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DDP에 상륙한 코코 샤넬

2016.03.17

by VOGUE

    DDP에 상륙한 코코 샤넬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장소는 단순히 지리적 위치를 초월, 영감의 발원지가 된다.
    서울 동대문역사문화공원 DDP 에 코코 샤넬의 인생을 결정지은 열 곳이 한 달 넘게 머문다.
    <보그> 도슨트의 안내에 따라 떠나는 시공을 초월한 패션 성지순례.

    미국 ‘스타일닷컴’은 <스타일닷컴/프린트> 올가을 판을 내며 인상적인 문장 하나를 발췌했다. “나는 바지선을 타고 한 달을 떠돈 후 이제 막 돌아왔다.” 70~80년대 LA를 기록한 소설가 이브 바비츠의 79년작 <Sex and Rage>에서 한 줄을 뽑은 이유? 한 달간의 패션위크 여정을 마친 뒤 이 문장에 감정 이입한 것이다. 뉴욕, 런던, 밀라노, 파리… 모르긴 몰라도 패션 피플들에게 특별한 장소를 들라면 네 도시는 꼭 포함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껏 방문한 장소 중 각별했던 곳이 몇 군데인지 손가락으로 꼽아본 적 있나? 대관절 인간은 일생에 몇 곳을 여행할까?

    휴가와 여행의 계절이 도래했기에 <보그> 기자들의 엉덩이가 들썩들썩한 건 아니다. 이건 순전히 코코 샤넬 때문이다. 여러분이 일생일대 역사적 장소와 순간을 동시 경험할 기회, 그야말로 패션 성지순례 겸 패션 시간여행을 경험할 기회가 곧 온다. 8월 말,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가면 코코 샤넬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 전 세계 요지에 패션쇼와 팝업 스토어를 여는 샤넬 하우스답게 DDP에도 비슷한 프로젝트를 실행할 거라는 여러분의 상상력이 이번만큼은 빗나갔다. 하긴 샤넬은 늘 기대 이상이었고, 상상을 초월하는 데 탁월했다. 남자용 속옷 옷감으로 매끈한 저지 드레스를 만들어 코르셋 해방을 부르짖을 때부터, 그랑팔레를 초대형 슈퍼마켓으로 둔갑시킨 지금까지.

    이름 하여 ‘장소의 정신(The Sense of Places)’ 전시가 8월 30일부터 10월 5일까지 장장 한 달 넘게 DDP에서 열린다. 샤넬 하우스가 대대적으로 기획하고 있는 ‘문화 샤넬전(Culture Chanel)’의 여섯 번째 프로젝트다(2007년엔 모스크바 푸시킨 미술관, 2011년엔 상하이 현대 미술관과 베이징 국립예술관, 2013년 광저우 오페라하우스와 파리의 팔레 드 도쿄). 모르긴 몰라도 DDP에 들른 관객들은 데자뷔 현상을 경험할지 모른다. 샤넬과 자하 하디드가 협업한 ‘모바일 아트’ 전의 기억 덕분이다(DDP 역시 자하 하디드의 솜씨). 아무튼 ‘문화 샤넬전’의 ‘장소의 정신’ 전시는 코코의 낭만적 만남과 관련된 곳이 주를 이룬다. “코코 샤넬이 겪었던 ‘사랑의 지도’를 그리며 그녀의 은밀한 삶, 그녀의 우여곡절을 회고할 수 있습니다”라고 ‘문화 샤넬전’의 큐레이터 장 루이 프로망은 설명한다. “그런 역사적 장소들이 잠시 또 다른 장소, 그러니까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초현대식 건축물인 DDP에 머물게 된 거죠.”

