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난초로 가득한 패션 정원

2016.03.17

by VOGUE

    난초로 가득한 패션 정원

    오랫동안 럭셔리와 이국적 아름다움을 상징했던 난초.
    이 신비의 꽃이 지금 가장 패셔너블한 꽃망울을 터트렸다.
    난꽃 향으로 가득한 패션 정원.

    지난 7월 7일, 파리 로댕 미술관 정원에 원형의 우주선 하나가 착륙했다. 디올의 라프 시몬스가 상상한 미래적인 원형 무대가 올가을 꾸뛰르 쇼장으로 마련된 것이다. <2002 스페이스 오딧세이>에 등장할 듯한 새하얀 원형 공간의 백미는 벽을 장식한 15만 송이의 새하얀 난꽃. 플로리스트 마크 콜레는 난초로 장식된 디올 우주선 아이디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투명함을 창조하고 싶었습니다.” 파리의 플라워 테크니션인 에릭 쇼뱅과 함께 완성한 공간의 주제는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아주 가벼운 느낌 또한 원했습니다. 이를 위해 흰색 호접난(Phalaenopsis Orchids)으로 꾸민 건 적절했죠. 페미닌한 이미지와 함께 외계적이고 미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었어요. 마치 거울 벽을 타고 오르는 하얀 거미 군단처럼 보이지 않나요?”

    당대 패션 현학자인 라프 시몬스가 난초를 선택하면서 이 우아한 꽃이 지금 패션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개업식이나 승진 선물로 받는 꽃, 혹은 중년들의 취미 정도로 여겨지던 난초가 아닌, 런웨이에 오르는 귀하신 몸,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던져주는 소중한 모티브가 된 것이다. 펜디의 칼 라거펠트 역시 난초에서 이번 시즌 아이디어를 얻었다. 모피 코트와 머플러 위에 난초를 코사지처럼 장식했다. 멀리서 봤을 땐 코사지 장식이 아닌가 싶었지만 라거펠트는 진짜 흰색 호접난을 고집했다(쇼가 끝나고 백스테이지에 들어가 보니, 한쪽 테이블 위에 아직 시들지 않은 호접난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 ‘Violets for Your Fur’의 가사 속 제비꽃을 모피에 장식한다는 내용과 함께, 먼 길을 떠나는 여인에게 꽃을 장식해 선물하는 이태리의 오랜 전통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한 것이다. “난초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만큼 감성적으로 강렬한 건 없죠.” 호평에 힘을 얻은 라거펠트와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는 내년 봄 리조트 컬렉션에서도 다양한 난초 프린트와 3D 장식을 더했다.

    어디 펜디뿐일까. 올가을 캣워크 여기저기에서 난초 장식이 유난히 돋보였다. 셀린의 피비 파일로는 3D 느낌의 모던한 난초 코사지를 니트 스웨터와 코트 깃 위에 장식했다. 프린트의 귀재 드리스 반 노튼 역시 보랏빛 난초 코사지로 스타일링을 마무리했다. 이런 패션계의 난초 사랑은 이미 예측된 일이었다. 팬톤은 올 초 ‘래디언트 오키드(Radiant Orchid)’라는 보랏빛 컬러를 올해의 색으로 제안했다. “자홍과 보라, 분홍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래디언트 오키드는 자신감, 기쁨, 사랑, 건강을 상징한다.” 팬톤의 색상 연구소 디렉터인 리트리스 아이즈먼은 난초만이 머금을 수 있는 보랏빛에 대해 설명을 이었다. “특히 래디언트 오키드의 장밋빛 컬러는 피부 위에서 화사하게 빛나고, 남녀 모두에게 건강한 빛을 선사한다.”

    물론 패션계는 오래전부터 난초를 사랑했었다. 무슈 디올은 첫 쇼를 열기 전날 밤, 파트너였던 마르셀 부삭에게 검정과 하얀 난초로 꾸민 대형 난초 장식으로 감사를 전했고, 70년대 디스코의 제왕 할스턴은 사무실을 꾸미기 위해 난초 구입에만 1년에 15만 달러 이상을 썼다(친구의 생일에는 난초 화분과 코카인을 닮은 봉투를 함께 선물했다). 알렉산더 맥퀸은 지방시의 꾸뛰르 무대를 위해 흑인 모델 알렉 웩의 드레스에 생난초를 꽂았고, 필립 트레이시가 난초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모자 컬렉션 역시 역작이었다(생전의 이자벨라 블로우가 자주 쓰고 다녔다). 또 톰 포드가 처음 선보인 향수 이름은 ‘Black Orchid’. 한편 세상에서 가장 다양한 난초 종자를 보유하고 있는 싱가포르는 구찌 프리다 지아니니를 위한 교배종 난초를 탄생시켰고, ‘파라반다 프리다(Paravanda Frida)’라는 이름의 난초 개발에 보답하듯 지아니니는 그 난초를 모티브로 캡슐 컬렉션을 선보였다. 리차드 채와 오스카 드 라 렌타 등의 취미가 난초 가꾸기라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저는 싸구려 같고 못생긴 꽃에 꽂혀 있습니다.” 디올 라프 시몬스의 꽃을 책임지는 마크 콜레는 최근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전했다. 난초를 자주 사용한 것(시몬스의 질 샌더 마지막 컬렉션과 디올 데뷔전에서 모두 난초를 사용했다) 역시 같은 이유다. 덕분에 막 오픈한 사무실 한 편에나 있을 법한 난초들이 패션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최근 디올 꾸뛰르쇼 사진을 자신들의 커뮤니티 포럼에 올린 미국의 난초 동호회 회원은 희망 가득한 코멘트를 올렸다. “난초가 세상에서 가장 쿨한 꽃이 된 것 아닐까?”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손기호
    포토그래퍼
    InDigital
    사진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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