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60년대의 주인공, 베티와 룰루

2016.03.17

by VOGUE

    60년대의 주인공, 베티와 룰루

    이브 생 로랑을 다룬 최신 영화 두 편 덕분에 그의 좌우를 차지했던 두 여인에게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브의 남성성과 여성성의 발현이자 올가을 60~70년대 유행의 두 주인공, 베티와 룰루를 소개한다!

    “아름답고 현대적이며 날씬하군요!” 분명 누가 누군가에게 수작 부리는 냄새가 난다. “목걸이 멋진데요?” 어이구, 한술 더 뜨시네? 하지만 막상 알고 보면 일말의 흑심이나 저의라곤 없는, 그저 아름답고 멋진 여인을 향한 순수한 찬양이자 진심 어린 칭찬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건 청년 이브 생 로랑이 베티 카트루(Betty Catroux)와 룰루 드 라 팔레즈(Loulou de la Falaise)와의 첫 대면에서 각각 건넨 멘트였으니까. 게다가(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얘기지만) 생 로랑은 베티와 룰루에게 이성으로서의 흥분이 요만큼도 생기지 않는 남자였으므로 걱정은 금물!

    부연 설명을 곁들이자면, 그건 현재 상영 중인 영화 <이브 생 로랑>의 두 장면에서 나오는 대사들(그토록 ‘샤이’한 생 로랑이 두 여인에게만큼은 아주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게 놀라울 정도). 당시 파리에서 최고로 잘나가는 바에 들른 청춘의 생 로랑은 홀에서 춤추는 여자에게 홀딱 반하고 만다(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조인성이 클럽에서 춤추는 공효진에게 단숨에 맘을 빼앗겼듯). 스모키 아이에다 앞머리를 아무렇게나 툭 자른 금발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채 춤추던, 검정 팬츠 수트 차림의 그녀는? 바로 베티 카트루! 그리고 얼마 후 친구들과 함께 자신의 모로코 별장에서 놀던 생 로랑은 파티에 초대된 어떤 여인의 목걸이를 툭툭 건드리며 수작을 건다(남자가 여자의 외모를 칭찬하는 것만큼 달콤한 소네트가 또 있을까). 그녀는 꽃무늬 두건을 머리에 쓰고 온갖 보석으로 치장한 어여쁜 에스닉 걸, 룰루 드 라 팔레즈!

    이브는 좌청룡우백호를 거느리듯, 밤낮 오른팔과 왼팔에 룰루와 베티를 대동한 채 보란 듯이 파리 일대를 쏘다녔고(바꿔 말하면, 심신이 허약한 패션 천재를 두 여인이 늘 호위무사처럼 보필했다고 볼 수 있겠다), 공식 뮤즈로서 두 여인의 임무는 이브의 디자인 세계를 절반씩 공평하게 나눠 갖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됐다(서로의 묵인 아래 진행된 ‘생 로랑 양다리 사건’ 혹은 ‘패션 삼각 관계’?). 그 결과가 ‘르 스모킹 vs. 에스닉’의 매혹적인 균형과 아름다운 대치(나중에 룰루는 생 로랑 하우스에 입사해 디자인실 직원으로 성실히 일했고, 베티는 생 로랑이 하직하는 날까지 그의 패션쇼 프런트 로를 충직하게 지켰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두 여인이 생 로랑 안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각각 구체화시켰다는 것. 바로 이 부분이 올가을의 빅 트렌드인 60년대와 70년대 잔상에 교묘히 섞여 있으니, 2014년 현재 이 두 여인보다 핫한 패션 아이콘은 없을 것이다(현재로선 60년대 등쌀에 살짝 기죽어 있으나, 그 기운이 한풀 꺾이면 70년대가 곧장 치고 올라갈 듯).

