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디자이너들의 시즌 컬렉션 1

아직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쏟아지지 않았지만, 자신만의 분명한 색깔로 인정받은 차세대 다크호스들이 있다.
<보그>가 이들 젊은 디자이너들의 새로운 시즌 컬렉션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모델과 디자이너 의상은 모두 고엔제이, 검정 스트래피 샌들은 미우미우, 베이지색 앵클 스트랩 슈즈는 프라다.


Goen. J


정고운은 9월 중순 밀라노 쇼룸에서 선보일 2015 봄, 여름 컬렉션 샘플을 완성하느라 정신없이 바쁘다. “가능한 범위 내에 새로워 보이는 디자인을 해야 한다는 게 늘 어려워요. 그렇지만 ‘과연 이게 예쁠까?’ 싶다가도, 완성된 샘플이 마음에 쏙 들 때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죠.” 그녀는 기존 이미지를 새롭게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고엔제이를 다른 디자이너 브랜드와 차별화한다. “전형적으로 여성스럽거나 클래식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예상치 못한 신선한 방식으로 연출하는 게 쿨해 보인다고 생각해요.” 2014 가을, 겨울 컬렉션 역시 똑같은 과정을 거쳤다. 1950~60년대 여배우의 우아한 의상에 사용됐던 소재와 디자인을 요즘 여자들이 입는 쿨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

 

예를 들어 꽤 많은 여자들이 로망을 품고 있으면서도 나이 들어 보이기 쉽다는 생각 때문에 선뜻 시도하길 꺼리는 트위드 소재만 해도 그렇다. 정고운은 클래식한 트위드 소재로 MA-1 공군 점퍼, 공군 점퍼와 코쿤 실루엣을 결합한 오버사이즈 코트, 바이커 재킷, 발랄한 미니스커트를 만들었다. 폭신하게 충전재를 채운 공군 점퍼의 경우 기능적인 포켓과 군용 패치의 형태와 위치까지 똑같이 재현했는데, 풍성하고 장식적으로 보이도록 여러 겹을 덧대고 테두리 부분의 올을 일일이 손으로 풀었다. 이런 섬세한 디테일은 매시즌 등장하는 세퀸, 레이스, 비치는 소재와 함께 고엔제이 컬렉션에 여성스럽고 관능적인 느낌을 더한다.

 

란제리를 전공한 그녀의 특징인 동시에 사람들이 고엔제이에 매력을 느끼게 만드는 요소다. “그러다 보니 제작 과정이 까다롭거나 비용이 올라가는 경우가 많아요. 다행인 건 고엔제이를 사는 사람들이 그런 디자인을 좋아한다는 점이죠.” 정고운은 순수하게 디자인으로 성공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미즈하라 키코가 레어마켓에서 판매할 딱 두 개의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 중 하나로 추천했을 정도니, 예쁜 걸 알아보는 셀럽의 애정을 거부할 수만은 없을 듯하다.



모델과 디자이너 주변 백과 신발은 모두 202 팩토리, 다이아몬드 형태로 오픈워크된 톱은 필립 플레인, 하이웨이스트 쇼츠는 아메리칸 어패럴.


202 Factory


그동안의 성과에 비하면 이번 시즌에 첫 단독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혹은, 그럴 만하다. 우리나라보다 외국에서 반응이 더 좋은 대표적인 브랜드 중 하나니까. “그래도 어디든 예뻐 보이는 건 다 비슷한가 봐요. 복슬복슬한 인조 모피 크로스백과 샌들, 아크릴 담배 케이스 등.” 디자이너 이보람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얼마 전 가로수길에서 프레젠테이션 형태로 컬렉션을 선보였고, 해외 매장에서는 이미 판매 중인 가을, 겨울 컬렉션의 주제는 ‘필로우 토크’. 프리마돈나와도 작업한 적이 있는 아티스트 차예원의 전시에 갔다가 울고 있는 콜걸 캐릭터(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속 여인처럼!)에 ‘꽂혀서’ 바로 협업을 제안했다. 투명한 PVC 소재 봉투 모양 클러치가 크게 히트한 덕에 가방 디자이너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202 팩토리의 이보람은 엄밀히 말해서 액세서리 디자이너다(아직까지는). 필로우 토크 컬렉션의 재기 발랄한 가방들-피핑 톰 패치 장식, 베개와 쿠션 모양 클러치, 선물 상자 하드 클러치 등-을 돋보이게 하는 건 모피 샌들, 다리 모양 쿠션, 실크 안대, 귀여운 양말 같은 소품들.

