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파리에서 만난 엘르 패닝

2016.03.17

by VOGUE

    파리에서 만난 엘르 패닝

    반짝이는 금발과 싱그러운 미소가 매력적인 엘르 패닝. 최근작 <말레피센트>에서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그녀답게 연기한, 이제 막 달콤한 16세를 맞은 패닝을 파리에서 만났다.

    “러플과 나비 리본, 그리고 핑크색을 좋아해요. 하지만 어떤 면에서 제 스타일은 발전하고 있어요. 지금은 ‘좋아, 이젠 풍성한 스커트 대신 타이트 스커트를 더 많이 입어도 돼’ 라고 생각하죠.” 아가일 체크무늬가 들어간 연핑크 울 스웨터는 미우미우(Miu Miu), 연한 옥색 실크 블라우스와 울 스커트는 미드햄 키르초프(Meadham Kirchhoff).

    봄날의 파리. 이보다 사랑스러운 곳이 있을까? 도시 전체가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공모라도 한 듯했다. 하늘은 푸르고 깃대에는 삼색 국기가 펄럭였다. 햇살은 빌르망 공원에서 종종걸음 하고 있는 귀여운 강아지들 위로 쏟아졌다. 그리고 그 순간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 펼쳐졌다. 바로 미국의 10대 여배우 엘르 패닝이 등장한 것이다. 16번째 생일을 앞둔 그녀는 막 싹트기 시작한 나무들처럼 신선했다. 그리고 잔뜩 흥분해 있었다. 그건 마치 진지하고 우아한 도시에 내리쬐는 캘리포니아의 따스한 햇살 같았다.

    베이비 페이스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키가 큰(양말만 신으면 175cm, 프라다 구두를 신으면 183cm) 패닝은 미우미우 쇼에 참석하기 위해 파리에 왔다. 쇼는 어제 열렸다. 이번 쇼는 모두가 탐낼 법한 슈가 아몬드 윈드브레이커를 선보여 화제가 됐지만, 더 큰 화제가 된 건 프런트 로를 장식한 어여쁜 스타들이었다. “저, 루피타, 리지, 레아, 벨라…”라고 새하얗고 예쁜 얼굴로 패닝이 말했다(그녀가 언급한 인물들은 오스카 수상자인 루피타 뇽과 동료 배우인 엘리자베스 올슨, 레아 세이두, 그리고 벨라 헤스콧이다). “아주 재미있었어요. 전혀 거만하지 않았어요. 광고 촬영 때 이미 벨라, 리지, 루피타를 만났어요.” 광고란 세 사람과 패닝이 함께 등장한 2014년 봄여름 미우미우 광고를 의미한다. “그리고 리한나가 있었어요! 정말 멋졌어요. 제가 손을 흔들며 ‘안녕하세요!’라고 하자 그녀도 ‘안녕!’ 하고 답했어요. 멋진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는데 정말 패셔너블 했어요. 그녀가 커다란 모피 코트를 입고 쇼장에 들어왔을 때 ‘와우’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죠.”

    를 찍는 동안 엘르 패닝은 모든 아역배우들을 위협하는 어떤 공포를 경험했다. 몸이 급성장한 것이다. “신발 사이즈도 점점 커졌지요. 마지막 장면에선 샌들이 맞지 않았어요!” 연한 옥색 실크 드레스는 버버리 프로섬(Burberry Prorsum), 실크 브라는 미드햄 키르초프(Meadham Kirchhoff), 페이턴트 가죽 화이트 샌들은 미우미우(Miu Miu).

    하지만 엘르 패닝도 남들이 보면 상당히 감탄할 만한 스타다. 걸음마를 뗄 때부터 영화에 출연한 그녀는 아역배우 가문의 일원이다. 언니 다코타 패닝은 사춘기가 될 때까지 중요한 아역이 필요한 거의 모든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했다. 재미있게도 엘르의 첫 역할은 언니의 아기 때 역할이었다. 그 후 <바벨>에서 케이트 블란쳇과 브래드 피트의 딸로 등장했고,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블란쳇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다. 패닝의 출연작들은 대체로 사뭇 진지하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J.J. 에이브람스는 그녀를 매력적인 SF영화 <슈퍼 에이트>에 출연시켰다. 그리고 제프 브리지스와 영화를 찍는 동안에는 그에게 드로잉을 배웠다. 패닝과 함께 있으면 그녀의 성장 과정이 얼마나 특별하고 놀라운지 계속 떠올리게 된다. 그건 내 앞에서 미소 짓고 있는 이 매력적인 10대의 모습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에이브람스는 그녀를 ‘초자연적인’ 인생 경험을 가진 배우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탄 차가 교통체증을 빚을 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네 살 때는 어떻게 대사를 외웠는지 모르겠어요. 글도 읽을 줄 몰랐는걸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가끔 어떤 영화를 찍으면 이상한 느낌이 들어요. 데자부 같은 거요. 어떤 냄새나 빛에서 그런 걸 느껴요. 제 삶이 영화 속에 담겨 있다는 건 정말 웃긴 일이에요.”