    사실 패션 안에 내재된 ‘남과 여’ 속성은 시대상은 물론, 디자이너의 취향에 따라 매 시즌 다른 형상으로 손질되고 다듬어졌다. 그런 맥락에서 남자로 태어나 여자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에게 ‘뮤즈’는 상징성을 뛰어 넘는 절대적 존재. 특히 여자가 아닌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로서 이브에게 룰루와 베티는 자신 안에 숨은 여성성과 남성성의 발현이자 결정체였다. 한마디로 이브의 모든 것! 그렇다면 이번 시즌(세계적으로 두 편의 이브 생 로랑 영화가 상영되고 있고, 또 한 편이 곧 개봉을 앞둔 지금), ‘룰루와 베티의 화양연화’는 패션 안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을까?

    먼저, 곱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이미지, 선명한 원색과 꽃무늬와 에스닉, 과감한 주얼리에 탐닉하던 ‘룰루 스타일’은 당대 로맨티스트들의 감각과 재치에 의해 계승되고 있다. 레오퍼드로 야성을 곁들인 지방시, 60년대 이탈리아 여류화가들에게서 영감을 얻은 발렌티노, 원초적 야성미를 보여준 알렉산더 맥퀸, 체크와 그래픽 패턴의 사카이, 주황색 열대 꽃들을 활짝 피운 드리스 반 노튼, 다양한 초록빛 식물학 강의였던 에르메스, 보랏빛 꽃송이들을 표현한 니나 리치, 시칠리아의 빨간 망토 아가씨들을 불러들인 돌체앤가바나, 그리고 타쿤, 안나 수이, 버버리 프로섬 등등. 보시다시피 브랜드와 디자이너 각자의 성향대로 룰루 드 라 팔레즈만의 로맨틱한 여성성과 에스닉이 런웨이에 만발했다.

    그렇다면 섹시하며 도발적이며 거침없는 옷차림, 매끈하게 재단된 흑백 대비는 물론, 당시에도 가슴 노출 따위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베티 스타일’은? 피터 던다스가 테일러링 솜씨를 드러낸 드 에밀리오 푸치의 매끈한 벨벳 팬츠 수트, 라프 시몬스의 남성적 매력이 발현된 디올의 더블 브레스트 수트, 에디 슬리만의 21세기 베티였던 생 로랑의 쁘띠 르 스모킹, 올리비에 루스테잉의 발맹 군단에 합류한 블랙 사파리 룩, 도나텔라 베르사체의 메두사 걸들이 갖춰 입은 베르사체의 60년대식 장교 제복, 프리다 지아니니의 고고 걸 추억이 반영된 구찌의 60년대 팬츠 수트, 그리고 하이더 아커만, 안토니 바카렐로, 로베르토 카발리, 이자벨 마랑, 톰 포드 등등. 지독하게도 남성적인 ‘베티 스타일’은 놈코어 트렌드와 맞물려 탄력 받는 중이다.

    한편 생 로랑이 1968년에 아프리카 수렵복을 재해석해 대히트 친 사파리 룩에도 두 여인의 기질이 그대로 반영됐다. 60년대를 정의한 사진 한 컷을 보자(생 로랑 리브고시 매장 앞에서 셋이 촬영한 기념사진). 먼저 이브의 왼쪽: 60년대풍 초미니 사파리 원피스에 싸이하이 부츠를 신은 채 커다란 선글라스를 낀 다음 버클 벨트에 스카프를 걸쳐 맸다. 지극히 베티다운 무표정(프랑코 루바텔리가 아프리카 허허벌판에서 찍은, 베르슈카가 엽총을 어깨에 짊어지고 찍은 <보그> 사진 속 사파리 룩)! 다음은 이브의 오른쪽: 호주머니가 달린 유틸리티 재킷에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A라인 치마, 여기에 미디힐과 어깨에 길게 멘 핸드백까지. 하지만 스카프는 베티처럼 벨트에 늘어뜨리지 않고 룰루의 상징인 반다나로 연출했다. 그녀 특유의 살인미소와 함께(이란성 쌍둥이 같은 여인들에게 양쪽 어깨와 팔을 내준 이브는 세상을 다 가진 듯 더없이 흡족한 표정이다).

