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돌아온 60년대의 열기

2016.03.17

by VOGUE

    돌아온 60년대의 열기

    60년대 이후 패션계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꾼 영국 젊은이들의 움직임!
    올가을, 그 60년대를 풍미한 ‘춤추는’ 런던의 활기가 돌아왔다.

    그래픽적인 바닥 타일이 60년대 분위기를 자아내는 카페의 여인들. 왼쪽 재킷, 슬리브리스 톱, 스커트, 앵클 부츠, 목걸이는 모두 루이 비통. 오른쪽 하운드투스 패턴 집업 코트 드레스는 페이, 벨트는 구찌, 앵클 부츠는 샤넬, 귀고리는 루이 비통. 장소는 리버틴.

    버킹엄궁, 빅벤, 빨간 2층 버스, 유니언잭, 롤스 로이스 자동차 등은 영국 전통의 상징들이다. 단발머리로 한쪽 눈을 가린 남자와 아슬아슬한 A라인 미니 드레스 차림의 여자, 그리고 목청껏 노래 부르는 인기 록 밴드 ‘더 후(The Who)’의 보컬, 여기에 번쩍이는 디스코 클럽 등 ‘잘나가는’ 영국 젊은이들의 문화. 1966년도 4월 15일자 <타임>지 표지에는 상반된 두 분위기가 공존하는 런던을 일러스트로 표현했다. 금방이라도 영국 억양의 영어로 와글거리는 소리가 들릴 듯한 이미지 한 편의 커버 스토리는 ‘런던: 활기차고 멋진 도시’, 이름 하여 ‘스윙잉 런던!’

    스윙잉 런던이란 표현은 <타임>지를 통해 처음 세상에 등장했다. 60년대 중반, 이 심상찮은 움직임의 주역인 영국 젊은 세대들은 고리타분한 부모 세대에서 벗어나 천방지축으로 몰려다니며 자기들만의 가치와 문화를 만드는데 몰입했다(지금으로 치면 딱 ‘중2병!’). 수중에 돈이 생기면 런던 소호의 캐너비 스트리트로 몰려가 새 옷을 사 입고 워더 스트리트의 지하 클럽에서 춤추는데 탕진했으니, 이쯤 되면 당시 패션 유행 역시 얼마나 대단했을지 알 만하다. 스윙잉 런던 패션은 수없이 재해석됐고, 2014년 가을 시즌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이번 시즌 패션 하우스들이 ‘추억 팔이’ 하고 있는 60년대 런던의 결정적 장면들!

    60년대 런던의 모드 걸과 그들의 룩을 재해석한 구찌의 룩.

    Scene #1 _We are The Mods

    60년대 런던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모드족이다. ‘시건방’이 하늘을 찌르던 이 애송이들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작은 악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모드족의 기원을 거슬러보면 50년대 후반 날렵하게 재단된 이탤리언 옷으로 빼입고 모던재즈를 즐겨 듣던 젊은이들이 있다. 이 허세 ‘쩌는’ 멋쟁이들은 스스로를 모더니스트(단순히 모던재즈를 듣는 다는 이유)라고 불렀다. 60년대부터는 옷과 신발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노동계층 젊은이들이 모드(모더니스트의 줄임말)족으로 불렸다. 성공에 대한 야망이나 밝은 미래 따위엔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는 이 젊은이들은 낮에 일하고 받은 주급으로 옷을 샀고, 해가 지면 부릉부릉 스쿠터를 타고 클럽으로 향했다. 그러곤 각성제에 취해 한창 인기 있는 록 밴드 음악에 몸을 맡긴 채 밤새 신발 바닥으로 플로어를 비벼댔다(밑창에 구멍이 날 때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모드 문화를 연구하지만, 이보다 더 적절한 정의는 없다. “초절정으로 쿨한 애들이 패션에 집착하고 향락을 즐기는 문화!” 그들은 스타일을 참고하기 위해 이탈리아 패션지를 즐겨 봤으니, 이번 시즌 구찌와 최신 버전 모드족의 결합은 완벽한 만남이다.

