들을 골라 재조합해야 할 타이밍.
바야흐로 ‘콜라주’가 패션 이미지의 새로운 상징이 됐다.

루카 마이니니(Luca Mainini)의 움직이는 콜라주!

“지금 있는 것은 언젠가 있었던 것이며, 현재 생긴 일들 역시 언젠가 있었던 일이다.” 요즘처럼 이 표현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때도 없다. 단 몇 분의 구글링이면 ‘내가 생각한 어떤 것(독창적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도 지구 상의 어딘가에 이미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니 말이다. 우리는 창조의 시대가 아닌 편집의 시대를 살고 있다. 도처에 편재하는 것들을 ‘어떻게 나만의 취향으로 고르고 취합할 것인가’가 관건. 이러한 추세는 패션계에 편집매장 붐을 가져왔고 최근에는 패션 이미지로까지 번지고 있다. 유명 사진가의 작품을 참고한 게 뻔히 보이는 재탕 삼탕 이미지보다 조금 괴상하지만 재기 발랄한 콜라주가 다크호스로 등장한 것.




요즘 패션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콜라주 메이커는 루카 마이니니(Luca Mainini)다. 얼마 전 미국 스타일닷컴도 그가 시몬 로샤, 마크 제이콥스, 펜디, 루이 비통의 2014 가을 컬렉션으로 작업한 콜라주들을 포스팅했다(그의 이름을 구글링해보면 이 정도는 귀여운 수준임을 알게 된다). 그를 패션계의 ‘닥터 프랑켄슈타인’이라고 부르는 게 좋겠다. 빨간 입술, 빨간 네일 에나멜을 바른 뾰족한 손톱, 잘빠진 다리와 하이힐, 디자이너 의상과 주얼리 등 아름다운 신체 일부와 과시적인 패션 요소들이 짜깁기된 마이니니의 피조물은 B급 호러 영화에 나올 법한 패션 괴물 그 자체.



그는 전통 방식에 따라 패션 매거진의 페이지를 오려서 콜라주로 조합한 다음 포토샵을 통해 움직이는 GIF 파일 형식으로 변환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의 초현실적이고 과격한 콜라주는 반짝이는 네온사인처럼 반복적으로 움직이는(머리통이 굴러떨어지거나 옷과 배경이 바뀌고 손발이 까닥거리는 식) ‘움짤’이라서 박제된 페이지보다는 모니터 상에서 생명력을 얻는다는 뜻이다. “어릴 때부터 GIF 형식을 좋아했죠. 종이 위에 고정된 여자들이 미친 패션 로봇으로 바뀌는 게 마음에 들어요!”




벨기에에서 활동하는 콜라주 아티스트 한은실 작가는 이에 대해 동시대 문화를 반영한 적절한 표현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종이 위의 표현으로 끝나는 콜라주는 기존 작가들이 해오던 방식이죠. 늘 새롭고 신선한 것을 추구하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패션계를 표현하는 데는 충분치 않습니다. 콜라주를 디지털화한 신개념 이미지(움직이는 일러스트)라는 점이 패션계의 특성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죠.”




키예프의 콜라주 메이커 디나 리닉(Dina Lynnyk, 패션 디자이너이기도 하다)은 마이니니에 비해 섬세하고 서정적이다. 그녀는 우크라이나판 <하퍼스 바자> 인턴 기간 동안 무드 보드를 만들며 콜라주 세계에 발을 디뎠다. 무드보드가 일관된 주제에 따라 구성되듯 그녀는 하나의 정교한 초상을 완성한다. “모든 것은 끝없이 완벽한 모델의 얼굴을 찾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로 합치면서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죠.” 예쁜 눈과 그에 어울리는 눈 화장, 눈썹, 메이크업, 목걸이, 귀고리, 헤어스타일과 옷을 오밀조밀 끼워 맞추면(이를테면 김태희의 눈, 한가인의 코, 송혜교의 입술, 전지현의 몸매 같은 식) 서서히 형체를 드러내는 것은 이전에 존재한 적 없는 여인의 얼굴이다.



“이미 존재하는 것들로부터 새롭고 다른 무언가를 창조하고자 하는 욕망!” 얼마 전 베를린에서 열린 ‘콜라주 시대’ 전시의 큐레이터 실케 크론(Silke Krohn)은 현재의 콜라주는 타인에게 속한 것들을 가져와 새것을 창조하는 공격적 형태를 띤다고 말했다.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패션 피플들(알라스테어 맥킴, 리카르도 티시, 머트앤마커스 등)이 눈여겨보는 더그 에이브러햄(Doug Abraham)의 콜라주가 대표적인 예다. 그의 ‘가위질’을 거치면 발렌시아가와 알렉산더 맥퀸 광고 속 크리스틴 맥미나미와 케이트 모스는 칼을 꽂은채 피를 철철 흘리고, 프라다 모델들은 괴짜 스케이트 보더들로 교체돼 있다.

이토록 발칙하기 이를 데 없는 짜깁기 이미지에 왜 사람들은 열광하는 걸까? 패션의 콧대 높은 위상과 상징들을 완벽히 해체해 단숨에 키치한 이미지로 끌어내리기 때문이다. 요즘 유행하는 ‘악마의 편집’처럼 원작자에게는 살 떨리는 변칙이라도, 보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자극적이고 흥미진진하다. 여기에 콜라주 특유의 비현실적 느낌은 낯선 신선함을 더한다. ‘M/M Paris’의 손맛이 더해진 스텔라 맥카트니와 소니아 리키엘 광고, 토일렛 페이퍼가 참여한 겐조 광고 같은 초현실적 이미지들이 대거 등장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13년 전 발렌시아가 광고에서 이미 콜라주를 시도한 M/M Paris의 미카엘 암잘락과 마티아스 오귀스티니아크는 패션 이미지에 변화가 필요했다고 말한다. “언제부턴가 패션 이미지는 단순한 패션 사진이 돼 있더군요. 패션 이미지가 단순한 사진 이상이 될 수 있도록, 우리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패션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사람들이 웹상에서 까닥이는 마이니니의 GIF 콜라주에 열광하는 건 그의 말처럼 시대적 흐름일지 모른다. 그러나 기존 것들을 분해하고 조합하는 방식이 또 다른 새로움을 패션계에 공급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순환의 일부라고 생각해요”라고 마이니니는 말한다. “이러한 방식은 점점 더 확산될 테고, 패션 콜라주는 새로운 원더랜드를 만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