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보그>의 잊을 수 없는 패션 모멘트 1

2016.03.17

by VOGUE

    <보그>의 잊을 수 없는 패션 모멘트 1

    1996년 8월호부터 빛의 속도로 18년을 달려온 <보그 코리아>.
    200여 권이 넘게 쌓인 책 속에는 잊을 수 없는 패션 모멘트가 저장돼 있다.
    <보그>가 기억하는 18년간의 주요 패션 사건과 순간들이
    아티스트 8명에 의해 개성 넘치는 콜라주 이미지로 재탄생됐다.

    1996

    <보그 코리아>가 창간한 96년 8월. 패션은 미니멀리즘의 가장 날카로운 지점을 겨냥하고 있었다. 패션사를 통틀어 가장 세련된 사조인 미니멀리즘은 헬무트 랭, 캘빈 클라인, 질 샌더 삼인조가 휩쓸다시피 했다. 모델 커스틴 오웬의 군더더기 없는 얼굴과 헬무트 랭 짝짓기, 사진가 크레이그 맥딘의 조명을 받은 기느베르 반 시너스의 그림자만으로 표현된 질 샌더 광고, 90년대 향으로 정의될 ck 향수를 위해 케이트 모스를 찍은 리처드 아베돈 등등.

    또 나르시소 로드리게즈라는 신예 미니멀리스트의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결혼한 캐롤린 베셋과 존 F. 케네디 주니어의 세기의 결혼식이란(영화 <에비타>의 마돈나와 안토니오 반데라스 커플도 인기)! 구찌에서 연타석 홈런을 날린 톰 포드의 할스턴 드레스 역시 미니멀리즘과 맥락을 같이한다.

    한편 타임을 비롯한 내셔널 브랜드의 간결한 광고 비주얼 역시 한국 패션 수준을 글로벌 트렌드급으로 높이는데 일조했다. 한쪽에선 페라가모 바라 슈즈에 열광하는 ‘삔족’들이 청담동을 휩쓸었다. SKH

    1997

    남자 친구가 쏜 총에 맞아 숨진 지아니 베르사체, 파리 시내 지하도를 자동차로 달리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다이애나. 97년은 90년대에서 비운의 해로 기록된다. 패피들의 눈에서 눈물 마를 날이 없었지만, 두 명의 영국 천재가 패션계를 위로했다. 알렉산더 맥퀸은 천부적 재능으로 세상을 전율케 했고, 존 갈리아노는 디올 데뷔작을 입고 레드 카펫에 나타난 니콜 키드만 덕분에 단숨에 별이 됐다.

    한편 패션계에 빨강머리 앤 신드롬을 몰고 온 카렌 엘슨은 스타 등용문인 이태리 <보그> 표지를 찍었고, 일본과 영국 피가 섞인 데본 아오키도 암고양이처럼 나타났다. 한국에서도 스타 탄생! 닥종이 인형 같은 얼굴에 바비의 몸을 지닌 장윤주가 <보그>에 등장, 한국 모델의 기준을 바꿨다.

    그런가 하면 90년대를 휩쓴 건조한 미니멀리즘에 글래머라는 기름칠이 곁들여졌다. 90년대 신사 톰 포드의 구찌는 G-스트링 팬츠와 송곳 같은 스틸레토힐로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단순한 브라와 팬티가 아닌, ck 언더를 입는다는 게 멋쟁이들의 상징이 된 것도 97년. 케이트 모스에 이어 크리스티 털링턴이 ck 언더의 몸이 되어 기름기 없는 글래머러스한 매력을 발산했다. SKH

    1998

    면도날 같았던 미니멀리즘에 글래머라는 윤기가 더해지더니, 98년엔 아방가르드라는 개념예술적인 멋으로 환골탈태. 후세인 샬라얀의 섬뜩한 퍼포먼스, 요지 야마모토의 천하에 둘도 없는 웨딩 세리머니, 준야 와타나베의 플리츠 신드롬 등등. 그런가 하면 루이 비통은 역사상 처음으로 기성복을 마크 제이콥스와 함께 발표했고, 에르메스 역시 마르탱 마르지엘라에게 고상한 기성복을 의뢰했다.

    서서히 세기말로 치달을 때쯤, 샤넬은 다분히 미래지향적인 2005 백을 디자인했고, 프라다는 유틸리티와 퓨처리즘이 가미된 뮬로 또 한 번의 대박! 세기말의 음산한 기운은 스티븐 마이젤이 찍은 명화 같은 베르사체 광고 사진으로도 표현됐다.

    한편 마돈나와 함께 뮤지션 출신 패셔니스타의 활약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 스파이스 걸스가 <보그> 표지에 등장하며 뮤지션 전성시대를 열었다. 내친김에 올해의 폼 나는 뮤직을 꼽자면? 마크 제이콥스 쇼에서 쩌렁쩌렁 울리던 ‘버브(The Verve)’의 ‘Bitter Sweet Symphony’! SKH

    1999

    패션계에 말세의 징조는 다채롭게 드러났다. 맥퀸 쇼에선 샬롬 할로우의 화이트 드레스를 향해 자동차 도색 로봇이 나타나 노랑과 검정 물감을 무차별적으로 쏘아댔다. 또 빅터앤롤프는 매기 라이저와 함께한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 퍼포먼스로 불안감을 환호로 바꿨고, 마이클 코어스는 셀린에서 젯셋 이미지를 구축해 안락함을 선사했으며, 마크 제이콥스는 루이 비통 베르니로 대히트.

    그런가 하면 미우치아 프라다는 특유의 퓨처리즘으로 세기말을 극복해 뉴 밀레니엄을 꿈꿨다. 셀러브리티들 역시 패션으로 세기말의 두려움을 극복했다. 앞뒤가 뒤바뀐 디올 꾸뛰르 흰색 수트를 빼입은 셀린 디옹, 구찌의 히피 룩으로 그래미를 휩쓴 마돈나, 랄프 로렌의 핑크색 타프타 드레스로 오스카와 패션 퀸으로 등극한 기네스 팰트로까지.

    하지만 뒤숭숭한 세기말 분위기를 위로할 때 지젤, 카르멘, 프랭키 삼인조의 육감적 매력만 한 게 또 있었나! 미국 <보그>가 뉴 밀레니엄을 꿈꾸며 표지에 세운, 패션의 얼굴 13인도 물론이고. SKH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신광호, 이지아
    스탭
    아트워크 / 타이포그래퍼 김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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