    “남이 아니라 자기만족을 위해 잘 차려입은 여자들이죠.” 구찌의 프리다 지아니니는 당시 모드 걸의 유니폼이었던 A라인 미니 드레스와 스커트뿐 아니라, 길고 마른 모드족 남자들이 즐겨 입은 날씬한 팬츠 수트(이탤리언 컷이 돋보인다)의 여성용 버전도 선보였다. 깨끗하고 단순한 실루엣을 위해 사용된 건 힘 있는 가죽과 도톰한 울 소재. 당시 모드 족에게는 그저 선망의 대상이었을 오글오글한 양털이나 몽골리안 램 모피 코트, 호피무늬 송치 옷은 2014년 모즈 룩에 이탈리아 패션 특유의 풍부한 질감을 더한다. 흑백 혹은 정신없는 총천연색 대신 부드러운 파스텔 톤을 쓴 것 역시 60년대 전형적인 복고풍 스타일이 아닌, 산뜻하고 동시대적인 인상을 주는 핵심이다.

    여러분 가운데 베스파 혹은 람 브레타 스쿠터를 타는 이가 있다면, 이번 시즌 구찌 룩을 적극 추천한다. 물론 모드족처럼 끼니를 거를지언정 옷을 사는데 아낌없이 돈을 쏟아부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당시 젊은 여자들 사이에서 패션 아이콘으로 추앙받았던 베르슈카, 진 쉬림튼, 트위기, 페기 모핏과 그들을 쏙 빼닮은 생로랑 런웨이의 모델들.

    Scene #2_Fashion Idols

    “모델이 아이돌이던 시기입니다. 모두가 모델처럼 보이고 싶어 했죠. 다소 반항적이지만 분명한 자기만의 색깔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그들은 단시간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맨해튼을 배경으로 60년대 광고쟁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미드 <매드맨>의 의상 디자이너 재니 브라이언트는 60년대 패션 풍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매드맨>은 여자 캐릭터들의 패션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기로 워낙 유명해, 브라이언트는 바나나 리퍼블릭과 협업으로 매드맨 캡슐 컬렉션도 론칭했다). 영국 모델들은 특히 뉴욕 10대들 사이에 가히 할리우드 스타급의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그 첫 번째 인물이 진 쉬림튼이 다. 그녀의 매력은 ‘더 쉬림프’라는 별명을 가져다준 마른 몸매와 긴 다리, 밤비 같은 커다 란 눈, 긴 속눈썹, 뾰로통한 입술의 예쁘장한 얼굴과 냉담한 표정이다. 귀족적 얼굴과 굴 곡진 여체로 얌전하게 포즈를 취하던 이전 모델과는 확연히 달랐지만, 젊고 자유롭고 다가가기 쉬웠기에 소녀들의 우상이 되기에 안성맞춤.

    그런 그녀가 전 세계 10대들이 과감 하게 다리를 드러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저질렀으니, 이름 하여 ‘쉬림튼 사건’! 호주 멜버 른의 유명한 경마 대회에 모자, 스타킹, 장갑 아무것도 없이 무릎 위로 10cm나 올라간 흰색 시프트 드레스만 달랑 입고 등장한 것. 디자이너가 마침 옷감이 모자라 짧게 만들 수밖에 없었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지만, 격식을 갖춰 차려입은 게스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결국 그 사진을 본 소녀들은 즉시 가능한 맨다리가 많이 드러나는 스커트를 사기 위해 킹스 로드와 첼시의 옷가게로 몰려들었다. 뒤이어 트위기, 베르슈카, 페기 모핏, 페넬로페 트리 등이 쉬림튼에 이어 10대들의 우상을 자처했다.

    이번 시즌 생로랑 캣 워크에는 이들의 분신이 줄줄이 등장했다. 물론 여기엔 고스풍의 세기말 분위기가 감돌고 에디 슬리먼의 취향인 LA 뮤지션의 데카당스가 곁들여졌다. 그러나 당시 젊은 여자들이 맹목적으로 따랐던 모델 특유의 과감한 의상들, 다시 말해 무대의상이라고 놀림 받기 십상인 반짝이는 미니 트라페즈 드레스, 가랑이 아래(무릎 위가 아니다) 10cm라 해도 믿을 마이크로 미니스커트에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 여기에 길고 마른 몸매에 어울리는 나지막한 굽의 슈즈와 짙고 굵게 그린 아이라인 등은 그대로다. 뾰로통한 얼굴과 대충 빗은 머리카락에서 엿보이는 자유로운 영혼과 젊음의 향기까지, 그때나 지금이나 짜릿하게 매력적이다.

