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재킷의 매력

2016.03.17

by VOGUE

    재킷의 매력

    사계절 옷장 속에서 가장 빈번히 채택되는, 아주 쿨하고 중성적인 매력의 아이템? 바로 재킷이다.
    재킷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면 올가을만큼은 까다롭게 골라야 한다.
    결국 내 곁을 든든히 지키는 건 언제나 재킷이니까.

    아이보리 턱시도 재킷은 김서룡, 톱은 푸시버튼, 니트 스웨트 팬츠는 아뇨나, 팬츠 안에 레이어링한 은색 브리프는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 금색 웨지힐은 프라다.

    가만있자, 팬츠 수트가 흥했던 시기가 언제였던가? 네이버 라이브러리가 선별해낸 90년대 말 2000년대 초 기사 제목은 다음과 같다. ‘여성들의 ‘IMF 패션’은 바지 정장’ ‘통 넉넉한 바지 정장, 일하는 여성에 제격’ ‘여성 바지 정장 인기몰이’ 등등. 바지 정장이라는 표현에 실소를 금할지 모르지만, 당시 인기 최고였던 요정들(S.E.S, 핑클)도 무대 의상으로 즐겨 입었던 게 팬츠 수트다. 흰 셔츠의 윗단추를 풀어헤치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나우’를 부르던 핑클의 핀스트라이프 팬츠 수트를 기억하는가?

    그런데 팬츠 수트가 더 이상 폼 나는 출근복이 아님이 분명해진 건 불과 몇 달 전 일! 소녀시대가 ‘미스터미스터’ 무대 의상으로 검정과 하양, 연분홍, 하늘색 파스텔톤 팬츠 수트들을 입고 나온 순간, 14년 전 핑클에 대한 기억과 함께 구식 바지 정장을 보는 듯한 느낌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그리고 깨달았다. 재킷과 팬츠는 여전히 여자들의 직장 패션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요즘엔 위아래 한 벌 살 가격으로 재킷만 두 벌 사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핑크색 턱시도 재킷은 김서룡, 화이트 와이드 팬츠는 아뇨나, 푸른색 힐은 로저 비비에.

    “이젠 출근 복장이 매우 캐주얼하게 변했기 때문이죠. 지금도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출근할 때 정장 차림을 선호합니다. 띠어리도 원래는 비즈니스 우먼을 위한 팬츠 수트 브랜드의 대명사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국내 특수 상황에 맞춰 아이템 재킷의 비중이 높은 편이죠.” 띠어리 바잉 MD 김용옥 과장은 본사와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도 한국 시장의 특이성에 대해 반복해서 강조한다고 설명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 2월 뉴욕에서 열렸던 띠어리 가을 컬렉션(데스켄스가 지휘한 마지막 띠어리 쇼)은 말쑥한 재킷과 단정한 화이트 셔츠, 날렵하게 빠진 팬츠의 변형과 혼합에 대한 것이었다. 그중 특히 눈에 띈 건 재킷의 변주! 코트처럼 길었다가 다시 짧아지고, 아랫단 양쪽이 비대칭을 이루거나 페플럼처럼 주름이 잡혀 걸을 때마다 꽃잎처럼 팔락였다. 뭐, 신선함이 부족한 점만 뺀다면, 단정하게 잘 빠진 재킷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군더더기 없이 보여준 나무랄 데 없는 컬렉션이었다.

    “띠어리 재킷은 기장이 아예 긴 것과 아주 짧은 것, 두 가지 타입으로 나눠지죠. 매장에서 판매하는 재킷들은 허리선 위치가 높고 체형이 호리호리해 보이도록 디자인됐습니다. 보통 이런 실루엣은 활동하기에 조금 불편하지만, 신축성 있는 소재가 섞여 있어 실제로 입었을 때는 착용감이 매우 편하죠.”

    비대칭 재킷과 화이트 셔츠, 블랙 팬츠는 모두 띠어리, 은색 로퍼는 로저 비비에, 반지는 모두 토즈.

