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수 소년>의 오정세, 김영광 그리고 육성재

아홉수 돌부리에 걸렸다.
tvN 드라마 <아홉수 소년>은 아홉수에 빠져 고군분투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다.
오정세, 김영광, 육성재가 10년마다 찾아오는 이 불운의 고개를 타고 넘는다.
19, 29, 39의 고비 앞에서 스스로를 가다듬는 세 남자는 서로 다른 나이만큼 에너지의 색깔도 다르다.

오정세가 입은 흰색 셔츠는 구찌, 체크 패턴 수트와 검정 팬츠는 김서룡 옴므, 슈즈는 토즈, 육성재가 입은 흰색 셔츠는 김서룡 옴므, 체크 패턴 베스트와 팬츠, 지퍼 장식 부츠는 모두 장광효 카루소. 김영광이 입은 하이넥 니트와 검정 팬츠, 검정 코트는 모두 구찌, 슈즈는 토즈. 테이블 위의 음식은 존쿡 델리미트, 술은 FJKOREA. 

오정세가 입은 흰색 셔츠는 구찌, 체크 패턴 수트와 검정 팬츠는 김서룡 옴므, 슈즈는 토즈, 육성재가 입은 흰색 셔츠는 김서룡 옴므, 체크 패턴 베스트와 팬츠, 지퍼 장식 부츠는 모두 장광효 카루소. 김영광이 입은 하이넥 니트와 검정 팬츠, 검정 코트는 모두 구찌, 슈즈는 토즈. 테이블 위의 음식은 존쿡 델리미트, 술은 FJKOREA. 

오정세가 입은 화이트 셔츠와 옐로 베스트는 장광효 카루소, 보라색 팬츠는 보스, 시계는 쌍뜨오노레(at 갤러리어클락).

오정세가 입은 화이트 셔츠와 옐로 베스트는 장광효 카루소, 보라색 팬츠는 보스, 시계는 쌍뜨오노레(at 갤러리어클락).

여유의 서른아홉 오정세

 

오정세는 캐릭터 자판기 같은 남자다. 코미디면 코미디, 스릴러면 스릴러, 그리고 에로면 에로를 버튼 하나 터치에 맛깔나게 뽑아낸다. 올해 출연한 작품만 봐도 장르와 컬러의 폭이 가지각색이다. 누아르 스릴러 영화 <하이힐>에선 범죄 조직 2인자 역할로 있는 힘껏 인상을 썼고, 동시에 드라마 <개과천선>에서 김명민과 함께 훈훈한 브로맨스를 보여줬다. 갈지자를 그리는 이 필모그래피는 이미 5~6년째 부침 없이 이어지고 있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혹은 카메오 출연이든 매번 다른 얼굴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게다가 배우 오정세는 다작의 남자다. 역할 경중의 차이는 있었지만 출연 작품의 수가 한 해 평균 5편을 밑돌지 않는다. 2012년엔 드라마, 영화를 합쳐 무려 8편에, 그리고 2013년엔 애니메이션 목소리 출연까지 더해 10편에 모습을 보였다. 물리적인 에너지도 대단하지만 각각의 연기 완성도도 평균 이상이라 놀랍다. 아직 스타급 배우는 아니지만 이런 유형의 배우는 정말 흔치 않다.

오정세의 이 왕성한 행보는 올해도 여전하다. 이미 미니시리즈 드라마 한 편을 끝마친 그는 tvN 드라마 <아홉수 소년>에서 까칠한 라디오 PD를 연기한다. “잘나가던 인기 프로듀서였는데 방송 사고로 인해 하루아침에 전혀 다른 장르의 프로그램으로 좌천되는 남자예요. 연애 역시 먹구름인데 점쟁이가 ‘그나마 과거의 인연 중에 짝이 있다’고 하죠. 그러다 첫사랑을 다시 만나고 좌충우돌하며 성장해나갑니다.”

워낙 많은 작품을, 그것도 쉴 새 없이 하다 보니 <아홉수 소년>에 대한 자신의 연기 방식도 이미 정해놓았다. “이번엔 무표정이랄까요. 물론 아직 4회까지밖에 찍지 않은 상황이라 단정 짓진 않으려 하는데 일단 지금은 그래요. 내가 웃기고 슬픈 연기를 직접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웃기고 슬픈 상황 덕에 인물이 웃기고 슬퍼 보이는 거죠.” 집 안에서는 세 조카를 상대하고(아홉 살 강동구 역할로 아역 배우 최로운이 출연한다), 집 밖에서는 옛사랑과 맞붙어야 하는 그는 이번에도 분명 이전과는 또 다른 오정세를 보여줄 것이다.

