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 인생>의 송혜교와 강동원의 어느 멋진 날 1

파리에 도착하기 전, 강동원과 송혜교는 특별한 한 아이를 만났다.
아름다운 두 배우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든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은
희귀병으로 빠르게 늙어가는 사내아이와 철없는 부모의 이야기다.
가슴 시린 한철이 지난 후, 낭만의 도시에서 재회한 둘은 비에 젖은 거리를 마냥 걸었다.
어느 멋진 날이었다.

다양한 간격의 핀스트라이프 패턴 수트에 화이트 셔츠를 매치해 클래식한 무드를 연출한 강동원과 심플한 디자인의 아이보리색 새틴 미니 드레스로 커플 룩을 완성한 송혜교.

다양한 간격의 핀스트라이프 패턴 수트에 화이트 셔츠를 매치해 클래식한 무드를 연출한 강동원과 심플한 디자인의 아이보리색 새틴 미니 드레스로 커플 룩을 완성한 송혜교.

시리도록 푸르던 그 여름, 피 뜨거운 열일곱 청춘들이 기어코 일을 냈다. 펑! 폭탄 선물처럼 아기가 태어난 후, 철없이 숫된 부모는 때 이른 어른의 삶을 있는 힘껏 살아간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아들 아름이와 함께. 선천성 조로증으로 빠르게 늙어가는 열여섯 살 소년과 그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김애란의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강동원과 송혜교가 그 부모 역을 맡게 될 거라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아름다움의 대명사와도 같은 이 특급 스타들에게서 생의 피로가 먼지처럼 앉은 푸석푸석한 얼굴과 남루한 생활을 떠올리기란 힘들다. 소설 속 두 주인공과 현실의 두 배우는 같은 시대를 공유한 또래지만 삶의 궤적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흙을 뒤집어써도 반짝이는 보석처럼 강동원과 송혜교는 빛나는 운명이니까. 아이러니하지만 ‘여든 살 노인의 얼굴을 한 자식과 어린 부모’라는 역설적인 상황은 두 배우가 캐스팅되면서 더욱 극적인 힘을 발휘했다. 어여쁜 부모가 늙고 메마른 자식을 돌보는 그 기이한 풍경은 기가 찰 노릇이다. 그래서 더 잔인하고 슬프다.

올록볼록한 퀼팅 디테일이 돋보이는 풍성한 블랙 패딩 드레스가 드라마틱한 실루엣을 연출한다.

올록볼록한 퀼팅 디테일이 돋보이는 풍성한 블랙 패딩 드레스가 드라마틱한 실루엣을 연출한다.

연출을 맡은 이재용 감독은 시나리오가 완성되자마자 제일 먼저 송혜교에게 보냈다. 그 이유는 아직 그녀도 모른다. “안 물어봤어요. 감독님이나 저나 성격상 그런 낯간지러운 얘길 못해요. 그냥 ‘내가 좋으니까 캐스팅했겠지’ 이 정도로 생각하는 거죠.” 사실 두 사람이 알고 지낸 세월은 거의 10년 가까이 된다. 파격적인 설정과 세련된 연출로 화제가 된 영화 <정사>를 본 혜교가 이재용 감독의 팬임을 자처하면서부터다.

“영화 <황진이>를 촬영할 때도 제가 종종 감독님 얘기를 하니까 마침 <스캔들> 작업에 참여했던 당시 헤어 스타일리스트 언니가 자리를 마련해줬어요.” 사석에서 안부를 주고받는 동안에도 몇 차례 함께 작업할 기회가 있었지만 매번 타이밍이 어긋났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서로의 오랜 팬이었던 감독과 배우가 비로소 만난 첫 작품이다.

소매 부분이 포켓과 지퍼로 장식된 재킷과 스프라이프 패턴 셔츠에 낡은 진 팬츠와 유니크한 도트 패턴을 활용한 넥타이와 슈즈를 매치했다.

소매 부분이 포켓과 지퍼로 장식된 재킷과 스프라이프 패턴 셔츠에 낡은 진 팬츠와 유니크한 도트 패턴을 활용한 넥타이와 슈즈를 매치했다.

같은 소속사 식구인 강동원에게 이번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려준 것도 혜교였다. “혜교에게 차기작을 물었더니 전 별로 좋아하지 않을 내용이라더군요. 저한테 장르적 취향이 있을 거라 생각했나 봐요. 전 그런 거 없거든요. 그래서 한번 얘길 쫙 해보라고 했죠.”

재차 시나리오를 읽은 동원은 곧바로 출연을 결심했다. 두 배우가 이 기막힌 가족에게 매력을 느낀 이유는 비슷했다. 뻔하지 않다는 것! 순박한 대수와 씩씩한 미라, 그리고 속 깊은 아름이가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슬픔 속에서도 배꼽 빠지게 웃기고 유쾌하다.