    60년대 영화에서 돌리 버드 캐릭터를 연기했던 매력적인 여배우들과 줄리 크리스티 주연의 <달링> 영화 포스터.

    Scene #3_Dolly Birds

    돌리 버드’란 ‘매력적이고 패셔너블하지만, 똑똑하진 않은 여자’. 요즘에도 쓰이는 ‘칙’이란 표현 역시 돌리 버드와 함께 이때 처음 등장했다. 칙은 말 그대로 ‘영계’라는 뜻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여자들은 미니스커트나 소녀처럼 옷 입는 유행이 스스로의 자유를 반영한다고 여겼지만, 남자들은 그런 차림의 여자들을 돌리 버드나 칙으로 간주했다. 정설은 아니지만, 일례로 사랑 노래에 자주 등장하는 ‘베이비’라는 표현도 이때부터 쓰였다는데, 바로 어린애처럼 옷 입은 뒤 반은 착한 척, 반은 반항적으로 행동하는 당시 여자들의 변덕스러운 성향을 아기에 빗댄 것이다(믿거나 말거나!).

    흥미로운 건 60년대에 이런 돌리 버드 캐릭터를 다룬 영화들이 꽤 많았다는 사실. 연예계로 진출한 여자가 육체적 매력으로 남자들을 홀려 결국 백만장자의 아내가 된다는 내용의 <달링>, 뚱뚱한 여주인공 조지의 친구로 예쁘지만 헤픈 캐릭터가 등장하는 <조지 걸>, 모델들을 돌리 버드 캐릭터로 묘사했던 <블로우 업>, 매력적인 남자 주인공에게 끊임없이 여자들이 들러붙는 <알피> 등에 주연이든 조연이든 감초처럼 빠지지 않았다.

    마이클 케인 주연의 1966년 <알피>와 2005년에 리메이크된 주드 로의 <알피>. <블로우 업>에서 멍청한 모델 역을 했던 제인 버킨 등 돌리 버드 특유의 어린 여자아이 같은 룩에서 영감을 얻은 미우미우, 페이, 루이 비통 의상.

    이렇듯 어린애처럼 미숙하게 굴던 60년대 돌리 버드들이 베이비 돌 드레스를 즐겼다면, 오늘날 여자들은 젊어 보이기 위해 캐주얼한 외투나 야구 점퍼 같은 ‘고딩’ 스타일로 옷을 입는다. 미우미우와 페이 컬렉션을 보면 버스 정류장에 서서 감자칩을 씹어대며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영국 소녀들의 교복이 단박에 떠오른다. 이 활기 넘치는 의상들은 불필요한 장식은(보통 나이 들수록 집착하게 되는) 최소화하는 대신 매우 실용적이라는 게 장점.

    “’불필요한 게 없는 디자인’이라는 개념에 집착했습니다.” 미우치아 여사의 말대로 장식의 절제와 실용성은 60년대 런던 패션의 특징이다.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목선이 깊게 파인 민소매 드레스, 터틀넥 스웨터, 스케이터 스커트, 앞코가 뾰족한 키튼힐 부츠 등 첼시 걸 스타일의 돌리 버드들을 루이 비통 쇼에 내보냈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확실히 하는 오늘날 여자들을 위해 실용적인 기능과 구성을 잊지 않았다. “옷은 기능적이어야 합니다.” 니콜라는 60년대 유행의 현실감에 대해 강조했다. “내 주위 여자들이 뭘 입고 싶어 하는지 귀를 기울이고, 작은 것까지 전부 한데 모아 섞었죠. 동시대 여자들을 위한 하나의 옷장으로요.”

    왼쪽부터 은색 트라페즈 미니 드레스, 검정 벨벳 케이프, 고고 부츠는 모두 생로랑. 오른쪽의 슬리브리스 가죽 드레스, 파이톤 부츠는 구찌, 스키니 스카프는 프라다, 안경은 지방시.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송보라
      포토그래퍼
      CHA HYE KYUNG
      모델
      정호연, 진정선
      스탭
      헤어 / 오종오, 메이크업 / 강석균
      사진
      Indigital,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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