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잡이들의 나라

야생 동물보다 우리에 갇혀 생활하는 실험 동물들이 근시가 많다는 사실을 아는가?
가까운 곳만 바라보고 사는 현대인의 생활 패턴이 우리의 눈을 망가뜨리고 있다.



보건복지부(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하는 국민건강영양조사 중 2013년 말 국민건강통계 자료에 의하면(2008~2012년 조사 결과) -0.75 D 이하의 근시 유병률은 12~18세 그룹에서 80.4%로 가장 높고, 나이가 많을수록 감소해 70세 이상 그룹에서는 28.8%였다.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안과 최혁진 교수는 “경도 근시(시력에 미치는 영향이 미비한)까지 포함돼 과장된 면이 없진 않지만, 근시는 한번 진행되기 시작하면 개선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50~60년 전에 비해 근시 유병률이 상당히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말이다. 이제는 눈이 좋은 사람이 희귀 동물 취급을 받을 정도다. <보그> 편집부만 해도 13명 중 건강한 시력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 나머지는 모두 안경이나 콘텍트렌즈를 사용하거나 시력 교정술을 받았다. 눈이 나빠지는 데는 유전적 요인도 작용하지만(서양인보다 동양인의 근시 발병률이 높다), 현대에는 환경적 요인이 더 논란이 된다.

 

“시골(읍면 단위)에 거주하는 사람들보다는 도시(동 단위)에 거주하는 사람일수록, 소득 수준이 증가할수록 근시 유병률이 높습니다. 현대화된 생활 패턴과 근시 발생과의 연관성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죠. 특히 TV, 컴퓨터, 스마트폰 등 ‘근거리 작업’이 화두죠. 가까이 있는 물체를 보기 위해서는 수정체가 두꺼워지고 안구 뒤편에 압력이 증가하면서 구조적 변화가 생기는데, 이를 ‘조절’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조절력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가까운 물체에 집중하거나 장시간 그 상태를 유지하면 초점 이탈(망막보다 뒤편에 초점이 맺히는 현상)이 생기고 이를 보상하기 위해 근시가 된다는 가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모니터에 집중하다 필요 이상 눈을 긴장시켜 일시적으로 눈 앞이 흐려지는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겁니다. 이런 눈 피로 증상이 반복되면 당연히 눈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야생 동물보다 우리에 갇혀 생활하는 실험 동물들이 근시가 많습니다. 또 반복적인 근거리 작업이 근시를 유발할 수 있다는 병아리나 원숭이에 관한 실험 결과도 있습니다.”

근시가 너무 흔한 현대병이 되자 눈을 단련하면 건강해질 수 있다는 주장들이 주목받고 있다. 헤럴드 페퍼드 박사의 <당신의 눈도 1.2가 될 수 있다>는 전 세계적으로 1,000만부가 넘게 팔렸고, 나카가와 카즈히로의 <기적의 시력 회복법>은 일본 아마존 10년 연속 베스트셀러다. 이들의 주장은 안경, 콘택트렌즈, 외부 자극(근거리 작업, 심리적 스트레스)이 근시 진행의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이것이 외안근의 피로도를 높이고 그 결과 조절에 문제가 생겨 근시가 진행된다는 것. 따라서 보조기구(안경, 콘택트렌즈)를 벗고 안구 운동을 통해 눈의 피로와 긴장감을 낮추고 능력을 향상시키면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1940년대 초 베이트 박사가 처음 주장했는데, 이를 기반으로 NVT(Natural Vision Therapy), 미국시력연구소가 설립됐고, 현재까지 일반 근시 환자를 대상으로 현재까지 적용 시행하고 있다. 6주에 걸쳐 원점 근점 교차로 보기, 안구 회전운동, 눈 꼭 감기 등의 운동을 하루 30분씩 반복적으로 시행한다. 또 눈을 감은 상태에서 태양을 바라보는 등 빛을 쬐어주는 광선 치료도 눈 주위 조직을 이완시켜주는데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동양권에서 인기 있는 치료는 1950년대 소개된 중국의 전통 안구 운동법으로, 안구 주위의 혈점을 지압하는 방식. 현재에도 중국에서는 아동기 아이들에게 권장해 시행하고 있다. 또 안경 모양의 띠에 여러 개의 구멍을 뚫어 일시적인 초점 심도를 변화시켜 시력을 교정한다는 핀홀 안경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안구 운동은 그 작용 기전과 치료 효과에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눈 운동이나 감정 조절을 통해 조절을 풀어주고 긴장을 완화하는 것이 눈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일입니다. 하지만 근거리 작업이나 야외 활동에 소요되는 절대 시간이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훈련만으로 근시 진행을 억제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듭니다. 또한 이미 진행된 근시 환자가 안경을 쓰지 않는다면 초점이 맞지 않은 물체를 보기 위해 애쓰기 때문에 눈의 피로가 더 빨리 올 뿐입니다. 제대로 된 교정 안경을 쓰지 않을 경우 흐린 상에 의해 안구 길이가 더 늘어난다(근시 진행)는 연구 논문도 발표된 바 있습니다.”

안구 운동은 눈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요즘처럼 눈을 혹사하는 시대에는 더더욱. 틈틈이 앞서 설명한 간단한 눈 운동을 생활화하자. 그렇다고 일반적인 시력 교정술을 무시하고 안경을 버리고 안구 운동을 맹신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 오히려 근시 진행과 관련해 과다한 근거리 작업보다는 레저, 운동(실내에서 기구를 가지고 하는 운동이 아닌, 요트나 골프 같은 실외 운동)과 같은 야외 활동이 더 중요하다는 최근 논문 발표가 더 흥미롭다고 최혁진 교수는 설명했다. 즉, 주로 멀리 있는 물체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 야외 활동 자체가 근시 진행 억제 인자로 작용하는데, 근시 진행이 빠른 사람들일수록 이런 야외 활동 시간이 상당히 줄어들어 있었다는 것.

 

“유전적 요소는 바뀌지 않기 때문에 근시 발생과 진행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생활 환경을 바꿔야 합니다. 즉, 장시간 이어지는 과도한 근거리 작업은 가급적 줄이고, 야외에 나가 레저 활동을 즐길 수 있는 생활 패턴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특히 엎드린 자세나 어두운 곳에서 책, 스마트폰, TV를 보는 습관은 버리고, TV 화면과 모니터와는 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도록 합니다. 또한, 공부할 때 사람이 최고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평균 50분을 넘지 못하는 만큼, 50분 집중 후 5분~10분은 먼 곳을 보면서 눈의 과도한 조절을 풀어줍니다. 공허한 하늘처럼 뚜렷한 대상이 없는 곳을 멍하니 바라보면 조절을 풀어줄 수 없기 때문에, 목표가 확실한 먼 산이나 먼 지형물을 바라보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