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주얼리 트렌드, 싱글 귀고리

한쪽 귀에만 귀고리를 하는 스타일이 유행 궤도에 완전히 들어섰다.
피비 파일로와 니콜라 제스키에르도 밀고 있는 새로운 주얼리 트렌드에 대해.

발렌티노의 레드 드레스를 입은 드리 헤밍웨이(Dree Hemingway@DNA Models). 한쪽 귀에 늘어뜨린 셀린의 샹들리에 귀고리가 옆모습을 더욱 매혹적으로 보이게 한다.

텅 빈 사무실에 전화벨이 울린다. 진한 보랏빛 스커트 수트를 입은 여성이 잠시 망설이다 오른손으로 왼쪽 귀고리를 빼 책상에 놓아두고 진지한 표정으로 수화기를 든다. 이 강렬한 장면 속 주인공은 60년대 광고회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국 TV 시리즈 <매드 멘>의 매력만점 캐릭터, 조안. 체면만 차리는 같은 회사 남자 동료들 대신 중요한 회사 일을 모두 나서서 처리하는 그녀에게 전화를 받기 전 귀고리 한쪽을 빼두는 건, 일종의 자기 암시이자 공개적인 선언과도 같다. “나 귀고리까지 뺐으니까 덤벼볼 테면 덤벼 봐!”

하지만 귀고리를 한쪽 귀에만 하는 순간 대부분의 여성들에게는 의심쩍은 질문이 뒤따라온다. “귀고리 한쪽은 잃어버린 거야?” 조안처럼 능력 있는 여성조차 ‘모르고 한쪽 귀고리만 차고 나온 칠칠하지 못한’ 여성으로 오인 받기 십상인 이 스타일. 하지만 이번 가을이라면 용기를 내봐도 좋다. 당대 여성들의 패션에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 셀린의 피비 파일로와 루이 비통의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한쪽 귀에만 귀고리를 늘어뜨리는 스타일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파리 컬렉션이 한창이던 지난 3월 초. 셀린의 피비 파일로는 긴 코트를 입은 모델들의 한쪽 귀에만 다채로운 디자인의 샹들리에 귀고리를 채워 런웨이에 내보냈다. 그리고 며칠 뒤 니콜라 제스키에르 역시 루이 비통 데뷔쇼에서 미니멀한 귀고리를 한쪽 귀에만 채워 선보였다. 첫 모델이 등장할 때만 해도, 혹시 백스테이지에서 귀고리를 떨어뜨린 건 아닐까 의심스러웠지만, 쇼 내내 같은 스타일이 반복되자 두 패션 선지자의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싱글 이어링’의 유행!

유행의 전조는 있었다. 엠마 왓슨이 크기가 다른 진주 두 알이 앞뒤로 장식된 디올 귀고리를 한쪽에만 하고 올해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 나타난 것이 첫 번째. 대담한 스트리트 멋쟁이들이 애용했던 이어커프가 두 번째. 그리고 호주 주얼리 브랜드, 마니아마니아와 한국의 먼데이 에디션처럼 비대칭 귀고리 스타일을 선보이는 브랜드의 인기가 세 번째. 그러니 올가을 기다랗게 늘어진 귀고리를 한쪽 귀에만 착용하는 건 귀고리 스타일링에 있어 최첨단 유행이다.



“구조적인 귀고리일수록 더욱 빛날 겁니다.” 평소 다양한 방법의 귀고리 스타일링을 즐기는 홍보우먼 최정윤은 이렇게 말했다. “만약 저라면 한쪽에 셀린의 샹들리에 귀고리를 한다면, 다른 쪽 귀에는 아주 심플한 귀고리를 매치할 겁니다. 커다란 귀고리와 심플한 귀고리가 대조를 이루면 더욱 패셔너블할 테니까요.” 평소 멋쟁이 스타들과 아이돌에게 대담한 주얼리를 추천해온 스타일리스트 최경원도 이렇게 제안했다. “알렉산더 칼더의 조각처럼 조형적인 디자인의 생로랑 귀고리라면 한쪽 귀에만 해도 충분할 거예요. 여기에 저라면 우아하게 연출할 것 같아요.

살굿빛이 도는 넥라인이 드러나는 실크 블라우스를 매치하면 ‘젠틀 우먼’이 될 수 있죠. 반면 아우렐리 비더만의 초록빛 샹들리에 귀고리에는 미우미우나 마르니의 플라워 프린트처럼 강렬한 아이템을 함께 입으면 좋을 것 같아요.” 대칭을 이루지 않아도 빛날 수 있는 귀고리를 찾을 때 주의해야 하는 건 귀고리의 무게다. “여러 개의 귀고리를 한쪽 귀에만 하는 스타일도 멋지죠. 하지만 지나치게 무거우면 귓불이 아래로 처지게 됩니다.” 먼데이 에디션의 디자이너 김사라는 이렇게 말했다. “매 시즌 좀더 강렬한 스타일을 제안하기 위해 대담한 귀고리를 만들어 보지만, 무게 때문에 디자인을 포기하곤 합니다.” 그런 면에서 먼데이 에디션의 기다란 술 장식 리니어 귀고리들은 현명한 선택이 될 법하다.

“루이 비통 귀고리를 착용해보면 그 가벼움에 깜짝 놀라곤 합니다.” 루이 비통 홍보팀 역시 V자 장식과 열쇠 장식이 더해진 귀고리의 무게 때문에 걱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얼리 디자이너 까미유 미첼리와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그런 디테일을 놓칠 리 없다. 금과 펜듈럼을 사용한 귀고리는 생각보다 훨씬 가볍기다. 셀린도 마찬가지. 30년대 여류 초현실 아티스트가 직접 만들었을 법한 귀고리는 크기에 비해 무척 가볍다. 무엇보다 귓불이 처지는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는다.

4년 전 발견된 가야 시대 무덤에서는 한쪽 귀에만 금귀고리를 한 1500년 전 소녀의 모습이 발견됐고, 클레오파트라는 로마의 장군 안토니오를 유혹하기 위해 진주 귀고리 하나를 술에 녹이기도 했다. 고대부터 존재해왔던 비대칭 귀고리 스타일이 피비 파일로와 니콜라 제스키에르에 의해 재창조되고 있는 것. 덕분에 이 유행은 지금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할리우드 스타(제니퍼 로렌스와 엠마 왓슨)부터 한국의 패션 스타(정려원, 김혜수)까지, 그녀들은 공식 석상에 화려한 귀고리를 한쪽만 착용하고 나타난다. 이 재빠른 유행을 섭렵한 이들의 공통점? 누구도 귀고리 한쪽을 잃어버렸냐는 질문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