잔잔한 플라워 패턴의 심플한 니트 스웨터와 테일러드 팬츠를 입은 강동원과 잘록한 허리선이 돋보이는 재킷 드레스를 입은 송혜교가 파리의 연인이 되었다.

잔잔한 플라워 패턴의 심플한 니트 스웨터와 테일러드 팬츠를 입은 강동원과 잘록한 허리선이 돋보이는 재킷 드레스를 입은 송혜교가 파리의 연인이 되었다.

열일곱, 우리가 가장 예뻤을 때

서태지가 아직 춤을 추고 노래방에선 아이들이 듀스의 랩을 따라 하던 90년대. 한때 헛발 왕자로 불리던 태권도 유망주 대수와 강동원은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딱 공감이 되죠. 과거 신을 찍을 때 대수의 헤어스타일로 ‘맥가이버 머리’를 제안한 것도 저예요. 그땐 그게 유행이었거든요. 신발은 아디다스 ‘찍찍이’를 알아줬죠.”

근사한 라프 시몬스 티셔츠를 입고 압구정동 카페에 앉은 이 도회적인 분위기의 남자는 느릿한 사투리로 그때 그 시절을 입담 좋게 풀어낸다. 경남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동원은 동네에서도 알아주는 멋쟁이였다. 그가 모델이 되고 난 후, 그의 고향 창원에선 두부 심부름을 갈 때조차 바지를 다려 입고 나섰다는 한 소년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떠돌았다. “맞아요. 흐흐.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 데 되게 민감했어요.” ‘착한 게 장점이고, 너무 착한 게 단점’인 착해빠진 대수와 동원은 잘생긴 얼굴은 물론 성격까지 닮았다. “일할 때를 제외하면 제가 좀 허술하고 바보 같거든요.”

모피 칼라의 데님 재킷과 핀스트라이프 패턴 테일러드 팬츠의 만남!

모피 칼라의 데님 재킷과 핀스트라이프 패턴 테일러드 팬츠의 만남!

어린 시절엔 그도 대수처럼 태권도를 배웠다. 하지만 태권도는 뜻밖의 난관이었다. “일단 몸을 쓰면 기억날 줄 알았는데, 처음부터 완전히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었어요. 발차기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요. 개인적으로는 <군도>나 <형사>의 액션 연기보다 더 힘들었어요.” 태권도 장면은 영화 속에서 딱 한 번 나온다. 강동원은 겨우 이 한 신을 찍기 위해 두 달을 꼬박 연습했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대수의 인생에선 태권도가 중요했으니까.

반면, 열일곱 동원은 별다른 꿈이 없었다. 여느 학생들이 그렇듯 막연하게 좋은 대학을 가고 어른들이 말하는 좋은 직장을 다니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그런 게 진짜 자신이 원하는 인생 같지는 않았다. “중학교 때부터 글라이더 대표였어요. 운동도 잘하는 편이었고. 그런데 결국 부모님 말씀 따라 공대를 갔어요. 아무 생각이 없었던 거예요. 그게 참 아쉬워요. 입시 공부에 치여 꿈을 꾸지 못했다는 게.” 강동원은 짐짓 비장한 투로 앞으로의 자식 교육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언젠가 아이가 생기면 그는 이렇게 말하겠노라 했다. “대학 안 가도 된다. 내가 널 먹여 살리진 않겠다만, 하고 싶은 걸 하며 너 살고 싶은 대로 살아라.”

다양한 간격의 핀스트라이프 패턴 팬츠 수트 차림의 강동원과 두 벌을 겹쳐 입은 듯한 독특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드레스 차림의 송혜교.

다양한 간격의 핀스트라이프 패턴 팬츠 수트 차림의 강동원과 두 벌을 겹쳐 입은 듯한 독특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드레스 차림의 송혜교.

날렵하게 재단된 연한 황토색 테일러드 재킷 드레스에 악어가죽 투톤 미니 클러치백, 스웨이드 소재 플랫폼 슈즈를 매치하면 멋진 이브닝 룩이 완성된다.

날렵하게 재단된 연한 황토색 테일러드 재킷 드레스에 악어가죽 투톤 미니 클러치백, 스웨이드 소재 플랫폼 슈즈를 매치하면 멋진 이브닝 룩이 완성된다.

천방지축 시골 얼짱 미라의 꿈은 아이돌 가수였다. 일찌감치 아이를 배어 퇴학당하지만 않았어도 어쩌면 이뤄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별명은 ‘시발 공주’. 사내들 틈에서 자란 탓에 툭하면 예쁜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상말도 내뱉는다. 열일곱 살 이 터프한 공주는 아마 TV를 볼 때마다 혜교가 조금 부러웠을 것이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학생복 모델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우연찮게 연기 생활을 시작한 혜교는 당시 한창 바쁘게 활동 중이었다. “사실 그땐 연기자가 되는 게 꿈인지도 모르고 시작했어요.” <순풍 산부인과>에 출연한 게 고등학생 때였다. 당시 혜교의 상대역은 무려 열다섯 살이나 많은 선배 이창훈이었다. 사춘기라는 걸 느낄 새도 없었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부대끼는 동안 혜교는 방황의 단계를 그냥 통과해버렸다.

