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의 기적

놀랍게도 찬물이 아닌, 50℃의 뜨거운 물에 채소와 과일을 씻으라는 주장이 이슈다.
쭈글쭈글했던 주름이 펴지고, 시들했던 채소나 과일이 싱싱하고 맛있어진다는
50℃의 기적은 과연 사실일까?



“정말? 찬물이 아니고 뜨거운 물이라고? 그건 좀 아닌데?” 50℃ 세척법을 설명하자 편집장이 대번에 고개를 저었다. 사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발끝만 담갔다 화들짝 발을 빼는 목욕탕의 열탕 온도가 40~43℃. 그런데 이것보다 뜨거운 물에 채소를 담근다고? 실온에 잠시만 둬도 금방 시들해지는 양상추, 시금치, 콩나물이 뜨거운 물에서 되살아나고, 딸기와 사과의 단맛이 살아난다고? 더러움이 훨씬 깨끗하게 씻기니 우엉과 생강은 껍질째 사용 가능하고, 이렇게 씻은 재료들은 보존 기간도 길어진다니!

손이 아리도록 차가운 물에 채소를 씻어온 이들에겐 50℃ 세척법의 효과란 믿기 힘들면서도 이내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는 증기학자 헤이야마 잇세이가 주창한 이론으로, 일본에서는 이와 관련된 그의 책이 출간 열흘 만에 14만 부나 팔려나갈 정도로 인기였다.

물론 갑자기 등장한 이론은 아니다. 일본의 유명 온천 지역에서 온천수에 채소를 씻는 문화에서 힌트를 얻어 연구한 결과다. 원리는 이렇다. 채소와 과일은 호흡을 하고 수분을 잃으면서 시들어 간다. 그래서 이를 막기 위해 수확이 된 채소는 스스로 기공을 닫아버리는데, 50℃ 물에 담그면 순간적으로 이 구멍이 열려 수분을 흡수하면서 결과적으로 싱싱해진다는 것. 한 방송 실험 결과, 실제로 채소가 빠르게 물을 흡수해 질량과 탄성이 늘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뜨거운 물이 효소를 활성화시키고 부패균을 처리해 보존 기간도 늘어난다는 것. 대장균, 병원균을 살균할 수 있는 온도는 아니지만(60℃ 이상 이어야 하는데 이 온도에서는 세포막이 익어 죽어버린다), 식재료가 살아 있는 상태를 유지하면서 채소의 신선도를 회복하는 데는 50℃가 최적의 온도라는 것. 채소와 과일 표면에 묻은 오염 물질도 대부분 휘발성이어서 찬물보다는 뜨거운 물로 씻을 때 쉽게 떨어져 나간다.

방법은 이렇다. 온도계(유리 온도계는 잘 깨지기 때문에 스테인리스로 된 바리스타용 온도계를 추천한다), 전기 포트, 그리고 큰 유리볼을 준비하면 끝! 전기 포트에 물을 끓이고 찬물과 섞어가며 유리볼에 담긴 물을 50℃로 맞춘다. 세척할 재료를 물에 담그고 살살 흔들어 주면서 지정된 시간 동안 담가둔다. 중간중간 뜨거운 물을 섞어가며 온도를 유지시킨다. 특히 부패균의 활동은 35~40℃에 가장 활발하기 때문에 43℃ 이하로 떨어지지 않게 한다.

자, 이제부터 조금 복잡해진다. 지정 시간이 재료에 따라 다르다. 숙주와 콩나물은 2~3분간 물에 넣어 휘리릭 저어준다. 잎채소는 전체를 담그고 가볍게 흔들면서 1~2분, 오이 · 가지 · 피망 · 호박 · 오렌지 · 감 · 뿌리 채소 등은 2~3분, 토마토 · 사과 · 오렌지 · 바나나는 3~5분간 물에 담가 표면을 살살 문지른다. 씻었으면 채반, 키친타월을 이용해 물기를 최대한 빼고(그렇지 않으면 상하기 쉽고, 50℃ 효과도 도로 아미타불!) 바로 사용하거나 냉장 저장한다. 생선, 육류도 응용 가능하다. 생선은 내장을 깨끗하게 제거한 후 1~3분, 고기는 20초~1분 짧게 담갔다 그날 안에 사용한다.

내가 직접 실험한 결과는? 신기하게도 채소가 살아났다! 100% 성공률은 아니었지만 (지나치게 시들었거나 짓무른 채소는 불가능) 시들했던 시금치, 양상추 등의 잎채소, 고수와 바질 같은 허브가 생기를 되찾았고, 쭈글쭈글했던 파프리카도 주름이 반 정도 펴지면서 팡팡해졌다. 색상도 약간 더 선명해진 듯했다. 탁탁 털어 채반에 두자 찬물로 씻었을 때보다 빨리 말랐고, 키친타월로 톡톡 두드려 닦아 밀폐용기에 냉장 보관했더니 다른건 잘 모르겠지만 숙주와 콩나물은 확실히 더 오래갔다.

그러나 모두가 이 방법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김은경 한국 채소 소믈리에 협회장은 이 방법이 순간적으로 과일을 숙성시키거나 수분을 높이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맛을 좋게 하거나 오래 보관하기에는 부적합하다고 잘라 말했다.

“신 사과를 50℃ 물에 담가 두면 정말 단맛이 생깁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식감이 퍼석해지고, 시간이 지나면 표면이 더 쭈글쭈글해지죠. 약간 시든 채소도 50℃에 담그면 빠르게 살아난 것처럼 보입니다. 색이 풍부해지는 경우도 있고요. 그러나 이건 온도 쇼크로 세포막을 순간적으로 활짝 열어(마치 땀구멍이 커지듯) 수분이 급격하게 들어오기 때문에 피어오르는 것처럼 보일 뿐이에요. 시원한 물에 담가도 채소는 수분을 흡수해 싱싱해집니다. 좀더 시간이 걸릴 뿐이죠(20분). 일반적으로 급하게 발육시킨 채소들은 맛이 없어요. 이것도 마찬가집니다.

음식은 보는 게 아니라 맛있게 먹는 게 포인트잖아요. 오래 보관이 가능한 과일, 채소를 원한다면 50℃ 세척보다 제철 식재료를 그때그때 소량 구입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세척이나 보관은 생육 조건과 가장 비슷하게 맞춰주세요. 예를 들어 여름 채소는 너무 차가운 물에 담그면 오히려 상합니다. 고구마를 냉장 보관하면 빨리 무르고 상하는 것도 같은 이유죠. 약간 시원하다 싶은 물에 씻고, 밀폐용기에 담아(용기 바닥에 키친타월을 깔면 더 오래간다) 무 · 배추 · 파 등은 뿌리를 아래쪽으로, 바나나 · 오이 · 애호박· 고추 등은 꼭지가 위쪽으로 오도록 세워 보관하세요.”

50℃ 세척법이 흥미로운 건 사실이다. 급하게 채소를 살려야 할 때, 단맛을 끌어올려야 할 때, 영양소가 수성이라 물에 오래 씻지 않는 것이 좋은 재료에는 응용해볼 만하다. 또 부패균이나 화학비료에 들어 있는 질소 성분 등을 없애주는 데도 효과가 있다고 하니, 이유식과 환자식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식재료의 맛과 영양을 끌어올려주는 기적의 세척법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애매하게 따뜻한 물은 오히려 미생물의 활동을 높여 위생상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눈앞에서 채소가 싱싱하게 살아나니 매직은 매직이지만, 찬물에 20분을 기다릴 시간이 없거나, 세심하게 온도를 맞출 수 있을 때 해야 한다는 것. 50도 세척법의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