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 부츠 이야기

캣 부츠, 고고 부츠, 잭 부츠, 비틀 부츠…
60년대 대유행했던 부츠들이 올가을 패션 레이더망에 잡혔다.
올가을 60년대 스타일링에 포인트가 될 네 가지 레트로 부츠 이야기.

날씬한 고양이를 닮은 캣 부츠들. 왼쪽 위 페이턴트 부츠는 생로랑(Saint Laurent), 레오퍼드 프린트 부츠는 마르니(Marni),금속 힐 장식 부츠는 로저 비비에(Roger Vivier), 가장 아래 부츠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


Cat Walk


1961년 9월호 미국 <보그>는 그해 가을 파리 컬렉션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꼽아 소개했다. 피에르 가르뎅의 하운드투스 코트, 샤넬의 트위드 스커트 수트 등 당대 파리를 호령하던 디자이너들의 옷들이 차례로 어빙 펜의 앵글에 담겨 화보에 실렸다. 당시 미국 <보그> 편집장 제시카 데이브스는 이렇게 선언했다. “여성의 몸이 가진 선을 새롭고 부드럽게 해석하는 것이 가장 새로운 패션이다!” 그리고 덧붙인 한마디. “디올 쇼에는 가장 환영할 만한 아이디어가 고양이처럼 걸어 나왔다.” 이는 로저 비비에가 디자인한 4cm 힐의 트위드와 가죽이 믹스된 부츠를 말하는 것으로, 키튼힐과 부츠가 만난 캣 부츠(Cat Boots)였다. <보그>가 열광했던 이유는 하이힐에 익숙한 여성들에게 편안함을 선사했기 때문. 그때나 지금이나 편안함은 때때로 ‘스타일’ 보다 우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올가을 키튼힐의 유행과 함께 캣 부츠도 우리 곁에 돌아왔다. 잊혀진 캣 부츠 유행을 되살린 건 생로랑의 에디 슬리먼. 봄 시즌부터 선보인 생로랑의 날렵한 캣 부츠는 가을까지 큰 인기를 끌 전망이다. “구두 한 켤레로 전체 룩이 바뀌는 게 재밌지 않나요? “스타일 닷컴의 마켓 디렉터인 마리나 라루드는 생로랑 캣 부츠를 자신의 쇼핑 리스트에 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이 구두는 화이트 진, 파티 드레스, 화이트 가죽 스커트 등 어떤 옷에 입어도 잘 어울릴 겁니다.” 그리고 루이 비통의 니콜라 제스키에르, 로저 비비에의 브루노 프리소니, 마르니 등도 뒤따라 캣 부츠를 선보였다. 물론 키튼힐의 캣 부츠가 어울리려면 날씬한 종아리는 필수. 그리고 샴 고양이처럼 사뿐거리는 걸음걸이도 필수!



워커 부츠의 원조였던 잭 부츠. 왼쪽 위 벨트 장식 부츠는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오른쪽 위 부츠는 지안비토 로시(Gianvito Rossi at La Collection), 푸른빛이 감도는 부츠는 루이 비통.


Jack the Rider


60년대 패션, 60년대 스타일을 가장 세련되게 보여주는 영화는? 오드리 헵번을 영원한 패션 아이콘으로 만들어준 <티파니에서 아침을>, 뜨거운 런던을 그대로 담아낸 안토니오니의 <욕망>, 파리 패션의 전성기를 보여준 <쉘부르의 우산>! 그리고 청춘과 방황을 대표하는 영화 <이지 라이더>도 있다. 전설적인 영화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이지 라이더>는 60년대 젊음을 결집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했다.

 

그렇다면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 자유로운 젊은 영혼들의 방황을 그린 그 영화 속에서 눈여겨볼 만한 패션 아이템은?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주인공들이 신고 있던 라이더 부츠! 승마용 라이딩 부츠보다는 투박한 이 바이크 부츠의 원조는 일명 ‘잭 부츠(Jack Boots)’라 불리는 군화. 1800년대 영국군 군화로 탄생해 세계 대전과 냉전 시대를 거치며 강압적인 폭력의 상징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었지만, 패션의 관점에선 이런 분석이 필요 없다. 케이트 모스가 즐겨 신는 터프한 ‘워크 부츠’란 설명 하나면 충분할 듯. 지퍼나 버클 등 여밈 장식이 없는 것이 특징으로, 요즘엔 스터드와 버클 장식이 종종 추가된다. 펑크족의 상징인 닥터 마틴, 샤넬이 댈러스 컬렉션에서 선보였던 카우보이 부츠 역시 잭 부츠의 변형이다.