배우 오정세에겐 사실 아홉수 시절이 꽤 길었다. 감독이자 배우인 양익준과 함께 ‘액터스21’ 모임을 하던 시절 그는 4년 동안 달랑 단역 두 개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힘들었던 시간을 그는 나름 의미 있었던 때라 회상한다. “그래도 조금씩 좋아졌기 때문에 아홉수였단 생각은 하지 않아요. 단역 하나라도 할 수 있게 되면 행복해했지 왜 안 풀릴까 좌절하진 않았어요.” 가령 작년에 경찰 2를 했는데 올해 회사원 1 역할을 했다면 ‘어, 올라갔네’라며 스스로 칭찬하는 식이었다. 이런 긍정적인 마인드 덕분에 오정세는 지난했지만 알찬 경주를 할 수 있었다.

그는 이제 4년에 한 편이 아니라 1년에 네 편 이상을 찍는 배우다. <아홉수 소년>이 한창 방영 중일 때에 극장엔 그의 또 다른 출연작 <타짜-신의 손>이 걸릴 것이고, 이후엔 이미 윤계상과 함께 촬영을 마친 영화 <레드카펫>이 찾아올 거다. 우리는 이제 언제, 어디서든 오정세의 연기를 볼 수 있다. “제가 짧게 보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 50년은 더 넘게 연기할 거고, 지금 작품이 종착역이 아니기 때문에 조급해 하지 않는 거죠. 그러다 보면 ‘인생의 작품’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거고요.” 오정세는 내년이면 39세가 된다. 어쨌든 또 한 번의 아홉수다. 하지만 이미 20년 가깝게 굴곡의 길을 타고 넘어온 그에게 이런 숫자놀음은 그저 시간의 장난이 아닐까. 오정세는 이미 아홉수를 이겨냈다.

육성재가 입은 스웨트셔츠와 브라운 색 가죽 팬츠, 검정 레깅스는 모두 푸시버튼, 슈즈와 스포츠 양말은 모두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헤어밴드는 나이키, 의자는 니코 앤드, 담요는 샌트럴 포스트.

육성재가 입은 스웨트셔츠와 브라운 색 가죽 팬츠, 검정 레깅스는 모두 푸시버튼, 슈즈와 스포츠 양말은 모두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헤어밴드는 나이키, 의자는 니코 앤드, 담요는 샌트럴 포스트.

패기의 열아홉 육성재

 

육성재는 막내다. 소속된 그룹 비투비에서도, 오정세, 김영광과 함께한 이날 <보그> 촬영에서도 나이가 가장 어렸다. 그러니 아직은 어딜 가든 먼저 인사를 해야 한다. 인지도도 높지 않아 아직 본인의 이름 육성재보다 ‘서인국 닮은꼴’로 더 많이 통한다. 곱상한 턱선과 웃을 때 입매가 확실히 서인국을 좀 닮았다.

하지만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빼놓지 않고 본 사람이라면 그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육성재는 <응답하라 1994>에 출연했다. 고작 3분 정도였지만. 고아라의 늦둥이 남동생 쑥쑥이로 출연한 이 드라마에서 그는 한 번은 하교 후 책가방을 멘 채 거실을 지나 걸어갔고, 또 한 번은 여자 친구와 함께 카페에 앉아 몇 마디 주고받았다. 하지만 이때 뿌린 노력이 이번에 결실을 맺었다. <아홉수 소년>에서 주연급의 역할을 맡은 거다. 극 중 등장하는 총 네 개의 아홉수 중 하나를 담당하는 열아홉 살 강민구란 소년. “작가님들이 전폭 추천해주셨다고 들었어요. 아무래도 <응답하라 1994> 때가 나쁘진 않았던 거겠죠?(웃음)” 아직은 한 마디, 한 마디에도 주위를 살피고 겸손을 챙겨야 하는 위치지만 욕심과 포부만큼은 결코 뒤지지 않는 남자다.

그런 육성재는 강민구와 꼭 닮았다. 약간의 허세와 애교, 그리고 다량의 장난기로 무장한 강민구란 캐릭터는 육성재 그 자체다. “시나리오를 보고 그냥 얘는 저라 생각했어요. 잘할 수 있겠다 싶었죠. 조금 ‘또라이’ 같은 부분도 비슷하고, 제가 약간 조증이 있어서 난리 치며 돌아다니는 것도 비슷해요.”

