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웨어’와 패션의 상관관계

입을 수 있는 스마트폰? 지금 실리콘밸리와 패션 필드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들을 살펴보면 머지않은 미래다.
‘스마트 웨어’ 시대가 도래한 지금, 패션은 왜 더 중요해졌을까?

패션과 테크놀로지가 만나는 ‘스마트 웨어’ 시대가 펼쳐졌다. 심박수, 운동량 등을 기록하는 건강 체크 기능과 스마트폰 알림 기능을 갖춘 ‘갤럭시 기어 핏’도 그중 하나. 트위드 드레스는 샤넬, 레드 컬러 백은 프라다, 팔찌는 맨 위부터 생로랑, 디올 파인 주얼리, 맨 아래 팔찌와 반지는 엠주.

지난 4월 1일 <파이낸셜 타임즈>의 패션 담당 기자 바네사 프리드먼은 충격적 소식을 전했다. 애플에서 아이폰의 뒤를 이을 새로운 기기로 ‘iWear’라는 패션 라인을 준비 중이라는 것! 모두가 시계형 스마트폰인 ‘iWatch’를 기대할 때, 애플은 두 발짝 더 나가 온도 조절은 물론, 소매를 통해 각종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의 똑똑한 옷들을 선보일 거라고 보도했다. 게다가 이 옷을 디자인할 사람은? 애플과 함께 캘리포니아에 둥지를 틀고 있는 생로랑의 디자이너 에디 슬리먼! “더 기막힌 소식은 이 옷이 애플 매장뿐 아니라 생로랑 매장에서도 판매될 거라는 사실. 그리고 파리 패션 위크 기간 동안 선보일 예정.” 쇼킹한 뉴스는 만우절을 맞은 바네사 프리드먼의 ‘넝담!’으로 끝났다.

잘 웃지 않고 진지하기로 소문난 그 기자가 이처럼 실없이 농담을 던진 이유는 요즘 패션계와 IT업계를 둘러싼 묘한 기류 때문일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대표적 브랜드 애플이 이미 차례로 패션계 거물들을 스카우트하고 있지 않나. 버버리 CEO였던 안젤라 아렌츠를 데려가더니, 그다음은 생로랑 CEO였던 폴 드네브도 실리콘밸리의 애플 본사로 직행. 최근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시계 박람회에서는 애플을 경계하라는 풍문까지 돌았다. 스위스 시계만의 정통성과 노하우를 캐내려는 애플이 여러 시계 브랜드의 인재들과 물밑 작전을 감행하고 있으니 말이다.

“애플이 우리 직원들에게 연락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 이메일을 직접 봤죠.” LVMH 시계와 보석 부문 사장인 장 클로드 비베르가 <파이낸셜 타임즈>에 폭로한 말이다. 그는 스포티한 시계 브랜드 ‘위블로’의 직원들을 빼내가는 애플 또한 두 팔을 걷어붙이고 방해했다는 것. 세계 최대 시계 브랜드 스와치 역시 애플과 삼성, 구글 등의 IT 회사들이 적극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이렇게 전했다. “스마트 웨어를 위한 다양한 브랜드의 제안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왜 우리가 그런 파트너십을 맺어야 하는지 알 수 없군요.”

일련의 스카우트 파문은 스마트폰 다음 세대를 위한 실리콘밸리 측의 야심 찬 계획으로 볼 수 있다. 이미 삼성은 갤럭시 스마트폰의 기능을 탑재한 갤럭시 기어와 기어 핏을 대대적으로 발표했고, 모토롤라는 모토 360이라는 스마트 워치를 선보였다. 또 구글은 3월 중순 시계를 비롯한 새로운 제품에 적용시킬 수 있는 ‘안드로이드 웨어’라는 이름의 소프트웨어를 소개했다. 다들 아이폰의 뒤를 이어 ‘아이워치’가 탄생할 거라고 예상하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단순히 손에 드는 IT 기기가 아닌, 몸에 착용하거나 입을 수 있는 ‘스마트 웨어’ 시대가 열린 것.

2년 전,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 쇼에서 모델들이 착용한 구글 글래스 역시 ‘스마트 웨어’에 속한다. 하지만 모델들을 SF영화 속 요원들처럼 보이게 한 디자인으로 인해, 기발한 기능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홍보되지 못했다. 그래서 최근 구글은 레이밴, 오클리는 물론, 샤넬과 프라다 등 수많은 패션 브랜드의 안경을 책임지는 룩소티카 그룹과 협약을 맺었다. 구글 글래스의 놀라운 기능을 탑재한 샤넬 선글라스의 탄생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테크 브랜드들이 ‘웨어러블 기기’를 새로운 열쇠로 여기는 지금(페이스북은 3월 가상현실을 보여주는 고글 제작 회사를 무려 20억 달러에 인수했다), 패션의 영향력은 걷잡을 수 없이 비대해졌다. 아무리 뛰어난 기능을 가진 제품이라도 소비자를 매혹시킬 디자인이 없다면 반향을 일으키기 힘들다. 현재 출시된 ‘스마트 웨어’들이 다들 외면받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 한창 인기를 끌던 나이키의 퓨얼 밴드가 최근 단종을 선언한 것도 제한된 기능과 별다를 것 없는 디자인 때문이다(애플은 재빨리 나이키 퓨얼 밴드의 엔지니어들을 자신의 스페셜 프로젝트에 참여시켰다).

최근 <뉴요커>는 ‘웨어러블 테크’가 가장 중요한 걸 놓쳤다고 일침을 가했다. 영화 <스타 트렉>의 캐릭터처럼 보이는 안경이나 시계를 차고 돌아다닐 만한 사람들은 실리콘밸리의 몇몇 괴짜들을 제외하곤 없다는 것. 애플을 비롯한 실리콘밸리 브랜드들이 컴퓨터 회사가 아닌, 패션 액세서리 회사처럼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그러니 패션업계 주요 인물들을 포섭하고 있는 애플이 언젠가 바네사 프리드먼의 상상대로 스마트폰 기능을 탑재한 트렌치나 팔찌를 선보일지도 모를 일. 게다가 에디 슬리먼이 개입한다면, 디자인은 보나 마나 패셔너블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