60년대의 자유분방함을 상징하던 고고 부츠. 빨강 스웨이드 부츠는 로저 비비에(Roger Vivier), 검정 페이턴트 부츠는 구찌(Gucci), 버건디 컬러 부츠는 샤넬(Chanel), 스터드 장식 부츠는 생로랑(Saint Laurent).


Mod Mood


“파리의 다른 디자이너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부츠를 선보였다. 하지만 그의 부츠는 고적대장이 신는 부츠처럼 종아리를 살짝 감싸는 새로운 높이였다. 그는 그 부츠를 반짝이는 화이트 컬러와 블랙 악어가죽 등의 소재로 선보였다.” 1963년 7월 29일 <뉴욕 타임스>는 파리 패션을 들썩이게 한 앙드레 꾸레주의 데뷔 컬렉션을 호평하며, 그의 새로운 부츠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2년 뒤 5월 28일 이 신문은 꾸레주 스타일의 영향력에 대해 다시 기사를 썼다. “패션의 선지자인 그도 자신이 뉴욕 패션 풍경에 이토록 큰 영향을 끼칠지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화이트 꾸레주 부츠는 당시 뉴욕 멋쟁이들의 유니폼이 됐던 것이다. “낮은 힐의 화이트 부츠는 짧은 드레스의 프로포션을 교정해주고, 지나치게 속살이 많이 드러나는 것을 막아준다.”

 

이른바 ‘고고 부츠(Go-Go Boots)’로 불렸던 이 낮은 굽의 부츠는 60년대 초반 패션계를 평정했다. 낸시 시나트라는 ‘These Boots are Made for Walkin’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발표했고, 부츠를 신고선 양팔을 위아래로 흔드는 ‘고고 댄스’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카트린 드뇌브, 티나 터너, 그리고 재키 오까지 당대 영화와 뮤직, 패션 스타들 모두 고고 부츠의 팬이 됐다. 이번 시즌 60년대 초반 스타일을 재현한 구찌와 생로랑이 올가을 선보인 부츠 역시 고고 부츠! 낮은 힐에 반짝이는 가죽 소재 부츠들은 60년대 멋쟁이들이 신던 부츠를 꼭 닮아 있다. 패션 칼럼니스트 사라 무어는 생로랑의 고고 부츠를 지켜본 뒤 이렇게 탄식을 내뱉었다. “생로랑 부츠의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열 번째 버전을 보면 누구나 유혹당하지 않을 수 없다.”

 



폴 맥카트니와 존 레논의 감각으로 탄생한 비틀 부츠. 왼쪽 위 스웨이드 부츠는 생로랑, 오른쪽 위 부츠는 콜 한(Cole Hann), 오른쪽 아래 부츠는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왼쪽 아래 스터드 장식 부츠는 쟈딕앤볼테르(Zadig&Voltaire).


Rubber Sole


“여성용 펌프스나 끈이 달린 신발에 붙여지는 3~5cm 정도 높이의 굵고 안정성이 좋은 수직힐.” 패션전문자료사전에서 ‘쿠반힐(Cuban Heel)’을 검색하면 이런 주석이 붙는다. “대부분의 쿠반힐은 위쪽이 넓고 아래로 내려올수록 살짝 좁아지는 구두 굽을 가리킨다.” 갑자기 왜 쿠반힐이냐고? 1961년 10월 리버풀 출신의 영국 청년 두 명은 런던 코벤트 가든 근처에 자리한 구두 가게 ‘아넬로&다비드(Anello&Davide)’에서 구두를 주문했다.

 

두 청년의 이름은 바로 존 레논과 폴 맥카트니! 당시 유행하던 첼시 부츠에 쿠반힐을 더한 이 새로운 부츠는 60년대 비틀즈가 절정의 인기를 누리게 되면서 ‘비틀 부츠(Beatle Boots)’로 명명된 채 대유행하게 됐다. 그리고 50년 뒤인 2014년 가을, 다시 한번 비틀 부츠는 새로운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아크네 스튜디오의 ‘Jensen’과 ‘Pistol’ 부츠가 대표적 예로, 매장에 입고되는 순간 곧 품절된다. 둘 다 비틀 부츠에 뿌리를 두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로의 ‘Kate’, 쟈딕앤볼테르의 ‘Teddy’ 역시 마찬가지. 샬롯 갱스부르와 송혜교가 즐겨 신는 이자벨 마랑의 스웨이드 부츠 역시 비틀 부츠를 해석한 것이다. 비틀 부츠와 사촌 관계라 할 수 있는 부츠도 덩달아 인기다. 앞코가 뾰족하고 납작한 ‘윙클피커즈(Winklepickers)’가 그것. ‘소라 따개’라는 닉네임도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