    2014년을 패션영화의 관점에서 들여다봐도 올해는 단연 이브 생 로랑의 해다. 지난여름에 공개돼 현재 상영중인 자릴 라스페르 감독의 <이브 생 로랑>이 있는가 하면, 가을엔 바르트랑 보넬로 감독의 <생 로랑>이 개봉 예정이니까. 이와 함께 영화 속 공동 ‘여주’라고 해도 될(물론 전적으로 ‘남주’를 위한 영화들이지만) 두 명의 여인에게도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룰루와 베티의 상반된 스타일은 기본, 아예 두 편에서 룰루와 베티 배역을 맡은 여배우들과 그들의 영화 의상까지 낱낱이 비교하는 재미까지 누릴 수 있다(IMDb에서 이브 생 로랑을 검색하면 그에 관한 영화가 꽤 검색된다).

    두 편의 영화 가운데 <생 로랑>은 예고편만 공개됐지만, 일단 배역만 놓고 보자면 <생 로랑> 쪽이 눈요깃거리가 훨씬 더 많다(브랜드 역시 ‘이브 생 로랑’이 아닌 ‘생 로랑’ 시대). 미우미우 걸이자 프랑스의 새로운 관능, 레아 세이두가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룰루 드 라 팔레즈, 그리고 펜디의 오렌지색 모피를 입고 작년 11월 <보그 코리아> 표지에 나온 톱 모델 에멀린 발라드가 섹시하기 짝이 없는 베티 카트루. 천하의 둘도 없는 희대의 패션 바람둥이 겸 칼 라거펠트와 이브 생 로랑 사이에서 문란함을 즐기던 자크 드 바셔 공작은 루이즈 갸렐, 심지어 우리의 영웅 이브는 가스파드 울리엘! 이들은 지난여름 칸 영화제에서도 한껏 모양내고 한꺼번에 나타나 베스트드레서 군단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에 비해 <이브 생 로랑>은 주인공 피에르 니네이의 외모만큼이나 여러 면에서 연약하다. 루라 스메트가 룰루, 바리 드 빌레펑이 베티(영화광이 아니고서야 다들 “누구신지?”라고 할 만한 배우들이다).

    자, 어디를 봐도 룰루와 베티의 세상이다. 짧고 구불거리는 짙은 갈색 머리와 똘망똘망하고 예쁜 얼굴, 여기에 어깨를 드러낸 불그죽죽한 꽃무늬 시폰 원피스를 휘날리던 룰루, 가끔 머리에 큰 꽃을 꽂거나 귀고리, 목걸이, 팔찌, 반지 등을 ‘투머치’로 연출하며 “원색과 에스닉은 나 룰루 드라 팔레즈로부터!”라고 선언하듯 모든 것의 충돌을 즐긴 룰루, 한마디로 희대의 패션 로맨티스트였던 룰루! 이에 반해 흑백 위주의 팬츠 수트를 빼입고 누구든 내리깔고 보는 시선만으로 좌중을 압도했던 베티, 남자를 사랑하는지 여자를 더 사랑하는지 애매모호했던 태도의 베티, 이브의 최대 걸작인 르 스모킹의 뮤즈였던 베티! 이렇듯 남성성과 여성성, 검정과 꽃무늬, 똑 떨어지는 테일러링과 하늘거리는 시폰 자락 등 서로 빗대면 빗댈수록 흥미로울 뿐. 내친김에 요즘 패션 아이콘 가운데에서 현대판 룰루와 베티를 선정한다면? 돌체앤가바나의 형형색색 꽃무늬 시폰 원피스를 입곤 낙천적으로 웃는 안나 델로 루쏘? 발맹에서 맞춘 검정 팬츠 수트를 입고 긴 머리를 헝클어뜨린 채 무표정한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엠마뉴엘 알트?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신광호
      사진
      Kim Weston Arnold, James Cochrane, Indig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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