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우아한 크리스티 털링턴

슈퍼모델이란 타이틀을 내려놓고 제3세계 산모들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45세 크리스티 털링턴은
여전히 아름답고 세련됐다. 셔츠에 재킷과 팬츠만 툭 걸쳐도 이렇게 우아한 룩이 완성되지 않나!

개버딘 코트는 마이클 코어스(Michael Kors), 면 블라우스는 도나 카란(Donna Karan), 크레이프 소재 팬츠는 프란체스코 스코냐밀리오(Francesco Scognamiglio), 안쪽에 입은 실크 팬츠는 마르니(Marni).

러플 장식 실크 블라우스와 와이드 팬츠는 마르니.

도톰한 면 셔츠는 프란체스코 스코냐밀리오(Francesco Scognamiglio), 오버사이즈 반팔 톱은 샬라얀(Chalayan), 연노랑 실크 셔츠는 DKNY, 면 소재 쇼츠는 필로소피(Philosophy by Natalie Ratabesi).

얼마 전,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이 발표됐다. 비욘세, 힐러리 클린턴, 피비 파일로, 케냐의 인권운동가 오리 오콜로 등과 함께 이름을 올린 여성 41명 중에는 크리스티 털링턴(Christy Turlington)이 있었다. <타임>지는 그녀의 이름 아래 ‘슈퍼모델’ 대신 ‘모성 보건의 대사(Ambassador For Maternal Health)’란 설명을 덧붙였다. 지난 2010년부터 제3세계 산모 사망률 감소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명칭이다. 린다 에반젤리스타, 나오미 캠벨, 신디 크로포드, 클라우디아 쉬퍼 등과 함께 90년대 슈퍼모델 전성기를 이끌던 그녀가 언제부터 그리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된 걸까?

출산 당시 산후 출혈로 고생한 적이 있는 크리스티는 그 일을 계기로 제3세계 산모들에게는 출산 자체가 생명의 위협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실제로 매년 50만 명 이상의 여성이 출산 과정에서 사망한다). “90%는 예방이 가능한데 관련 지식이 없어서, 혹은 적절한 약품이 없어서 산모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었어요. 무엇이든 해야만 했죠.” 올 초 <글래머>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말했다. 크리스티의 추진력은 확실했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공중보건 석사과정을 등록하고, 탄자니아 · 방글라데시 · 과테말라 등의 산모 사망률에 관한 다큐멘터리 <No Woman, No Cry>를 제작해 각종 영화제에 출품했으며, 모든 어머니는 소중하다는 의미의 비영리단체 ‘Every Mother Counts(EMC)’를 설립해 제3세계 국가에 약품과 교육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현재 그녀는 국제 구호단체 CARE의 일원이자, 에이즈 · 결핵 · 말라리아 퇴치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Product Red’의 홍보대사이기도 하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미국인의 인생에는 제2막이 없다”고 했지만, 크리스티의 인생 제2막은 이미 시작된 것 같다.

크리스틴은 여전히 빛나는 피부의 비결로 이미딘(Imedeen) ‘타임 퍼펙션’을 꼽았다.

면 소재 롱 셔츠, 지퍼 장식 가죽 스커트, 아우터처럼 걸친 오버사이즈 셔츠는 모두 양 리(Yang Li).

주머니 달린 실크 셔츠는 폴 스미스(Paul Smith), 가죽 스커트와 은색 슬리퍼는 조셉(Joseph), 저지 소재 팬츠는 캘빈 클라인 컬렉션(Calvin Klein Collection).

패션계 정보통이나 기자 출신이 아니더라도 그녀의 인생 제1막이 얼마나 화려했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열네 살 무렵 마이애미의 초원에서 말을 타다 사진가에게 ‘길거리 캐스팅’을 당한 크리스티는 이미 열여섯 살 때부터 전속 모델처럼 매달 미국 <보그> 페이지를 장식하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보그>에서 예쁘다고 하면 무조건 예쁜 것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어요. 덕분에 사춘기에 쉽게 빠질 수 있는 나쁜 유혹들을 피할 수 있었죠.” 선하고 커다란 눈망울, 날렵한 광대, 그리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매력적인 입술까지, 엘살바도르 출신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라틴계 아름다움을 오묘하게 간직한 그녀는 슈퍼모델 시대를 활짝 연 디자이너 지아니 베르사체와 역동적인 패션 사진의 대가 리처드 아베돈 시대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뮤즈였다. 크리스티가 패션사에 남긴 기록은 대단하다. 무려 20년간 캘빈 클라인의 얼굴이었고(1987~2007), 90년대 초반 모든 10대에게 배꼽 피어싱을 유행시킨 주인공이었으며(나오미 캠벨이 바로 뒤따랐다), 99년 11월호 미국 <보그>에서 20세기를 마무리하며 꼽은 ‘모던 뮤즈’ 중 한 명이었다. 그 시절 대활약하던 사진가 아서 엘고트, 스티븐 마이젤, 패트릭 드마슐리에 등과 함께 성장한 그녀가 그동안 표지를 장식한 패션지는 무려 500여 권! 45세 나이에도 그녀는 메이블린 뉴욕의 뮤즈이며, 캘빈 클라인 언더웨어 캠페인에서는 여전히 완벽한 보디라인을 자랑한다.

뉴욕을 베이스로 하고 있지만, 여러 모금 활동과 봉사 활동을 위해 우간다에서 탄자니아로, 또 화보 촬영을 위해 밀라노에서 런던으로, 쉴 틈 없이 돌아다니는 크리스티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무리 없이 수행해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모델, 사회운동가, 영화배우이자 감독인 에드워드 번즈의 아내, 그리고 두 아이 그레이스와 핀의 엄마로서 그녀는 모든 역할을 어떻게 해내고 있을까? “그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한다는 표현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모든 역할을 통합적으로 해내고 싶은 마음뿐이죠. 모두가 제 일부고, 저 자신을 온전히 지켜냈을 때 진정으로 성공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 모든 역할을 무리 없이 수행해낼 뿐 아니라, 자유 시간에는 요가까지 즐기는 그녀(한때 푸마와 요가 라인 ‘누알라’를 론칭한 적도 있다). 전 세계 후배 모델들의 롤모델로 손색없는 크리스티 털링턴은 지금 이 순간도 최선을 다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우아하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