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 코트의 시대

다시 찾아온 코트의 계절!
최근 몇 시즌간 코트 선택은 오로지 양감과 형태에 집중됐다.
하지만 그 기준이 바뀌고 있다. 이제 누가 누가 더 길게 입느냐가 관건이다.



그들은 너그러운 한도 내에서 약간의 ‘오버’를 허용하고 싶었던 것 같다. 라프 시몬스, 마르코 자니니, 율리아나 세르젠코… 벨기에, 이태리, 러시아 이름들은 1년에 두 차례씩 파리에서 열리는 꾸뛰르 주간에 참석해 옷을 발표하는 디자이너들이다. 이 신세대 꾸뛰리에들은 소위 ‘공주 드레스’가 주를 이루는 꾸뛰르 패션 위크에 신선한 또 한 벌의 옷을 추가했다. ‘발목과 바닥 사이’라고 해도 좋을 기다란 코트가 그것! 꾸뛰르 무대에서 이런 긴 코트를 구경하는 건 진귀한 일이었다. 진공청소기도 울고 갈 만큼 캣워크를 말끔히 닦고 다닐 만한 긴 스커트가 나왔으면 나왔지 롱 코트는 좀처럼 찾기 힘든 물건이었으니까.

그건 성스러운 꾸뛰르 현장에서만 희귀종이 아니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실용적인 프레타 포르테에서도 롱 코트는 종적을 감췄었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아예 롱 코트의 존재 자체를 잊은 채 양감과 부피만이 코트의 외모를 결정지었을 뿐. 덕분에 ‘오버사이즈 코트’로 명명되는가 하면, ‘남자 친구의 것을 빌려 입은 듯한 큼지막한 외투’라는 식으로 품평되곤 했다(80년대 파워 드레싱과 90년대 아방가르드의 하이브리드 아이템 정도?). 하지만 디자이너들은 늘 그렇듯 스스로 구축한 자신들의 오버사이즈 코트 신조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앞뒤좌우로의 부피와 면적 확장을 중단한 채, 상하길이 연장에 돌입했다. ‘과연 얼마큼 늘이는 게 좋을까?’ ‘발목을 기준으로 어디쯤에서 끊어야 적절할까?’ ‘길게 늘어뜨린 뒤 발목과 종아리는 또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등등.

코트라고 치면 여자들의 가을 대표 의류다(패션 회사 입장에서도 ‘코트 장사’를 얼마나 잘했느냐가 매출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 정밀하게 재단된 질 좋은 캐시미어, 플란넬, 트위드 코트 몇 벌만 있으면 동절기 옷차림 고민은 쉽게 일단락됐다. 코트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요새는 양쪽 팔을 소매에 넣기도 하지만 그냥 어깨에 툭 걸치는 방식을 통해 ‘어코’, 그러니까 ‘어깨에 걸친 코트’의 준말이 패션 유행어로 떠오를 정도다. 또 싸늘한 기후가 되면 코트 깃 안에 긴 머리카락을 쓸어 넣고 양쪽 옷자락을 팔로 여민 채 웅크리고 다니는 모습이 ‘프렌치 시크’라는 멜랑꼴리한 판타지마저 충족시켜줬음은 물론이다. 그리하여 오버사이즈, 슈퍼 사이즈 등으로 하염없이 양감이 확대된 코트를 안 입은 사람이 없었다.





그런 관점에서 롱 코트는 지나치게 오페라적이거나 연극적이다. 하지만 우리 앞에 빅 사이즈 코트가 떡 하니 나타났을 때를 떠올려보시라! 누구도 호의적이지 않았다. 벙벙하고 어정쩡해 보인다고 질색하지 않았나(새로운 옷은 늘 이렇듯 비호감으로부터 시작된다. 스키니 팬츠도 마찬가지. 하지만 그들의 승리로 끝난다는 사실!). 롱 코트 역시 다를 게 없었다. 1993년 MBC 주말연속극 <엄마의 바다>에서 고소영의 옷차림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만, 그건 대한민국 코트 역사의 새로운 순간이었다. 그녀가 이창훈과 데이트할 때 입은 보도블록을 청소하고 다닐 만한 길이의 롱 코트는 한국 내셔널 브랜드의 코트 산업을 바꿔놓을 만했다. 요즘 하나 둘씩 복귀전을 마련해 화려하게 재등장하는 90년대 패션의 일부에 롱 코트도 포함된다는 얘기. 아닌 게 아니라 96년 11월호 미국 <보그>는 ‘It’s a Long Story’라고 선언하며 길고 날씬한 겨울 코트들을 슈퍼 모델들에게 입힌 뒤 뉴욕 시내를 보폭을 넓혀 걷게 해 패션 화보를 촬영했다. 아울러 당시 할스턴 리바이벌의 결과이자 땅바닥을 휩쓸고 다닐 만한 긴 코트는 어떤 여성이든 세련된 실루엣을 만들어준다고 조언했다.

