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힘 2

제주도엔 분명 삶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여행의 섬 제주도에 정착한 이들과 함께 제주도는 더욱더 흥미진진한 공간이 돼가고 있다.
나른한 로망에서 꿈을 이뤄가는 터전이 된 신도시 제주, 그리고 새로운 제주 사람들.

정지원은 10년 단위 계획으로 앞으로의 인생을 설계했다. 동부이촌동 이꼬이가 지난 10년의 계획이었다면 제주도 이꼬이&스테이는 다음 10년의 계획.

게스트하우스보다 렌트 하우스
‘제주병’에 걸린 여행자들은 모두 잠재적 이민자들이다. 저가 항공과 짝을 맞춰 봄비 맞은 죽순처럼 엄청난 기세로 생겨났던 게스트하우스는 그 자체로 제주도 여행의 메인 테마이기도 했다. 4~6명이 한 방을 쓰는 도미토리에서는 낯선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이 즐거운 낭만이었다. 밤새 벌어지는 조용한 술자리를 마치고 아침엔 덜 잔 눈을 비비며 일어나 어제 처음 만난 이들과 삼삼오오 짝을 이뤄 올레를 걷기 위해 길을 나서기도 했다.

서울 동부이촌동의 일본 가정식 술집 ‘이꼬이’의 사장 정지원은 자신은 게스트하우스 문화를 견딜 수 없었다고 말하는 용감한 사람이다. “20대라면 즐거울 수 있겠죠. 하지만 나이 마흔 넘어서 낯선 사람을 굳이 가까이 견디는 여행은 피로해요. 제주도에 내려오는 이유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쉬게 하기 위해서예요.” 그 결과 제주도 이꼬이&스테이는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B&B의 모양새를 갖췄다. 구도심 골목의 상가 건물을 사고, 1층에는 제주도 재료를 사용한 요리와 수입 맥주, 사케를 파는 식당을 냈다. 저녁에는 술을 마시고, 아침에는 소박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2층과 3층은 독채로도 쓸 수 있고, 개별실로도 쓸 수 있는 숙소를 차렸다. 가족들, 혹은 동료들과 와서 거실에서 어울려 놀다가도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쉴 수 있고, 혼자 혹은 친구와 둘이서 내려왔다면 방에 콕 틀어박혀 개인적인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그녀가 꿈꾸는 형태의 제주 숙소다.

신유림은 룸바 게스트하우스와 렌트 하우스 알로하 제주를 운영하고 있다. 제주도 잡지 의 표지 작업을 도맡은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하다.

광풍 초기에 생겨난 게스트하우스들은 리뉴얼 시기를 맞으며 큰 결단을 내렸다. 레이지 박스, 함PD네 돌집 같은 유명 게스트하우스들이 일부, 혹은 전체를 렌트 하우스로 개비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부대끼는 제주도 여행의 테마가 좀더 개별적인 영역을 보장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지금 제주도에서는 그때의 게스트하우스 붐만큼이나 거센 렌트 하우스 붐이 일고 있다. 마 메종, 엣코너, 마드레, 어랭이, 담따라 등 렌트 하우스는 생겨나자마자 예약하기 어려운 곳이 되었다.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룸바 게스트 하우스에서도 ‘2호점’을 냈다. 서귀포시 호근동 귤밭 사이에 자리한 렌트 하우스 ‘알로하 제주’는 일러스트레이터인 사장 신유림의 작품이 곳곳에 걸려 있는 것 말고는 마치 누군가가 생활하는 집에 잠시 머무는 듯한 안정감을 주는 숙소다.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크리스토프 초이와 협업한 두 번째 토리코티지. 각각의 토리코티지는협업 상대에 따라 천의 얼굴로 모습을 바꾼다.

