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MH 프라이즈의 첫 우승자, 토마스 테이트

창의성, 상업성, 완성도를 갖춘 젊은 디자이너야말로 우리 시대가 기다리는 패션 천재다.
LVMH 그룹이 기획한 신인 발굴 후원 프로젝트 LVMH 프라이즈의 첫 수혜자,
토마스 테이트를 런던에서 만났다.



“The Winner is?” 5월 28일, LVMH 프라이즈 1회 수혜자가 발표되는 순간이다. “토마스 테이트(Thomas Tait)!” 그의 이름이 울려 퍼지자마자 패션계는 이 젊은이에 대해 여러 반응과 의견을 쏟아냈다. 사실 토마스는 런던 패션 위크를 통해 익숙한 인물이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 석사 과정 최연소 졸업생(입학 당시 스무 살), 졸업쇼 이후 2010 F/W 컬렉션으로 런던 패션 위크 데뷔, 2010년 도체스터 컬렉션 패션 프라이즈 1회 수상자, 영국 패션 협회의 뉴젠 프라이즈(New Generation Award. 톱숍과 영국 패션 협회가 공동으로 수상하는 신인 발굴 프로젝트로 알렉산더 맥퀸, 크리스토퍼 케인 등이 수상했다) 연속 수상! LVMH 프라이즈 수상으로 다시 한번 전 세계 패션계 초미의 관심 인물로 부각된 그는 30만 유로(한화로 약 4억 2,000만원)의 수상금과 함께 1년 동안 LVMH 그룹 전문가들로부터 멘토링을 받게 된다(여기저기 마구 뛰어다니던 조랑말이 드디어 안락한 마구간으로 들어간 셈). 나지막한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자신을 소개하는 그를 센트럴 세인트 마틴의 해크니 캠퍼스에서 만났다(하나를 물으면 자분자분한 말투로 백 마디를 쏟아냈다!). 고작 스물여섯 살의 디자이너는 대체 어떤 특기와 장점 덕분에 LVMH 프라이즈를 수상하게 됐을까?

 

Vogue Korea(이하 Vogue) 얼마전 <파이낸셜 타임스>에 당신이 직접 쓴 기사를 읽었다. 이제 당신으로부터 직접 듣고 싶다. 당신은 누구인가?

Thomas Tait(이하 Tait) 하하! <파이낸셜 타임스>에 기고한 글은 내게 특별한 경험이었다. 캐나다 일간지도 아닌 <파이낸셜 타임스>에 내 이름을 건 기사가 실리다니. 내 이름은 토마스 테이트! 나는 여성복 디자이너다. 캐나다 퀘벡에서 태어나 몬트리올에서 자랐고, 고교 졸업을 앞두고 패션을 선택해 캐나다의 ‘라 살 칼리지’에서 패션 전문 기술을 습득했다.

Vogue 런던으로 옮겨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 진학한 이유는 뭔가?

Tait 캐나다는 패셔너블한 곳이 아니다. 서점에서 전 세계의 다양한 패션지를 사는 것도 쉽지 않을 정도니까. 라 살에서 패션에 대해 더 알게 됐고, <아이디(i-D)>와 <데이즈드> 등을 보면서 내게 영감을 주는 디자이너들이 세인트 마틴 출신임을 알게 됐다. 샬라얀, 갈리아노, 맥퀸 등의 세대를 통해 내가 아는 것보다 더 넓은 패션 세상의 일부를 목격했다. 의류 제작 이상의 어떤 창의적 환경의 존재 말이다. 특히 맥퀸은 끝내줬다. 그에 관해 연구하던 중 그의 작업 안에 어떤 개인적 논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당시 구찌 같은 대형 그룹이 그의 창의성을 믿고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웠다. 캐나다라면 ‘입을 수 없는데다 결코 대중을 위한 옷이 아닌데 왜 만들지?’란 반응이 지배적일 것이다. 그래서 세인트 마틴에 반드시 입학하고 말리라,는 일념 하나로 스무 살에 지원해 합격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부모 곁을 떠나 런던으로 이사했다. 몬트리올의 어느 공장에서는 스코틀랜드 사람인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그래서 프랑스어가 모국어고 영어까지 가능하다.

 

Vogue 졸업 후 바로 런던 패션 위크를 통해 데뷔했다. 디자이너가 당신의 ‘업’이 될 거라는 것을 언제 깨달았나?

Tait 세인트 마틴 석사 과정의 첫 해는 정말 힘들었다. 내 아이디어를 소통하는 방법을 찾느라 많이 고민했고, 아트 스쿨을 다닌 경험이 없어 포트폴리오 작업에 애를 먹기도 했다. 일러스트 작업을 좋아했기에 그건 자신 있었지만, 튜터(외부 강사)들의 맘에 들려고 지나치게 노력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작업에 몰두하고 고민하기 보다 튜터들의 의견에 신경 쓰다 보니 결국 지치고 말았다. 이건 아니다 싶어, 어느 날 더는 신경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작업에 속도가 붙었다.

 

Vogue 남들과 작업하는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나?