그래도 차이점은 있다. 매 경기마다 한판승을 이어가다 정작 중요한 시합에선 장에 탈이 나 그르치는 강민구와 달리, 육성재는 실전에 능한 타입이기 때문이다. 비투비 활동을 할 때도 그는 연습보다 무대에서 더 강했다. “관객이 없는 것보단 있을 때 잘하고, 리허설 때 실수해도 본방에선 안 틀리는 편이에요. 틀렸어도 안 틀린 척하고요.(웃음)”

그래서 첫 주연급 드라마임에도 걱정이 별로 없다. 차라리 고민되는건 난생처음 해보는 로맨스 연기와 감정의 컨트롤이다. “에이핑크의 초롱누나랑 러브 라인이 있어요. 근데 초롱 누나는 5년 전 연습생 시절부터 봐왔기 때문에 설렘이 너무 없을까 걱정이에요. 진지해야 하는데 웃음이 터질 것 같고.” 물론 초짜 단계이기에 연기 준비를 나름 철저히 하고 있다. 유도 선수 출신의 매니저에게 도움을 청해 몸을 만들었고, 매회 촬영이 끝나면 감독을 찾아가 “오늘 뭐가 부족했는지” 묻는다. 또 한 명의 아이돌 출신 배우의 등장이지만 육성재는 꽤 진지하다.

육성재가 속한 비투비는 유쾌한 보이 그룹이다. 그들의 첫 1위 후보곡 ‘뛰뛰빵빵’은 개구지게 방방 뛰는 댄스곡이었다. 촬영이 끝나면 일곱 명 멤버는 한 방에서 뒹굴며 지내는 숙소로 돌아온다. “저희가 가오 잡는 걸 못해요. 어울리지도 않고요.(웃음)” 그리고 육성재 역시 유쾌하다. 그는 질문에 항상 웃으며 대답했고, 말을 하지 않을 때에도 미소를 지었다. 연기를 병행하는 아이돌의 스케줄이란 게 지치고 힘들 만도 한데 피곤한 기색보단 의욕에 충만하다.

“가수가 너무 하고 싶었어요. 연기도 너무 하고 싶었고요. 그런데 처음 연기를 해보고는 정말 저랑 맞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본인은 “남동생 꾸미기를 좋아하는 누나 영향으로 연예인이 된 것 같다” 말하지만, 사실 그를 이 자리에 데려온 건 본인의 의지일 것이다. 육성재는 <아홉수 소년> 촬영과 동시에 9월부턴 비투비의 신곡 무대에도 선다. 그룹 활동은 그룹 활동대로, 연기와 개인 활동은 또 그 나름대로 그에겐 신나는 멍석이다. 물론 지금이야 이름을 알리고 소속을 밝히느라 바쁜 나날이겠지만, 뭐든지 처음 시작이 가장 힘차고 중요하지 않나. 이제 막 열아홉을 지나 스무 살이 된 육성재. 그가 롤모델이라 꼽는 JYJ의 박유천 같은 위치도 결코 못 오를 높이는 아니다.

김영광이 입은 스트라이프 패턴 셔츠와 팬츠는 모두 그레이하운드, 슬립온은 김서룡 옴므, 시계는 쌍뜨오노레(at 갤러리어클락).

김영광이 입은 스트라이프 패턴 셔츠와 팬츠는 모두 그레이하운드, 슬립온은 김서룡 옴므, 시계는 쌍뜨오노레(at 갤러리어클락).

무한 확장의 스물아홉 김영광

 

김영광은 꽤 괜찮은 텍스트다. 모델에서 배우로, 그리고 작품 하나하나 쌓아가며 만들어내는 필모그래피가 소년에서 남자로 성장하는 한 배우의 그럴싸한 드라마를 보여준다. 노희경 작가와 표민수 PD의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으로 데뷔한 그는 청춘의 좌충우돌(드라마 <화이트 크리스마스> <총각네 야채가게>)을 지났고, 짙은 사랑(드라마 <사랑비>)을 거쳤으며, 이후엔 결혼도 고민했다(드라마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 지난해엔 드라마 <굿 닥터>에서 어엿한 의사가 되어 수술을 집도했다. 6년간의 탄탄한 성장담이다. 그리고 김영광은 이제 병역의 의무를 다했다. 지난해 말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했던 그는 6개월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카메라 앞에 섰다.