    그렇다면 코코 샤넬을 여러 방식으로 추억하고 만끽하는 지금, 왜 하필 ‘장소’일까? 사실 누구에게나 특정 장소는 언젠가 들었던 노래나 그 순간을 사로잡은 기후만큼 많은 것들을 환기시킨다. 감수성이 극도로 예민한 패션 디자이너에겐 유난히 더 그렇다. 지구본을 샅샅이 뒤져 수시로 ‘영감’ 여행을 떠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일을 위해 의도적으로 여행이나 출장을 갔든, 철저히 쉬기 위해 떠났든, 일하거나 사는 곳이 바뀌어 물리적으로 이동했든). 그런 면에서 코코 샤넬에게 장소는 인물이나 사건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의미심장한 영감의 원천이다. 매력적인 남자에게 쉽게 마음을 뺏기듯, 그녀는 지역적 특징에도 쉽게 매혹되곤 했다. 그러고 나면 자연스럽게 호기심이 발동됐고, 오감으로 경험한 것들이 분명해질 때까지 기다린 뒤, 여러 요소와 인상을 자기만의 어휘로 재구성했다. 그 결과가 지금 여러분이 누리는 옷과 보석과 향과 화장품과 시계다.

    “1883년 8월 19일, 소뮈르에서 태어나 1971년 1월 10일 파리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 가브리엘 샤넬의 삶의 여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지표가 되는 장소들로 이뤄진 별자리 같습니다.” 샤넬 하우스의 대외 스피커를 자처하는 홍보 담당자들은 이번 전시의 주제를 누누이 강조하며 신중하게 설명을 이었다. “집과 도시, 나라들은 단순히 그녀가 살다 머문 곳 이상을 뜻합니다. 가브리엘이 각각의 장소를 거쳤다기보다, 장소들이 자신을 꿰뚫고 지나가도록 그녀가 몸을 내맡긴 듯 보이니까요.” 어마어마한 규모의 어떤 장소가 깡마른 여인의 가슴속으로 확 파고드는 판타지 무비의 CG 장면이 연상되지 않나? 만약 코코 샤넬 영화가 판타지물로 제작된다면, 이번 ‘장소의 정신’전에서 굉장한 미장센들이 나올 만하다.

    코코가 머물다 간 곳은 DDP에서 열 개의 공간으로 나뉜다. 프로망에 의해 구획된 열 개의 시퀀스엔 샤넬 자료 보관실에서 추출한 500점 이상의 유물(사진, 책, 오브제, 원고, 기록, 예술품 등등)이 진열된다(장장 1년 넘게 준비했으며, ‘문화 샤넬전’ 시리즈 중 세계 최대 규모!). “샤넬의 자리는 그저 지리적 위치를 초월, 영감의 주제가 되는 곳입니다”라고 프로망은 전한다. 이제 우리는 소뮈르, 브리브, 오바진, 물랭, 루아얄리외, 파리, 도빌, 베니스, 비아리츠, 로크브륀, 이튼 홀, 할리우드, 뉴욕 등으로 이어지는 이국적 여정을 초가을에 시작할 수 있다(떠나는 건 과거지만, 타임머신은 자하 하디드의 다분히 미래적인 건축물. 이보다 더 짜릿한 여행이 또 있을까?). <보그> 도슨트의 설명과 함께 130여 년 전부터 시작해 코코 샤넬 전성기까지의 여정 속으로!

    여러분과 함께할 첫 번째 여정은 ‘유년기의 인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샤넬 전기 영화나 위인전을 본 뒤 그녀에 대해 한마디씩 할 때면 이 시기를 놓치지 않는다(물론 샤넬 매장에서 코코의 유년기를 떠올리며 사명감에 불타 쇼핑하는 사람은 드물 테지만). 뜻밖에도 샤넬은 시골뜨기 출신이니까. 게다가 시장을 떠돌며 작업복과 속옷을 팔던 부모로 인해 소뮈르 구제원에서 태어난 여인이다. 때는 산업혁명이 일어나 논밭에 공장이 들어서 농촌이 엉망진창이 된 시기였다. 이에 대한 반발심리였는지 이삭을 줍고 건초를 말리고 밀이삭을 터는 시골 아낙들이 당대 예술가들의 뮤즈가 돼 불후의 형상으로 표현됐다. 이런 자연주의자들과 귀스타브 쿠르베의 추종자들,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에 등장한 밀이 샤넬 컬렉션에 자주 나온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심지어 그녀의 아파트를 장식하거나 단추, 보석, 자수에도 자주 쓰이거나. 라거펠트는 2010년 가을 컬렉션에 이런 시골 풍경을 재현했다. 만약 당신이 패션 디자이너를 꿈꾼다면, 유년의 어떤 것도 잊지 말기를!