    패닝은 열두 살에 소피아 코폴라의 <썸웨어>에서 주연을 맡음으로써 독립영화 스타로 부상했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샤토 마몽에서 우아하지만 권태로운 삶을 살고 있는 방탕한 배우 스티븐 도프의 매력적이고 영리한 딸을 아주 부드럽게 연기했다. 그러나 영화를 찍는 동안 그녀는 아역배우를 위협하는 어떤 공포를 경험했다. 몸이 급성장한 것이다! “1년 반 만에 키가 18cm나 컸어요. 신발 사이즈도 점점 커졌지요. 마지막 장면에선 샌들이 맞지 않았어요.”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코폴라와 패닝은 아직도 가깝게 지내는 사이다. “우리는 늘 이메일을 주고받고 얘기를 나눠요. 같은 도시에 있을 때면 얼굴을 보려고 하죠.” 패닝은 몇 년 전 소피아의 아버지인 프란시스 코폴라의 초자연적인 동화 <트윅스트>에도 출연했다. “그분은 소피아보다 훨씬 시끄러워요. 영화를 찍는 동안 나파 밸리에 있는 그의 집에 머물렀어요. 매일 밤 함께 요리를 했어요. 그분은 제게 파스타 만드는 법을 가르쳐줬죠.”

    소매를 가죽 트리밍한 보라색 셔츠는 프라다(Prada).

    요즘 할리우드엔 재능 있는 젊은 여배우들이 많다. 엘르와 비슷한 나 이대로는 헤일리 스테인펠드와 클로이 모레츠가 있다. 그러나 패닝이 왜 유독 인기가 많은지 설명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녀는 자신의 배역을 물 흐르듯 연기하고, 그 모습은 질리지 않을 정도로 사랑스럽다. 곧 개봉되는 <영 원스>에서 상대역으로 나온 니콜라스 홀트는 이렇게 말한다. “엘르는 정말 똑똑하고 지혜로워요. 그녀는 스크린에서 미묘하지만 정확한 선택을 하고 배역에 몰입한 다음, ‘컷’ 소리가 나면 곧바로 10대 소녀로 되돌아와요.”

    그녀는 마침내 자신의 푸른 눈, 들창코, 그리고 금발 머리에 딱 어울리는 역할을 선보인다. 바로 디즈니 공주 말이다. 그녀는 <말레피센트>에서 주인공을 맡은 안젤리나 졸리의 상대역인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연기한다. 패닝은 파인우드에서 졸리와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며 흥분했다. “‘세상에!’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어요. 왜냐하면 안젤리나는 현실 속 사람처럼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녀는 사진에서나 보는 그런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녀가 진짜 그곳에 있는 거예요. 그녀는 ‘아주 재미있을 거야’라고 말하면서 저를 꼭 안아줬어요.” 졸리의 딸 비비안은 패닝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다. “안젤리나의 아이들도 촬영장에 있었어요. 풀 메이크업을 하고 무시무시한 뿔을 다는 동안 그들과 놀아주었죠.”

    소매를 가죽 트리밍한 보라색 셔츠는 프라다(Prada).

    <보그>는 생 마르탱 운하 옆에서 그녀가 기댈 수 있는 하얀 벽을 발견했다. 파리의 모든 것이 잠재적 배경이었다. 라뒤레 마카롱 같은 파스텔 색상의 코트와 스커트를 입고, 콜 라이너로 검게 눈을 그렸다. 머리는 지저분하게 빗질했다. 패닝은 벽에 기대 풍선껌을 불고, 힐을 신은 채 몸을 빙빙 돌렸다. 그녀는 윌리엄 이글스턴의 사진 속에 나오는 10대 소녀나 소설 <처녀들 자살하다>에 나오는 엑스트라 자매처럼 보였다. 피부는 창백하지만 마음씨는 따뜻한 비밀을 잔뜩 간직한 소녀들 말이다. 비교하자면, 근처 운하 위로 다리를 흔들거리며 앉아 있는, 혹은 식당 옆을 지나가는 검은 옷차림의 프랑스 10대들이 외계인처럼 보일 정도였다. 처음 패닝을 광고 모델로 세운 로다테, 프라다, 마크 제이콥스, 그리고 열세 살 때 그녀를 샤넬 꾸뛰르쇼에 초대한 칼 라거펠트의 관심을 끈 건 그녀의 쿨한 생각과 화사한 태도의 조화다. 특히 에디터와 스타일리스트들, 사진가들은 그녀를 잡지에 싣기 위해 서로 경쟁했다. 열두 살 때 그녀의 첫 패션 촬영은 로라와 케이트 멀리비 자매였다. “그들은 저의 패션 대모라고 할 수 있어요. 그들이 제게 준 로다테 가죽 재킷을 갖고 있어요. 학교 갈 때 그걸 자주 입죠.” 멀리비 자매는 그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엘르에겐 모든 곳을 환하게 만드는 기운이 있어요. 아주 친절하고 특별하죠. 게다가 재능 있고 독창적이에요. 패션은 그녀가 예술 본능을 능숙하게 표현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죠.” 첫 패션 촬영을 하기에 열두 살은 약간 어리지 않았을까? “솔직히 저는 아주 흥분했고, 그 촬영이 너무나 좋았어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정말 제대로 차려입었어요. 패션 촬영은 지금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 중 하나예요.” 아닌 게 아니라 그녀의 열정을 반박하기는 힘들다. 패션에 대한 그녀의 관심은 열정적이고 또 신중하다.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옷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어머니는 제가 입고 싶은 옷을 마음껏 입게 해주셨어요. 저는 패션을 사랑해요. 패션은 저를 흥분시키죠. 예전엔 소녀처럼 입었는데, 사실 아직도 그래요. 러플과 나비 리본, 그리고 핑크색을 좋아해요. 하지만 어떤 면에서 제 스타일은 발전하고 있어요. 지금은 ‘좋아, 이젠 풍성한 스커트 대신 타이트 스커트를 더 많이 입어도 돼’라고 생각하죠.”

