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굴 베끼나

서로가 서로를 베꼈다 아우성이다.
디지털, SNS 세상에서 이제 나만의 오리지널은 힘을 잃었다.
내 말이 네 말 같고, 네가 오늘 그린 그림은 어쩐지 내가 어제 본 풍경과 닮았다.
표절인 듯 표절 아닌 표절 같은 세상. 대체 누가 누굴 베끼나.

(왼쪽부터)마이클 케나가 강원도 솔섬을 찍은 ‘솔섬1’, 대한항공이 여행사진 공모전의 수상작을 사용해 완성한 TV CF 중 한 장면.

(왼쪽부터)마이클 케나가 강원도 솔섬을 찍은 ‘솔섬1’, 대한항공이 여행사진 공모전의 수상작을 사용해 완성한 TV CF 중 한 장면. 

 

 

(왼쪽부터)디자인 전공 대학생이 잠실대교를 찍어 완성한 졸업 작품 영상, 문화체육관광부가 광고 기획사에 의뢰해 만든 TV 공익광고.

(왼쪽부터)디자인 전공 대학생이 잠실대교를 찍어 완성한 졸업 작품 영상, 문화체육관광부가 광고 기획사에 의뢰해 만든 TV 공익광고. 

 

 

영국의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는 2007년 강원도 삼척 월천리에 들렀다 솔섬을 찍었다. 대로변에서 월천리 해변 쪽으로 걷다 셔터를 눌렀고, 이후 솔‘ 섬1’이란 제목을 붙여 발표했다. 국내 사진작가 김성필 역시 솔섬을 찍었다. 그도 월천리 해변 쪽 거리에 서서 셔터를 눌렀고, 이후 ‘아침을 기다리며’란 제목을 달아 대한항공 여행사진 공모전에 출품했다. 김성필의 ‘아침을 기다리며’는 공모전에서 입선해 2011년 대한항공 광고의 한 장면으로 쓰였다. 서로 다른 작가, 다른 제목의 비슷한 사진이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A씨는 잠실대교의 영상을 찍었다. 그는 대교 밑으로 내려가 점점 멀어지고 작아지는 다리의 모습을 터널처럼 담았고, 그걸 졸업 작품으로 제출했다. 그리고 한 광고 기획사가 1년쯤 뒤 그 잠실대교를 다시 찍었다. A씨의 졸업 작품과 마찬가지로 대교 아래에서 앵글을 잡았고 북단부터 남단까지 서서히 작아지는 다리의 모습을 담았다. 그리고 이 영상은 이후 문화체육관광부의 TV 공익광고로 전파를 탔다. 카피는 ‘우리는 하나로 이어져 있다’. 서로 다른 사람의, 서로 다른 의도를 담은 비슷한 영상이다.

 

표절인 듯 표절 아닌, 닮은 듯 같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거의 판박이인 사진이나 영상도 용케 도용의 오명을 벗어난다. 솔섬 사진의 경우 마이클 케나와 그의 전시를 주최했던 공근혜갤러리가 대한항공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법원은 “동일한 피사체를 촬영하는 경우 이미 존재하는 자연물이나 풍경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촬영하느냐의 선택은 일종의 아이디어로서 저작권의 보호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결했고, 잠실대교의 경우도 디자인 전공자 A씨가 법무법인을 통해 낸 저작권 침해 소송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는 “아이디어의 유사성은 인정하지만 저작권법상 표절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그러니까 요지는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도용은 표절이 돼도, 비가시적인, 영감이나 아이디어 베끼기는 표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거다. 마이클 케나나 디자인 전공자 A씨는 꽤나 억울하겠지만,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게 좀 그렇다. 그리고 실제로 자연이나 건축을 찍은 사진을 두고 도용 여부를 판단하는 건 쉽지가 않다. 마이클 케나의 대표작으로 알려졌지만 그와 거의 비슷한 솔섬 사진은 구글링만 해도 수백 장이 검색되고, 파리의 에펠탑, 이집트 피라미드 같은 건 비슷한 구도, 비슷한 분위기의 컷이 수천만 장일 거다. 에펠탑, 피라미드를 찍으며 가졌던 생각, 마음에 품었던 감정의 유사성을 대체 누가 어떻게 판단한단 말인가. 영감이나 아이디어는 제3자가 판단할 게 아니라 당사자가 이실직고해야 할 문제다. 이제 뭐든 내가 잉태한 오리지널이라며 목청을 높이는 건 복사기 앞에서 원본을 골라내는 일만큼이나 의미가 없어졌다.

 

(왼쪽부터)프랑스 일렉트로닉 듀오 저스티스의 데뷔 앨범  표지, 걸 그룹 티아라의 컴백 앨범  재킷.

(왼쪽부터)프랑스 일렉트로닉 듀오 저스티스의 데뷔 앨범 표지, 걸 그룹 티아라의 컴백 앨범  재킷. 