    샤넬 위인전 DDP 판의 두 번째 장 제목은 ‘오바진의 규율’이다. 엄마가 병들어 숨지자 아빠는 열두 살짜리 가브리엘 샤넬을 포함, 세 자매를 오바진 고아원에 띡 맡겼다. 너희들을 꼭 찾으러 오겠다고 아빠는 맹세했지만, ‘오빠생각’이 아닌 구슬프게 ‘아빠생각’만 떠올리며 세 자매는 시간을 보냈다. 샤넬 가문의 후예들은 이런 결핍이 주는 고통과 무게야말로 코코의 창작 세계에 도움이 됐다고 귀띔한다. 수도원 분위기의 고아원에서 체질화된 검소함과 화려함에 대한 갈망이 혼합된 역설적 미학이라는 것. 그러니까 샤넬 고유색인 흑백 조합은 수녀복이나 고아원복에서 비롯됐다는 얘기다. 한편 오바진의 문장과 수녀원 바닥을 장식한 해, 달, 별 문양은 먼 훗날 보석을 만들 때 추억거리가 됐고, 성당 스테인드글라스의 얽힘 문양은 더블 C를 연상시킨다는 게 샤넬 사람들의 증언. 이게 전부는 아니다. 전례 도구에 수놓인 밀이삭 문양과 원석에 새겨진 까멜리아까지.

    세 번째, ‘다름이 주는 자유’는 스무 살이 된 가브리엘이 주연이다. 수녀원은 샤넬을 기병 부대가 주둔한 물랭의 어느 의상실로 보내면서 이야기는 급진전된다(물랭에 주둔한 제10기병 연대 소속 군인은 모두 명문가 자제들). 고아에다 무일푼 시골뜨기 생활이 지긋지긋하기만 한 아가씨는 툴루즈 로트레크의 그림에 자주 나온 이베트 길베르처럼 파리 뮤직홀 가수를 꿈꿨다. 놀랍게도 ‘Dreams Come True’의 마법은 샤넬에게 적중했다. 결국 물랭의 ‘라 로통드’라는 뮤직홀에서 ‘코-코-리-코’와 ‘누가 코코를 봤나?’라는 곡으로 공식 데뷔하게 됐으니까(기병들의 휘파람 세례와 함께 ‘코코’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인기의 거품을 실감해 1905년 온천 도시 비쉬로 떠나 거기서도 뮤직홀을 전전했으나, 음색이 별로인 탓에 가수 생활을 접은 채 다시 물랭으로 복귀했다. 바로 그때, 가브리엘은 젊은 장교 에티엔 발장과 눈이 맞았다!