몇 년 전 출간한 에세이에서 그녀는 이런 고백을 했다. “정말 친한 사람들은 내 안에 할머니가 한 분 계신다며 일찍 철든 나를 놀리지만, 내 안엔 중학교 3학년에 멈춰버린 소녀가 한 명 살고 있다.” 그렇다고 딱히 가보지 않은 다른 길에 미련을 두거나 지난 일을 후회하는 타입은 아니다.

다만 혜교가 그 무렵의 자신을 만난다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긴 하다. “살 좀 빼라고요. 하하. 어쩜 그렇게 몸매 관리를 안 했을까요?” 혜교의 청순한 입술은 거침이 없다. 화끈하고 당찬 미라만큼이나 가식이 없는 성격이다. “돌이켜보면 그땐 정말 방송 일을 하는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잘 먹었어요. 그렇게 통통한 채로 카메라 앞에 서고, 기자회견장에 나가고… 가끔 그때 사진이나 방송을 보면 ‘뭘 믿고 그렇게 지냈나’ 그런 생각이 들죠.” 물론 그때도 혜교는 제일 예쁜 여자아이였다. 당연하지 않은가! 송혜교니까.

잔잔한 플라워 패턴의 심플한 니트 스웨터와 테일러드 팬츠를 입은 강동원과 잘록한 허리선이 돋보이는 재킷 드레스를 입은 송혜교가 파리의 연인이 되었다. 화보 속 강동원의 의상과 슈즈는 모두 디올 옴므(Dior Homme), 송혜교의 의상과 슈즈, 백과 액세서리는 모두 디올(Dior).

잔잔한 플라워 패턴의 심플한 니트 스웨터와 테일러드 팬츠를 입은 강동원과 잘록한 허리선이 돋보이는 재킷 드레스를 입은 송혜교가 파리의 연인이 되었다. 화보 속 강동원의 의상과 슈즈는 모두 디올 옴므(Dior Homme), 송혜교의 의상과 슈즈, 백과 액세서리는 모두 디올(Dior).

두근두근 내 인생의 시작

영화 속에서 대수는 미라와의 운명적인 첫 만남을 이렇게 표현한다.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온 줄 알았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한마디로 첫눈에 반한 것이다. 온 세상이 초록으로 물들던 두근대는 여름이었다.

강동원과 송혜교가 처음 만난 건 4년 전 겨울이었다. 부산을 배경으로 한 장준환 감독의 옴니버스 영화 <카멜리아-러브 포 세일>을 촬영할 때였다. 사랑마저 사고파는 산업화된 사회에서 서로의 기억을 잃어버린 남녀의 위험한 사랑을 다룬 30분짜리 영화였다. “그땐 되게 어색했어요.” 먼저 다가간 건 강동원이었다. 이틀 만에 연인으로 등장하는 과거 분량을 다 끝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저도 낯을 꽤 가리는 편이지만 워낙 짧은 호흡의 영화라 제대로 촬영하려면 빨리 친해져야겠다 싶었죠.” 새침데기일 줄 알았던 혜교는 의외로 털털한 여장부였다. 혜교 역시 처음엔 동원에 대해 선입견이 있었다. “좀 무뚝뚝하고 차가워 보였어요. 막상 얘길 나눠보니 생각보다 말도 많고 따뜻한 친구더라고요. 일에 대한 열정도 대단하고요.”

SNS 시대의 굴뚝은 불을 때기도 전에 연기부터 난다. 마른 지푸라기 하나만 아궁이에 들어가도 집어삼킬 듯 활활 타오른다. 원래 남의 집 불구경이 제일 재미있는 법. 종종 구경꾼들은 그 불타는 집 안에 자신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쉽게 상처 입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는다. 당시엔 <카멜리아>라는 영화가 바로 그 마른 지푸라기 하나였다.

대본 리딩 현장에서 통성명한 두 사람이 부산의 촬영 현장에서 겨우 두 번째 만났을 때였다. 출처 모를 소문의 불길은 이미 커져 있었다.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난 셈이다. “겨우 이틀 본 사이였어요. 나중에 영화 촬영이 끝났을 땐 대체 뭐라고들 할까? 서로 그런 얘길 하다가 오히려 친해졌어요.”

혜교는 영화 속의 미라만큼이나 당찬 여자였다. 미라는 남들과 다른 엄마와 아들을 향한 세상 사람들의 시선에 마음이 약해지려 할 때마다 되레 씩씩하게 외쳤다. “이거 왜 이래? 나 열일곱에 애 낳은 여자야!” 덕분에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추는 이번 작업은 한결 수월했다.

기사 One Fine Day 2로 이어지며 9월호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