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여름 보양식

2018.07.16

by VOGUE

    여름 보양식

    삼계탕만으로는 부족했던 걸까?
    어느새 보양식으로 불리는 음식의 가짓수가 늘었다.
    복날마다 벌어지는 보양 잔치는 어쩐지 배부른 명절 풍경을 연상시킨다.

    스페인 사람들에겐 시에스타가 있고, 한국 사람들에겐 복달임이 있다. 절기상 가장 더운 초복, 중복, 말복에 몸을 보하는 음식을 먹고 시원한 물가를 찾아가는 풍습이다. 너무 더우면 일해봐야 능률도 오르지 않으므로, 그냥 놀아버리는 것이 본질이다. 농경시대에는 삼복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한여름 농한기에 하루쯤 손 놓고 계곡에서 놀거나 풍농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기도 했지만, 도시화된 지금, 우리는 손을 놓을 만한 형편이 아니다. 계곡은 고사하고 보나 마나 컴퓨터 앞에 앉아 복날 점심 식사 메뉴나 궁리하고 있을 것이다.

    복날을 대표하는 복달임 음식은 뭐니 뭐니 해도 삼계탕이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은 닭 백숙에 인삼을 넣는 삼계탕이 개발된 건 불과 반세기 전의 일이라고 말했다. “70년대 이후, 좀 먹고살 만해지면서 영양에도 관심이 간 거죠. 그러면서 보양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거예요. 냉장 시스템이 생기면서 전국 유통이 가능해져 미삼이 흔해진 시기이기도 하죠. 그러면서 요란한 보양식 문화가 뒤늦게 생긴 겁니다.”

    요즘은 삼계탕만 먹기가 지루한 나머지 별별 음식이 다 보양식 명찰을 달고 우리 사이에 회자된다. 민어(회, 탕, 지리, 구이), 갯장어(꽃처럼 피어나는 하모 샤부샤부), 장어(구이, 탕)가 어느새 삼계탕의 아성을 위협하는 대중적인 보양식이 되었다. 거기에 질세라 삼계탕도 ‘보양력’을 업그레이드했다. 전복이나 낙지를 넣은 삼계탕이 흔하다. 고급 보양식 시장에서는 단연 불도장이 선두다. 귀한 식재료를 잔뜩 넣고 하루 이틀 푹 고아놨더니 승려가 담을 넘었다는 중국 음식이 요즘 호텔 식당의 삼복 프로모션 메뉴로 나서고 있다. 말린 전복, 말린 해삼, 상어 지느러미, 죽순, 인삼 등 비싸고 맛있는 30여 가지 재료가 들어가는 것이 기본적인 레시피다.

    이쯤 되면 눈치채지 않았을까? 제철이 없는 불도장은 그 희귀함에 고급 보양식으로 자리매김했지만, 그 밖에 보양식이라 불리는 음식은 한결같이 여름에 많이 나는 제철 음식이다. 이제 우리에게 삼복과 복달임의 의미는 그저 여름에 하나 더 생긴 명절이다. 추석에 갓 추수한 온갖 농축산물을 먹고, 설에는 곳간에 쌓아둔 귀한 고영양 재료를 꺼내 음식을 해 먹던 풍습에 하나가 더해진 셈이다. 풍족한 여름의 축복을 배불리 먹는 명절이 삼복이다.

    사실 삼복의 기원은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의 통사 고서 <사기>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진덕공 2년에 삼복 제사를 지냈는데 성 4대문 안에서 개를 잡았던 것이 전래된 풍습이라는 것. 그렇다. 원래는 개였다. 지금도 삼복에는 개라고 하는 ‘구시대적인’ 사람들이 있다. 88 서울 올림픽을 거치고 동물 보호에 대한 인식이 대두되면서 개는 이제 몰래 먹어야 할 음식이 됐다. 소나 돼지에게 한약재가 섞이거나 유기농으로 재배한 특별한 사료를 먹이고, 무항생제, 방목 사육 등 다양한 가치를 부여하는 이 시대에, 굳이 불법의 베일에 가려 어떤 불결한 환경에서 ‘생산’되고 있는지(놀랍게도 여기엔 유기견이 포함된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견육을 먹는다는 것. 분명 꺼림칙한 시대 착오적 식문화다.