 

“콜걸의 침대 주위에 있을 만한 것들에 대해 생각했죠. 플리츠가 달린 쿠션, 베개… 담배도 피우겠죠. 전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요!” 이보람은 에디 세즈윅과 마틸다, 롤리타 같은 제멋대로의 매력적인 캐릭터를 좋아한다. 그리고 뭐든지 ‘예쁜 걸 좋아’ 한다. 비흡연자도 담배를 태우게 만들 정도로 깜찍한 담배 케이스라든가, 립스틱과 스마트 폰이 겨우 들어가는 선물 상자 모양 하드 클러치의 키치한 감성(202 팩토리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에 코웃음 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진지하고 고차원적 패션보다 아예 실용적이거나 혹은 즉각적인 호기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패션이 사랑받는 시대. 202 팩토리는 가장 동시대적인 브랜드 중 하나로 성장하는 중이다.



모델이 겹쳐 착용한 주얼리는 모두 젬앤페블스 타임리스 컬렉션, 데님 재킷은 A.P.C., 베스트는 씨위.


Jem & Pebbles


젬앤페블스의 디자이너 전선혜는 패션 MD가 되기 위해 떠난 영국에서 우연히 빈티지 주얼리의 매력에 빠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만들어서 비뚤비뚤하고 일정하지 않죠. 그런 ‘손맛’이 마음에 들었어요.” 단순한 흥밋거리가 운명으로 느껴질 때쯤 운 좋게 은세공 장인을 만나 수제자가 됐고, 본격적인 주얼러의 길로 들어섰다.

 

올해 선보인 그녀의 다섯 번째 컬렉션 ‘타임리스’는 과거 유물의 현대적인 재해석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빗금이 새겨진 가느다란 끈을 돌돌 감은 형태는 13~14세기 이집트 고대 유물에서 영감을 얻었고, 악어와 타조가죽의 독특한 질감을 실감 나게 재현한 뱅글과 반지는 19세기 애니멀리즘을 반영한 것. 특히 단순하면서도 정교하고, 거친듯 섬세한 디자인은 전문 주얼리 브랜드에선 보기 드물게 자유롭고, 과감한 인상을 준다. “원석 세팅은 이렇게, 이런 디자인에는 이런 소재로라는 식의 학습된 고정관념이 없으니 접근부터 다르죠. 그래서 더 색다르게 보이는 게 아닐까요?” 주얼리 디자이너로서 전문 교육 과정을 거치지 않고 실전을 통해 배우기도 했지만, 순수 미술 전공과 패션 회사 경력의 배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분명한 건 패션에 예민한 셀러브리티들이 젬앤페블스의 팬이라는 사실. 초창기 때부터 단골인 공효진, 젬앤페블스에서 웨딩 링을 맞춘 이효리 모두 화보 촬영 중 제품을 접한 후 직접 쇼룸에 들러 제품을 구입했다. “웨딩 링은 두 분이 함께 와서 소박한 디자인으로 골랐지만, 골드에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프러포즈 링은 이상순 씨가 혼자 와서 주문한 거예요.” 전선혜는 쉽고 편안하게 착용할 수 있으면서도 시적인 주얼리를 만들고 싶다며 1999년에 세상을 떠난 프랑스 주얼리 디자이너 세르주 토라발(Serge Thoraval)에 대해 이야기했다. “단순한 디자인이지만 거기에 시구가 새겨져 있죠. 투박하고 밋밋하지만 아주 서정적인, 저는 그런 게 좋아요.”