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안에서 향과 함께

장거리 비행은 괴롭다. 답답한 실내, 불편한 자세, 건조한 공기, 엔진 소음.
그러나 그 여정에 향이 함께한다면?
전 세계 향 전문가들이 그들만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보그>에 보내왔다.

내겐 장거리 비행의 동반자가 있다. 카르마카 멧의 ‘조이’ 에센셜 오일! 기내 착석과 동시에 이 에센셜 오일을 브래지어 끈에 두세 방울 떨어뜨린다. 답답한 실내, 불편한 자세, 건조한 공기, 비행기 엔진 소음… 장거리 비행이 힘든 이유는 많지만, 단지 그 공간에 향을 입힌 것만으로도 불편함과 답답함은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래서 물었다. “당신이 장거리 비행에 동행하는 향은 무엇입니까?” <보그 코리아>의 질문에 전 세계 향 전문가들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보내왔다.

메종 프란시스 커정의 대표 겸 조향사, 프란시스 커정(Francis Kurkdjian)
“작년엔 지구를 세 바퀴 돌았고, 올해는 네 바퀴쯤 돌 것 같다. 덕분에 어떤 향이 여행에 적절한지, 부적절한지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 그렇기에 장거리 비행에 향을 동반한다는 아이디어에 100% 공감한다. 나 역시 비행기에서 내가 좋아하는 향이 나길 원한다. 그것은 집에 있는 듯한 편안함을 선사한다. 안정감 말이다. 특히 ‘아쿠아 유니버셜’은 내가 기내에서도 대담하게 사용하는 향수다. 깨끗하고 상쾌한 느낌을 오래 지속시키며 그 여운과 아우라가 완벽하다. 옆 사람에게 폐를 끼칠까 걱정할 필요가 없어 기내용 향수로 최고란 의미! 오히려 당신의 향을 부러워하며 ‘무슨 향수를 사용했는지’ 물을 것이다. 이건 내가 종종 겪는 일이기에 잘 안다. ‘아쿠아 비떼’ ‘코롱 뿌르 르 수와’도 사용하는데,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다르다. 한 가지 아이디어를 더하자면 메종 프란시스 커정의 ‘글로브 트로터’처럼 여러 종류의 향을 리필할 수 있는 제품을 추천한다. 휴대도, 사용도 편리하기 때문이다. 또 비행 중에는 피부 보습도 중요하니 만큼, 좋은 향을 지닌 보디 크림을 발라주는 것도 향과 촉촉함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스뜨와 드 퍼퓸의 크리에이터 겸 조향사, 제럴드 기슬랑(Gerald Ghislain)
“비행기를 탈 때 똑같은 향만 고집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나의 미래의 향수’(Future Own Perfume)와 동행한다. 새로운 향을 만들어내는 일을 하기에 늘 여러 종류의 향수 샘플들을 지니고 다닌다. 비행기 여행을 할 땐 그즈음 마음에 드는 향을 뿌리고 휴식을 청한다. 장시간 비행 후 내릴 때까지 그 향이 계속 좋은 느낌을 준다면 다음번 새 향수로 발탁된다. 이런 발견의 과정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향을 선택할 때 또 하나 고려하는 것은 목적지. 내가 도착할 나라의 분위기로 향이 인도해줘야 한다. 예를 들어 아랍 국가를 갈 땐 이스뜨와 드 퍼퓸 ‘에디션 레어’(로잠, 앱라렘, 페트롤리엄) 같은 침향(Oud) 계열 향수를, 남부 유럽 쪽을 갈 땐 ‘1899 헤밍웨이’나 ‘앙브르 114’같이 따뜻하고 센슈얼한 향을 뿌린다. 방법은 간단하다. 여행의 시작 단계마다 향수를 뿌리는 거다. 호텔에서 공항으로 출발할 때 한 번,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에 또 한 번. 이때는 딱 한 번만 펌핑한다. 이륙 전 향수의 톱노트를 한 번 더 느끼는 것이다. 도착하면 다시 한 번 뿌린다. 이는 오랜 비행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는 역할을 한다. 단, 기내 화장실에서는 절대 뿌리지 말 것! 향수는 자신을 드러내는 제2의 피부이자 정체성이다. 그런데 화장실에서 당신의 향기가 난다면 이는 별로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또 기내에서 향수를 뿌리는 것도 예의는 아니다. 만일 당신이 어떤 이유에서든 기내에서 꼭 향수를 뿌려야 한다면 향수의 스프레이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향이 멀리 분사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에티켓이다.”

메모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겸 조향사, 클라라 몰로이(Clara Molloy)
“특이하게도 장거리 비행을 좋아한다. 뭔가 설레는 기분이 좋아서다. 마치 은하계에 온 듯 아무도 나와 연락할 수 없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도 좋다. 함께하는 향은 바닐라와 시리얼 향이 달콤한 조화를 이루는 메모 ‘시와(Siwa)’. 평소에도 애용하는 향이라 내겐 가장 친근하고 편안한 향이고, 부드럽고 따뜻한 안정감을 준다. 동시에 매우 독특하고 섹시한 향이기도 하다. 실크 스카프에 뿌려 목에 두르고 비행기에 오르는 것이 기내에서 향을 즐기는 나만의 노하우. 은은한 향기를 지속적으로 느낄 수 있으면서, 차가운 기내 공기로부터 목을 따뜻하게 보호할 수도 있다. 기내에서 대놓고 향수를 펌핑하는 것은 매너가 아니지만, 내게 있어 향은 상상과 자유의 영역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지 못하는 것들을 향수를 통해 펼칠 수 있는 것이다. 하늘 위에서 당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일을 절대 포기하지 말 것! 단,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까지만.”

