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리조트 컬렉션으로의 초대

리조트 컬렉션 규모가 기대 이상, 상상 초월로 치닫고 있다.
디올과 샤넬에 이어 루이 비통이 리조트 패션쇼를 선보이며 이른바 리조트 슈퍼 피라미드가 형성된 것.
디올의 뉴욕, 샤넬의 두바이, 루이 비통의 모나코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뉴욕 35번가 이스트 리버 부두에서 노란 수상택시를 타고 네이비 야드로 떠난 디올 유람객들. 이곳엔 지상 5m 규모의 대형 쇼장이 마련됐다. 라프 시몬스는 미국에 경의를 표하기위해 전 세계에서 1,000여 명을 초대했다. 매기 질렌할, 마리옹 코티아르 등은 물론, 스털링 루비 같은 예술가들까지. 2015 디올 리조트쇼에는 사각형의 스카프를 기본으로 한 의상들이 선명한 색채와 우아한 실루엣으로 완성된 채 등장했다. 갈리아노 시절에 뉴욕에서 선보인 크루즈쇼에 비하면 그야말로 매머드급!

5월 5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열린 찰스 제임스 전시의 갈라 파티를 시작으로 실크로드 못지않은 2014 패션 여정이 시작됐다. 이를 위해 미국과 유럽의 유력 매체 기자들은 오대양육대주를 누비며 패션이 꽃피는 곳곳으로 취재를 떠났다. 그들은 실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여행용 가방을 준비했을지 모른다. 이틀 뒤 뉴욕의 브루클린을 시작으로, 두바이, 모나코로 이어지는 패션쇼에 초대됐으니 말이다. 메트 갈라 뒤로 이어진 일정을 요약하자면, 5월 7일 뉴욕에서 열린 디올 2015 리조트 컬렉션, 5월 13일 두바이의 샤넬 2015 리조트 컬렉션, 5월 17일 모나코의 루이 비통 2015 리조트 컬렉션! 와우, 온통 리조트 컬렉션 아닌가? 이러다 리조트 패션위크라도 신설되는 건 아닐까? 4대 패션위크처럼 한 주간 안에 쇼를 발표하기에 리조트 컬렉션은 지리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한계가 많은 게 사실이다. 3大 패션 하우스가 저마다 ‘필’이 꽂히는 곳에서 쇼를 여는 게 하나의 방식이 됐으니까.

5월 초에서 중순까지, 세상의 모든 감각적인 소식들이 신속히 올라오는 인스타그램에 ‘#resort’ 해시태그를 단 사진들이 판을 쳤다(샤넬은 ‘#chanelcruisedubai’를 사용했다). 이번 시즌이 좀더 격렬하게 느껴진 이유? ‘샤넬 vs. 디올’ 구도에 ‘루이 비통’이 합류했기 때문이다. 사실 샤넬은 이동식 서커스처럼 지구 위의 여러 도시를 순회하며 리조트 패션쇼를 연다. 역추적하자면, 1년 전 싱가포르, 재작년의 베르사유 궁전, 3년 전엔 생 트로페, 그리고 베니스, 마이애미, LA, 뉴욕 등등. 디올 역시 딱 1년 전 모나코에서 리조트쇼를 열었다. 이건 갈리아노와 게이튼 시대엔 없었던 행사다(2006년 처음으로 뉴욕에서 크루즈쇼를 발표했고, 2009년까지 진행했으나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되는 소규모였다). 라프 시몬스가 질샌더에서 디올로 편입된 뒤 처음 연 대대적 해외 패션쇼가 작년 5월 모나코의 디올 리조트쇼였다.



디올은 모나코에서 방향을 틀어 이번에 브루클린으로 향했다. 미국에 대한 오마주를 위해 <보그 코리아>를 비롯, 일본, 러시아, 두바이, 영국, 독일 등에서 프레스 120여 명과 1,000여 명의 관객들이 초대됐다. ‘Crown’과 ‘Indochine’에서의 저녁식사와 최근 다시 오픈한 뉴욕의 상징 ‘Tavern on the Green’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그들은 ‘Duggal Greenhouse’에서 쇼를 관람하기 위해 35번가 이스트 리버 부두에서 네이비 야드까지 전세 낸 페리를 타고 이동했다. 리한나, 매기 질렌할, 니콜라 펠츠, 마리옹 코티아르, 헬레나 크리스텐센, 린다 에반젤리스타 등은 물론, 스털링 루비, 앤 콜리어, 프란시스 스탁 같은 시몬스의 미술계 친구들까지. 관객들은 뷔로 베탁에 의해 지상에서 5m쯤 높이 솟은 공간으로 진입했다. 무대엔 높이 8.9m짜리 거울 달린 벽이 수천 개의 LED 조명 바닥을 반사했고, 그 위로 디올의 23개 스카프 패턴의 대형 영상이 두둥! 물론 미국 국기까지.

