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힘 1-新 제주의 맛

제주도의 로컬 음식에 열광하던 게스트하우스 시대의 제주도 여행 스타일도 숙소 변화와 함께 변모했다. 갈치회나 조림, 흑돼지, 오분자기 뚝배기를 먹어야 했던 건 신혼여행지 시대의 제주도였다. 게스트하우스 시대의 여행자들은 관광지 식당을 탈출해 고등어회, 돼지두루치기, 몸국, 고기국수, 돔베고기, 각재기국, 밀면, 회국수, 성게국수, 하효통닭치킨, 오는정김밥, 오메기떡, 탐나뽀 등 현지민들이 먹는 음식을 찾아다녔다.

제주도민들의 캐주얼 다이닝을 섭렵하자, 제주도의 재료 자체에 집중하는 요리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루요, 스시 호시카이, 비스트로 종달, 이스트엔드, 올댓제주 등 실력 있는 요리사들이 독특한 제주도의 식재료를 활용해 각별한 요리를 선보였고, 여행자들은 서울에서 맛볼 수 없는 새로운 장르에 열광했다.

해안 도로변에 자리한 김태효의 레스토랑. 뒷마당에서는 각종 허브도 키우고 있다. 제주도에는 지금 딱새우가 제철이다.

요리사 오세득의 줄라이에서 수셰프로 공력을 쌓은 요리사 김태효는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에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르 씨엘 비’를 차렸다. 5일장에서 구해온 재료를 창의적인 레시피로 요리한다. 보말 에스카르고, 저온 조리한 돼지오겹과 제주 멜 소스, 감태로 감싼 보말 파스타, 흑돼지 소시지 크림 파스타 같은 메뉴들이다. 줄라이 시절부터 제주도의 모루농장 공동 농장주이기도 한 오세득 셰프의 영향으로 제주도의 식재료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그는 자신만의 레스토랑을 제주도에 차렸다.

산방산이 병풍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이안스 시즌2. 거기서 김이안 셰프는 논현동에서보다 더 행복해 보였다. 요리사에게는 좋은 식재료가 행복의 재료다.

논현동에서 맛있는 레스토랑으로 손 꼽히던 ‘이안스’의 오너 셰프 김이안은 산방산을 정면으로 마주 보는 위치인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 ‘비스트로 이안스’ 시즌2를 냈다. 그는 제주도의 제철 식재료를 사용한 코스 요리를 주종목으로 삼았다. 돌돔 요리와 제주산 무 파스타, 구운 한우 등심과 고사리 오곡 리조토, 문어 그릴 구이, 매콤한 스튜 스타일의 오분자기 파스타 같은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요리사에게는 좋은 재료에 대한 집착이 있지요. 제주도에 내려와서 가장 피부에 와 닿는 장점은 제철 재료를 누구보다 먼저 쓸 수 있다는 거예요. 심지어 직접 채집할 수도 있죠. 어느 재료나 항공으로 당일 직송한 것보다도 신선한 상태로 제 손에 먼저 들어오니 행복해요.” 제주도에 내려온 이안스를 찾은 논현동 시절부터의 단골들은 “같은 요리라도 재료가 좋아지니 더 맛있다”고 입을 모은다.

제주도에서 가장 좋은 식재료만 선별하는 무릉외갓집. 원래 꾸러미로만 판매하지만, 전시장을 방문하면 원하는 품목만 구매할 수 있다.

협동조합 ‘무릉외갓집’은 매번 제주도에 내려올 수 없는 여행자들을 위해 제주도의 식재료를 올려 보내준다. 올봄 신사동 문화 공간 ‘신사장’에서 전시를 열기도 한 무릉외갓집은 제주올레의 지역사회 환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오랜 준비를 거쳐 탄생했다. 올레 11코스가 시작되는 제주시 서귀포시 무릉2리와 벤타코리아가 ‘1사 1올레 결연’으로 힘을 합쳤다. 무릉2리의 농부들이 생산한 농작물뿐 아니라 제주도 전역에서 가장 좋은 과일이며 채소, 해조류와 농산물 가공식품를 선별해 판매한다.

43만8,000원을 내고 연간 회원으로 가입하면 한 달에 한 번 제철 식재료를 꾸러미에 담아 택배로 보내준다. 무릉외갓집의 홍창욱 실장은 애초에는 제주도에 본사를 둔 IT 기업에 입사해 제주도에 내려오게 되었다. SNS에서는 ‘뽀뇨아빠’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그는 제주도에서 아이 ‘뽀뇨’를 키우며 겪은 일들을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뽀뇨아빠의 리얼야생 전업육아’ 칼럼을 모아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을 펴내기도 했다.

문을 열기 무섭게 손님들이 줄을 서서 빵을 사간다. 좋은 재료만 사용해 천연 발효종으로만드는 르 에스까르고의 빵맛은 전국구였다.

서울에서 동네마다 생겨난 소규모 베이커리는 천연 발효종, 식사 빵, 거친 곡물 등 몇 가지 빵 트렌드를 소화해내고 있는데, 제주도에서도 지금 빵은 거센 유행이다. 아라파파, 보엠, 미엘 드 세화, 메종 드 쁘티푸르 등이 제주도의 빵맛을 끌어올렸다. 제주시 노형동에 ‘돌아온’ 제빵사 고용준은 서울에선 나폴레옹제과점과 르 알래스카에서 빵을 배웠다. 제주도 보리 농부의 아들인 그는 제주도로 돌아와 제주도 빵집 계보도의 ‘빅 마마’인 ‘어머니 빵집’에서 제주도의 빵을 또 배우고 나서야 달팽이처럼 느리게 자신의 빵집을 열었다.

고작 2,000원, 3,000원밖에 안 하는 빵값의 이유가 궁금해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르 에스까르고의 모토는 ‘도민과 함께 걸어가는 빵집’이에요! 다들 가격이 너무 낮게 책정됐다고 올리라고 하는데, 저는 싫어요. 도민들이 부담 없이 맛있는 빵을 생활 속에서 즐겼으면 해요. 오래 할 거니까, 전 괜찮아요.” 그의 빵집이 문을 연 오전 11시, 촉촉한 빵은 나오기 무섭게 동나기 시작했다.

제주도에서만 마실 수 있는 제주도 맥주 제스피. 병맥주는 현재 필스너만 출시되고 있다.

빵과 같은 재료를 사용하는 맥주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에서 삼다수 같은 사업 품목으로 개발한 제스피 맥주는 장차 제주도의 얼굴이 되려 하는 진취적인 맥주다. 맥주맛은 물에서 결정된다고 했던가. 히트 브랜드인 삼다수 생수를 배출한 제주도의 물맛을 맥주로 환생시킨 제스피는 제주시 연동 매장에서 유일하게 맛볼 수 있다.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공장에서 소량 생산한 맥주를 제주시에서만 소진하는 것. 페일 에일, 스트롱 에일, 필스너 등 다양한 라인업의 생맥주를 제주도 재료를 사용한 안주와 함께 경험해볼 수 있다. “시작 단계”라 자평하는 제스피는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브루클린 브루어리와 제휴를 맺어 전국 판매도 시작할 예정이다. 서울을 강타한 ‘브루클린 라거’의 기술과 정신이 제주도 맥주 제스피와 손을 잡았으니 제스피의 두 번째 맛 역시 기대되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