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존재감을 과시하는 모자

2016.03.17

by VOGUE

    존재감을 과시하는 모자

    한때 모자는 힘들여 멋을 낸 듯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퍼렐 윌리엄스부터 가로수길 멋쟁이들까지 모자가 현실 속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버터플라이 소매의 오버사이즈 니트와 격자무늬 니트 톱은 디올(Dior), 리본 장식 슬리브리스 가죽 셔츠는 구찌, 에나멜 가죽 소재 모자는 토즈(Tod’s), 스웨이드 소재 싸이하이 부츠는 스튜어트 와이츠만(Stuart Weitzman), 뱅글은 샤넬(Chanel).

    허리가 잘록한 뉴 룩에 비행접시 같은 모자 하나를 머리에 얹어줘야 ‘드레스 업’했다고 여기던 50년대 이후, 모자는 패션사에서 그리 인상적인 순간을 남기진 못했다. 필립 트레이시나 스테판 존슨 같은 천재적 모자 디자이너들이 예술적인 모자를 고안해냈지만, 그건 시대 분위기와 맞지 않거나 다분히 연극적이거나 지나치게 모양낸 인상을 풍겼으니 말이다. 2011년 가을, 구찌에서 페도라를 다듬어 선보였을 때도 그걸 멋스럽게 쓰고 거리에 돌아다니는 여자는 참 드물었다. 요즘은? 파나마 햇, 스냅백, 페도라, 비니, 플로피 햇 등 젊은 멋쟁이들의 머리 위에는 1년 내내 형형색색 모자들이 팔색조 같은 매력을 뽐내고 있다. 패션 역사상 처음으로 모자의 대중화가 글로벌하게 이뤄진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이어진 스냅백 유행에 이어 최근까지 쭉 이어지고 있는 건 바로 비니! 조니 뎁, 주드 로, 조시 하트넷, 애드리언 브로디, 데이비드 베컴 같은 남자 스타들의 리얼 룩 아이템으로 익숙한 니트 고깔모자 말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큼지막한 펠트 모자가 남자들의 스타일링에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그중 퍼렐 윌리엄스 룩의 시그니처라고 할 만한 챙이 짧고 높은 펠트 모자야말로 으뜸이다. 아디다스의 삼선 트레이닝 점퍼에 커다란 페도라를 눌러쓴 퍼렐은 모자 쓰는 방법에 통달한 인물처럼 보일 정도다. 그래서인지 올가을 시즌 엠포리오 아르마니는 퍼렐을 겨냥한 듯 높고 커다란 모자를 잔뜩 준비했다. 또 가레스 퓨는 마술사 모자를 닮은 하얀 모자를, 랑방의 알버 엘바즈는 깃털 달린 커다란 챙 모자로 드라마를 더했다. 또 토즈의 알레산드라 파키네티는 느슨하고 커다란 챙 모자로 과거와 미래를 교묘히 혼합했다(뒤쪽 챙을 아예 없애 전위적인 느낌마저 선사했다).

    아르마니가 선보인 펠트 모자와 가장 흡사한 퍼렐의 ‘버팔로 햇’은 1982년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발표했던 ‘Buffalo Girls’ 컬렉션의 빈티지 모자로 유명하다. 페루 여자들의 민속 의상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마운틴 모자로도 지칭된다. 한국에서는 예능인 하하가 여기저기 쓰고 나와 재빨리 유행으로 번지고 있다(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나가면 퍼렐 모자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렇듯 현실 속에서 모자가 유행하게 된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좀더 멋지고 쿨해 보이고 싶은 과시욕! 얼마 전 엠포리오 아르마니 청담 매장의 모자들은 진열되자마자 곧장 품절됐다.“대부분 중국 관광객들이 구입해 갔어요”라고 매장 직원은 전한다. “워낙 과감한 디자인이라 팔릴지 의문이었는데 최근에는 국내 고객들의 문의가 부쩍 늘었습니다.” 디자이너 이석태도 모자 효과를 누리고 있다. “그런지 스타일을 기본으로 소프트 아방가르드 룩을 시도했습니다. 이를 완성하기 위해 모자를 활용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커다랗고 특이한 모자는 이제 더 이상 패션 화보나 셀러브리티들을 위한 아이템이 아니다. 현실 속의 우리에게도 분명 장점이 있다. 쓰는 순간 스타일링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으니까. 게다가 얼굴을 좀더 돋보이게 하는 마술 같은 효과까지. 그건 10월호 패션 화보 촬영에서도 적용됐다. “모자를 씌우면 룩에 완성도를 더할 수 있죠.” <보그> 스타일 디렉터는 모자를 스타일링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도 미아 패로가 커다란 챙 모자를 쓰고 정원을 거니는 모습이 더없이 인상적이지 않나요? 컨셉 있는 룩을 연출하고 싶을 때 용기를 내보세요. 캐주얼한 룩에도 개성 있는 모자 하나면 분위기가 완전 달라지죠.” 2014년 최고의 모자 아이콘, 퍼렐은 이렇게 말했다. “그냥 좋아하는 모자를 썼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 모자를 좋아하고 또 어떤 사람은 ‘저게 뭐지?’ 하며 궁금해하죠. 결국 나 자신을 표현한 겁니다. 그럴 땐 기분이 정말 좋아요!”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손은영
    포토그래퍼
    KIM TAE WOO
    모델
    이혜정
    사진
    JAMES COCHRANE, INDIGITAL, COURTESY PHOTOS
    스탭
    헤어 / 김승원 메이크업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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