샤넬 하우스의 파리 본사에는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일명 ‘묻지마’ 팀이 존재한다. 오직 샤넬 이미지를 위해 상상력을 구현시키는 팀으로, 예산 걱정은 전혀 없다. 바로 그 팀이 두바이의 인공 섬에 마련한 2015 리조트 쇼장은 정말이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두바이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전 세계에서 날아온 손님들이 육지에서 섬으로 이동했으며,두바이의 상류층들은 이 쇼에 참석하기 위해 엄청난 경쟁을 치러야 했다. 샤넬이 두바이에서 펼친 아라비안 패션 나이트!

이제 지구본과 시곗바늘을 동시에 돌려 브루클린에서 두바이로! 지상에서 가장 미래적인 스카이라인 중 하나가 보이는 인공 섬(해변에서 반 마일쯤 떨어졌으며, 두바이의 셰이크 함단 황태자의 개인 소유) 위에 두 달 동안 지은 건물에서 열리는 샤넬 패션쇼라니! 디올 관객들이 수상택시를 타고 이동했듯, 기자 300명을 포함한 손님들은 이쪽 사람들이 ‘아브라스’라 부르는 배를 타고 쇼장으로 향했다(두바이의 입헌 군주이자 아랍 에미레이트 연합의 수상 겸 부통령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막토움이 지휘하는 정부로부터 수송과 행정 지원을 받았다). 금과 유리로 이뤄지고 지붕이 인공 야자나무에 의해 지탱되는 공간에서 황혼에 펼쳐진 쇼를 상상해보라! 심지어 쿠션과 러그와 물 파이프가 놓인 베이지색 베두인 텐트까지. “우리가 모든 걸 지었어요. 화장실을 포함해서!” 칼 라거펠트는 흡족한 듯 설명했다. “저는 외딴섬들이 꽤 시적이라고 생각해요. 동양의 아틀란티스죠!” 패션 창조주답게 세상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있는 곳이기에 최고급 패션을 선보일 이유가 충분하다고 덧붙였다(두바이 여인들은 샤넬 VIP들에게 주어지는 1,000장의 초대장 중 한 장을 손에 넣기 위해 샤넬 매장에서 엄청 쇼핑했다는 후문).



이런 자신감은 하우스 역사상 최초로 리조트 패션쇼를 발표한 루이 비통 가문도 다를 게 없다. “인생에 단 한 번뿐입니다. 그건 다시 반복되지 않아요. 눈 깜빡이는 순간 놓치고 말죠.” 루이 비통의 CEO 마이클 버크는 이번 컬렉션에 자부심을 드러냈다. 모나코 공국으로부터 그리말디 가문이 700년 넘게 살아온 모나코 궁전 앞 광장에서 패션쇼를 열도록 허락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비통은 1900년대 초부터 모나코 왕실에 트렁크를 공급해왔지만, 현지에 매장을 오픈한 건 1983년이었다). 매일 관광객이 의장대 교대식을 구경하러 몰리는 장소에 LV 로고가 박힌 초대형 유리 텐트가 설치됐다. 1년 전, 모나코의 디올 쇼에도 납시었던 대공비 샤를렌과 알버트 II세는 물론, 350여 명의 프레스와 VIP들이 물결 형태의 흰 좌석에 앉았다. 그 가운데는 배두나, 공리, 장쯔이, 샬롯 갱스부르, 제니퍼 코넬리도 끼여 있었다. 이 쇼가 열린 뒤 패션 유람객 가운데는 며칠 후 근처로 이동할 사람들이 꽤 있었다. 이웃 도시 칸에서 열리는 영화제 때문이었다. 이 일정은 모나코 샤를렌 대공비의 아이디어였다고 루이 비통 사람들은 귀띔한다. “그녀는 이 주말을 전 세계 패션 캘린더의 일부로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루이 비통 하우스에 와서 맨 먼저 한 일은? LV 로고를 좀더 앤티크하게 다듬었고, 올가을 데뷔쇼를 선보였으며, 모나코에서 리조트 컬렉션을 처음으로 열었다. 이를 위해 모나코 공국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궁전 앞 광장에서 패션쇼를 열도록 허가했다. 이번 패션쇼에는 한국의 배두나가 초대됐고, 모델 최소라도 제스키에르의 권유로머리를 단발로 싹둑 자른 채 캣워크에 등장했다. 모나코가 이토록 멋쟁이로 들끓었던 적이 또 있을까?