    촬영이 끝나자 그녀는 입고 온 옷(스터드가 박힌 이자벨 마랑 가죽 팬츠, 투박한 프라다 가죽 슈즈, 등판이 없는 프릴 달린 오프닝 세레모니 톱)으로 갈아입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셀린의 실루엣을 아주 좋아한다고 말했다. “헐렁한 룩이 제 키와 잘 어울려요.” 그녀는 모델들의 이름도 죄다 알고 있다. “칼리 클로스를 만난 적이 있어요. 클로이 노가드의 헤어스타일도 마음에 들어요. 제 머리를 완전히 다른 색으로 염색하고 싶어요.” 그리고 컴퓨터엔 따라 하고 싶은 룩의 사진들을 모아놓은 폴더가 따로 있다. “그냥 재미로 모은 건데 그대로 따라 하고 싶어요.” 하지만 이 모든 것에는 기분 나쁜 조숙함이 아니라 어색함과 웃음이 따른다. 그녀는 결코 평범한 10대가 아니다. 그녀는 안젤리나 졸리와 이름을 부르는 사이다. 하지만 패닝은 때 묻지 않았고 사랑스럽다. 교복에 대해선 이렇게 말하는 그녀다. “프레피 룩을 연출하고 싶다면 체크무늬 치마가 재미있을 거예요.”

    꽃무늬 레이스 코트와 주황색 에나멜 스트랩 슈즈는 미우미우(Miu Miu), 검정 새틴 드레스와 화이트 울 셔츠는 필로소피(Philosophy).

    패닝은 자신의 명성을 자랑하지 않는다. 그녀는 홈스쿨링 대신 고등학교를 선택했다. “왜냐하면 제 또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그 결과 영화 촬영과 학교 숙제와 발레 수업을 병행하고 있다. 그리고 토요일이면 LA에서 친구들과 LA 빈티지 숍 쇼핑을 즐긴다. 그녀에게 연기를 하지 않을 선택권이 주어졌을까? “언니가 그랬기 때문에 저도 기회를 열어놓았어요. 하지만 연기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계속하지 않았을 거예요. 연기를 하고 싶고 영원히 하고 싶기 때문에 지금 연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녀는 언젠가 언니 다코타와 영화를 찍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건 정말 중요한 일이 될 거예요.” 둘 사이에 라이벌 의식은 없다. “우리가 걸어온 길은 아주 달라요. 우린 서로의 대본을 읽지 않아요.” 다코타가 뉴욕대의 학생인 지금, 두 사람은 더 이상 서로의 옷을 빌려 입지 않는다. “언니는 뉴요커가 다 됐어요. 그래서 코트가 아주 많죠.”

    엘르는 아직 여름휴가 계획이 없다. 보통 휴가 때는 영화를 찍기 때문이다. “작은 독립영화는 촬영이 한 달밖에 안 걸려요. 그래서 그냥 하게 돼요. 그거 말고 뭘 해야 하죠? 아직 모르겠어요.” 친구들과 놀기? 좀더 열여섯 살다워지기? “맞아요. 하지만 올해는 대부분 그렇게 지내고 있어요. 학교에서 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지내요.” 그런 다음 그녀가 잠시 말을 멈췄다. “아니면 파리에서요!”

      에디터
      글 / 샬롯 싱클레어(Charlotte Sinclair)
      포토그래퍼
      안젤로 페네타(Angelo Pennetta)
      스탭
      스타일리스트 / 프란체스카 번스(Francesca Burns), 헤어 / 루크 허쉬슨(Luke Hersheson), 메이크업 / 한나 머레이(Hannah Mur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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