    그런데 과연 고전적인 보양식으로 불리는 음식이 정말로 허한 몸을 보해주긴 하는 것일까? 오라한의원 박미경 원장은 반만 맞는 얘기라고 답한다. “보신탕이나 삼계탕이나 똑같이 뜨거운 성질을 가진 음식이에요. 이열치열이라는 거죠. 맞는 사람은 힘이 나기도 해요. 그런데 체질적으로 사우나에 다녀오면 눈꺼풀이 내려앉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사람들에겐 밤잠 못 이루게 하는 음식이에요. 심하면 목덜미 잡고 쓰러질 수도 있어요. 한의학에서 이런 걸 기가 역상한다고 하는데, 얼굴이 붉어지거나 두드러기가 나기도 하죠.” 보신탕이나 삼계탕이 보양식일지 아닐지는 체질에 따라 다르다고 보는 것이다. 자연에서도 더운 기운을 잔뜩 받는 여름에 음식까지 더우면 땡볕 아래 늘어진 채소처럼 시들시들해지는 사람들도 있다. 몸을 보하기는커녕 혹사시키는 음식이 되는 것이다.

    삼계탕이 발명된 70년대가 배고픔을 면한 시대였다면, 요즘은 영양이 차고 넘치는 시대다. 과연 우리에게 여전히 복날의 삼계탕이 필요한 걸까? 황교익은 이렇게 말한다. “요즘 누가 영양이 부족한가요? 오히려 식이 조절을 해야 하는데 보양을 얘기하고 있으니 다이어트가 될 리 없죠.” 요리사이자 맛 칼럼니스트인 박찬일은 좀더 냉소적이다. “고단백, 고지방인 보양식이 정말 필요할까요? 그 음식들은 뱃살을 늘리는 데나 영향을 끼치죠. 삼계탕에 영양소가 많다고요? 아마 석 달은 내리 먹어야 그 덕을 볼 겁니다.” ‘고기 반찬’ 없이는 밥을 못 먹고, ‘고기 안주’ 없이는 술을 마시지 못할 정도로 고단백, 고지방 식단을 매일 섭취하는 상황에서 굳이 보양식 타령 할 것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해서 배부른 보양식 타령에 수치심이나 죄책감 가질 필요도 없다. 제철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는 즐거움은 신이 창조한 식욕이 이끈 것이니까, 복날을 즐기면 그만이다. 사골 곰탕처럼 뽀얗게 푹 고은 민어 지리를 먹으면 맛이 좋아서라도 힘이 나긴 난다.

    아무튼 덥긴 하고, 몸은 늘어지는데 ‘보양 명절’에 어떤 음식을 먹어야 진짜로 힘이 날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박찬일이 이렇게 조언한다. “비타민을 섭취하세요. 비타민 B와 C, 그리고 D가 늘어진 몸을 깨어나게 하죠. 특히 비타민 B가 가장 중요해요. 비타민 B가 결핍되면 쉽게 피로해지고 면역력이 떨어지거든요. 잡곡, 시금치, 브로콜리, 버섯, 배추, 상추, 호박, 감자, 고구마에 많아요.” 결국은 제철 재료다. 여름에 쏟아져 나오는 채소를 골고루 섭취하면 그것 역시 보양식이다. 채소 섭취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박찬일이 다시 말한다. “뭐 어려워요? 그래도 안 되면 비타민 B 영양제 먹으면 되죠.”

      에디터
      컨트리뷰팅 피처 에디터 / 이해림(Lee, Her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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