그러다 보면 재미있는 렌트 하우스도 생겨난다. 서울의 건축가 이창길이 제주도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있는 토리코티지는 기발한 협업을 컨셉으로 잡았다.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의 첫 번째 토리코티지는 가구 브랜드 카레클린트와 협업했다. 농가 주택을 개축한 외관과 달리 카레클린트의 깔끔한 가구를 비치하고 거기에 어울리는 전체 인테리어 컨셉으로 내부를 꾸민 렌트 하우스다. 서귀포시 남원읍 남원리의 두 번째 토리코티지는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크리스토프 초이와 협업했다. 고성을 연상케 하는 외벽으로 둘러싼 네모난 건물 안에는 러플 커튼과 로맨틱한 가구가 놓여 있어 화려한 결혼식을 연상시킨다. 토리코티지는 또 다른 가구 브랜드인 브라운핸즈와 세 번째, 아웃도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어네이티브와 네 번째 협업 토리코티지를 짓는 중이다.

제주시 신시가지 연동의 유흥가가 중국인 관광객을 위한 거리, ‘바오젠 거리’로 탈바꿈했다. 마치 중국에 와 있는 듯한 이 거리는 최근 급상승하는 임대료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기도 하다.

중국의 거센 밀물
중국이 제주도를 사고 있다? 언제나 소문은 뜬금없고 과장되기 마련이지만, 중국의 뜨거운 제주도 사랑은 아무튼 사실이다. 2002년부터 시작된 제주도의 지역 개발 계획인 국제자유도시 계획의 일부로 제주도는 2006년부터 중국 여권 소지자에 대한 무비자 입도 정책을 펼치고 있다. 중국인들은 홍콩을 방문할 때도 비자를 발급받아야 하고, 고작 일주일밖에 체류하지 못한다. 하지만 제주도에선 30일 동안 체류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토지가 국가 소유이지만, 제주도에서는 ‘내 땅’을 가질 수 있다. 게다가 제주도에선 50만 달러 이상의 부동산을 구매하면 5년간 거주권이 주어지고, 5년을 채우면 영주권까지 주어진다. 2010년 투자이민법이 시행된 덕분이다. 국토교통부는 ‘외국인의 국내 토지 소유 현황’에서 제주 토지 중 335만 평이 외국인 소유이며 그중 1/3 가량인 97만 평이 중국인 소유라고 밝혔다.

덕분에 중국인들이 와글거리며 제주로 향하고 있다. 개인 관광객은 물론 10만 톤 이상의 크루즈선에 실려온 기업 관광객들까지, 그 규모는 상상 이상이다. 제주도 곳곳의 금싸라기 땅엔 중국인을 위한 실버타운, 의료 관광을 위한 뷰티호텔 등이 들어서고 있다. 중국의 건강식품 다단계 회사인 바오젠 그룹의 우수 판매자 1만2,000명이 2011년 9월, 3박 4일간 제주도에 머물렀던 것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1만2,000명 규모는 지자체의 MICE사업이 낼 수 있는 성적 중 매우 훌륭한 축에 드는데, 큰손을 타고난 중국인들이 게다가 포상 여행으로 4일이나 와 있기까지 했으니 그 씀씀이는 꽤나 호탕했다. 덕분에 당시 제주도 전체가 술렁이며 상인들은 축제 분위기였다. 제주도는 여전히 바오젠 그룹이 다시 제주도를 찾아주길 고대하고 있다.

제주시 신시가지 연동에는 중국인 친화적인 ‘바오젠 거리’라는 이름도 등장했다. 실상 이름 없는 상점가로 ‘차 없는 거리’였는데 2011년 바오젠 그룹의 포상 여행단이 다녀간 후로 바오젠 거리가 되었다. 테헤란로처럼 ‘우리 서로 사이좋게 잘 지내보자’는 의미를 담은 작명이다. 제주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술집이 몰려 있던 이 거리는 지금 화장품 가게와 특산품, 기념품 가게, 그리고 중국인들로 가득하다.

바오젠 그룹 이전에도, 이후로도 제주도의 노력으로 수많은 중국 기업의 포상 여행단이 방문한 가운데, 올해 6월에는 바오젠 그룹보다 더 큰 규모의 포상 여행단인 중국 암웨이도 방문했다. 1만7,000여 명의 우수 판매자들이 다섯 그룹으로 나눠 여수와 부산을 경유하는 크루즈를 타고 입도해 반나절씩 머물렀다. 전국적인 비난과 원성을 불러일으킨 성산일출봉의 초대형 암웨이 입간판(가로 20m, 세로 6m에 달하는!)이나 바다 건너로 우도가 내다보이는 드넓은 초원에 세운 ‘내국인 출입 금지’ 행사장 외에도 제주시 재래시장이나 면세점에도 중국 암웨이를 환영하는 홍보물은 얼마든지 걸려 있었다. 2012년부터 준비된 이 포상 여행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성산일출봉 입간판은 제주시와 중국 암웨이가 칠성통 상권 방문, 제주 특산물 쇼핑을 조건으로 협의해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저지리에는 제주현대미술관과 예술인마을이 있다. 펑정지에의 스튜디오에는 고가의 가구와 자신의 작품이 곳곳에 놓여 있다.

