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격차

강북으로 출근하는 친구의 오피스 레이디 패션을 비웃는가?
하얀 태그가 시침질된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를 동대문 옷인 줄 아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고?
그들 눈에 당신의 의상은 천 조각에 가깝고, 천만원대를 호가하는 백도 그저 네모난 가방일 뿐.
보수적인 신문사에서 일하며 매일 패션의 격차를 실감하는 어느 문화부 기자의 웃지 못할 고백.

여자 모델의 안경은 엘리자베스앤제임스(at BCD 코리아), 흰색 비대칭 톱은 문영희, 플리츠 스커트는 셀린, 슈즈는 띠어리, 가방은 펜디, 벨트는 생로랑. 남자 모델들은 왼쪽부터 셔츠와 팬츠는 던힐, 신발은 자라, 안경은 BCD. 셔츠와 베스트, 팬츠 모두 보기 밀라노, 신발은 김서룡 옴므. 셔츠와 타이는 보기 밀라노, 팬츠는 휴고보스. 셔츠는 보기 밀라노, 안경은 크리스찬 로스(at BCD 코리아). 셔츠는 던힐, 팬츠는 보기 밀라노, 신발은 로크. 셔츠는 휴고보스, 팬츠는 보기 밀라노, 신발은 김서룡 옴므, 안경은 BCD. 셔츠와 팬츠는 바톤 권오수 클래식, 타이는 던힐, 신발은 로크.

지금도 또렷하다. 3년 전 어느 날, 기사를 마감하고 초판 인쇄가 나온 걸 확인한 뒤 밤 11시쯤 집에 가려고 가방을 주섬주섬 챙길 때였다. 함께 야근하던 같은 부서의 선배가 따끈따끈하게 나온 첫 신문을 넘겨보더니, 내가 쓴 기사를 읽고는 의아한 낯빛으로 다가와 이렇게 말을 거는 것이었다.

“송혜진 씨, 아, 아, 아이티 백이 대체 뭐지?”(이 분은 말을 아주 살짝 더듬는 습관이 있다.) “네? 아이티 백이요?” 아이티 백이라니. 3초쯤 난 고개를 갸우뚱했고, 잠시 후엔 진심으로 당황했다. “아, 잇 백이요?” 그날 난 신문에 ‘잇 백(it bag)’에 대한 기사를 썼다. 워낙 잇 백이 전성기를 구가했던 때였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온통 가방 얘기였다. 난 이런 이야기를 모아 기사로 썼고, 가방 사진도 여러 장 함께 실었다. 각각의 가방이 얼마인지도 써줬다. 한창 잇 백에 관심이 많았을 20대 여자 편집 디자이너는 내 기사를 보고 신이 나서 제목 옆에 ‘it bag’이라는 아이콘을 귀엽게 붙여놓았고, 나 역시 그 아이콘이 재밌다고 생각하고 그저 넘겼다.

<보그> 독자라면, 잇 백이란 단어가 대체 무슨 뜻인지 기사로 새삼 길게 풀어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단어를 본 우리 회사 같은 부선배는 이걸 ‘아이티 백’ 이라고 읽은 것이다.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는 나를 보며 이 선배는 이런 말을 한 번 더 날렸다. “커, 커, 컴퓨터 가방인가? 무슨 컴퓨터 가방이 이렇게 비싼 거지?” 난 말을 잇지 못했다. 컴퓨터 가방이라니. “아뇨, 선배. 잇 백은 요즘 굉장히 인기가 많고 잘 팔리는 가방이란 뜻이에요!” 내 대답에 선배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 단어가 있다는 걸 사람들이 다들 아나?” “알죠. 요즘 얼마나 많이 쓰이는 말인데요.” “누가 쓰지?” “잡지에도 정말 많이 나오고 인터넷에서도 많이 쓰이는 걸요.” “글쎄, 난 처음 들었는데.” 난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걸 모르다니, 선배가 특이하신 거예요.’

그런데 정작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저 멀리 이번엔 스포츠레저부 남자 선배 두 명이 신문을 손에 들고 씩씩거리며 오는 것이었다. “야, 네가 기자냐?” “왜요, 뭐가 잘못됐나요?” “컴퓨터 가방이 100만원이 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어떻게 이런 걸 신문에 실을 수가 있지?” “….”

결국 난 그날 밤 다시 기사와 디자인 레이아웃을 고쳤다. it bag이라고 적힌 아이콘 밑에 ‘잇 백’이라고 한글로 적고 뜻도 달았다. 큰 것을 깨달은 밤이었다. 이 단어를 ‘아이티 백’이라고 읽은 선배들은 모두 대한민국 평균의 삶을 사는 이른바 ‘보통 남자’였고, 아마도 신문 독자의 대부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패션 용어라는 게 이들에겐 이토록 외계어처럼 들리는구나! 난 이날 밤 정말 뜻밖에도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했다.

