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러보고 올게요!

둘러보고 오신다고요? 스마트폰으로 더 싸게 파는 온라인숍 검색하려는 건 아니고요? 입어만 보려고 온 거, 우리도 다 안다고요!

매장 피팅룸에서 실컷 옷을 입어보고 그 자리에서 스마트 폰으로 가격을 비교하는 쇼루머. 옷과 액세서리 모두 이자벨 마랑(Isabel Marant), 카페트는 더얀카페트.

“그래서, 온라인에서 구입할 때는 어떤 사이트를 애용하는 편이에요?” 신세계 백화점 수입 브랜드를 총괄하는 마케팅 팀장의 질문은 순수한 호기심의 발로였다. “음… 파페치(farfetch.com)나 더 코너(thecorner.com) 같은 곳이요?” 그 순간 어떤 질문이 이어질지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당황한 눈동자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허공의 파리를 쫓듯 사정없이 데굴거리기 시작했다. 제발, 그 질문만은! “근데 말이지, 도대체 사이즈 확인은 어떻게 하는 거예요?” 올 것이 왔다. “그, 그거야… 훌륭한 셀렉션을 갖춘 멀티숍과 백화점 매장의 도움을 받아….” “아… 우리 매장도 요즘 그런 사람들 때문에 골치 아픈데. 참 어떻게 해야 할지….” 겸연쩍어하며 잠시 서로의 시선을 피하던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제품을 요모조모 살펴보고 따져본 다음, 구입은 가장 저렴한 온라인에서 하는 것. 이게 바로 ‘쇼루밍(showrooming)’이다. 오프라인 매장을 쇼룸처럼 활용한다는 의미에서 붙은 명칭. 이름만 봐서는 패션계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을 것 같지만, 처음 이 소비 방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건 전자 기기 소비자들이었고, 그 ‘어마무시’한 영향력은 영국의 한 디지털카메라 유통업체를 파산에 이르게 했을 정도다. 이렇듯 새롭게 탄생한 21세기 소비 패턴은 IT 전자 기기와 가전제품을 거쳐 최근 패션계까지 접수했다. 다들 눈치챘겠지만, 우리에게는 직구족으로 익숙한 개념이다.

지인이 ‘노련한 직구족’이라며 소개해준 모 타블로이드지 디지털 매거진 팀장 유지영은 2007년도부터 해외 온라인숍을 드나든 직구계의 얼리어답터. 초기엔 국내에 수입되지 않거나 세일 폭이 큰 브랜드 위주로 직구를 했고, 그만큼 실패한 경험도 많았다. 사이즈가 맞지 않거나 마음에 들지 않은 제품은 주변 지인들에게 나눠주거나, 가격대가 높을 땐 중고장터에 판매(“어쨌든 우리나라 매장에서 사는 것보다 가격이 싸니까요.”)하는 게 나름의 처리 방식이었다. 그리고 해외 직구하던 브랜드들이 대부분 정식 수입되면서, 그녀는 실패를 최소화할 수 있는 쇼루머로 변모했다(여자의 변신은 무죄!).

“일부 컨템퍼러리 브랜드(요즘 20~30대 여자들이 좋아하는)의 경우, 우리나라 매장가가 공식 사이트 판매가보다 비싼 경우도 있거든요. 온라인 숍에서 세일이나 쿠폰, 할인 코드까지 적용하면 대충 30만~50만원 정도 싼 가격에 살 수 있죠” 그녀가 최근 쇼루밍으로 장만한 건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프랑스 브랜드의 스니커즈. 롯데 백화점 본점 매장에 들러 자신에게 어울리는지, 맞는 사이즈가 몇인지를 확인했다. 최종적으로 그녀가 카드를 긁은 곳은 판매가 110만원대인 백화점 매장이 아니라 관세 포함 70만원대에 판매되고 있는 매치스닷컴(matches.com). “저도 인터넷 카페(배송대행을 해주면서 해외 온라인 쇼핑 정보도 제공하는)에서 ‘핫 딜(대박 세일)’이라고 포스팅된 걸 구입했으니, 저 말고도 주변 사람들 꽤 많이 샀을걸요?” 과연, 해당 사이트를 직접 확인해본 결과 사이즈 41(280)을 제외한 전 사이즈가 솔드 아웃!