중국발 밀물이 왁자지껄하고 호탕한 관광객들만 싣고 오는 것은 아니다. 몇 년 전부터 중국의 현대미술 작가들이 제주도 입도를 준비하고 있다. 중국의 2세대 현대미술 작가 중 한 사람인 펑정지에가 1착으로 저지리 예술인마을 최초의 해외 작가 스튜디오인 ‘펭 스튜디오’를 지었다. 펑정지에에게는 베이징, 청두, 싱가포르에 이은 네 번째 아틀리에로, 1,000여 평 규모에 수영장까지 딸린 베이징 스튜디오보단 검약한 200여 평 규모지만 생활도 되고 작업도 가능한 공간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다음 주제는 제주도의 돌이나 한라산 같은 주변의 사물이 될 것이다. 펑정지에 입주를 기념해 작년 10월 저지리 현대미술관에서는 펑정지에의 개인전을 열며 원정 관람객까지 끌어모으기도 했다. 제주현대미술관 개관 이래 최다 흥행이었다. 이 전시를 보기 위해 배우 유해진도 비행기를 타고 한달음에 내려왔다. 펑정지에의 작가 친구들도 한달음에 왔다. 한 번만 온 게 아니라 오고 또 왔다. 펑정지에가 물꼬를 트자 중국 미술계에 제주도에 대한 좋은 입소문이 더 빠르게 퍼지고 있다.

중국 작가들을 중심으로 아예 베이징의 798 같은 예술특구가 생겨날 조짐도 보인다. 펑정지에와 제주도 사이에 다리를 놓은 이가 커미셔너이자 아트 컨설턴트인 박철희 대표다. 베이징에서 문 갤러리를 운영 중이기도 한 그에게 더 중요한 직함은 ‘아시아예술경영인협회 대표’다. 제주도에 예술특구를 만드는 문화 사업을 주도한다. “지난 3년 동안 제주도를 180번가량 오갔어요. 형처럼 지내는 중국 작가들을 자비로 제주도에 초대해 제주도의 장점을 한껏 느끼게 해줬죠. 다들 제주도에 작업실을 내고 싶어 해요. 이미 땅을 사둔 작가들도 여럿이죠. 곧 제주도에 예술인마을이 하나 더 생길 거예요. 제 꿈은 제주도를 국제적인 미술 허브로 키워가는 거예요.” 아름다운 자연, 골프와 흑돼지 삼겹살이 중국 현대미술의 거장들을 매료시켰다. 그들이 제주도에 발을 더 많이 내디딜수록, 요즘 제주도에서 돌을 찍고 있는 배병우 작가 같은 한국 예술가들과의 교류는 점점 폭넓어질 것이다.

미술계 전반적으로 제주도는 오래전부터 뜨거운 화제의 섬이다. 오랫동안 제주도에 애정을 쏟아온 아라리오 갤러리는 더 적극적으로 제주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하도리에 이어 제주 시내에 탑동시네마, 오토바이 가게 등을 크고 작은 갤러리로 꾸미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현재 제주 시내에 공사 중으로 올해 중 개관할 예정이다.

제주시 동문시장 후문을 마주한 조용한 거리, 일명 칠성통이라 부르는 이 골목에는 오래된 작은 호텔들과 힙스터들의 보드 숍, 삼겹살집이 뒤섞여 있다. Via 15 사!먹!자! 마켓이 거리에 사람을 불러 모았다.