<향수, 그리고 향기> 저자 겸 조향사, 임원철
“내가 준비하는 향은 두 가지다. 첫째, 식욕을 돋우는 빨갛고 노란 색상의 달콤한 향수. 허접한 기내식도 먹음직스럽게 만들어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둘째, 무채색 향수. 모든 걸 잊고 무념무상의 세계로 이끌어줄 향이다. 이 향수는 좋은 점이 또 하나 있다. 거의 99% 확률로 맘에 안 드는 이성이 옆에 앉았을 때, “난 여자도 남자도,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그러니 절 내버려 두세요”란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향이다. 향수의 정체는? 첫째는 조 말론 ‘허니 넥타린’, 둘째는 프레데릭 말 ‘로디베, 엘레나’.”

디올 퍼퓨머 크리에이터 프랑수아 드마쉬(François Demachy)
“재스민, 라벤더, 미모사 등 자연의 재료 그대로를 풍기는 향수들! 난 청소년기를 향수의 고향이라 불리는 그라스(Grasse)에서 보냈는데, 8월쯤 꽃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마을에 들어오면 재스민 향기가 공기를 가득 채웠고, 향수 공장에서 미모사 향수를 만들 때면 그 향이 마을 전역에 퍼졌다. 그래서인지 옆자리에 인공적인 향을 풍기는 여성이 앉게 되면 내내 기분이 좋지 않다. 나에게 여인이란 향을 만들어내는 영감의 원천인데, 대량 생산된 듯한 인공 향을 풍기는 여인은 쳐다보고 싶지 않을 만큼 매력 없는 존재다. 비행기 여행에선 목적지의 분위기를 미리 느낄 수 있는 향을 뿌리는 것도 좋을 듯. 우디 베이스의 상큼한 시트러스 향으로 신비롭고 이국적인 도시를 머릿속으로 그려본다면 장거리 비행도 그리 지겹지 않을 것이다. 다만 비행기란 한정된 공간을 고려했을 때, 향수보다는 가벼운 코롱, 보디 로션, 퍼퓸 드 헤어 미스트를 추천한다.”

레흐 디렉터 임희선
“여행할 땐 늘 어브 ‘라벤더 오일’과 배스앤블룸 ‘유칼립투스 오일’과 동행한다. 에센셜 오일은 작아서 액체 반입 한도에 걸릴 걱정도 없고, 호텔에선 숙면을 위해 침대 머리맡에 두고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행기 안이 너무 건조하고 추워 코가 막힐 때는 유칼립투스 오일을 어깨에 몇 방울 떨어뜨리고, 숙면을 위해선 라벤더 오일을 베개에 몇 방울 떨어뜨리면 끝! 물론 이 둘을 섞어 사용해도 꽃향기와 상쾌한 향을 모두 느낄 수 있어 대만족이다.”

갈리마드 코리아 남상미 이사
“답답하고 밀폐된 공간, 불편한 자세… 이런 장거리 비행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나는 시트러스 계열을 선택한다. 팸플무스, 자몽 향 등 상큼한 향들이 기분을 좋게 해주기 때문이다. 다만 절대 과하게 사용하지 말 것. 설령 평소 좋아했던 향이라도, 닫힌 공간인 기내에서 몸과 옷에서 향수 냄새가 지나치게 진하게 묻어난다면 괴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피곤하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더더욱. 손수건에 향수를 묻혀 파우치에 넣거나, 한겨울에는 머플러에 향수를 뿌리고 탄다.”

데메테르 퍼퓸 디자이너 안창선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어 비행기 여행시 풀, 나무, 라벤더 같은 차분하고 숙면에 도움이 되는 향을 선호한다. 피하는 향은 시트러스나 마린 계열. 특히 데메테르 ‘카나비스 플라워’는 풀과 나무 향이 절묘하게 어울려 꼭 함께하는 향수다. 주로 안대 안쪽이나 베개 가장자리에 뿌리고, 후드티처럼 박시한 옷을 입었을 땐 안쪽에 뿌려 비행 내내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게 한다. 기내에서는 스프레이 타입보다는 롤러 볼로 문질러 바르는 롤온 타입 향수를 추천한다. 옆 사람이 향기를 싫어할 수도 있으니 진한 오드 퍼퓸은 제발 뿌리지 말아주시길! 특히 알데히드 계열, 예를 들면 샤넬 ‘넘버 파이브’ 같은 향을 내뿜는 여자는 진짜 별로다.”

르 라보 창립자 에두아르 로쉬(Edouard Roschi)
“르 라보 ‘로즈31’. 이 향과 함께라면 퍼스트클래스도 부럽지 않다. 이건 내게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향이니까. 특히 기내에선 분사형 향수보다 퍼퓸 오일을 선호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샤워! 옆자리 사람에게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만큼 장거리 비행 시 최악은 없다. 그리고 사용하기 전 조금이라도 망설여지는 향이라면 장거리 비행에선 절대 뿌리지 말라고 조언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