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2014년 가을, 겨울 패션 트렌드 1

2016.03.17

by VOGUE

    2014년 가을, 겨울 패션 트렌드 1

    패션은 늘 ‘바로 지금’에 집중한다.
    하이테크에 대한 반발심이 낳은 자연 회귀본능, 스포츠와 함께하는 몸 관리, 전쟁과 평화 사이의 긴장감,
    현실도피를 위해 몰입한 옛날 동화와 환상, 그리고 평범한 일상에 대한 갈망!
    2014년 가을과 겨울에 유효한 몇 가지.

    트렌드? 캣워크? 런웨이? 컬렉션? 패션 위크? 스타일닷컴? 한때 이런 낱말은 패션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입에 달고 사는 전문용어쯤 됐다. 요즘 같아선 자라, H&M, 망고 같은 브랜드 전용이다. 그게 꼭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초대형 SPA 브랜드와 각 나라 내셔널 브랜드들은 4대 패션 위크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게 생존 방식이다. 그들은 독창성이나 예술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시즌 트렌드를 실시간 도입, 고객이 옷과 유행을 쉽게 소비하게 만드는 게 일이다.

    반면 4대 패션 수도에서 정기적으로 쇼를 여는 독립 디자이너와 패션 하우스들에겐? 새 옷을 파는 최초의 수단은 물론,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게 목적이다. 하지만 트렌드 같은 단어는 80~90년대나 2000년대에 비해 별로 쓸 일이 없어졌다. 시대를 규정하는 그럴듯한 대형 트렌드가 없어서다. 너무 많은 게 동시다발로 배출돼 한꺼번에 뒤범벅된 지금, 고만고만한 유행 물결의 뒤죽박죽이다.

    NORMCORE KIDS

    그래서 평범함이 트렌드가 되는 기이한 시대다. 패션 역사상 이런 시절이 없었다. 착실한 남자들이 입던 기본형 옷차림이 우리 여자들을 사로잡게 된 것. 몇 달 전 <보그>는 ‘놈코어’라는(한국 정서에선 ‘이놈 저놈’하듯 어딘지 모르게 욕처럼 들린다) 신조어를 여러분께 전했다. 쉽게 말해 평범함, 일반적인 멋이 대세라는 내용이었다.

    사실 우리는 온갖 매체를 통해 안나 델로 루쏘를 비롯, 패션 위크 장소 주변을 배회하는 ‘피에로’들을 질리도록 봤다. 물론 처음엔 눈에 확 꽂히긴 했다. 스트리트 사진가들은 우상 숭배하듯 그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사진가들이 무릎을 굽혀 촬영하는 모습이 영락없이 여신을 앞에 둔 신도들처럼 보이므로). 화보 촬영이나 시즌 컨셉을 단시간에 강력히 전하기 위해 디자이너가 좀 튀게 만든, 일명 포토제닉 룩을 입고 돌아다닐 곳은 역시 또 다른 패션쇼에 갈 때뿐. 하지만 듣기 좋은 콧노래도 딱 세 번이지 않나! 피에로들은 우릴 보고 웃지만, 우린 피에로들이 이제 지겹다.

    디올, 에르메스, 막스마라, 질 샌더 등의 밋밋하고 담백하며 어딘지 모르게 개운한 가을 옷들이 ‘놈코어’라는 이름 아래 근사해 보인다. 이런 물건은 당신이 내년 이맘때쯤 옷장을 열었을 때, 내가 저걸 왜 샀을까 싶은 심정으로 꼴도 보기 싫어 저리 치워버리는 옷이 아니다. 다시 말해 충분히 투자 가치가 있다는 얘기다.

    COZY CHIC

    지겨워진 건 패션쇼장 주위를 서성거리는 패션 피에로만이 아니다. 몇몇 사람들은 당대를 지배하는 하이테크마저 지긋지긋해진 순간을 경험했을 것이다. 인터넷, SNS, 뉴미디어, 컴퓨터, 모바일, 디지털, IT, 아이폰, 갤럭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텀블러, 블로그, 라인, 카톡 등등. 휴우! 물론 불, 물, 흙, 공기 같은 고대 4원소만큼 현대 필수 요소가 됐기에 이런 반응이 호들갑 떠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패션처럼 극적 반전을 즐기고, 반골 기질이 다분한 영역이 또 있을까? 작용에 대한 반작용,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심, 헌것보다 새것에 대한 욕망으로 충만한 게 패션. 그래서 일반화와 체질화된 디지털 문화의 정반대를 갈구하게 됐다. 그 결과 자연에 대한 본능적 회귀가 출현했다.

    그 신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첫 암호는 ‘Cozy’. 니트를 기본으로 포근하고 안락한 옷이 우리의 살갗은 물론, 전자회로처럼 변하는 정서까지 건드린다. 그런데도 마크 제이콥스, 캘빈 클라인, 셀린, 이든의 니트 의상이 내키지 않는다면? 당신의 디지털화는 겉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진행 중이라는 신호다.

    BIG BLANKET

    자연 회귀본능의 두 번째 암호는 ‘Blanket’이다. 지난달 <보그>의 한 페이지를 보자. 모델 김성희가 올가을 버버리 프로섬 담요를 뒤집어쓰고 유럽 도시를 거닐던 사진을 기억하는지. 21세기엔 우주복 차림으로 돌아다닐 거라 예측했지만, 아시다시피 2014년에도 멋쟁이들은 담요를 뒤집어쓴다. 그러니 올가을 외투 쇼핑 목록을 짜기 시작했다면, 클로에, 버버리 프로섬, 로베르토 카발리, 에르메스 등이 마련한 담요와 판초와 케이프의 혼합형을 맨 위에 올리시길!

    MORE SHEAR

    그렇다고 모피 코트를 빼고 겨울 외투 쇼핑을 끝낼 순 없다. ‘Shear’가 세 번째 암호다. 당대 유행을 정의하는 프라다와 미우미우 자매, 수많은 내셔널 브랜드와 SPA 브랜드의 성서인 구찌와 이자벨 마랑에 따르면, 올겨울 모피는 무조건 복슬복슬!

    GREEN FIELD

    마지막은 ‘Green’이다.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 가을에도 풋풋한 자연에 대한 갈망이 유난스러울 정도다. 발맹, 아크네 스튜디오, 프로엔자 스쿨러, 미우미우, 베르사체, 마르니의 초록에선 소주병 색깔이나 곰팡이 따윈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초록의 다채로운 뉘앙스에 눈이 번쩍 뜨일 만한 계절이 바로 올가을!). 호감 가는 뭔가를 볼 때 요즘 패피들이 하는 말처럼, 신진대사율과 기초대사량이 높은 데다 혈액순환이 잘되는 컬러! 정말이지 이 대목에선 샤론 스톤이 얼마나 고마운지. 이 현상들이야말로 ‘원초적 본능’이니까.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신광호
      기타
      Indig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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