Tait 어떻게 보면 ‘거꾸로’다.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이 비주얼 자료를 수집한 뒤 디자인을 시작한다면, 나는 디자인을 먼저 하고 그걸 소통하는 방법으로 비주얼적 요소를 찾아 나의 이야기를 전한다. 될 만한 특정한 요소를 고르진 않는다. ‘모로코에 다녀왔으니 이번 시즌은 전부 모로칸 바이브!’ 식의 작업이 아니다. 대부분 본능적으로 스케치하고(스케치를 아주 많이 한다) 그걸 동영상 클립으로 표현한다. 이 디자인이 어떻게 보이길 원하고, 또 어떻게 움직이며, 무게는 어느 정도였으면 좋겠다고 고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패션쇼와 연결된다. 아주 빠른 시간 안에 큰 그림이 그려진다. 머릿속에 어떤 노래가 있는데 가사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치자. 첫 단계로 비트를 기억하는 순간에 그림을 그리면서 ‘그래, 이거야!’라고 만족될 때 종이에 긁적이고 나면 그 다음은 자연스럽게 모든 게 이뤄지는 식이다.

 

Vogue 당신을 둘러싼 외적 요소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주위에서 나를 이해하는구나’라고 깨달았던 순간은 언제인가?

Tait LVMH 프라이즈 수상이 정말 뜻깊었던 점은 심사위원 대부분이 패션계에서 내로라하는 디자이너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 과정이 정말 편안했다. 그들 역시 젊은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살았거나 곁에서 지켜봤을 테니까. 가령 라프 시몬스나 리카르도 티시는 어린 나이에 브랜드를 대표하는 디자이너가 됐다. 또 다른 이들은 젊은 디자이너들을 고용한 장본인이기에 젊은 크리에이티브들이 어떻게 작업하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 때로 디자이너들은 저널리스트나 스타일리스트 등 패션계에서 일하는 또 다른 영역의 사람들로부터 평가 받아야 한다. ‘당신은 어디서 영감을 얻었나?’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무척 피곤하다. 그 질문은 무엇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이들만 대답할 수 있으니까. 심사위원 앞에 섰을 때 나는 내 영감의 원천 대해 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나는 그렇게 작업하지 않았으니까.

 

Vogue LVMH 프라이즈 공식 웹사이트에 올라온 영상 가운데, 쇼룸에서 ‘전문가 패널’ 중 한 명이 당신이 만든 재킷의 칼라를 보며 ‘오뜨 꾸뛰르 테크닉’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Tait 그것 역시 스케치에서 시작한 디자인으로 정교한 감수성이 숨어 있다. 소매가 자라서 몸통 앞면으로 이어져 하나가 되고, 다시 몸통 밖으로 어떤 어두운 화살 같은 것이 나오는 디자인. 기계로 드르륵 박을 수 없고 복잡한 수작업으로 완성했다. 꾸뛰르 패턴을 보면 특정 부분을 작업하기 위해 많은 생각과 수작업이 필요한데 아마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꾸뛰르적 디자인이라고 여긴 적은 없다. 쟝-쟈크 피카르(패션&럭셔리 컨설턴트)가 그렇게 얘기해 나도 좀 놀랐다. 내가 작업하는 공장의 재봉사가 대체 어떤 걸 피우길래(마약!) 이런 패턴을 디자인하느냐고 그가 농담 삼아 얘기했었다. 하하! 바느질을 마치고 나면 클래식하고 평범해 보이지만 바닥에 평평하게 깔아놓으면 희한하긴 하다. 하하.

 

Vogue 당신은 예술과 상업의 절단점(breaking point)에 대해 <파이낸셜 타임스>에 언급했다. 그러니까 당신에게 패션은 예술과 상업의 절단점인가?

Tait 패션 산업은 온전히 상업적이고 패션 디자인 작업은 순수하게 창의적이다. 그렇게 여긴 채 반대 지점을 보기 시작한다. 바로 그 중간 지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 말하자면 균형감! ‘건강한’ 균형감은 창의적인 사람들에게 어려운 일이다. 과거엔 디자이너들에게 패션 산업은 무거운 짐이었다. 그걸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 디자이너들도 많다. 그래서 LVMH 같은 거대 그룹의 조직적인 멘토링은 가치 있다. 그룹 내에서도 디자이너들을 위한 건강한 작업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라프와 피비가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고, 특히 피비의 경우 일이 끝난 후 가정으로 돌아가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건 아주 중요하다. 결국 우리 모두는 인간이고, 옷을 디자인하는 작업은 스위치를 온오프하듯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갈리아노나 맥퀸을 떠올려보자. 저녁 7시에 퇴근한다는 일은 상상도 못했을 것 같다. 10~15년 전 당시 디자이너들은 록 스타의 삶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디자이너는 비즈니스를 제공할 뿐, 환상의 콘서트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우리 세대 디자이너들이 어떤 곳을 향해 가는지 그 도달점을 상상해보면 흥미롭다.

 

Vogue 모두 휴가를 떠나고 런던은 텅텅 비었다. 올해만큼은 당신의 휴가가 좀더 느긋할 것 같다.

Tait 지금 휴가 계획은 없다. 내 브랜드를 시작한 뒤 제대로 휴가를 보낸 적도 없지만.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 현재 여유가 없다. 이번 시즌부터는 함께 작업할 최적의 팀을 갖추게 됐으니 그저 흥분될 뿐이다. 다가올 패션 위크를 마치고
11월 이후나 돼야 휴가를 생각할 수 있을 거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