<아홉수 소년>은 그의 복귀작이다. “편하고 재밌게 할 수 있는 작품 같았어요. 계속 일을 하다가 군인 신분이라 잠시 쉬고 있으니 정말 심심했거든요. 사람은 역시 뭔가 해야 할 게 있어야 힘이 나는 것 같아요.” 군복을 벗고 처음으로 임하는 작품이니 당연히 부담도 있다. 게다가 그가 연기하는 건 직장에선 탄탄대로지만 연애에선 좀처럼 마음을 열지 못하는 위기의 남자 강진구다. 아마도 지금 이 시점은 김영광이란 드라마의 기승전결 중 떨리는 ‘전’ 정도일 것이다.

<아홉수 소년> 속 강진구는 ‘썸’에는 능하지만 연애엔 ‘젬병’인 남자다. 여자 마음 읽기라면 단 한 번도 실패해본 적이 없는 그인데 유독 한 여자 앞에서만 우물쭈물한다. 그래서 배우 김영광이 애를 먹는다. “전체적으로 유들유들하고 내추럴한 건 닮았는데 그거 빼고는 다 달라요. 저는 여자한테 정말 힘들어해요. 좀 잘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안 되는 타입이죠. 가령 ‘내가 김영광인데’ 이러면서 ‘가오’ 잡고 싶어도 막상 하지는 못해요.” 여행사 기획팀에 근무한다는 극 중 설정도 쉽지는 않다. “일반 회사 안의 시스템이나 룰 같은 걸 모르다 보니 선배님들에게 조언을 많이 구하는 편이에요. TV나 영화 속 장면들을 참조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본래 내가 아닌 남을 연기하는 게 배우다. 김영광 역시 강진구란 캐릭터가 가진 허들을 그냥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사실 아홉수 같은 거 믿지 않아요. 들어본 적도 거의 없어요. 아마 저희 어머니, 아버지 세대에서 종종 얘기하셨겠죠.” 그래서 그는 시간, 성장, 이런 것에도 태연하다. 스스로 배우로서 얼마나 자랐는지, 얼마나 어른이 됐는지 의식하지 않는다. “웬만하면 흘러가는 대로 놔두는 편이에요. 체크하지 않아요. 그래야 어릴 적 순수한 감성 같은 걸 계속 가져갈 수 있으니까요. 어릴 때는 그냥 길을 지나가다가도 ‘와, 나무다’ 이러며 좋아하잖아요. 근데 이제는 그냥 ‘어, 나무네’, 혹은 나무가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가요. 어릴 때의 행복한 감성 같은 걸 잃고 싶지 않아요. 철없는 말일 수 있는데 어쨌든 빨리 늙고 싶진 않은 거죠.” 내년이 아홉수인 김영광이지만 역시나 별 의미 없는 숫자다. 여전히 그는 거리의 나무들이 좋고 해피한 남자다. 

김영광은 꿈에 대한 이야길 했다. 만화와 영화를 많이 보는 탓에 희한한 꿈을 많이 꾼다고 했다. 그의 어릴 적 꿈은 만화방 주인이었다. “이상한 가상 세계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어딘가로 가고 있어요.” 그리고 이런 꿈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사실 어른이 되면 꿈도 시시해지게 마련. 기상천외한 별난 꿈 대신, 나이가 들면 꿈속에서도 출근 중이거나 일을 하고 있다. 그건 세상의 룰, 자기만의 규칙 속에 스스로를 가두기 때문일 거다. 그래서 김영광은 최대한 자신을 열어두려 한다.

아홉수가 걸린 29세이든, 그 전초전인 28세이든 타고난 성정 그대로 살고 싶다. 하고 싶은 역할도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트로이> 속 브래드 피트처럼 거친 남자,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속 하비에르 바르뎀의 능글맞음, <허> 속 호아킨 피닉스의 혼잣말로 연애하는 연기 모두가 탐나는 그다. “얼마 전에 웨스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보면서는 저 벨보이 딱 한 번만 해봤으면 좋겠다 싶었어요.(웃음) 아주 재밌을 것 같았고, 꽉 짜여진 비주얼 속에서 제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죠.” 6년 전 <그들이 사는 세상> 현장에선 윤여정의 눈빛만으로도 긴장했던 그다. 이 정도면 괄목할 만한 진전 아닐까. 그렇게 그는 계속 성장할 것이다. 꿈꾸듯 욕심내고 만화의 상상력을 탐닉하며 사는 김영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