제주도 컬처 프로젝트
제주도의 관문인 제주시는 구도심과 신도심으로 나뉘어, 모든 신식 문물이 신도심으로 집중되어 있다. 재래시장과 터줏대감들이 번잡스럽지 않은 지방 도시의 일상을 살아가는 구제주에서 5월 31일 문화장터가 열렸다. ‘Via 15 사!먹!자! 마켓’이라 명명한 이 플리마켓에는 이꼬이&스테이, 더아일랜더, 불란지, 문화공간 양, 삼달리 아트창고, 간드락 소극장 등이 참여해 조용한 골목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마치 지금 서울 곳곳에서 플리마켓이 열리며 새로운 사교 방식을 제안하는 것처럼, Via 15 사!먹!자! 마켓도 사람을 불러 모았다.

이 행사를 마련한 것은 대동호텔 1층 갤러리 비아아트 대표 박은희와 디자인 셀렉트숍 비아오브제 이장희 대표. 잠시 대동호텔에 대해 얘기하자면, 어머니가 프런트를 맡고 딸은 호텔 경영을 도우며 갤러리를 운영하는 가족 경영 호텔, 제주시 터줏대감 중 터줏대감이다. 중문의 거대하고 말끔한 신식 호텔들이 가진 빈틈없는 매무새와는 다르지만, 온 가족이 대를 이어 곳곳을 애지중지 매만지며 관리한 손맛이 느껴지는 깔끔하고 작은 호텔이다. 주변으로는 숙박업소와 삼겹살 골목이 형성되어 있지만 사이사이 힙스터들의 보드숍이나 스트리트웨어숍이 자리 잡기도 한 귀여운 길에 놓여 있다. ‘대동호텔 딸’로 통하는 박은희 대표는 이방인의 이꼬이&스테이가 제주도에 쉽게 안착하도록 돕고, 비아오브제가 제주도에서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한 동네 터줏대감이다. 첫 회를 치른 Via 15 사!먹!자! 마켓은 앞으로도 정기적으로 열리며 동문시장 후문 건너편 조용한 골목에 활기를 되찾을 것이다.

Via 15 사!먹!자! 마켓은 사실 제주도에서 후발 주자에 속하는 플리마켓이다. 서귀포시 이중섭 거리에서는 오래전부터 공예품을 파는 플리마켓이 열리곤 했지만 대표적인 것은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카페 ‘공작소’ 앞 해안도로에서 열리는 ‘벨롱장’이다. ‘반짝 나타났다 사라진다’는 의미로 제주어 ‘벨롱’을 쓴 벨롱장은 제주도 동쪽에 정착한 이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생겨난 플리마켓이다.

제주도에 정착한 이주민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가장 먼저, 손쉽게 시작해볼 수 있는 것이 수공이다. 누군가는 빵이나 잼을 만들고, 누군가는 모빌을 만들고, 누군가는 수를 놓거나 팔찌를 만든다. 그중에서도 솜씨 좋다고 소문난 이들이 제주도의 온갖 만물이 모여드는 유명 쇼핑 찬스인 ‘세화 5일장’ 옆에서 자생적인 플리마켓을 시작했다. 잼 만드는 여여 역시 벨롱장의 초기 설립자 중 하나다. 셀러로 참여하거나, 놀러 오거나, 동쪽의 셀러브리티들부터 중문, 애월의 이민자들까지 단숨에 모이는 사교의 장이다. 그들은 SNS를 통해 결집한다. 한 달에 두 번, 5일과 20일 오후 1시, 딱 1시간 동안만 열리는 벨롱장은 1년이 넘게 지속되는 동안 제주도에 플리마켓 붐을 일으켰다. 이제 서귀포와 모슬포에도 그들만의 플리마켓이 열리고 있다. 이민자들 사이에 넓게 퍼져 있던 교류는 점점 지역별로 집중된 형태를 띠고 있다.

산방산 자락에 올라앉은 카페 레이지박스에서 하민주와 고선영을 만났다. 남편들은 서점 공사로 함께 만나지 못했다. 두 부부는 이민자라는 공통점으로 만났다가 마음이 잘 맞아 급속도로 친해졌다. 잡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부터 어떤 잡지를 만들고 싶은지까지, 한마음처럼 생각이 잘 맞는 콤비였다.