그녀는 자신이 들은 최고의 직구 에피소드로 지난겨울 크게 유행했던 북유럽 브랜드의 양털 아우터를 꼽았다. “저도 들은 이야기예요(본인이 아님을 거듭 강조하며). 그 아우터가 국내 매장에서 400만원대에 팔리고 있었는데, 한 직구족이 200만원대로 할인 판매하는 온라인 사이트를 발견한 거죠. 매장에서 직접 입어보고도 컬러를 결정하지 못해 결국 ‘어차피 한 벌 가격’이라며 블랙과 베이지 두 벌을 다 샀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이처럼 적극적인 직구족들이 쇼핑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것은 비교 가격. 그러다 보니 직구의 세계에 빠지게 되면 치명적인 부작용이 뒤따르기도 한다. 단지 할인 중이라는 이유만으로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사거나, 배송비를 아끼기 위해 배송비 무료 금액에 도달할 때까지 계획에 없던 물건들을 쇼핑백에 쓸어 담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 ‘온라인은 어쨌든 좀더 쌀 것이다’라는 선입견 때문에 절대적인 금액 자체가 크더라도 오프라인에서 보다 훨씬 쉽게 구매를 결정하기도 한다. 이러다 보니, 설사 직구로 아낀 돈보다 부작용으로 줄줄 새나간 돈이 더 많을지언정 직구족의 수는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진 않는 추세다.

“직구족이 계속 증가하다 보니, 국내 정식 수입업체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가격대를 높게 설정한다고 생각하기 쉽죠. 그렇지만 국내 매장에서 구입하는 게 더 저렴한 경우도 있답니다.” 아크네 스튜디오를 담당하는 신세계 인터내셔널 관계자에 의하면, 아크네의 베스트셀러 아이템인 피스톨 부츠의 공식 사이트 판매가는 579(약 80만6,000원)유로. 여기에 배송비(20유로)와 부가세 10%를 더하면 국내 매장가인 84만원을 훌쩍 넘게 된다(made in Italy 제품이므로 관세는 면제). 그러나 아킬레스건은 있게 마련. 아크네 스튜디오라고 예외는 아니다. “사실 본사에서 나라별로 환율을 고려한 권고 가격(SRP: suggested retail price)을 정해주고 있어요. 권고 가격을 따르는 것이 원칙이지만, 사입 방식이 대부분인 해외 백화점이나 멀티숍의 경우 권고 가격은 말 그대로 ‘권고’일 뿐이죠.”

실제 구글링 5초 만에 권고 가격보다 30만원 정도 낮은 가격으로 피스톨 부츠를 판매하는 해외 온라인숍들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매장을 방문하는 이들 중 쇼루머의 비율이 만만치 않을 듯하다. 요즘엔 판매 직원들도 척하면 눈치챌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유명 멀티숍 판매 직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특정 브랜드와 제품을 정확하게 짚어서 찾으면 일단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죠.” 직접 응대를 하면 보다 명확해진다.

“직원들이 눈대중으로 짐작한 사이즈가 잘 맞으면 대부분 굳이 다른 사이즈를 입어보려 하지 않죠. 쇼루머들은 한 가지 옷을 S, M, L 사이즈별로 다 입어보고 각 사이즈를 입었을 때마다 ‘여긴 이렇지 않아요? 저긴 저렇지 않나요?’라는 식으로 아주 디테일한 조언을 듣고 싶어 합니다. 한번은 특정 사이트를 언급하며 ‘000에서는 얼마에 판매하는데, 여기는 왜 이렇게 비싸요? 할인해주세요’라고 따지는 손님도 있었고요.” 당연히 매장 직원들은 쇼루머들을 싫어할 수밖에 없다. 실제 구매 의사가 없는 쇼루머들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시간대에 오는 것도 골치지만, 여러 사람을 거치면서 판매용 제품에 예상치 못한 손상이 가는 것도 문제라는 것. 이 정도면 신종 골칫거리 블랙 컨슈머의 등장이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을 덮어놓고 얄미운 훼방꾼으로만 치부하는 건 성급한 판단. “제품을 보기 위해 매장에 들르는 사람들이 많은 건 사실이죠. 그렇지만 항상 보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그들 중 상당수가 매장에서 제품을 구입하기도 하죠. 저번에 매장에서 봤던 어떤 제품을 직구했다, 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면서 사곤 하니, 직구족이든 쇼루머든 간에 워낙 패셔너블한 그들이기에 결국엔 고객인 거죠.” 현재 스코어로 이들을 가장 큰 ‘악의 축’으로 지목해야 할 아크네 스튜디오조차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리 브랜드를 사랑하는 마니아들’이라는 입장. 실제로 쇼루밍족 중에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일명 ‘크로스오버 쇼퍼’들도 꽤 많다.

