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공화국

요즘 한국 사회의 모든 사건들은 기승전으로 흘러가 치킨으로 귀결된다. 배고플 때나 즐거울 때는 물론, 슬프고 화가 날 때도 언제나 우리 곁엔 치킨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치킨은 음식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치렐루야’를 외치며 인터넷 광야에서 복음을 전파해온 치킨 예찬론자들은 그 기나긴 이야기의 첫 부분을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태초에 치느님이 치킨집을 창조하사 프라이드와 양념이 탄생했다.-닭세기 1장 1절.’ 국내 치킨의 원조는 61년 명동에 들어선 ‘명동영양센터’의 전기구이 통닭이다. 거리엔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풍요의 냄새였다. 닭백숙이나 삼계탕을 만들어 먹던 사람들은 노릇노릇하게 구운 통닭을 뜯으며 가난했던 과거에 안녕을 고했다. 바야흐로 고기의 시대였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77년엔 신세계백화점 식품부가 직접 운영한 국내 최초의 프랜차이즈 ‘림스치킨’이 생겼다. 닭의 종자 개량과 사료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 덕분에 육계 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해표식용유가 출시된 것도 70년대 초반이었다. 그야말로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생일이면 케이크와 함께 치킨이 상에 올랐다. 사위를 맞는 장모님들은 씨암탉을 잡는 대신 시장에 들러 펄펄 끓는 기름 솥에서 갓 튀겨낸 통닭을 샀다.

치킨이 치킨으로 불리기 시작한 건 ‘미국 남부식 프라이드 치킨’을 표방한 KFC가 국내에 상륙한 84년 이후부터다. 원래 치킨은 노예 생활을 하던 흑인들의 소울 푸드였다. 그 소박한 흑인 음식의 마스코트가 뚱뚱한 백인 할아버지라는 사실은 아이러니하지만, 태평양을 건너온 치킨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나둘 생겨나고 있던 국내 치킨 브랜드들도 미국식으로 이름을 개명하고 나섰다.

새빨간 양념을 온몸에 바른 채 당당히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에 맞선 용맹한 치킨도 나타났다. 양념치킨이다. 82년 대전에서 출발한 페리카나는 가장 먼저 양념치킨을 선보인 프랜차이즈 업체였다. “페리카나 치킨이 찾아왔어요. 정말 맛있는 치킨이 찾아왔어요.” 매우면서도 달짝지근한 양념치킨은 잘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양념때문에 닭 자체의 품질은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게 되었다. 냉동 닭이든 수입산이든 백세미이든 아이패드 사이즈보다 작은 철창에서 자란 기형 닭이든… 은혜로운 양념은 그 모든 것을 용서했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것도 80년대였다. 스포츠와 ‘치맥(치킨과 맥주)’은 곧 단짝 친구가 되었다. 클래식한 민무늬 치킨부터 KFC로 대표되는 크리스피 치킨, 살짝 한약 맛이 나는 엠보치킨 등 다채로운 치킨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졌다. 사람들은 컬러 TV 앞에 앉아 각종 치킨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다.

2002년 월드컵은 치킨 전성시대의 정점이었다. 프랜차이즈 치킨집도 부쩍 늘었다. 21세기 치킨 시장의 양대 산맥 BBQ와 네네치킨을 비롯해, 둘둘치킨, 또래오래, 보드람치킨, 멕시카나, 처갓집 양념치킨, 교촌치킨 같은 유명 브랜드를 포함, 현재 영업 중인 치킨 브랜드는 250여 개나 됐다.

하지만 한국 축구의 4강 신화는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그건 치킨 열풍도 마찬가지였다. 조류독감이 연이어 터졌다. 웰빙 바람도 불었다. 치느님 가라사대 “지방은 미워하되 치킨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건만, 프라이드치킨의 트랜스지방은 어느새 공공의 적이 되었다. 현재 전국의 치킨 전문점 수는 3만여 개. 편의점보다 많은 숫자다. 인구는 자꾸 줄어드는 마당에 먹는 데도 한계란 게 있다. 새로 개업한 치킨집 중 80% 이상은 10년 내 폐업한다.

특별한 전문 기술이나 지식이 필요 없고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도 일단 시작해볼 수 있으니까. 만만한 치킨이 막막한 우리의 미래다. 그래도 치킨은 맛있다. 여럿이서 한참을 배부르게 먹어도 값은 웬만한 디저트보다 싸다. 역시 치렐루야! 믿을 건 치킨뿐. 치킨은 주머니 가벼운 현대인의 종교가 된다. 프라이드와 양념과 간장의 이름으로 ‘치멘’. 그렇게 오늘도 치킨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