    동시에 전위파 화가들의 뮤즈 겸 문예지 <라 르뷔 블랑쉬> 발행인의 아내였던 미시아 세르를 만나 예술에 눈뜬다(라거펠트의 지난 봄 아트페어 발상이 여기서 파생된 건 아닐까?). 이제 물랭을 뒤로한 채 콩피에뉴 숲 외곽으로! 에티엔의 대저택에서의 삶이 펼쳐진다. 이름 하여 ‘성에서의 삶!’ 여기서 코코는 전에 없이 망중한을 누린다. 패션 감각이 출중했던 그녀의 눈에 승마복이나 남성복은 침이 꼴깍 넘어갈 만한 옷. 그래서 기존의 긴치마 대신 남성용 재킷에 쫙 달라붙는 바지를 입고 말을 탔다. 또 경마장에서도 치렁치렁한 벨 에포크풍 드레스 대신 단순한 옷과 작고 둥글며 납작한 모자를 썼다. 이런 무위도식도 한순간. 심심하던 차에 손수 만든 모자가 주위에서 반응이 좋자 내친김에 여성용 모자 디자이너가 되기로 작심한다. 이 대목에서도 러브 라인이 빠지면 싱겁다. 에티엔의 영국인 친구 아서 카펠, 일명 ‘보이’와의 운명적 만남! 사업가 겸 유명 폴로 선수인 그 역시 고아 출신. 그래서 서로의 속사정까지 나눈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불꽃 튀기며 미친 듯 사랑에 빠진다(샤넬 직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난생처음 미친 듯 사랑에 빠졌다는 것). 그리하여 보이는 코코의 연인이자 재정적 독립의 조력자로 등극한다.

    1910년은 ‘파리에서의 독립’이란 결정적 순간이다. 엔젤 투자자인 보이 카펠의 도움으로 캉봉가 21번지에 ‘샤넬 모드’라는 모자집을 낸다. 모던함에 대한 그녀의 날카로운 감식안은 당대 최고였던 폴 푸아레의 옷들을 졸지에 구닥다리로 만들었다. 이런 인기에 탄력을 받아 3년 후, 모자는 물론 야회복까지 아우른 매장을 도빌에 연다. 어부의 작업복 역시 그녀의 눈초리를 피해갈 수 없었다. 저지 소재 스트라이프 셔츠의 시작이 여기다. 하지만 1919년 말 절체절명의 위기가 들이닥친다. 교통사고로 보이 카펠이 세상을 떠난 것. 미시아를 비롯한 예술계 친구들은 코코를 위로하기 위해 함께 베니스로 떠난다. 여러분은 그녀가 그토록 금빛 찬란한 아름다움에 탐닉한 이유를 여섯 번째 장 ‘베니스의 보물’을 통해 알게 될 것이다. 산 마르코 대성당, 토르첼로 성당, 귀족들의 저택, 박물관과 성당 등등. 게다가 베니스의 상징 동물인 사자와 자신의 별자리인 사자자리의 평행이론에 의미를 두는 등 그녀에게 베니스는 도빌만큼이나 애틋한 장소. 참, 베니스에선 발레뤼스를 창단한 세르게이 디아길레프를 만나는 등 또 한 번의 터닝포인트 를 맞는다.

    이쯤에서 보이 카펠이 살아 있던 1915년으로 되돌아가보자. 1차 대전 중 그는 휴가를 얻어 코코와 함께 비아리츠로 여행을 떠난다. 파리 상류층 여인들의 고매한 휴양 도시에서 코코는 보이 카펠의 도움으로 의상실을 연다. 그러던 중, 코코에게 찾아온 또 한 편의 러브 스토리! 러시아의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과 재회해 1년쯤 연인관계로 지내게 된 것. 드미트리의 소개로 그녀는 전설의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와 인사를 나누고, 그리하여 세기의 명작 ‘No.5’가 1921년에 발표돼 대성공을 거둔다. 그녀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다다이즘을 콜라주로 표현한 그림 수수께끼까지 제작했다. 대공과의 은밀한 관계 역시 그녀의 컬렉션에 아이디어를 제공했음은 물론. 러시아 전통 자수가 놓인 블라우스, 모피 안감을 댄 외투 등의 밀리터리 룩은 라거펠트에 의해 수시로 재현되는 중. 이게 바로 일곱 번째 주제인 ‘러시안 패러독스’다.