 

 

(왼쪽부터)블레이크 라이블리가 출연한 구찌의 향수 광고, 전지현이 금색 드레스를 입고 출연한 클라우드 맥주 TV 광고.

(왼쪽부터)블레이크 라이블리가 출연한 구찌의 향수 광고, 전지현이 금색 드레스를 입고 출연한 클라우드 맥주 TV 광고. 

 

 

(왼쪽부터)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이미지, tvN 미니시리즈 <마이 시크릿 호텔> 티저 이미지.

(왼쪽부터)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이미지, tvN 미니시리즈 <마이 시크릿 호텔> 티저 이미지. 

 

(왼쪽부터)필름 아티스트 첼리아 롤슨 홀의 작품 컷,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의 티저 이미지.

(왼쪽부터)필름 아티스트 첼리아 롤슨 홀의 작품 컷,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의 티저 이미지. 

 

 

근래 표절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건 이뿐만이 아니다. 전지현이 금색 드레스를 입고 한껏 멋을 뽐낸 클라우드 맥주의 TV CF는 블레이크 라이블리가 출연하던 구찌의 프리미어 향수 CF를 베꼈단 구설수에 올랐고, 8월 첫 방송을 시작한 tvN 미니시리즈 <마이 시크릿 호텔>은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스틸과 꼭 닮은 티저 이미지를 공개했다 표절 논란이 일자 일제히 사진을 내렸다. 공효진, 조인성이 출연한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역시 뉴욕의 필름 아티스트 첼리아 롤슨 홀의 작품을 베껴 티저 영상을 만들었다 혼쭐이 났으며, 슈‘ 가프리’로 9월 컴백한 티아라의 앨범 표지는 프랑스의 일렉트로닉 듀오 저스티스(Justice)의 데뷔 앨범 와 거의 흡사해 지금 난리다. 이 중 몇몇은 명백한 표절이겠지만, 올 초 마이클 케나의 사례를 떠올려볼 때 몇몇은 꽤나 골치를 썩을 문제다.

그리고 요즘은 이미지, 영상만 도용 논란에 시달리는 게 아니다. 대중문화 웹진 <아이즈>는 소녀시대 태연과 엑소 백현의 스캔들이 터졌을 때 이전 자신들이 썼던 백현 인터뷰 기사가 이런저런 매체들에 마구잡이로 발췌 인용돼 곤욕을 치렀고, 한 신문 매체는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의 ‘왜 정치인들은 비극의 현장에서 기념 촬영을 할까’ 기사가 본인들이 4시간 전 먼저 올린 비슷한 주제의 기사 기획을 훔쳤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다들 서로가 서로를 베꼈다 아우성이다. 결론은 <아이즈>의 경우 상대가 묵묵부답해 결국 유야무야됐고, 신문 매체의 경우 <허핑턴포스트 코리아>가 기획을 꾸리기 전후 상황을 설명하며 무죄를 입증해냈다. 이젠 기사 기획의 유사성, 연예인이 한 말의 출처와 그 사용권마저 도마에 오르는 상황이다. 누구나 사진을 찍고, 누구나 기사, 혹은 그 비슷한 것을 쓰며, RT와 인용이 클릭 한 번에 가능한 세상에서 표절은 표절이 아닌 게 되었다. 온 세상이 복사기와 같아진 환경에서 이제 나의 생각, 나의 글, 나의 사진은 결코 나만의 것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표절은 심증의 문제다. 판박이 같아 보이는 창작물도 사실 당사자가 어젯밤 꿈에서 얻은 영감의 결과라 둘러대면 그게 도용임을 명확하게 규정할 방법은 없다. 표절 관련 저작권법은 그저 닮은 그림, 혹은 틀린 그림 찾기 하듯 결과물의 유사성을 판단할 뿐이고, 오마주, 패러디, 인용이란 틀은 도용한 사람이 변명할 여지를 넓혀줬다. 게다가 대부분 기사나 글의 경우 출처를 표기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인사이트>와 같은 사이트는 심지어 타 매체 기사들을 긁어모아 지면을 운영하지 않나. 심지어 요즘 인터넷에 기사가 올라오는 양상을 보면 서로가 서로의 기사를 RT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투나 제목이 조금씩 다를 뿐 거의 같은 내용, 같은 맥락의 기사들이다.

 

그러니까 애그리게이션(Aggregation) 매체까지 등장한 시대에 표절은 어느 정도 합법적 인용이 되었다. 이제 오리지널 창작자가 기댈 건 저널리스트로서의 책임, 창작자의 도덕적 책무 같은 것밖에 없는지 모른다. 혹은 수사망을 가동해 피고를 심문하고 취조해야 할 시대인지도 모르겠다. 내 것은 없다. 하지만 네 것도 RT하면 내 것이 되고, 그 혹은 그녀의 것도 인용하면 내 것처럼 쓸 수 있다. 카피 & 페이스트의 세상에서 창작은 분명 시험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