    크게 튀지 않는 디자인에, 회사에서 업무를 볼 때도 부담없이 입을 만한 걸 찾는다면 띠어리가 적당하다. 그러나 그동안 유행한 랑방의 턱시도 재킷이나 스텔라 맥카트니의 테일러드 재킷, 이제 거의 신격화된 피비 파일로의 셀린 재킷, 심지어 라프 시몬스의 디올 바 재킷까지 빠짐없이 기웃거린 적이 있다면, 좀더 확실한 오버 사이즈 핏(가을에 대유행할게 뻔한!) 재킷을 원할 것이다.

    이 유행은 이미 지난봄 시즌 생로랑의 ‘카디건 재킷’으로부터 예고됐다. “지난봄 컬렉션에서 엉덩이를 덮는 길이의 ‘카디건 재킷’을 새롭게 선보였죠. 쉽게 말해 오버 사이즈의 보이프렌드 핏 재킷을 생각하면 됩니다. 하운즈투스 체크 패턴과 베이식한 블랙 두 가지 스타일이 있었는데, 완판될 정도로 반응이 좋았어요. 가을 시즌에는 회색 울 소재 카디건 재킷을 판매할 예정입니다. 지난 시즌보다 물량도 늘렸고요.” 생로랑 홍보팀의 유경민은 퍼머넌트 컬렉션의 클래식한 재킷보다 카디건 재킷에 대한 선호도가 더 높다고 귀띔했다. 에디 슬리먼의 악명 높은 슬림 핏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동일한 디자인의 남성용 제품 44, 46 사이즈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보통 국내에서 판매하는 수입 남성복의 경우 46 사이즈가 가장 작지만, 생로랑의 경우 여자 고객들을 위해 44 사이즈 남성복도 판매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버 사이즈 재킷은 어떻게 연출했을 때 멋지게 보일까? 우선 <플래시 댄스> 속 제니퍼 빌스 룩을 떠올려보자. 용접공 겸 나이트 클럽 댄서인 알렉스가 직장 상사 닉을 유혹하기 위해 작업용 의상으로 선택한 건 큼지막한 턱시도 재킷(물론 재킷을 벗었을 때 맨몸 위에 빕과 보타이, 커프스만 걸친 노골적인 차림). 즉, 오버 사이즈 재킷은 남자 옷을 입은 여자의 섹시함을 보여주는 상징적 패션이라는 것.

    “오버 사이즈 재킷은 푸시버튼의 시그니처 아이템이죠. 이번 시즌 재킷은 남성복 테일러링과 100% 동일한 방식으로 제작됐습니다. 가슴 부분도 볼륨 없이 납작하게 떨어지고, 실루엣이 강하게 흐르도록 원단에 심지를 붙였죠.” 매 시즌 큼지막한 어깨의 오버 사이즈 재킷을 선보여온 디자이너 박승건은 올가을 컬렉션에도 회색과 로열 블루 더블 브레스티드 재킷, 검정 턱시도 재킷 등을 포함시켰다. 빈티지 마켓에서 볼 법한, 폭신한 어깨 패드가 ‘장착’된 파워풀한 재킷에 마음이 동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 될 듯.

    프린트 재킷과 녹색 팬츠는 푸시버튼, 데님 재킷은 데님앤서플라이, 푸른색 힐은 로저 비비에.

    이에 비해 김서룡의 재킷은 남자들이 일 년에 한 번 입는 턱시도처럼, 두고두고 입을 우아한 클래식의 위치에 서 있다. 남성복 수트로 유명한 김서룡은 얼마 전 여성용 팬츠 수트 컬렉션을 따로 선보이기도 했는데, 기름기를 쫙 뺀 박시하고 헐렁한 긴 재킷과 낙낙한 긴 팬츠가 ‘서울식 르 스모킹’이라 할 만했다.