    여덟 번째 여정은 ‘블루 트레인’을 타고 진행된다. 1922년 말에 개통된 블루 트레인은 프랑스 북부 도시 칼레에서 파리를 거쳐 지중해 해안 코트다쥐르까지 운행하는 호화 야간열차의 별칭. 이 열차를 타고 코코는 로크브륀 해변 언덕에 약 2만 제곱미터쯤 되는 땅을 사서 거창한 별장을 짓는다. 자신만의 은신처에서 쉬기 위해 블루 트레인을 타고 온 것. 이 기간 동안 코코에게 또 한 명의 남자가 나타난다! 몬테카를로에서 만난 웨스트민스터 공작이 주인공. 코코와 웨스트민스터 공작은 스코틀랜드 광야를 산책하거나 사냥하거나 하이랜드 강에서 연어 낚시를 즐기거나 요트를 타며 사랑을 나눴다. 여가수가 남자와 열렬히 사랑을 나누고 헤어진 뒤 신보를 낸다는 소문이 있듯, 코코에겐 사랑에 빠진 남자야말로 영감의 원천이었다(‘컬처 샤넬’ 시리즈에 언젠가 ‘코코의 남자들’이라는 기획을 마련해도 좋을 듯!). 샤넬, 하면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그 유명한 샤넬 트위드 재킷은 웨스트민스터 공작의 옷차림에서 비롯된 것이다.

    ‘장소의 정신’ 전시의 아홉 번째 주제는 ‘새로운 세계’ 다. 쉽게 말해 미국. 20년대 초에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리틀 블랙 드레스를 두고 1926년 10월 1일자 미국 <보그>는 ‘샤넬의 포드’라며 찬사를 날렸다. 미국 대량 생산의 상징인 자동차에 빗댄 것. 아울러 아내에게 ‘No.5’를 선물하기 위해 미군들이 샤넬 매장 앞에 길게 줄을 설 정도. 한편 연인 관계를 청산한 뒤에도 친구로 남은 드미트리 대공은 자신의 엑스 걸프렌드에게 할리우드 거물을 소개한다. 이로 인해 샤넬은 사무엘 골드윈이 제작한 영화 세 편의 의상을 디자인했다. 이렇듯 미국에서 샤넬은 승승장구! ‘No.5’ 몇 방울만 걸치고 잔다는 마릴린 먼로, 아르데코 모더니즘의 걸작인 ‘No.5’ 향수병을 소재로 작품을 남긴 앤디 워홀, 샤넬 수트를 입은 재키 케네디 등등. 작년 12월, 라거펠트는 코코의 텍사스 여행을 다시 추적하고 추억했다. 이렇듯 “나는 미국에 대해 감탄하고 미국을 사랑한다”는 코코의 메시지는 샤넬의 ‘파리-댈러스’ 컬렉션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 마지막 여정. ‘샤넬 정신’ 그 자체인 캉봉가 31번지에 도착했다. 혹시 여러분은 캉봉 매장의 상징물인 나선형 계단을 밟거나 벽을 따라 붙인 조각난 긴 거울 앞에 선 적 있나? 생전의 샤넬은 계단 꼭대기에서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아래층을 지켜봤다는 후문. 요즘으로 치면 CCTV 역할이지만, 이 거울 계단은 패션쇼 런웨이로도 쓰였다. 그런가 하면 건물 3층은 아파트로 꾸몄다. 하지만 접대용일 뿐, 호텔 리츠의 직접 꾸민 방에서 잤다. 디아길레프에게 받은 러시아 성상, 달리가 준 밀이삭 그림, 장 콕토와 피에르 르베르디와 폴 모랑이 그녀에게 헌정한 책들, 웨스트민스터 공작이 선물한 은제 도금 박스 등등. “코코의 일생이 매듭지어지는 곳, 다른 모든 것들을 품는 장소가 여깁니다”라고 프로망은 마지막 장소에 대해 설명한다. 샤넬 정신의 함축이자 샤넬 세계의 압축이라는 것.

    자, 8월 30일 DDP에서 열리는 ‘장소의 전시’. 코코 샤넬의 시적 상상력과 직관적 지식이 총망라된 장소 열 곳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신광호
    기타
    Courtesy of Cha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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