2010년 제주도에 입도한 여행 사진가 김형호와 여행작가 고선영 부부, 2009년 입도한 출판사 편집자 출신 하민주와 전 제주올레 기획팀장 이재하 부부(레이지박스 카페와 렌트 하우스를 운영 중이기도 하다), 그리고 제주도와 서울을 오가며 생활 중인 일러스트레이터 겸 편집디자이너 김은정은 ‘재주상회’라는 이름으로 계간지 ‘iiin‘을 올봄 정식 창간했다. 이민자들의 교집합이 형태를 가진 책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iiin’은 ‘제주에서 놀멍 살멍, 살아보는 여행’을 모토로 제주도의 여행과 문화를 다룬다. 제주의 사계를 탐구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제주도의 트렌드와 작가들의 활동을 추적한다. 초기 이민자들조차 아직 익숙해지지 못한 제주어를 연구하기도 한다.

“작년 겨울에 창간준비호를 내고, 올봄에 창간호를 발행했어요. 다들 본업이 있어서 쉽지 않은 일이지만 제주도 이민자로서 제주도만을 얘기하는 잡지를 만드는 건 분명 재미있고 보람찬 작업이에요.” ‘iiin’의 에너지에 끌린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싶다고 연락해오기도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iiin’의 TO는 이미 만석. “창간을 준비하면서 글과 사진, 편집, 관리, 디자인은 모두 우리끼리 할 수 있는데 외부 필진과 일러스트레이터, 다양한 톤을 제시할 수 있는 사진가 등 그래도 필요한 인력은 많았죠. 신기한 점은 그 모든 인력이 이미 제주도에 살고 있다는 거예요. 동서남북으로 수소문해보니 감자 덩굴처럼 나타나더라고요. 덕분에 드림팀이 결성되어 창간호가 나올 수 있었죠. 우리 잡지가 더 잘되면 더 많은 필자와 사진가,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 정당한 보수를 지불하고 다양하게 콘텐츠를 채울 수 있게 될 거예요. 재주상회를 만들면서 모두가 합의한 것이 ‘무임금 무노동’이었어요. 원고료 지출 없이 인력은 탐하지 않겠다는 신조였죠.” 의 에너지는 또 다른 형태를 갖추고 제주시에 등장할 예정이다. “지금 남편과 둘이서 제주시에 서점을 만들고 있어요. 재미있는 책만 쏙쏙 모아서 제주도의 문화를 더 살찌울 겁니다.” 재미있는 책을 모은 제주도의 책방은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게스트하우스 ‘수상한 소금밭’의 ‘수상한 책방’이 하나 더 있다.

제주도라는 판타지아
제주도의 건축 기획자가 된 심우찬은 서울에서 생활하던 문화 사업가쯤 되지만,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와 가족들을 위한 심리 치유 공간 ‘와락센터’를 만든 후로는 더 좋은 꿈을 꾸게 됐다. “제주도의 문화 혜택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해요. 그래서 제 꿈은 ‘판타지 스쿨’을 여는 것이 되었어요. 레지던스를 짓고, 거기서 전시도 하고, 페스티벌도 열고, 거기에 내려와 지내는 문화계 인물들이 제주도의 아이들에게 뭐라도 하나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싶어요. 서울에서 알고 지내던 친한 조각가, 음악가, 연극인들을 이미 포섭해놨죠.” 심우찬 부부는 제주도에 내려온 지 얼마 안 된 신참 이민자다. “우리도 아파트에 살았죠. 제주도에서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공간과 최소 비용이 얼마만큼일까가 궁금했어요. 마당까지 고려해도 25평에서 30평 사이면 충분하더라고요. 30평 이하는 취득세가 면제되니까 딱 30평 부지에 집을 지었어요. 부부와 개가 살 공간, 그리고 친구들이 아무 때나 와서 마음대로 문을 열고 들어가 자고 갈 수 있는 손님방 별채까지 다 넣고도 공간이 남아 텃밭도 꾸몄죠.”

제주도에 내려간 사람들과 그들이 창조한 공간에선 이렇듯 다양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여전히 덜 풀린 숙제도 있고 아직도 먼 꿈도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것이 실제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삶을 끌어들인 섬은 이제 씩씩하게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제주도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