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킹에 관한 이색 보고서

1년 365일 쇼윈도에서 포즈를 취하는 마네킹은 패션 세상에서 가장 바쁜 여성일지 모른다.
피그말리온의 여인에서 좀더 친숙하게 변신 중인 패션계 스타, 마네킹에 관한 이색 보고서.



지난달, 라 펠라는 뉴욕 소호 매장의 마네킹을 모두 교체했다. 한 고객이 지나치게 깡마른 마네킹의 모습에 충격을 받아 “라 펠라는 갈비뼈까지 드러난 마네킹이 정말 괜찮다고 여기는 걸까?”라고 트위터에 올린 것! 이 글은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고, 온라인상에서 엄청난 논란이 됐다. 불과 몇 시간 만에 라 펠라 측은 “모든 매장을 새로운 컨셉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 있으며, 문제가 된 마네킹들을 다시는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패션 브랜드에서 지나치게 마른 마네킹을 사용하는 것이 문제가 된 건 처음이 아니다. 빠른 대응으로 논란을 최소화한 라 펠라, 혹은 지난 2007년 스페인 여성의 거식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마네킹을 66사이즈로 바꾸겠다는 결정을 내린 망고와 달리, 대부분의 브랜드들은 여전히 비현실적으로 마른 마네킹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깡마른 마네킹은 깡마른 모델을 런웨이에 세우고, 패션지 화보에 등장시키는 것과 같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쇼윈도 마네킹이 런웨이 모델을 대신하는 중차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브랜드 입장에서 모델들에게 직접 옷을 입혀 선보일 수 없다면, 이를 대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인간과 가장 비슷한 모습의 마네킹에 옷을 입히는 것. ‘당신도 이런 모습이 될 수 있어요. 이것이 당신의 라이프스타일이 될 수 있어요’라고 고객들에게 대신 속삭여주는 것이다. 얼마 전 <월스트리트 저널>은 미국 내 구매 고객 중 플러스 사이즈 여성이 28%에 달한다고 발표하면서 플러스 사이즈 마네킹의 필요성을 주장했다(42% 고객은 마네킹이 의상을 입고 있는 모습을 봤을 때 자신의 구매 의사에 영향을 끼친다고 답했다). 직접 옷을 입어볼 시간이 없는 고객들이 마네킹이 옷을 입은 모습만으로 판단을 내리기 때문에, 마네킹이 런웨이 모델보다는 직접 옷을 사 입는 고객들의 모습을 닮아야 한다는 것.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플러스 사이즈 마네킹은 마케팅에 성공적이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고객들은 쇼윈도 마네킹을 보며 그것이 자기라고 착각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어쨌든 늘씬한 마네킹을 더 선호하는 것이다.