그 룩을 2014년 가을에 와서 다시 보니, 17년 전 옷이라곤 전혀 느낄 수 없을 만큼 ‘바로 지금’답다. 이런 코트를 작년 이맘때 봤더라면 몹시 촌스럽다고 빈정댈 수 있지만, 이번 시즌만큼은 그때 그 옷이 더없이 동시대적으로 보인다. 심지어 미학적으로 봤을 때 아름다울 정도. 무릎 길이의 코트와 달리 이런 코트는 걸으면 걸을수록 보폭을 넓히면 넓힐수록, 대형 극장의 막이나 묵직한 겨울 커튼처럼 흔들리는 맵시가 끝내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 코트 앞에 ‘Long’이라는 형용사만 붙이기엔 왠지 결승점까지 도달하지 못한 기분이 든다(여기서 결승점이란 복사뼈 혹은 발뒤꿈치 정도?). 여기 ‘Maxi’라는 더 적절하고 확실한 낱말이 있다!

맥시 코트를 90년대 유행의 복귀로 한정하기에도 아쉬운 부분이 조금 남았다. 올가을 초강력 트렌드로 선포할 ‘60년대’의 일부이기도 하니까. 미니가 전부였을 듯한 60년대에 웬 맥시 코트? 65년 영화 <닥터 지바고>의 세계적 히트를 감안할 때 영화 속 라라의 옷이 대중에게 미친 결과 중 하나가 맥시 코트(히피풍의 낭만적인 맥시 코트를 기억하시는지). 그런 면에서 90년대와 60년대 시대상을 패션을 통해 체험할 수 있는 옷이 2014년 맥시 코트다. 그렇다고 요즘 젊은이들이 옷 한 벌을 입을 때, ‘이건 90년대 유행이니까, 이 옷을 통해 그 시절을 다시 느낄 수 있겠군’이라거나, ‘우리 엄마가 60년대 처녀 시절에 입은 코트가 이거!’라는 식의 감성적 접근은 드물지 모른다. 하지만 패션으로 한번쯤 시간여행자를 꿈꾼다면? 혹은 물리적 상태보다 역사성을 살짝 곁들여 다각적으로 패션을 즐기길 원한다면? 이번 시즌 맥시 코트 한 벌이 해답이 될 수 있겠다.





맥시 코트는 여러 꾸뛰리에 외에 여러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들에 의해서도 제작됐다. 하이더 아커만, 빅토리아 베컴, 베로니크 브랑키노, J.W. 앤더슨, 마이클 코어스, 안토니 바카렐로, 더 로, 김서룡 등은 물론, 미우미우, 샤넬, 셀린, 발렌티노 등등. 언뜻 다 그게 그거 같지만, 자세히 보면 저마다 바닥과 발목 사이엔 미묘한 길이 차이가 존재한다. 여러분이 다양한 ‘긴’ 길이에 익숙해지면 각각에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옷장에 놓인 수많은 청바지 앞에서 엄마가 혀를 끌끌 찰 때 여러분의 대답처럼(“이건 물이 덜 빠졌고, 저건 통이 더 크고, 요건 허리선이 높다구!”). 그런데도 아직 웨딩 드레스 베일처럼 질질 끌리는 길이가 와 닿지 않나? 중요한 점은 스타 디자이너들이 다들 ‘긴 것’에서 의견 일치를 봤다는 사실!

 

신뢰감 넘치는 명단을 보며 맥시 코트 유행에 대한 명분을 얻었다면, 이제 어떻게 입느냐의 문제가 남았다. 이 길이를 제시한 디자이너들의 캣워크 사진에서 현실적인 아이디어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 라거펠트는 80년대풍의 레깅스와 운동화를 코트 안에 감추라고 조언하지만(샤넬), 미우치아는 60년대풍의 미니스커트에 거친 부츠를 제안하고 있다(미우미우). 하이더 아커만과 디올 꾸뛰르의 라프 시몬스는 매끈한 맥시 코트 안에 역시 매끈한 테일러드 팬츠를 곁들였다. 그 결과 이보다 더 수려하고 현대적일 수 없는 옷차림! 반면 셀린과 발렌티노는 허리띠로 코트를 졸라맨 뒤 X라인 형태를 즐겨보라 권한다. 안에 뭘 입었든 안 입었든 기나긴 원피스 개념으로 맥시 코트를 활용해도 된다는 얘기다. 마이클 코어스와 안토니 바카렐로는 또 다른 여성성인 관능을 강조한다. 투박한 코트 안에 야릇한 슬립 원피스를 입거나 기나긴 슬릿 스커트를 입거나. 그런가 하면 빅토리아 베컴처럼 검정 코트 아래 새빨간 바지 밑단이 슬쩍 눈에 띄는 센스를 발휘할 수 있고, 김서룡처럼 코트, 재킷, 팬츠를 동일한 핀스트라이프 옷감으로 구성한 스리피스로 정중한 멋을 내는 것도 가능하다.

패션은 극단의 세계다. 이번 시즌 코트 경향 역시 하늘과 땅의 양극단. 코트의 관점에서 저 위, 그러니까 엉덩이를 덮는 길이는 루이 비통과 생로랑에서 고를 수 있다. 안전하고 익숙한 무릎 길이? 프라다 매장에 깔렸다. 하지만 여자라면 본능적으로 맥시 코트만의 비율과 길이에 쉽게 중독될 것이다. 코트의 관점에서 길이가 땅을 향하면 향할수록 핵심을 발견할 테니까. 17년 전 <보그>의 선언대로, 그건 불변의 이치이기에. “동기가 뭐든, 여자들은 계속해서 길고 날씬한 옷차림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유? 간단하다. 키 크고 늘씬해 보이는 건 늘 즐거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