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클링 쇼츠의 등장

90년대를 추억하고 지극히 평범함을 추구하는 놈코어의 연장선일까?
가까이하기엔 너무 멀게 느껴졌던 사이클링 쇼츠가 패션 무대 위로 올라섰다.



요즘 매끈한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달리는 건 꽤 스타일리시한 취미다. ‘사이클 시크’라는 단어가 위키피디아에 오를 정도니까. 그렇다면 허리부터 엉덩이와 허벅지를 거쳐 무릎 바로 위까지 쫙 달라붙는 사이클링 쇼츠는? 분명 자전거 탈 때 입으라고 만든 쇼츠지만,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선뜻 입지 않는다. 쫀쫀한 ‘스판’ 소재 쇼츠를 입어서 줄일 수 있는 공기의 저항, 그 덕분에 가속도를 낼 수 있는 속도는 둘째치고, 부담스러운 실루엣이 주는 민망함이 더 크니 말이다. 사이클 선수가 아닌 이상 누구라도 굳이 사이클링 쇼츠를 입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행여 마음이 있다 해도 주위 시선 때문에 ‘가까이하기엔 너무나 먼 당신’이었다. 그런데 지난 7월, 샤넬 꾸뛰르 무대에 이 사이클링 쇼츠가 등장했다. 심지어 상당히 우아한 자태로! 트위드, 펠트 혹은 스팽글로 만든데다가 여성스러운 미니 드레스 아래 매치하니 전혀 색다른 느낌. 실루엣부터 길이까지 영락없는 사이클링 쇼츠지만 한번쯤 입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패션과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사이클링 쇼츠에도 전성기는 있었다. 더 크고 화려하며 과장되게 입는 것이 관건이었던 80년대와 정반대 노선을 걷기 시작한 90년대로 돌아가보자. 모든 것이 갈수록 작고 단순해지더니, 결국엔 입은 듯 입지 않은 듯한 사이클링 쇼츠까지 덩달아 인기를 얻게 됐다. 1995년 작 하이틴 영화 <클루리스>에는 소위 ‘잘나간다’는 여학생들이 모두 보정 속옷을 연상시키는 타이트한 쇼츠 차림으로 출연한다(여기에 크롭트 톱과 니삭스까지!). 그런가 하면 데미 무어는 사이클링 쇼츠와 뷔스티에 톱, 그리고 금빛 꽃무늬 드레스 차림으로 오스카 시상식 레드 카펫을 밟았다. 누구도 자전거를 타는 것에 관심 없었지만, 모두가 자전거를 탈 때 입는 쇼츠에는 관심이 많았다는 사실이 밝혀진 셈이다.

그 사이클링 쇼츠가 재등장한 건 지난 2010년 샤넬 리조트 컬렉션. 밑단에 레이스가 장식된 타이트한 검정 쇼츠는 누가 봐도 엄마 옷장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속옷과 똑 닮은 모습. 하지만 알렉사 청이 바로 그 사이클링 쇼츠를 여러 행사에 입고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흰 블라우스와 샤넬 트위드 재킷, 혹은 남성적인 루이비통 밀리터리 재킷 아래 살짝 보이는 검정 레이스 쇼츠는 꽤 관능적이었으니까(알렉사는 여기에 늘 반투명 검정 스타킹을 신었다). 이어 루이 비통과 프라다 봄 컬렉션에서도 사이클링 쇼츠가 등장했다. 리한나가 마이크로 쇼츠 아래 시스루 사이클링 쇼츠를 겹쳐 입고 다닌 것도 이때부터다. 

 

그리고 2014년 가을, 디자이너들은 다시 한번 사이클링 쇼츠를 부활시켰다. 몇 시즌 전부터 스포츠웨어를 재해석한 룩이 런웨이에서 가속도를 내고, 평범한 관광객처럼 보이려는 놈코어 스타일이 트렌드로 떠오른 데서 이미 예측된 일인지도 모른다. 지난봄 데스켄스 띠어리는 산뜻한 색상의 사이클링 쇼츠를 좀더 폭이 넓은 쇼츠, 시스루 쇼츠, 시스루 롱스커트 등과 레이어드했다. 오프닝 세리머니의 프리폴 컬렉션에는 소개팅 자리에 입어도 될 여성스러운 새틴 소재로 등장했고, 묘기 자전거(BMX)를 즐기는 소녀들에서 영감을 얻은 케이티 힐리어의 MBMJ 가을 컬렉션에도 실용적인 사이클링 쇼츠가 눈에 띄었다. 매 시즌 쇼츠가 빠지지 않았던 알렉산더 왕은 T 바이 알렉산더 왕의 프리폴 컬렉션에 니트 소재 사이클링 쇼츠를 포함시켰고, 알렉산더 왕의 가을 컬렉션엔 가죽을 섬세하게 레이저 커팅한 버전을 추가했다. 또 겐조 2015 리조트 컬렉션에는 촘촘한 밴딩 장식으로 좀더 타이트한 사이클링 쇼츠가 등장했다. 한편 모스키노의 그물망 사이클링 쇼츠는 최근 리타 오라가 가장 즐겨 입는 아이템. 탑샵, 아메리칸 어패럴 등 SPA 브랜드는 발 빠르게 다양한 사이클링 쇼츠를 준비했다.





그렇다면 사이클링 쇼츠는 어떻게 입어야 민망하지 않고 폼이 날까? 디자이너들과 패션 매거진들이 아무리 트렌드라고 주장해도 현실에서는 여전히 보정 속옷 차림으로 보일 우려가 크다. 또 자칫하다간 자전거 동호회 멤버로 오해받기 쉽다. 비법이라면 엉덩이까지 가리는 상의를 활용하는 것! 박시한 롱 티셔츠는 무척 편하지만 헬스클럽에 나온 착각을 일으키기에 알렉사 청처럼 롱 블라우스와 재킷, 혹은 샤넬 꾸뛰르처럼 미니 드레스와 매치하는 편이 훨씬 멋스럽다(늘씬한 종아리만 드러낼 때 입는 사람은 물론, 보는 사람의 마음도 편하다). 

 

사이클링 쇼츠 위에 또 다른 하의를 레이어드해도 좋다. 화려한 컬러나 패턴의 쫙 달라붙는 쇼츠 위에 좀더 넉넉하고 짧은 쇼츠를 레이어드하는 식. 디스트로이드 데님 쇼츠를 입는 것 역시 아이디어다. 데스킨스 띠어리처럼 시스루 팬츠나 시스루 롱스커트를 레이어드해 안쪽의 사이클링 쇼츠가 살짝 보이게 하면 된다. 이때 안쪽 쇼츠를 과감한 컬러로 선택하고 바깥쪽 팬츠나 스커트는 모노톤으로 입어 강렬한 대비를 이루도록 한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확실하게 즐기는 방법은? <클루리스>의 주인공들처럼 크롭트 톱과 함께 입는 것. 물론 그녀들처럼 날씬해야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딱 두 가지만 기억한다면 올가을 사이클링 쇼츠도 얼마든지 도전할 만하다. 트위드, 새틴, 펠트, 니트 등 드러내기 적절한 소재를 선택할 것(그물망, 시스루, 스판덱스 등은 적절한 소재가 아니라는 뜻)! 단, 런웨이를 걷듯 자신감 넘치게 워킹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