결국 대부분의 마네킹은 180cm에 가까운 키에 완벽하게 균형 잡힌 34-24-34 몸매다. 코코 로샤, 아기네스 딘, 에린 오코너, 비욘세 놀즈(힙 사이즈가 40이기 때문에 주로 허리 위로만 본뜬다) 등 우리가 아름다운 몸매를 지니고 있다고 여기는 여성들의 몸은 그대로 마네킹으로 구현된다. 그야말로 피그말리온의 완벽한 여인처럼! 80년대 모델 다이안 브릴을 본떠 만든 40-23-39 사이즈 마네킹은 여전히 아장 프로보카퇴르 매장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야스민 르봉을 본떠 만든 마네킹은 15년 전부터 랄프 로렌 쇼윈도를 장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마네킹은 언제부터 쇼윈도를 점령했을까? 투탕카멘의 묘에서 발견된 나무 토르소부터 마리 앙투아네트의 드레스 돌(Dress Doll)까지, 역사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마네킹이 있었다. 최초의 현대적인 마네킹이 등장한 건 19세기 초. 당시의 핀업 걸이라 할 수 있는 유제니 황후의 체형을 본뜬 상반신이다. 1880년대 파리엔 밀랍으로 만든 마네킹이 등장했고, 이 마네킹들은 사마리탄과 쁘렝땅 백화점 쇼윈도를 장식했다. 그리고 1898년 L. 프랭크 봄은 “그런 디스플레이가 없으면 브랜드는 잊힌다”라며 마네킹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이후 마네킹은 패션과 사회의 흐름에 따라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가령, 20년대 마네킹은 <위대한 개츠비> 속 여주인공과 같은 모습이었다. 60년대에는 미니 드레스가 잘 어울리는 트위기 마네킹이 등장했으며, 70년대에는 안이 훤히 비치는 시스루 룩이 유행함에 따라 마네킹의 유두가 중요해졌다. 80년대에는 강한 여성상을 대변하는, 허리에 손을 얹은 마네킹이 유행했다(어깨 패드가 귀까지 올라오는 바람에 목은 한없이 길어졌다!). 슈퍼모델, 미니멀리즘, 요가가 키워드였던 2000년대에는 가부좌를 틀고 있는 크리스티 털링턴 마네킹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패션 마네킹을 둘러싼 화두는 추상적인 마네킹과 사실적인 마네킹을 사이에 둔 것이다. 추상적인 마네킹이란 얼굴이 없거나 머리가 없는 마네킹이다. 익명성이 중요해진 패션계에서 추상적인 마네킹은 좀더 미니멀하고 세련된 느낌을 주기도 했다. 마네킹의 머리 부분을 생략함으로써 나이를 알 수 없게 만들고, 흰색 · 검은색 · 혹은 회색으로 칠함으로써 특정 피부색을 암시하지 않았다. 물론 경제적인 이득도 있다. 매 시즌마다 마네킹 가발과 메이크업을 바꾸려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적인 마네킹은 이와는 완전히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샤넬, 디올, 루이 비통 등 하이 패션 하우스 쇼윈도에서 최신 메이크업을 하고, 인조 속눈썹을 붙이고, 가발을 쓰고, 컬렉션 룩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려입은 마네킹들은 참수 당한 마네킹들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고풍스러운 매력을 풍긴다. 이들은 의상은 물론, 헤어와 메이크업, 액세서리, 나아가 브랜드 여성상 그 자체를 보여준다. 쇼윈도가 그대로 광고 캠페인이 되는 것! 한 예로, 루이 비통은 호텔 복도를 재현한 런웨이 룩(지난 2013 가을 컬렉션)을 위해 케이트 모스를 꼭 닮은 마네킹들을 준비했다. 그녀가 런웨이에서 썼던 것과 비슷한 가발을 씌운 것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최근엔 어떤 마네킹들이 등장했을까? 버그도프 굿맨에선 온몸에 타투를 한 마네킹이 등장해 눈길을 사로잡았다. 또 왼팔만 두 개거나, 다리가 비현실적으로 길고, 런웨이 모델들처럼 포즈를 취하고, 달리거나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모습의 마네킹들도 쇼윈도를 장식하고 있다. 이들은 이전의 마네킹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실적이면서, 한편으로는 극도로 추상적이다(왼팔이 두 개인 사람은 없으니까!). 트렌드보다는 그 브랜드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마네킹을 선호한다는 것! 샤넬 마네킹은 광대가 유난히 도드라진 것이 특징이고, 디올과 톰 포드 마네킹은 작은 신체 사이즈를 지니고 있다. 프라다 마네킹은 다채로운 피부색을 지니고 있으며, 유니클로는 흰색, 혹은 투명한 마네킹을 선호하지만, 조 프레시 마네킹은 산뜻한 오렌지색이다. 또 스포츠 브랜드, 혹은 마르지엘라나 릭 오웬스처럼 아방가르드한 브랜드들은 역동적인 포즈를 취한 마네킹을 디스플레이하는 반면, 빅토리아 베컴 같은 여성스러운 브랜드들은 편안히 서 있는 마네킹을 내세운다.



한편 지난해 말, 스위스 취리히에는 늘씬한 키에 완벽한 비율을 자랑하는 마네킹 대신, 등이 굽고, 한쪽 다리가 없거나 휠체어에 앉아 있는 마네킹들이 쇼윈도에 등장했다. 이는 사회복지단체 ‘Pro Infirmis’에서 세계 장애인의 날을 맞아 ‘남들과 조금 다르다고 여겨지는’ 몸을 가진, 신체적 장애가 있는 남녀 모델들의 몸을 본뜬 마네킹을 만든 결과. 프로젝트의 모든 과정을 담은 영상 속에서 모델들은 자신의 모습을 재현한 마네킹을 보며 무척 감격스러워했다(“평소 거울을 제대로 보지 않았어요. 내 모습을 이렇게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이 제겐 큰 의미였죠.”). 그리고 이 특별한 마네킹들은 쇼윈도 앞을 지나가는 고객들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과연 누가 완벽한가(Because Who’s Perfect)?

패션 하우스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성상을 제시하고, 옷을 직접 입어볼 시간이 없는 고객들을 대신해 의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며, 신체적으로 조금 다른 사람들을 향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패션계 아티스트들에게 영감까지 던져주는 마네킹(낡은 방에서 거의 벌거벗은 마네킹을 찍은 한스 벨머의 사진들은 1997년 알렉산더 맥퀸의 ‘La Poupée’ 컬렉션, 1999년 지방시 오뜨 꾸뛰르의 출발점이 됐고, 팀 워커, 스티븐 마이젤, 기 부르댕, 헬무트 뉴튼 등은 일찍이 패션 화보에 마네킹을 캐스팅 했으며, 루벤 톨레도와 마이라 칼만 같은 일러스트레이터들과 함께한 마네킹 작품도 있다)! 패션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속속들이 알고픈 당신이라면, 이제 쇼윈도 마네킹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