“즐겨 입는 브랜드가 정해져 있는 편이죠. 원하는 컬렉션 피스가 국내 매장에 없을 때 직구를 하지만, 매장에서 입어봤을 때 마음에 들면 바로 사기도 해요. 특히 코트 같은 고가 제품은 가능한 오프라인에서 구입하는 편이죠(수선이 필요할 때 처리하기 편하거든요). 매장 직원도 저를 알아볼 정도라서 매장을 둘러보고 입어보기만 해도 전혀 눈치 보이거나 불편하지 않아요.” 모 남성복 브랜드 마케팅팀 박서혜 대리도 크로스오버 쇼퍼. 그녀 역시 유행하는 패딩 아우터를 거의 반값에 판매하는 온라인숍을 발견하고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쇼루밍을 한 적이 있지만, 대부분 좋아하는 브랜드의 컬렉션을 늘리거나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호주 디자이너 브랜드를 시도하기 위해서 직구를 한다.

여전히 가격 차이가 직구를 하는 목적이긴 하지만, 어느 인터뷰이가 “그들은 돈이 없어서 직구나 쇼루밍을 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듯 온라인 쇼핑은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쇼핑 패턴이다. 예를 들어 독일의 컨설팅 회사 맥킨지앤컴퍼니의 이사 린다 도리즈는 “소비자가 원할 때 언제든 쇼핑할 수 있다”는 것을 매장 경험에 대적할 만한 온라인 쇼핑의 장점으로 꼽았다. 영국 패션 브랜드의 마케팅 코디네이터 안나 카리아티는 “충동구매를 하는 타입이 아니기 때문”에 얼마든지 혼자 심사숙고할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이유로 온라인숍을 선호한다.

그렇다면 업계에서는 이들의 오프라인 쇼핑을 유도하기 위해 어떤 대책들을 마련하고 있을까? 미국 유통업체 타겟(Target)은 오프라인 매장에서만 판매하는 익스클루시브 제품군을 따로 구성하고 있으며, 미국과 호주의 일부 패션 매장에서는 옷을 입어볼 때마다 ‘피팅 피(fitting fee)’를 받고 구입 시 되돌려주는 방식(다소 치사하지만 적극적인 대응책)을 도입하고 있다. 국내 정식 수입업체들은 해외로 ‘유출’되는 소비자층을 잡기 위해 가능한 가격대를 맞춰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먼저 세일을 시작하고 세일 폭도 파격적인 해외 온라인숍에 가격으로 대항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떠오르는 젊은 브랜드들을 취급하는 제일모직 비이커팀은 혹할 만한 아이템 구상에 상당한 노력을 쏟고 있다. “인기 있는 브랜드들과 협업을 진행하거나, 특정 아이템을 단독으로 확보하는 등 비이커만의 차별성을 두는 거죠.” 롯데 백화점과 갤러리아 백화점은 전문가들이 대안으로 제시한 옴니채널 방식을 도입, 자사의 온라인 쇼핑몰에서 오프라인 매장보다 낮은 판매가를 제시하고 직접 픽업하도록 해 매장 방문을 유도하고 있다.

온통 직구족과 쇼루머족뿐일 것 같지만, 직구를 해봤다고 해서 전부 직구의 매력에 빠지는 것도 아니다. 모 캐주얼 브랜드 홍보팀 과장은 국내 아페쎄 매장에 M 사이즈가 없어서 온라인으로 주문했지만, 결과는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S를 입어보니 좀 달라붙길래 넉넉하게 입고 싶어서 M 사이즈를 주문했거든요. 근데 막상 입어보니 너무 크더라고요. 요즘은 같은 브랜드 내에서도 디자인별로 사이즈 차이가 큰 편이라 그냥 매장에서 입어보고 사는 게 마음이 편해요.” 직구는 말할 필요도 없고, 쇼루밍에도 늘 실패 가능성은 있다는 것.

직구에 대한 기사를 쓴 적 있는 <더블유>지 패션 에디터도 정작 본인은 직구를 즐기지 않는다. “몇 번 해보긴 했는데 아무래도 쇼핑의 재미는 덜하죠. 아무래도 눈치도 보이고 양심의 가책도 느껴야 하니까. 소재의 촉감을 느끼면서 찬찬히 둘러보고, 이 옷 저 옷 입어보는 그런 재미는 오프라인 쇼핑을 따라갈 수 없죠. 놀이처럼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구입으로 이어지는 게 진짜 쇼핑이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대상에만 집착한 나머지 과정의 즐거움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게 아닐까? 어떤 쇼핑 방식을 택할지는 온전히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다만 분명한 건,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을 때, 그러니까 가격 차이에 목숨 걸지 않을 때 당신의 쇼핑 인생은 더 풍성해진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