    기존의 여성복 재킷에서 아쉬움을 느꼈거나 남성복 수트가 땡겼다면, 그의 기품이 흐르는 팬츠 수트를 보고 ‘유레카!’를 외칠 것이다. “재킷은 공정이 정확하지 않으면 전체적인 형태가 흐트러집니다. 좋은 집을 짓기 위해 좋은 설계도가 필요한 것과 같죠. 남성복 테일러링을 기반으로 여자 몸의 부피감을 고려해서 재단했기 때문에 묵직한 무드가 있습니다. 격식 있는 자리에 드레스 대신 입고 가도 좋을 팬츠 수트죠.”

    하지만 그건 모두 장신에 가는 뼈대의 우월 유전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 대한민국 표준 체형의 여자들은 재킷을 쉽게 생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약간의 두려움마저 느끼고 있다. 많은 여자들이 매 시즌 마음에 드는 재킷을 찾아 헤매지만, 여전히 머릿속엔 물음표만 가득하다. 이들을 대신해 Q&A 시간을 가져보기로 하자.

    첫 번째 질문. “기장은 어떻게 선택해야 하죠? 엉덩이를 덮는 재킷의 매니시한 느낌은 좋지만, 상체가 길어 보일까 봐 고민이에요.” 이에 대한 디자이너 박승건(이하 P)의 명쾌한 대답! “뒤에서 봤을 때 다리 길이가 시작되는 부분(가랑이)이 아슬아슬하게 가려지는 기장이 다리를 길어 보이게 합니다. 하이웨이스트 팬츠는 얼굴이 커 보일 수 있어 권하지 않겠어요.” 디자이너 김서룡(이하 K)의 심미적인 설명은 이렇다. “엉덩이를 완전히 덮는 길이가 우아해 보입니다. 와이드 팬츠를 입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을 때, 자연스럽게 주름이 져서 풍성해 보이는 것도 아름답죠. 구두는 높은 걸 신어야죠.

    블랙 턱시도 재킷과 스트라이프 톱, 스터드 장식 가죽 팬츠, 체인백, 키튼힐 부츠는 모두 생로랑.

    그럼 “블랙과 그레이 중에 한 가지를 고른다면?” “그레이! 캐주얼하면서도 성장한 느낌이 나니까요.” 단, 이 대답의 전제는 블랙 재킷은 이미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서다. 다음 질문. “클래식 아이템으로 오래 입으려면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까요?” 김서룡은 “투자의 개념으로 구입해야 합니다. 가격대가 높더라도 좋은 소재를 사용했는지, 제대로 된 봉재 기법을 사용했는지 꼼꼼하게 따져야 해요.” 박승건은 “기본 테일러드 복식에 가까운 옷을 선택하는 게 좋습니다. 장식적인 디테일이나 변형을 가한 재킷은 나중에 유행이 지난 것처럼 보이기 쉽거든요”라고 말한다. 어떤 목적으로 구입하느냐 또한 염두에 둬야 한다. 출근용으로 편하게 입을 생각이라면, 쉽게 뜯기거나 세탁이 어려운 고급 소재가 오히려 부담스러울 수 있다.

    다음 질문. “재킷은 어떻게 스타일링하는 게 좋을까요?” 박승건은 “남자 옷을 입은 여자가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반전 포인트가 필요합니다. 옷이 크더라도 전체적으로 비율이 맞아 보이도록 하이힐을 신고, 소매를 접어 올려 가느다란 손목을 드러내야 하죠.” 김서룡은 “스커트에 가까울 정도로 폭이 풍성한 와이드 팬츠나 롱스커트가 전체적인 실루엣과 잘 어울립니다. 블랙 턱시도 재킷은 디스트레스드 진 위에 걸쳐도 화려해 보이죠. 요즘 많이들 입는 늘어진 티셔츠도 좋지만, 아방가르드한 디테일이 있는 셔츠도 잘 어울립니다.” 자, 마음의 준비가 됐는가? 오랫동안 품었던 고민을 몽땅 해결했으니, 이제 당신만의 재킷을 찾기 위해 발로 뛰어야 할 때. 올가을은 재킷에 헌정된 계절이다.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송보라
      포토그래퍼
      CHA HYE KYUNG
      모델
      이혜승
      스탭
      헤어 / 권영은, 메이크업 / 서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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