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치맥

치킨의 정석 프라이드 치킨과 배달 생맥주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세상엔 이런 치맥도 있다.

짭짤하게 닿아 바스러진다. 튀김옷 속에는 기름기가 빠져나간 껍질이 바삭하게 살아 있다. 고소하다. 그 안엔 촉촉한 살코기가 혀끝에 매만져진다. 달콤하다. 프라이드 치킨이다. 한 모금 꿀꺽 마신다. 부드럽게 입술을 감싸다가 울대를 거쳐 식도까지 보글보글 탄산이 청량하게, 구수하게 지나간다. 끝에 남는 건 쌉싸래한 홉의 향. 맥주다. 완벽한 조합이다. 칼로리? 콜레스테롤? 통풍? 모른다. 치맥은 완벽한 음식이다. 오죽하면 우리 사이엔 잘못된 속설까지 퍼져 있다. “밤 12시에 먹는 치맥은 살 안 쪄!” 야구가 달아오르고 여름의 온도가 높아지면, 수백만 마리의 닭이 밤 12시 치킨으로 환생한다. 거기에 월드컵까지 겹치면 양계장은 쉴 새가 없다. 치킨은 고전적인 야식 메뉴지만, 2002년 월드컵이 휩쓸고 간 이후 우리는 치맥에 더더욱 맛을 들였다. 한국계육협회는 월드컵 기간 중 1인당 닭고기 소비량이 평상시의 15% 정도 증가한다고 밝혔다. 한 보도에 따르면, 월드컵을 앞두고는 주식시장까지 들썩인다. 2010년 월드컵 당시엔 닭고기 관련주 주가가 급등하고 거래량 이 평상시 40배까지 늘어났다는 보도도 있었다. 축구를 위한 축제인지, 닭을 위한 제사인지 알 수 없게 됐다.

시장통 가마솥에서 펄펄 끓는 기름에 튀겨 팔던 옛날 통닭과 명동의 참신한 외식 메뉴였던 전기구이 통닭, 80년대를 지배한 ‘후라이드’ 치킨과 양념통닭, 90년대 패스트푸드 레스토랑과 함께 수입된 미국식 프라이드 치킨, 그리고 지난 21세기 이후 봇물처럼 터져 나온 불닭과 바비큐 치킨, 간장 프라이드 치킨, 파닭과 양파닭, 갈릭 프라이드 치킨, 핫양념 치킨, 카레 치킨, 닭강정, 거기에 저렴한 가격과 양으로 승부하는 두 마리 치킨까지. 이 땅의 치킨 역사는 수없이 정권 교체를 이뤄왔다. 독특한 점은 차기 주자에 대세를 뺏긴 치킨이 실각해도 사라지진 않았다는 점. 그 모든 닭들이 등장하는 동안에도 과거 시장통 옛날 통닭까지 각자 여전히 저만의 영토를 지키며 권세를 누리고 있다.

덕분에 이번 월드컵 때도 그날그날 내키는 대로 온갖 치킨을 배달시킬 수 있지만, 좀더 특별한 치킨을 맛보고 싶다면 주방에서 지혜를 빌릴 차례다. 치킨을 먹으며 몸에 미안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면 약식동원의 개념으로 접근해보자. “치킨의 바삭함은 아무리 튀긴 음식이 무섭다 해도 포기하기 힘들죠. 즐기는 대신 몸에 좋은 재료를 더한 치킨은 어떨까요?” CJ 푸드빌 한식 총괄 셰프로 청담동 ‘비비고 다담’의 주방을 지키는 권우중 셰프의 비방은 흑임자. 두뇌 활동과 신장 기능을 돕고 노화를 방지하는 재료다. 소금과 설탕, 청주를 탄 물에 염지한 닭을 두 번 튀긴 후 흑임자 소스에 버무리고 꿀이나 메이플 시럽과 다진 피스타치오로 마무리한 색다른 치킨 레시피다. 흑임자 소스는 흑임자 가루와 물, 설탕, 간장을 잘 섞어 달콤하고 짭짤한 맛에 고소함까지 배가된다.

불닭이나 핫양념 치킨 저리 가라 싶게 화끈한 매운맛은 중국 사천식 레시피로 맛볼 수 있다. ‘시추안하우스’의 ‘시추안 라즈지’는 산초와 사천고추가 잔뜩 들어간 엄청난 매운맛으로 유명한데, 이를 가정식으로 변형하자면 레시피는 이렇다. 팬을 달궈 식용유를 두르고 산초 가루와 산초, 대파의 흰 부분만 채 썬 것을 볶다가 향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면 청주를 넣어 향을 우려낸다. 거기에 사천고추와 매운 건 고추를 볶아 소금과 청양고춧가루, 후추, 설탕을 넣으면 어마어마한 매운 향이 코를 찌른다. 거기에 튀긴 닭을 넣고 센 불에 볶으면 끝. 고수가 있다면 마무리로 올려 곁들여 먹는다. 사천고추와 매운 건고추는 먹기 위해 들어가는 재료라기보다는 매운 향을 끌어내기 위한 재료니까 매운 향을 잔뜩 뒤집어쓴 닭튀김만 골라 먹으면 된다. 얼얼한 것이, 딱 맥주 도둑이다.

‘더 스프링스 탭 하우스’의 치킨 메뉴 ‘더티 버드’는 치킨의 3대 맛 요소인 고소함, 짭짤함, 달큼함에 더해 다채로운 맛을 복합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입체적인 풍미의 치킨이다. 청담점 주방을 도맡고 있는 박지훈 셰프가 아낌없이 레시피를 공개했다. “담백한 닭고기와 은은한 향들이 어우러져 최고의 맛을 내는 메뉴죠.” 시간이 좀 걸릴 뿐, 손이 많이 가거나 어려운 레시피는 아니기에 집에서도 따라 해볼만하다. 레몬드레싱과 로즈메리, 트러플 오일에 마리네이드한 닭을 오븐에 구워 기름기를 쫙 뺄 뿐이다. 오븐의 열을 직접 받은 껍질은 바삭바삭하고, 그 안의 속살은 부드럽고 촉촉하다. 레몬과 로즈메리의 향, 그리고 긴 여운을 남기는 트러플 향의 피니시가 자아내는 조화와 균형이 절묘하다.

이토록 화려한 맛의 치킨도 있지만, 그와 반대로 심플함 그 자체인 치킨을 찾는다면, 이북식 찜닭도 있다. 닭을 그저 통째로 삶아, 한 뜸 찌듯이 데친 부추와 곁들여 먹는 이북식 치킨이다. 북한 음식이 대개 그렇듯, 썰렁할 정도로 간단한 조리법이다. 심심한 맛이지만 자극적이지 않아 오히려 자꾸만 손이 가는 맛이다. 튀긴 닭 요리에 비해 칼로리도 훨씬 적게 나간다. 이북식 찜닭 전문점은 약수역 주변에 몇 집 있지만 집에서도 만만하게 도전해볼 수 있는 메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