그렇다면 슈퍼 빅 3의 리조트 의상은?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루이 비통에 대한 자신의 상상이나 형상이 70년대에 뿌리를 둔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빈티지 루이 비통 트렁크의 마름모 퀼팅에서 영감을 얻은 말르타쥐(malletage) 패턴을 현대적 감성으로 재해석했다. 또 밑단이 들쑥날쑥한 스커트를 꾸민 산호초나 해조 패턴은 캣워크 바닥에 설치된 비디오 스크린에 투사된 바닷물 이미지나 좌석표로 쓰인 앙쥐 레치아의 수중 사진과 딱이었다. 크리스챤 디올의 경우, 무슈 디올이 디자인한 정사각형 스카프에 대한 관심이자 꽃에 대한 애정이었다. 샤넬? 11세기와 12세기 아랍 도로 포장용 돌이나 타일이 자수에 아이디어를 제공했고, 아랍 남자들이 입는 긴 상의인 토브풍의 튜닉도 눈에 띄었다. 어디서 열리든 샤넬 쇼엔 라거펠트식 패러디가 빠지면 섭섭한 일. 그는 5갤런짜리 제리캔 모양의 퀼트 가죽 핸드백으로 석유재벌을 풍자했다.



그나저나 샤넬이 두바이로 간 까닭은? 샤넬 하우스는 다시 활황에 접어든 이곳의 경제 붐에 더블 C 로고를 맡겼다. 2009년 두바이 몰에 부티크를 낸 뒤, 2012년엔 세상에서 가장 큰 매장인 레벨 슈 디스트릭트에 숍인숍을 연 데 이어, 작년엔 에미레이츠 몰, 올해 말에는 두바이 국제공항에 네 번째 매장을 추가할 예정(작년엔 ‘리틀 블랙 재킷’ 전시를 중동에서도 열었다). “샤넬 리조트쇼는 중동의 패션 허브가 되려는 두바이의 노력에 도움이 될 겁니다”라고 <WWD>는 보도했다. 디올은 2000년대 중후반 뉴욕에서 진행한 리조트쇼 이후, 상하이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2014년 디올의 뉴욕 귀환에 대해 전문가들은 “전 세계 다른 시장들이 폭발했다가 식어버리는 동안 세계를 향한 힘의 과시와 미국 시장에 대한 디올의 헌신을 공공연히 표현한 것이다”라고 전한다.

이렇듯 패션 명문가의 리조트쇼는 대통령 세계순방이나 톱스타의 전 세계 순회공연처럼 떠들썩하게 열리고 있다. 결과는? 4대 패션위크의 지역적 한계를 초월, 프리폴과 함께 패션 휴지기를 되살려 리조트 컬렉션에 대한 관심을 유발시키는 데 성공! 미국 남부를 비롯해 브라질, 중동, 중국 고객이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걸 반영하듯, 루이 비통 비즈니스에도 리조트 컬렉션이 핵심이 됐다. 피에르 폴렝이 물결 형태로 디자인한 곡선형 베이지색 의자는 뒷좌석이 없는 100% 프런트 로! 루이 비통 하우스는 이 풍경을 가리켜 패션쇼가 고객의 전유물이었던 시절, 다시 말해 상류 고객의 시대로의 회귀라며 리조트 컬렉션에 의미를 부여했다. “모든 게 모두에게 가능해진 시대에, 다신 반복되지 않을 순간을 목격하는 건 정말 멋진 일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