패션 피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일간지 기자로 패션을 담당해서 기사를 쓴 지 3년, 그동안 겪었던 많은 일들을 종합해볼 때, 난 이젠 담담한 얼굴로 말할 수 있다. 대한민국 절반 이상(어쩌면 80~90%쯤)의 사람은 <보그>에 나오는 숱한 패션 용어를 해석하지 못하고, 유행하는 옷차림을 보며 종종 의아하게 생각한다고. 그리고 난 이걸 혼자 이렇게 이름 붙여 부른다. ‘패션 디바이드(패션 격차)’라고 말이다.

일간지 기자로서 제일 답답할 땐 괜찮은 인터뷰를 따냈고, 단독으로 취재를 했는데도 편집장이 이를 잘 몰라줄 때였다. 언젠가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프리다 지아니니 인터뷰를 하고 돌아왔을 때 난 진심으로 고민했다. 이 여자에 대해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역시나 편집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게 누군데?” 난 한참을 고민하다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니까, 이게 패션계의 박근혜 정도 되는 것 같은데요.” 선배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 그 정도는 되는 사람이야?” 기사는 그렇게 실렸다. 최근엔 발렌시아가의 수장으로 발탁된 알렉산더 왕 인터뷰를 하고 돌아와선 이렇게 설명해야 했다. “누군데 걘 또.” “그러니까요, 아, 패션계의… 남경필… 정도 됩니다. 요즘엔 안철수까지 올라섰다고 해야 하나요.” “아, 유명한 애구나.” 어떤 선배는 랄프 로렌이 누군지 알지 못했다(이분은 패션에만 관심이 없을 뿐 학술과 역사, 철학에 누구보다 정통하다). “어느 정도 비중의 인물인데?” 이번엔 평소보다 오래 고민해서 대답했다. “그러니까요, 패션계의… 이승만쯤 됩니다.” “아 그 정도였어?” 대화는 이렇게 끝났다.

이분들이 그닥 패션에 관심 없는 40~50대 남자라서 그런 것 아니냐고? 글쎄, 난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언젠가 ‘사카이’의 디자이너 치토 세 아베와 인터뷰를 할 때였다. 일본어 통역을 하던 통번역대학원 출신의 30대 여자 통역사 분이 갑자기 이렇게 통역을 했다. “치토세의 옷을 보고 니콜라스 케이지가 칭찬했다네요.” 응? 갑자기 웬 뚱딴지처럼 니콜라스 케이지? 5초쯤 머뭇거리다 난 물었다. “혹시 니콜라 제스키에르 아닐까요?” “네?” 통역사는 잠시 후 벌개진 얼굴로 “네, 그, 그 사람이 맞답니다”라고 했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치토세 아베가 “내 옷은 10 꼬르소 꼬모와 도버 스트리트 마켓, 꼴레뜨에 바로 입점했다”고 설명했던 모양이다. 통역사는 그 순간 그야말로 ‘멘붕’을 겪은 듯했다. “아, 그러니까 밀라노의 텐? 암튼 거기, 영국의 도? 암튼 거기, 프랑스의 꼴? 암튼 거기. 암튼 그런 가게에 옷이 들어갔다네요.” “아…, 네.” 더 듣지 않아도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었다. 차마 그분에게 화를 낼 순 없었다. 난 이날 속으로만 ‘고생하시네요’라고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용어만 그런 게 아니다. 실제 옷차림과 이를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디바이드’는 여전히 존재한다. 패션 피플이 청담동과 신사동, 한남동에 비해 적게 상주하는, 그야말로 직장인 패션의 성지인 광화문에선 유행이 어떻게 흐르건 이곳 스타일은 ‘조꼼례’에 머물러 있다(조이너스, 꼼빠니아, 예츠의 줄임말. 이 브랜드 담당자 분에겐 죄송합니다). 여전히 광화문 사람들은 볼레로를 걸치고 펜슬 스커트에 러플이 달린 블라우스를 입은 스타일에 익숙하고, 여기에서 벗어나면 종종 당황해 한다.

언젠가 밀라노 출장길에 싸게 ‘득템’한 맥큐의 금색 플랫폼 슈즈를 신고 출근한 날이었다. 어딜 가도 사람들이 말을 걸어왔다. “너 지금 패션 담당이라고 시위하는 거냐? 지금 금색 신발 신는 여자라고 우기고 싶은 거야?” 그 이후 난 다신 그 신발을 신고 회사에 가지 않았다. 어깨선을 따라 파이톤 가죽이 붙은 검정 코쿤 코트를 입고 온 추운 겨울날, 한 남자 선배는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야, 목사 패션이네.” 클러치백만큼은 포기할 수 없지만, 이 때문에 당황했던 때도 많다. 언젠가 파란 가죽 클러치백을 들고 회사 엘리베이터를 탔다. 누군가가 물어왔다. “그거, 설마 베개냐?” “네에?” 적응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날 새삼 어질어질했다. 당황하는 나를 보며 그는 조용히 한마디를 덧붙였다. “기면증 있는 건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